언어는 정치적이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서 학문에 힘을 줄 때,  나는 주로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학문에 힘을 준다.  누군가 친절하게 항문에 힘을 준다고 써야 할 것을 학문에 힘을 준다고 잘못 쓰셨어요. 호호호 _ 라고 지적한다면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리라. " 아닙니다. 저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 학문에 힘씁니다. "

몸속에 있는 모든 적폐를 몸밖으로 내보낼 때까지 변기에 앉아서 국어사전을 읽는다. 스스로 탁월한 결정이란 생각을 한다. 화장실에서 시집을 읽는다는 것은 그 시인에 대한 모독이며 << 폭풍의 언덕 >> 따위를 읽는 것도 그 작가에게 민폐'다. 저토록 쓸쓸한 몰락 앞에서 똥을 누면서 함께 슬퍼한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화장실에서는 만만한 게 사전이다, 사전은 읽는 이의 서정을 요구하지는 않으니까(사전을 읽다가 우는 놈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 미친놈이다). 나랏 말쌈이 듕국과 달라 서로 사맛디 아니한 국어사전을 읽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왕정복고로 되돌아가려는 잔재들이 눈에 보인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신분에 따른 차별 없이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한글이라는 세계는 철저하게 남근 중심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좆은 항상 젖보다 앞선다.  " 부부(夫婦) " 라는 단어만 해도 그렇다. 아내(婦)보다 앞서는 것은 남편(夫)이다.  그러니까 婦夫라는 단어 조합은 가부장 사회에서는 성립될 수 없다.  외국어 중에 서열을 이미 못 박는 경우는 별로 없다.  부부를 뜻하는 (married) couple'이라는 단어에는 성차에 따른 서열의 우선순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차가 아닌 남성 간 서열을 정해야 되는 경우는 나이가 권력이 된다. " 형제兄弟 " 라는 단어는 나이가 유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

같은 이유로 " 자매형제 " 라는 단어는 없지만 " 형제자매 " 라는 단어는 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는 시대에 한글은...... 유감스럽게도 지위의 고하를 졸라 따지는 언어'로 성장했다. 그것이 어디 언어 탓이랴. 그런데 한글 특유의 서열 정리가 딱 한번 전복되는 경우가 있다.  바로 " 연놈 " 이라는 단어'다.  제일 먼저 욕을 먹는 부류는 놈이 아니라 년'이다. 무릎을 탁 _ 치고 아 _ 하게 된다.  이토록 치밀한 어깃장 ! 민물장어도 아니면서 꽤나 꼼꼼하시다. 이처럼 한글은 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권력을 좇는다는 점에서 이명박스럽다. 한글의 성차별적 사례를 열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굳이 특정한 성을 명시하는 것도 성차별적이다.  여류 화가나 여류 소설가는 있지만 남류 화가나 남류 소설가라는 표현은 없다.  그리고 " 여교사 " 라는 단어는 있지만 " 남교사 " 라는 단어는 없다.  여배우, 여가수, 여교수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들은 성중립적 단어가 아니라 성차별적 단어에 해당된다. 만약에 성을 굳이 명기해야 된다면 " 여교사 " 라는 단어보다는 " 여성 교사 " 라는 문장 구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언어는 정치적이다 ■

 

 

 

 

 

덧대기   ㅣ    순우리말인 " 가시버시 " 는 부부(夫婦)라는 뜻인데 여기서 < 가시 > 는 아내를 < 버시 > 는 남편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어를 한자 조합으로 구성한 것이 바로 夫婦다.  이런 단어들은 대부분 양반 계급이 한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러니까 성차별적 언어를 창조하신 주체는 지배 계급인 양반이다. 이밖에도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에는 ‘팍내’, ‘한솔’이 있는데, < 팍내 > 는 가슴팍을 맞대고 사는 사이를 뜻하고 < 한솔 > 은 옷감의 끝단을 서로 잇는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라는 의미이다. 이처럼 부부를 의미하는 순우리말에는 성차에 따른 위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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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7-11-16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네요. 남녀라는 말에서도 남자가 우선이고... 정말 언어는 정치적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0:03   좋아요 0 | URL
모든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선남선녀라고 하지 선녀선남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비로그인 2017-11-16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는 사람을 미치게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0   좋아요 0 | URL
동의합니다아.

cyrus 2017-11-16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래 ‘언니‘가 남성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동성을 부르는 호칭이었어요. 여성이 언니를 부를 때 ‘형님‘ 호칭을 사용했어요. 언제부터인가 성별로 구분해서 부르는 호칭으로 변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3   좋아요 0 | URL
오 !!!!!!!!! 그렇습니까 ? 형님은 어느 정도 이해는 가는군요. 왜 아랫 동서가 윗 동서에게 형님 형님 하니까요..
그런데 남성이 보다 나이 많은 남성에게 언니라고 했다는 말은 금시초문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47   좋아요 1 | URL
오, 정말 그러내요. 이런 내용이 있군요. 사실 한국어의 오염 대부분은 한자화되면서 만들어졌거든요.





언니라는 단어는 원래 손 위의 사람을 일컫는 순 우리말이다.

그러나 세종대왕님께서 창제한 훈민정음은 당시 유학자들에게 암글, 언문 등의 호칭으로

비하되어 불리며 버림받았다.

그래서 주로 신분이 낮거나 여자들 사이에서만 이 호칭이 사용되었으며(양반이나 왕족

사이에서는 형(兄)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다.) 후대에 이르러서는 여자들만 사용하는 탓에

손 위의 자매를 뜻하는 단어로서 점점 굳어졌다.

일례로 드라마 추노에서는 남자들끼리 손위의 사람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cyrus 2017-11-16 13:50   좋아요 0 | URL
드라마 <추노>에 왕손이(김지석)가 이대길(장혁)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대사가 나왔어요. 홍명희의 《임꺽정》 에 보면 꺽정의 의형제 동생들이 ‘꺽정 언니‘라고 부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수다맨 2017-11-1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위에 댓글을 써주신 cyrus님 얘기 듣고 생각난 건데 몇몇 원로 작가들(고 이문구, 현기영 등) 글에도 남성이 동성 손위 형제를 일러서 언니라고 부르는 대목이 간혹 등장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이문구의 ˝관촌수필˝에 수록된 ‘공산토월‘이라는 자전적 단편에서는 어린 주인공이 형에게 언니라고 부르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지요.

cyrus 2017-11-16 13:54   좋아요 0 | URL
《관촌수필》에도 ‘언니‘ 호칭의 옛 의미가 나오는군요. 안 읽어본 작품이라서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3:57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니깐.... 장길산인가.. 거기서도 언니언니했던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4:22   좋아요 0 | URL
이런 단어를 만든 이는 양반 지배 계급이죠. 양반이 한자를 사용했으니까.
부부의 순우리말이 가시버시인데 여기서 가시는 아내고 버시는 남편입니다. 이걸 한자 조합으로 구성하면서
부부가 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14: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부를 가리키는 우리말에는 ‘팍내’, ‘한솔’ 따위가 있다. 가슴팍을 맞대고 사는 사이, 혹은 옷감의 끝단을 서로 잇는 하나의 솔기처럼 서로 엮인 사이라는 뜻쯤 되겠다. - 순우리말에는 성차에 따른 위계가 없다.

책한엄마 2017-11-16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배워가요.북플이 이상해졌는지 댓글달기가 자꾸 에러나요.알라딘 어플로 들어와 남겨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21:15   좋아요 0 | URL
확실히 에러가 많이 나죠 ? 하다 보면 나같은 사람이 성질나서 금방 포기하게 됩니다..

임모르텔 2017-11-16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집에선 성차별없었는데, 밖에나와서 성차별받고 충격받은 적이!
차별하는 심리...곧 생존공포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

팍내..한솔... 글느낌 참 좋네요^^
곰발님이 강사하면 인기강사였겠어요... 귀에 쏙~들어오는 쿵푸(공부)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21:17   좋아요 0 | URL
순우리말들이 정말 예쁜 말들이 많습니다. 모서리가 없는 둥근 느낌이 많이 들죠.
이걸 양반이랍시고 사대주의에 빠져서 이상한 위계를 만들어놓은 것이 지금의 한자 조합 단어들입니다.
얼마나 좋아요. 팍내라는 뜻도, 한솔이라는 뜻도.... 이건 지배 계급인 양반들이 망쳤습니다.


물고기 이름만 봐도 그렇습니다. 생선답게 생긴 이름은 대부분 한자 조합으로 양반들이 만들었습니다.
못생긴 이름은 아예 짓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글 이름 물고기는 대부분 못생겼죠.
아귀(물텅벙이)만 봐도 그렇습니다..

음... 2017-11-17 0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남교사란 단어가 없다구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7 10:07   좋아요 0 | URL
사전에 남교사라는 말이 있나요. 전 들어보질 못했씁니다. 남선생이란 단어는 있어도 남교사라는 단어는 없죠.

마립간 2017-11-17 08: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양 陰陽은 왜 양음 陽陰이 아닌 음양일까요? (이 댓글이 페미니즘과 관련되었다면 삭제하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7 10: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네요.. 음양이 뭐 광범위한 함의를 담은 단어이니.... 비단 여남의 뜻만 내포한 것은 아니니 그리 되었나 봅니다.

캐모마일 2017-11-17 16:54   좋아요 3 | URL
아마 도가를 비롯한 제자백가의 영향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사고와 주역의 지천태(곤괘가 건괘 위에 있는 상)을 길조 중의 길조로 생각하는것처럼요. 조선시대 중궁전의 이름인 교태전도 이 지천태괘에서 연원했다고 하지요. 곰곰님 말씀처럼 남여뿐 아니라 당시 우주관과 다양한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런지요.
 



 

 

 

 

 

 


 


잘 만든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는 아니다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김승옥의 << 무진기행 >> 이 차지하는 위상을 굳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이 작품이 시대를 앞서는 세련된 문체를 제외하면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권태에 빠진 남자가 여행을 통해 묘령의 여인을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여성을 단순히 고개 숙인 남성의 보양식 정도로 소모하는 문학작품이라고나 할까 ?   이 소설은 철저하게 히마리 없는 남성의 발기를 위해 서사가 복종한다는 점에서 " 모던 " 하다기보다는 " (남)근대 " 적이다. 개불처럼 물러터진 남근을 딱딱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의 목적인가 ?  문학은 비아그라'가 아니지 않은가(이 분야의 대가는 윤대녕이다. 윤대녕 소설은 장르적으로 순문학이 아니라 비아그라 문학이다) !  한국 남성 문화에 대해 체질적으로 반감을 가진 나는 자기 연민을 바탕으로 한 " 남성성 회복 " 이나 " 남성성 과시 " 를 

위한 서사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느끼고는 한다. 한국 사회는 남아에 대한 선호가 워낙 강하다 보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 Ladies & Gentleman " 을 숙녀 신사 여러분이 아닌 " 신사 숙녀 여러분 " 이라고 번역할 때마다 지랄도 풍년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한국 유교 문화의 특징은 약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강자에 대한 기득권을 먼저 강조한다. 언어의 형태를 보아도 강자는 약자보다 선행한다. 남녀라는 단어는 있지만 여남이라는 단어는 없다. 하지만 이 구조가 딱 한번 바뀌는 경우가 있다.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에는 남과 여의 순열이 바뀐다. 우리는 남녀를 싸잡아서

욕을 할 때 놈 년이라고 하지 않고 연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나는 " 연놈 " 이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한국 남성 사회의 집요하고 꼼꼼한 찌질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내가 김기영 감독의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영화가 전형적인 남조선 불알후드 동맹에서 벗어나 있다는 데 있다.  김기영 영화는 여성이 그 시대가 요구하는 롤모델에서 벗어나 전복적인 위치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며 혁명적인 영화다.  << 육식동물 >> 만 봐도 그렇다. 시작은 권태에 빠진 남자가 젊은 호스티스를 만나 원기를 회복한다는,  전형적인 남성 성인용 비아그라 서사를 그대로 답습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역할 놀이는 전복된다. 아내는 바람난 남편의 정부를 시기하기는커녕 정부가 남편을 길들이는 조건으로 정부에게 양육비를 지급한다. 지아비를 섬기고자 하는 태도나 남성에 대한 존경은 없다. 말 그대로 남자는 애완동물로 취급된다. 영화가 워낙 뒤죽박죽이라 컬트의 반열에 오른 작품이지만 참고 견디면 " 퍽유-시네마 " 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이보다 더 황당하고 난해한 영화를 찾는다면 << 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 >> 를 추천한다. 영화적 완성도가 워낙에 형편없어서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펑 ! 펑 ! 펑 !  캄캄한 동굴에서 뻥튀기 기계에서는 쉴 새 없이 뻥튀기 과자가

허공을 향해 날아가고 남녀가 그 밑에서 섹스를 하는 장면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왜, 동굴 속에 뻥튀기 기계가 있을까 ? _ 라고 의문을 갖는 순간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감소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과테말라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김기영 영화가 좋다. 내 말에 동의할 사람은 없겠지만 김기영 감독은 알프레드 히치콕과 에드워드 우드를 반반 섞어놓은 인물 같다. 끝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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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1-13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상을 쪼개어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항상 부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9   좋아요 0 | URL
ㅎㅎ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포스트잇 2017-11-1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테말라 영화..ㅋㅋ
뻥튀기가 펑펑 날아다니는 장면은 웃을수도 울수도 없던데요..
..김기영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여성들이 정작 ‘전복적‘ 쾌감을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 시대의 한국영화들은 워낙 손을 많이 탄탓에 그게 더 기괴하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9   좋아요 0 | URL
여성성의 전복성이라기보다는
남성성의 전복성이 김기영 감독 영화의 특징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기영 영화 속 남자는 대부분... 좀 띨띨해요. ㅎㅎ

수다맨 2017-11-16 0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영의 ˝하녀˝는 재작년 무렵에 곰곰발님의 추천으로 보았고, 임상수의 ˝하녀˝는 군복무하던 시기에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정확히 50년(김기영 영화는 1960년에, 임상수 영화는 2010년에 나왔지요)의 시차가 나는데도 오래전 작품인 전자가 월등히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치정과 막장에 재미 이상의 ‘쫄깃한 무언가‘를 부여할 줄 아는 감독을 높이 치는데 김기영 감독은 제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제가 최하로 여기는 감독은 치정과 막장을 오로지 ‘그럴듯한 비쥬얼로만‘ 보여주는 사람이지요. 박하게 말하면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보고 나서 노출신 말고는 기억나는 게 없더군요. 저는 전도연이 불타서 죽는 장면보다, 이은심이 태연한 표정으로 살아있는 생쥐를 들고 흔드는 장면이 더 소름끼치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8   좋아요 0 | URL
ㅎㅎ임상수의 하녀는 정말 끔찍했죠. 아무리 스타일이 화려해도 본질을 꿰뚫을 수는 없습니다. 스타일에 집착하면 항상 본질을 놓치게되요.. ㅎㅎ이은심.. 정말 아주 독특한 비주얼이죠 ? 그 영화에서 대단했습니다.
 
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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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세 시가 되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마법처럼 느려진다. 오후 세 시에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은 한가한 사람들이고 새벽 세 시에 깨어있는 이는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들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이 온다는 최승자의 독백처럼 이렇게 눈을 감을 수도 없고 이렇게 눈을 뜰 수도 없을 때 세 시'가 온다. 그러니까 새벽 세 시는 사람 나이로 치면 서른 살'이다. ​나이 서른은 젊은 시절의 마지막 시기라는 점에서 쓸쓸한 황혼이다. 이 시간이 가장 외롭다. 가장 깊고, 가장 춥고, 가장 조용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 거리를 걷는 이는 오로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뿐. 주정뱅이는 세 시가 주는 고독한 정서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부류'다. 그렇기에 새벽 세 시에 불 켜진 집 창문을 보면 위로가 된다. 그것은 일종의 " 불면의 연대 " 이자 " 고통의 공감 " 이다. 깨어 있으라. 누구든 깨어 있으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짧은 단편 << 깨끗하고 밝은 곳 >> 은 늦은 밤, 카페의 풍경을 담는다. 늦은 밤 카페 손님도 모두 돌아갔는데 노인 한 사람이 남아서 술을 마신다. 그 노인은 지난주에 자살하려다 실패한 이다. 그 노인은 새벽 3시까지 카페에서 앉아 술을 더 마시고 싶어 하고, 젊은 웨이터는 3시 전에 카페 문을 닫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젊은 웨이터보다 나이 든 웨이터는 그 노인의 고독을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불빛이 필요하니까, 캄캄한 밤바다에서 좌표를 잃고 난파된 배는 등대의 빛이 간절히 필요한 것처럼. 단선적인 내용에 짧은 분량의 단편이지만 읽는 내내 벼린 칼끝에 베인 듯 아프다. 책을 덮고 나면 걸작 반열에 오를 작품이라는 제임스 조이스의 성찬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게 된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새벽 세 시'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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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1-12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세 시가 ‘서른‘이고, 외로운 시간이라는 곰곰발님의 말씀이 와닿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21:54   좋아요 1 | URL
저는 나이 서른이 이상하게도 나이 육십보다 더 나이가 든 것 같은 느낌이 강합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나이 서른은 저에게는 노년처럼 다가옵니다..

임모르텔 2017-11-12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나이 서른에는 새벽 세시는 이제 술시의 중반전이라~ 거의 먹기시작하면 해뜨는 광경을 볼때까지 .. ㅎㅎ
헤밍웨이가 좋아하셨던 .. 모히또 칵테일이 생각나네요. 라임과 허브를 짓이긴 션한 술 ! ......침나오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22:38   좋아요 0 | URL
고흐 하면 압생트이고
헤밍웨이 하면 모히또군요..

2017-11-12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3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깨끗하고 밝은 곳 쏜살 문고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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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 클럽


젊은 웨이터가 그에게 다가갔다. " 뭘 갖다 드릴까요? " 노인은 웨이터를 쳐다보았다. " 브랜디 한 잔 더. " " 취하실 텐데요. " 웨이터가 말했다. 그러자 노인은 그를 쳐다보았다. 웨이터는 물러났다.


- 깨끗하고 밝은 곳, 어니스트 헤밍웨이





                                                                                                          아버지는 주정뱅이였다. 학창시절 전교 부회장을 역임하셔셔셔셨던 형도 주정뱅이였다. 겉으로는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직원이었지만 알코올중독자여서 병가를 내고 6개월 간 알코올 치료소에서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술을 삼키고 있다(라고 추정된다).

난형난제, 나도 주정뱅이에 속했다.  나는 내가 주정뱅이라는 사실을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인에게도 철저히 숨겨야 했다.  가족의 비극은 한 명으로 족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공병을 가방 속에 넣고 출근을 해야 했다. 병이 부딪치는 소리를 소거하기 위해서 병 둘레에 두루마리 휴지를 감는 노하우도 발휘했다. 두루마리를 두른 술병은 용각산처럼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야 걸을 때 가방 속에서 빈병이 부딛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술병을 치울 때는 항상 긴장하게 된다.  시체를 처리하는 살인범의 마음 같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워야 한다.  하지만 완전 범죄란 없는 법.

목격자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늘상 술병을 버리는 곳은 집에서 조금 떨어진, 가파른 언덕길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발목을 삐끗하면서 넘어지는 바람에 빈병이 담긴 봉투를 놓치고 말았다.  타타타타타타타. 두루마리 휴지를 두른 술병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신나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고요한 아침에 시끄럽게 떠들며 굴러가는 술병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늦가을에 익어가는 홍옥처럼 불콰한 얼굴이 되었다. 아, 아아아아. 이 철딱서니없는 녀석들아. 너희들은 나와는 달리 성격이 꽤나 발랄하구나.                     출근하던 사람들은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이내 나를 쳐다보았다.

모든 정황은 내가 주정뱅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울고 싶어라. 문득, 쟈크 프레베르의 << 꽃집에서 >> 란 시가 떠올랐다. 주정뱅이는 쓰러져 넘어지고, 가방은 바닥에 떨어지고, 술병들은 굴러가고....... 이 모든 일은 매우 슬픈 일1)이다. 암, 그렇고말고. 그런데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뭐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 쥐새끼처럼 쥐구멍에 숨어서 홀짝거린 게 전부인데, 이렇게 죄인처럼 굴어야 하는 것일까.  무전취식을 한 것도 아니요, 심신미약에 따른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처럼 억울한 주정뱅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여, 작은 모임 공지 하나 올린다.

방에 뒹구는 술병을 보면 슬프거나 굴러가는 술병을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라면 무사통과'다. 세미나 주제는 주정뱅이다. 11월 18일, 장소는 충무로다. 주정뱅이들의 참여를 독려한다. 물론, 주정뱅이가 아니어도 좋다(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해서 좋다). 참여하실 분은 비밀댓글로 남겨주시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주정뱅이 삶을 지지한다.  



 









덧대기 ㅣ A는 갑자기 생각난 듯 내게 작은 책을 선물했다. 선물 상자는 그 자리에서 풀어보고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법.  책을 펼치고 몇몇 문장을 읽으려고 했으나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가게 안은 어두웠을 뿐만 아니라 취기가 오른 나는, 더군다나 눈병을 앓고 있는 나는 읽기에 실패했다. 다음날, 맑은 정신으로 어제 실패했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 나는 늦게까지 카페에 남고 싶어.”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 잠들고 싶어 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밤에 불빛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말이야. 난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우리는 다른 종류의 인간이군. ”  나이 많은 웨이터가 말했다. 그는 이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젊음도 자신감도 아주 아름다운 것이긴 하지만 그것들만의 문제는 아니야. 매일 밤 가게를 닫을 때마다 어쩐지 망설이게 돼. 카페가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말이지.”

―「깨끗하고 밝은 곳」에서

이 대목에서 나는 A가 이 책을 고른 이유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배려가 고마워서 뭉클한 감정이 들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 깨끗하고 밝은 곳 " 은 이상하게 위로를 준다.  그것은 마치 캄캄한 밤바다에서 좌표를 잃고 난파된 배가 등대로를 발견할 때의 느낌과 같다.  새벽 세 시에 불켜진 집의 창문을 볼 때마다 이 고통을 견디는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는, 그것은 일종의 연대였고 동지 의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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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7-11-12 0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젊은 시절 술을 아주 많이 즐겼던지라 가방안에 술병을 넣어가지고 나와서 살짝 버리던 일이 종종 있었지요. 결혼하고 한참 지난후 친정집이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동생이 제가 남기고 온 옷장을 정리하다 서랍장속에서 검은 봉다리에 담겨있던 빈맥주캔들을 발견 하기도... 아 옛날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13:40   좋아요 0 | URL
곧곧에 숨겨진 술병들이 많죠. 저 같은 경우는 책장 뒤에 자주 숨겼습니다.

transient-guest 2017-11-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을 좋아하지만 이젠 나이도 있고 건강도 챙겨야 하니 일주일이 1-2번이 max입니다. control을 잃기 시작하면 문제가 되는데, 한국의 과거 조직문화랄까, 제 아버님 세대만해도 술을 달고 살았었죠. 많은 건 젊을 때 한 때의 즐김인 것 같아요. 그냥 술 이야기가 나와서 되는대로 떠들어 봤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13:41   좋아요 1 | URL
일주일에 한번에 최적의 마지노선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긴 옛분들 보면 술을 안 마신 분들이 거의 없었죠.

2017-11-12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2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표맥(漂麥) 2017-11-1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은 날 보고 술꾼, 직장 동료들은 술 못먹는 샌님... 아~ 이 이중인격의 개인주의자...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13:42   좋아요 0 | URL
꽤 건실한 이중인격이신데요. 직동료들과 마시는 술이 제일 맛이 없죠. 전 정말 지겹더라고요..

cyrus 2017-11-12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말에 집에 혼자 있으면 반드시 혼술을 해요. 한 달에 주말 한 두번은 혼자 집 보거든요. 그래서 그날 편의점에 가서 술, 안주 잔뜩 사옵니다. 저녁에 TV 보면서 혼술해요. 다 먹고 남은 빈 술병은 방 어딘가에 숨겨요. 출근할 때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

임모르텔 2017-11-12 20:57   좋아요 0 | URL
저는 굴전이나 두부김치를 보면 막걸리를 꼭 삽니다.ㅎㅎ
이젠 연식이되었는지 막걸리 2병이상 먹으면 ,,, 헤롱되요! ^^
반주로 딱 석 잔이 좋더군요. 건강생각하여 막걸리로 먹게되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21:10   좋아요 0 | URL
술병은 만국공통적으로 어딘가에 숨기는군요.
과테말라 주정뱅이도, 갈라파고스 주정뱅이도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어딘가에 버릴 겁니다..

cyrus 2017-11-12 21:31   좋아요 0 | URL
To. 자다깬올빼미님 / 저도 소맥보다 막걸리를 마셔요. 맥주도 좋아하는데, 너무 많이 마셔서 통풍 진단을 받았어요. 또 통증 올까봐 많이 마실 수가 없어요. ㅎㅎㅎ

임모르텔 2017-11-12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대후반 조주사자격증을 땄고, 칵테일강사였었지만 칵테일은 좀 별로라~... 주정뱅이...흠 ㅡ,.ㅡ 만감이 교차합니다.전 술랭이라는 별칭이 예전에 있었어요. 럼,진.보드카.데킬라.브랜디.위스키,각종 리큐르..천차만별 술감별사였죠. 직업이..ㅎㅎ한때 왼쪽안면과 손을 떨기도! ,,, ㅎㅎ.. 지금은 돌아 온 ‘국화옆에서‘ 처럼 막걸리만 마시는 착실한 술랭이가 되었습니다. 술은 원래 약이었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21:09   좋아요 0 | URL
술랭이.... ㅎㅎㅎㅎㅎㅎ
처음 듣는 단어인데 뭔가 알 것도 같습니다.
칵테일 강사였으니 술의 역사에 대해서는 빠삭하겠네요..

임모르텔 2017-11-12 22:14   좋아요 0 | URL
...3만가지 칵테일에 ,,,제각각 유래가 다 있어서 그것이 시험출제에도 나와요.
설명하며 가르쳐야해서 다 알았는데 까먹은 것도 많아요..ㅋㅋ
술랭이생활 수십년이면 뇌가 숙성발효되고 곰삭아서효,,ㅋ

2017-11-12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2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잇 2017-11-1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방울의 술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궁금하곤 했습니다.
술자리에서 그들은 그럭저럭(죽을 맛이었겠지만요) 같이 버텨나가긴 합디다만.
술 아닌 다른 게 그 감각을 고스란히 대체할 수 있을지.. 뇌과학 쪽^^에 뭐 답이 있을라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6 09:06   좋아요 0 | URL
아마... 죽을 맛일 겁니다. 술자리는 술 취한 사람들만 좋은 분위기지.
업된 분위기를 술 안드시는 분은... 힘드실 겁니다..ㅎㅎ

2017-11-16 0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6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드파이팅



1. 물

내 친구는 아마추어 권투선수였다. 권투를 배우게 된 동기는 불순했다. 평소 자신을 괴롭혔던 녀석을 때려눕힐 계획으로 배운 운동이었으나 권투에 소질이 있다는 관장의 충고를 듣고는 권투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권투뿐만 아니라 검도 실력도 출중했는데

그날은 권투와 검도의 관계가 삶은 계란과 소금의 관계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어이, 텔레토비 새끼 !     그를 불러세운 녀석은 그 학교 일진으로 통했던 농구부 선수였다. 권투를 배웠으나 짧은 팔과 다리로는 농구선수의 기럭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친구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때였다. 그 녀석의 발이 친구 얼굴을 강타했다. 데구르르르르르. 뉴톤의 운동 법칙에 따라 친구는 구석진 곳으로 떨어졌다. 천우신조였을까 ? 그곳에는 죽도 크기와 거의 흡사한 각목이 놓여 있었다.  친구는 각목을 잡으며 말했다. 넌 끝났어, 개새끼야. 크아아아아아아.                            

먹이 닿지 않는 거리는 검도(죽도)로 공격했고 주먹이 닿는 거리에서는 권투(주먹)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쿵. 그 학교 일진이 플라이급 아마추어 권투선수에게 맞아서 바닥에 고꾸러졌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퍼졌다. 하지만 친구는 성정이 고운 녀석이어서 그 이후로는 단 한번도 싸움에 휘말려 본 적이 없었다. 그 친구가 뚱돼지였던 내게 자주 했던 말은 1달 안에 몸무게 10kg 를 감량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 _ 라는 소리였다. 그 친구는 경기가 임박해져 오면 살인적인 체중 감량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친구에게 힘을 내려면 많이 먹어야 하는데 절식으로 인한 체중 감량은 힘의 소모를 촉진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몸무게의 대부분은 물(체수분)이다 / 내가 감량하려고 하는 것은 근육(의 양)이 아니라 물을 빼려는 것이다 / 물은 힘을 생성하지 않는다 / 고로 밥을 적게 먹는다고 해서(체중을 감량한다고 해서) 힘의 손실을 야기하지는 않는다. 친구가 말했다. " 밥을 안 먹어서 힘이 없다는 소리는 다 개소리야. 힘은 밥이 아니라 근육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거든. "  친구는 다음날 대회에서 1회 ko패 당했다. 그날 나는 친구에게 처갓집 양념치킨 한 마리를 쏘았다 !






2. 소금

삶은 계란과 소금은 환상 궁합을 자랑한다. 삶은 계란 열 개쯤은 게눈 감추듯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소금 없이 계란만 먹으려고 하면 쉽지 않다(물론, 먹을 수는 있지만 그다지 당기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소금 없이 먹는 삶은 계란 맛은 밍밍하다. 삶은 계란의 맛을 좋아지게 한다는 점에서 소금은 조미료'다. 흔히, 비만의 주범으로 설탕과 소금이 거론되는데 정작 설탕과 소금의 칼로리는 높지 않다. 설탕은 찻숟가락 한 잔 분량의 열량이 15칼로리에 지나지 않고, 소금은....... 제로 칼로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금(이나 설탕)이 비만의 주범인 이유는 음식 맛을 향상시켜서 과식을 유도한다는 데 있다. 음식을 팔아서 이윤을 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소금은 영업 비밀인 셈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에게 소금은 설탕만큼이나 나쁜 식재료로 인식되기에 장사꾼은 짠맛을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음식이 " 떡볶이 " 다. 떡볶이는 짠맛을 숨기기 위해 설탕을 들이붓는다. 여기에 혓바닥을 마비시키는 매운맛을 더하면 짠맛은 더욱 상쇄된다. 우리는 흔히 매운맛을 경험하기 위해 떡볶이를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짠맛 때문에 떡볶이를 먹는다. 

상업적 목적을 위해 팔리는 한식은 대부분 짠맛을 숨기기 위해 만들어진 음식이다(한국인이 유럽 여행에서 한식 음식보다 나트륨 함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나라인 유럽 음식'을 먹었을 때 더 짜게 느끼는 이유는 짠맛을 숨기기 위해서 단맛을 강조하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소 입맛이 없다며 밥을 남기는 사람도 분식집에서 분식을 먹으면 과식을 하는 이유이다. 간식으로 떡볶이(1인분 기준 1400칼로리)에 순대(550칼로리) 그리고 어묵 몇 조각 먹으면 여성 성인 1일 권장량인 열량 섭취 총량을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분식은 간식이 아니라 삼시 세 끼인 셈이다. 이처럼 소금은 그 자체로는 제로 칼로리에 해당되지만 과다 칼로리 섭취의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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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1-12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너마저..... 세상 믿을 먹거리가 없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13:39   좋아요 0 | URL
분식점 메뉴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간식으로 간단하게 먹는 메뉴가 알고 보면 폭탄이죠.
흔히 다이어트 하면 밥 대신 고구마 먹잖습니까.
다이어트 식품이라고 제한 없이 마구 먹는데 고구마 한 개 칼로리가 300으로 밥 한 공기에 가깝습니다.

고구마 7개 먹으면 하루 권장 칼로리 만땅이죠. 왜 고구마가 다이어트 식품이 되었는지 의문...

psyche 2017-11-12 0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음식이 짜다는데 미국와서 참 이상하다 생각했거든요. 내입맛에는 미국음식이 너무 짰기 때문에요. 심지어 과자들도 너무 짜거든요. 근데 그 이유가 단맛때문이었군요.ㅜㅜ

곰곰생각하는발 2017-11-12 13:37   좋아요 0 | URL
미국과자 짠 걸로 유명하잖습니까. 한국인이 보기에 전세계 모든 음식이 짤 거예요. 나트륨 함량이 1위인 한국에서 말이죠. 철저히 숨기는 거죠.

임모르텔 2017-11-12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속았네요. 고구마가 왜 다이어트 식품일까? 이상하네요..ㅋㅋ
..
작고하신 저의 부친도 한때 복서였어요. 그래서 맨날 어퍼컷 ,,롸이트 래프트 ,,훅~날리는걸 어린악마인 제게 가르치셨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