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 두 개가 똑같아요
사람들은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 누운 채 눈을 감고 양 떼 목장을 상상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네 마리, 다섯 마리...... 왜, 하필 양일까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양을 연상하는 것이 수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가설을 수긍하게 된다. 마늘 냄새 나는 박근혜보다는 목화 솜털 같은 순한 양 이미지가 마음을 평화롭게 하니까.
나는 눈을 감고 양 떼 목장을 상상한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그러다가 문득, 예쁜 암양 한 마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이름은 " 수미 " 로 지어야겠어. 어엿한 꼬마 숙녀이니 양孃이란 호칭도 붙이고. 산책 갈 때에는 이런 말 : " 수우미양가 ! (수우미 양, 가자) " 혼자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뜬다. 전신거울 속에는 파르라니 깎은, 북한 김정은 수령의 머리 스타일을 한 남자가 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이래 최대의 고난 시기였던 쌍팔년도 IMF 때 유행했던 블루클럽 귀두 머리를 한 남자가 절망에 빠진 채 넋을 놓고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나다.
몸통은 깎았으나 머리통만큼은 바리깡의 손길을 거부한 개마냥. 깎다가 만 듯한, 불끈 솟은 남근처럼 단단한 두상이다. 화가 단단히 났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는 가위를 든 미용사'다. 미용실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공포가 시작된다.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그리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멎을 듯하다. 머리를 깎기 전에 목둘레를 천으로 옥죄는 과정은 공포의 정점이다. 과호흡 상태인데 목을 옥죄니 말이다. 물 밖으로 튀어나온 금붕어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 그런 내가 감히 미용실 염라대왕에게 신소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 나는 황급히 미용실을 나왔다.
비로소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내가 특정 장소에 공포를 가지기 시작한 때는 1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미용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과호흡에 따른) 현기증으로 잠시 정신을 잃은 적이 있었다(그전에는 미용실에 대한 공포를 가진 적이 없다). 그날 이후로 미용실에만 가면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다. 비록 남근이 머리에 달리긴 했으나 기분은 좋다. 당분간은 미용실 가는 문제로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되니까. 이 공포증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머리를 자르지 않거나 아예 중처럼 삭발을 하거나. 삭발을 하면 장관일 것이다. 내 두상은 유독 남근을 닮았어야. 아, 아아아. 상상만으로도 음란하구나.
어쩌면 나는...... 그러니까, 그게. 음. 만약에...... 내가 여성들만 사는 거인국에 불시착한다면 나라는 존재는 성인용 딜도로 사용하기에 금상첨화이리라. 심란한 마음을 추스르며 길을 걷다가 문득 그 사내가 생각났다. 마티스 끌고 애인 따라 속초에 왔던 남자. 그는 군 입대를 앞둔 청년이었다. 찾아온 손님을 환대하는 것이 예의인지라, 나는 그들을 이끌고 대포항 횟집으로 안내했다. 어수룩한 사내였으나 까다로운 남자였다. 식성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나무젓가락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까다로웠다. 쩍 ! 나무젓가락을 양쪽으로 갈랐던 남자는 다른 나무젓가락을 다시 가르기 시작했다.
동행한 사람을 위해 각자의 물 잔에 물을 붓는 경우는 있어도 동행한 일행을 위해 나무젓가락을 직접 떼는 경우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하지만 내 생각이 판단 오류였다는 사실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테이블 앞에는 뜯어 놓은 나무젓가락이 수북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 남자의 애인이 귓속말로 속사정을 알려왔다. 제 애인은요.. 강박증이 심해요. 젓가락을 갈랐을 때 젓가락 양쪽이 똑같은 크기로 갈라지지 않으면 불안해서 계속 나무젓가락을 뜯어요. 나는 식당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 나무젓가락 비용을 따로 지불할 테니 수저통에 양질의 나무젓가락을 가득 담아달라고 요구했다. 장관이었다.
식당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그 사내를 향했다. 쩍, 쩍, 쩍, 쩍, 쩍, 쩍........ 어느 순간, 그의 특이 행동이 멈췄다. 그가 땀에 젖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젓가락 두 개가 똑같아요. 그동안 긴장으로 땀에 젖었던 그의 얼굴이 4월 끝무렵에 피는 목련처럼 활짝 피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 나는 그의 도전 성공에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했다. 그는 차를 주차장에 주차할 때도 네모 칸 정중앙에 차를 위치시키느라 10분을 소비했고, 길을 걷다가도 느닷없이 나를 멈춰 세우고는 주의를 주곤 했다. 형, 이 선을 밟으면 절대 안되요.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자기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내가 미용실 안에서 느끼는 불안이나 그가 느끼는 불안은 동일한 것이다. 특이 행동으로는 그 남자의 애인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뜯어먹고 싶다는 매우 강한 충동 때문에 괴롭다고 속내를 내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속초 밤바다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새벽이 다가와, 나는 가격이 저렴한 모텔로 그들을 안내했다. 남자는 여행지에서의 불타는 섹스에 흥분했겠지만 어쩌면......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살해될 수도 있었다. 어느 날 손석희 앵커가 뉴스룸 뉴스를 진행하면서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오늘 소개해 드릴 뉴스는 특이 식성을 가진 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식성이야 제각각 취향의 문제이니 문제될 것은 없겠지요. 하지만 그녀가 먹은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었습니다. 이 엽기적인 사건에는 그녀를 도운 조력자도 있습니다. 페루애, 그는 무슨 생각으로 그녀를 도운 것일까요 ? 현장을 연결해 보도록 하죠. 이가혁 기자 !
지금까지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허구처럼 들리겠지만, 이 이야기는 모두 진실이다. 나는 미용실을 두려워 전전긍긍하고, 그는 횟집에서 나무젓가락을 백 개나 뜯어냈으며,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뜯어먹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 이상하게도,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나는 이들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젓가락쯤이야 얼마든지 사줄 수 있고 잠자리를 가지면 그 남자를 뜯어먹고 싶은 이상 심리를 가진 여자와는 잠자리를 가지지 않으면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