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금니 아빠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방송에 노출시키는 방식을 보면 역겨운 점이 많다. 비단,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특수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동네 주민 따위(특수 학교 설립 반대를 외쳤던 동네 주민은 히틀러와 견줄 만한 성품을 지녔다)의 고귀한 성품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김애란의 장편소설 << 두근두근 내 인생 >> 을 비난했던 대목은 김애란이 소설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태도와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이 그닥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장애인을 단순하게 연민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대중으로부터 동정을 끌어내는 수단으로 착한 장애인 서사를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보수적이며 퇴행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왜 항상 " 착한 장애인 " 이어야 하는가 _ 라는 점이다. 나쁜 장애인은 사회로부터 의료 도움을 받으면 안되는 것일까 ?  이런 식의 판단 기준은 성폭행당한 피해 여성을 대할 때도 적용된다.

피해 여성이 업소 여성인 경우는 오히려 꽃뱀이라며 비난의 화살이 가해자 남성이 아닌 피해자 여성을 향한다.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여성은 성폭행을 당해도 된다는 것일까. " 선별적 시혜 - 라는 프레임 " 을 조금 더 확장하면 무상 급식 논란과도 연결된다.  올해 추석 연휴,  방송사는 어금니 아빠의 엽기적인 행각에 대해 매일 특종을 내놓고 있지만 이토록 징그러운 괴물을 만든 것은 한국 방송과 한국 사회'가 큰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어금니 아빠는 방송이 키운 괴물이었으며 우리가 그것을 적극적으로 호응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는 신파가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방송사 또한 그것을 이용했다.

그는 최근 방송(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행 2017.02 방송)에서도 불행한 사마리아 사람을 연기했다. 이 가족은 마치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서성이는 난민처럼 보인다. 그가 수천 만원에 달하는 전신 문신을 했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여러 대의 외제차도 몰고 다녔다)은 그의 SNS 활동을 살펴보면 금세 알 수 있는 사실인데도 방송사는 검증에 소홀했다. 방송사는 오로지 " 신파 " 를 연출하느라 검증 절차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의 핵심은 장애아를 둔 가족의 나쁜 패밀리 플롯이 아니라 형편없는 패밀리 플롯을 요구하는 대중의 욕망을 재현한 가족의 사기극'이다.

이제는 눈물을 평가 절하할 때가 온 것 같다. 눈물이란 선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며 진실을 표현하는 수단도 아니다.  우리는 눈물이 불온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동시에 의심이 눈물보다 값진 표상이라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눈물 따위...... 개나 주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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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0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사건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어금니 아빠가 누군지 몰랐어요. 이런 사람 때문에 진짜로 눈물을 흘려야 할 일이 무시받을까 봐 염려스럽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10-11 15:29   좋아요 0 | URL
장애인을 대하는 일반인의 태도도 괴물스럽죠. 울어봐, 그러면 우리가 동정을 배풀게.. 뭐, 이런 마인드 아니겠습니까.
 

 

 

 

 



남성도 차별받는다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남성 폭력에 대한 여성의 두려움을 어렴풋이 느낄 때가 있다.  여성이 밤에 으슥한 골목길을 지나갈 때 고개를 돌려 주변 환경을 살펴보는 횟수가 10년 전에 비해 늘어났다는 것을 경험칙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몸짓에서 두려움이 느껴져서 어쩌다가 어쩔 수 없이 함께 골목길을 동행할 수밖에 없는 나는 종종 미안함을 느끼곤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최대한 걸음 속도를 늦춰서 앞서가는 여성에게 안전거리를 최대한 늘려주는 일이 고작이다. 이 두려움은 남성이 없는 곳에서도 발생한다. 여성 탈의실이나 여성 화장실에 설치된 몰카 때문이다. 여성이 옷을 벗는 순간 여성-몸은 상품으로 팔리기에 좋다. 오줌 누고 똥 싸는 동영상마저 쾌락으로 소비되는 것을 보면 불알후드의 발기력은 거머리를 능가할 정도'다. 여성 혐오와 여성차별에 만연한 사회인 데에도

여전히 여성 상위를 주장하며 남성도 차별받는다 _ 고 맞받아치는 남성을 볼 때마다 수족관에 잡힌 개불 생각이 난다. 나는 남성도 차별받는다는 명제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남성이라고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계층과 계급에 따른 차별일 뿐이지 성별에 따른 차별은 아니다. 혐오가 주류가 비주류를 향한 공격이라면 분노는 약자가 강자를 향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메갈은 남성에 대한 혐오라기보다는 남성을 향한 분노 표출이다. 남성 사회의 여성 혐오가 없었다면 여성들의 남성 혐오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자는 원인이고 후자는 결과에 해당된다.

이리 막고 돌려 까고 깐 데 또 까고 그럭저럭 뒤를 후하게 봐준다 해도 " 남성도 차별받는다 " 는 것이 " 여성도 차별받아야 된다 " 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남성이 살기 좋은 사회라고 해서 여성도 살기 좋은 사회라고는 할 수 없다. 같은 이유로 남성과 여성이 살기 좋다고 해서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라고는 할 수 없다. 반대로 장애인이 살기 좋은 사회라면 여성도 살기 좋은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여성이 살기 좋은 사회라면 남성도 살기 좋은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 차별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은 여성 차별이고, 여성 차별을 말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되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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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17-10-08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늘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전 페미니스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자리매김했는데요, 출판사에서 책 낼 때 표지에 떡하니 남성 페미니스트, 라고 써놨더라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남은 연휴 잘 보내십시오.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9 00:44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 님도 하루 남은 연휴 잘 보내십시오. 마태우스 님은 뭐 티븨에 늘 나오시니 저에게는 항상 친숙한 분이십니다. 저도 모자라지만 항상 여성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0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 연휴 잘 보내셨는지요?^^: 하루 남은 장기 연휴 잘 보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9 00:45   좋아요 1 | URL
네에. 고맙습니다. 겨울호랑이 님.. 그리고 연의도 ~
 
[VCD] 김씨표류기
이해준 감독, 정려원 외 출연 / 대경DVD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빨리 늙는 여자


 

 


                                                                                                  영화 << 변호인 >> 을 보면서 우럭도 아니면서,        나는......  가거도 우럭처럼 싱싱하게 울컥했(었더랬)다. 펄럭펄럭. 하지만 내 " 눈물의 동의 " 는 이 영화가 품고 있는 정치적 올바름 때문이었지 영화 자체에 대한 지지는 아니었다.

<< 변호인 >> 은 실망스러운 영화였다. < 눈물 > 이라는 감정은 전염성이 강한 9월 감기와 같아서 소시오패스가 아니라면 타인의 통곡에 울컥할 수밖에 없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 먹방을 이용하는 장치'만큼 촌스러운 것도 없을 뿐더러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장면을 클로즈업으로 다가가는 카메라는 재능 없고 게으른 감독이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기교'이다. 더군다나 슬픈 BGM를 깔면. 감독은 이런 계산을 했을 것이 분명하다. 드루와, 드루와 !  울지 않고는 못 배길 걸.                           이 정도면 협박이다. 그래서 나는 우는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감독을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영화 << 김씨 표류기 >> 에서 밤섬에 표류한 김씨가 우여곡절 끝에 짜장면을 먹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밤섬이라는 무인도에서 원시인처럼 생활하는 김씨는 강물에 떠밀려 도착한 짜파게티 라면 봉지를 보면서 죽기 전에 짜장면을 먹어보는 희망을 꿈꾼다. 목표가 생기자 그동안 무기력했던 김씨는 무인도 생활에 활력을 찾는다. 그는 황무지인 돌밭을 고르고, 전분을 얻기 위해 새똥을 흙에 묻어 옥수수를 기르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드디어 짜장면을 먹게 되는데 !   하, 누가 이 맛을 알까. 이토록 간절한 욕망을. 박연폭포처럼 고이는 침샘을. 이 장면에서 나는 가거도 우럭처럼 싱싱하게 울었다.

눈물에서 물비린내가 났다. 내가 울컥한 데에는 밤섬에 표류한 김씨가 흘리는 닭똥 같은 눈물 때문이 아니라 울 때 만들어지는 주름 때문이었다. 우리가 과연 타인의 (울 때 만들어지는) 주름을 볼 기회가 얼마나 될까 ?   내가 이 영화를 떠올리게 된 계기는 이웃이 블로그에 올린 시 한 편 때문이었다.






모과 썩다/ 정진규

올해는 모과가 빨리 썩었다 채 한 달도 못갔다 가장 모과다운 걸, 가장 못생긴 걸 고르고 골라

올해도 제기 접시에 올렸는데 천신하였는데 그 꼴이 되었다 확인한 바로는 농약을 하나도 뿌리지

않는 모과였기 때문이라는 판명이 났다 썩는 것이 저리 즐거울까 모과는 신이 나 있는 눈치였다

속도가 빨랐다 나도 그렇게 판명될 수 있을까 그런 속도를 낼 수 있을가 글렀다 일생一生 내가

먹은 약만해도 세 가마니는 될 것이다 순수한 것이라야 빨리 썩는다 나는 아예 글렀다 다만

너와 나의 사랑이 그토록 일찍 끝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였을까 첫 사랑은 늘 깨어지게 되어 있다

그런 연고다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절정에서는 금방인 저 쪽이 화안하다 비알 내리막은

속도가 빠르다 너와의 사랑이 한창이었던 그때 늘 네게서는 온몸으로 삭힌 술내가 났다

싱싱한 저승내가 났다 저승내는 시고 달다 그런 연고다

 

시안 」2007년 가을호





순수한 것이라야 빨리 썩는다고 믿는 시인은 그런 연고로 " 순수한 것은 향기롭게 빨리 썩는다 " 고  말한다. 잘 썩는 모과가 좋은 향기를 품고 있듯이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좋은 주름을 가진 배우'다. 늙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좋은 주름을 가지게 된다. 실패한 사랑으로 끝난 그 여자도 빨리 썩는 여자'였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나이에 비해 늙지 않는다고 부러워했지만 나는 그 여자가 빨리 늙어간다고 생각했다. 그 여자가 나한테만 보여주는 그 주름-들이 좋았다. 당신과의 사랑이 한창이었던 그때 늘 당신에게서는 온몸으로 삭힌 술내가 났다. 그 여자를 오래 사랑했다. 진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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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7-10-02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진규 시인이 며칠 전에 향년 79세로 돌아가셨더군요. 물론 적은 나이는 아닙니다만 평균 수명 80세인 시대에 조금은 일찍 떠나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저 연배(30년대생)의 시인들 중에서는 최근까지도 가장 월등한 필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은, 신경림, 황동규 같은 사람들 최근 시들을 보면 솔직히 긴장이 풀리고, 변변한 게 없는 수필같은 느낌만 준다는 인상이 있어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2 22:37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수다맨 님은 문화계 살롱의 마담 같으십니다.. 허허.
정진규 시인이 돌아가셨군요. 몰랐네요. 사실.. 오늘 처음 정진규라는 이름을 보았습니다.
좀 찾아서 봐야겠네요...

시집은 워낙에 집중하고 읽어야 해서 에너지 소모가 큰데, 다시 시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겠습니다..
즐거운 한가위 보내십시오.. 수다맨 님.

겨울호랑이 2017-10-02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곰곰발님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2 22:36   좋아요 1 | URL
겨울 호랑이 님도, 애교쟁이 꼬마에게는 안부 전해주십시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syo 2017-10-02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나는 시 좀 읽는다 하고 돌아다녔는데, 정진규 시인은 처음 알았습니다. 한참 멀었네요...

곰발님 명절은 아무래도 먹고 마시고 또 먹고 또 마시면서 보내야 되지 않을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2 22:35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시인이었습니다.
명절에는 혁띠 풀고 흥청망성 마시는 편인데.. 엇그제는 너무 과하게 마신 상태라 후유증이 이틀은 가는군요.
신나는 명절 보내십시오. 쇼 님 책 리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습니다..

표맥(漂麥) 2017-10-02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라마보면 젊으나 늙으나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탱글탱글... 좋은 주름... 이거 공감*100! 여유로운 명절연휴 되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7-10-03 00:06   좋아요 0 | URL
연기 잘하는 배우들은 보면 멋진 주름을 가지고 있는 배우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름이 참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메소드 연기의 정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장고 끝에 악수

 

젊은 시절, 아버지는 서부 영화를 좋아했다(고 말씀하신 적 있다). 클래식한 맛보다는 마카로니 맛을 좋아하셔서 << 내 이름은 튜니티 >> 나 << 장고 >> 같은 영화를 즐겨 보는 부류였다. 나는 이 부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내 이름은 " 장고 " 가 되었다. 홍장고, 내 본명이다. 부부는 슬하에 4남매를 두었는데 막내 이름은 홍악수였다. 장고 끝에 악수를 낳은 것이다. 아버지의 개성과 유머가 빛나는 이름이었지만 자식들은 그 이름 때문에 또래에게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그 시절에 왕따란 문화가 없어서 견딜 만했다.  아버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한 지점은 막내인 악수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막내의 직업은 자동차 판매사원이었다. 사람을 만나면 악수부터 해야 하는 직업인지라 막내인 악수가 하는 일은 악수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으니 절묘한 작명이 아닐 수 없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우자동차 판매사원 홍악수입니다아 !                    막둥이는 고객과 악수를 하며 악수하는 일로 먹고 사는 악수입니다 _ 라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하하하, 재미있는 양반이시구만.                                   막내는 이 에피소드를 거론하며 역시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고 말하곤 했다 -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 장고와 악수 형제가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2 웃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

 

웃음의 반대말은 울음이 아니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인용하여 유명해진 윌콕스의 문장 " 웃어라, 그러면 세상이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그러면 혼자 울게 될 것이다 " 는 구절은 사실이 아니다. 윌콕스는 웃음의 전염성을 강조하면서 동정 없는 세상을 강조하지만 울음은 하품을 닮아서 전염성이 강하다. 임마누엘 칸트는 << 순수 이성 비판 >> 에서 < 웃음 > 은 " 팽팽한 기대가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화했을 때 " 나온다고 했다. 그러니까, " everything " 를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 nothing " 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 (헛) 웃게 된다는 말이다. 뮤지컬 영화 << 오즈의 마법사 >> 에서 위대한 마법사'가 알고 보니 쩨쩨한 꼬맹이 오스카'라는 사실이 폭로되는데 이때 관객은 크게 (비-, 헛-, 코-)웃게 된다. 이처럼 웃음은 " 위상 수학 " 과 관련이 있다. < 큰 것 > 을 기대했는데 < 작은 것 > 이라는 사실이 폭로될 때 비웃음이, 헛웃음이, 코웃음이 나는 것이다. 반대로 별다른 기대 없이 < 작은 것 > 을 예상했는데 < 큰 것 > 을 보게 될 때에는 감탄으로 변한다.  그러니까 웃음의 반대말은 울음보다는 감탄에 가깝다. 안철수라는 인물이 대중으로부터 유독 (다른 정치인에 비해) 희화화되는 이유는 그가 한때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꼬맹이'라는 사실이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제가 안철수입니꽈, 갑철수 입니꽈아 ~                                    안철수가 대선 토론회에서 어린애처럼 칭얼거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이미지는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가 커밍아웃되는 장면이었다. 몸짱 남성이 빤스를 내렸는데 대물 대신 쩨깐한 번데기를 보게 되는, 뭐..... 그런 느낌.


 

3 미학은 불편하다

 

편한 의자치고 미학적으로 가치 있는 의자는 없다. 몸에 편한 의자는 미학적 가치를 포기할 때 얻을 수 있는 물건이다. 거무퉤퉤한 PC방 컴퓨터 의자를 보라. 이처럼 편안함은 격식과 양식을 포기할 때 발생한다. 하지만 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사물은 대부분 격식과 양식을 엄격하게 적용해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그렇기에 의미와 가치가 있는 명품 디자인 의자는 불편하다. 불편하다는 것은 없애야 할 요소가 아니다. 복장 문화도 마찬가지다. 거지가 입고 다니는 옷은 편하지만 왕이 입고 있는 옷은 불편하다. 좋은 예가 넥타이다. 양복에서 넥타이는 실용적 기능을 거의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활동하는데 여러모로 불편함을 주지만 없어서는 안될 소품이다.  인간 관계라고 해서 다를까. 나는 편한 관계보다는 조금은 불편한 관계를 원한다. 가족 같이 편하게 지내라는 고용주의 말을 믿지 않고, 격의 없이 지내자며 편하게 하대하는 어르신도 믿지 않는다. 불편에서 오는 긴장은 타인을 향한 무의식적 무례를 방지할 수 있다. 최근에 한국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 노 키즈 존 " 문제도 불편한 것을 나쁜 가치로만 여기려는 이기심에서 시작된 논란이다. 노 키즈 존의 핵심은  어른이 아이를 불편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모임과 장소의 성격에 따라 노-타이는 무례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살아야 할 우리가 아이라는 존재를 단순하게 불편해서 풀어헤쳐야 하는 넥타이 쯤으로 여긴다면 그 태도는 무례하다. 불편한 것을 못 견뎌하는 사람일수록 무례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불편은 관계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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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7 1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분명히 좋아요 100번 눌렀어요. 근데 사라졌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4:18   좋아요 0 | URL
홍장고의 직업으로 냉장고 세일즈맨으로 하라는 독자의 요청이 있었으나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에..

syo 2017-09-27 14:21   좋아요 0 | URL
그랬더라도 곰발님 필력에 못할 일은 아니었을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4:23   좋아요 0 | URL
후일담으로 홍장고 씨는 시베리아에서 중고 냉장고를 파는 사업을 했다, 라고 해야 할 것 같군요..

syo 2017-09-27 14:25   좋아요 0 | URL
잘은 모르지만 시베리아에서도 냉장고가 팔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보온‘ 개념으로.....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4:29   좋아요 0 | URL
시베리아가 배경인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냉장고가 있더군요.. ㅎㅎ

마립간 2017-09-27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의 부부는 (100%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상호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존댓말의 시작은 좀 있어 보이려는 문화적 허영심에서 시작되었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4:19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이 좀 어리다가 초면에 반말 찍찍거리는 어른을 보면 쥐새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꼬마요정 2017-09-27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느끼지만 곰발님 글은 참 재미납니다. ㅎㅎㅎ 순식간에 다 읽었어요~ 특히 우리 철수 이야기는 참 공감이 갑니다. ㅎㅎ
다만 노키즈 존은 단순히 불편함 때문에 생겨난 게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일텐데요. 누군가는 노키즈 존이 자기 아이만 챙기는 이기적인 부모 때문에 생겨났다고도 하고, 가게의 안전 때문에 필요하다고도 하지요. 사실, 아이를 위한 편의시설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수유실이나 기저귀 가는 곳이 따로 있다면, 가게 식탁에서 기저귀를 갈거나 하진 않겠지요. 이제는 정말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면 좋겠습니다. 건물마다 수유실 만들려면 비용이 많이 들겠지요. 그런데 비용 이야기에 앞서 이런 것들이 당연히 설치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오면 좋겠어요. 비용 이야기는 당연히 나오는 것이겠지만, 쓰레기 아무곳에나 버리는 거 잘못됐다는 인식이 생기니까 쓰레기도 한 곳에 버리고, 분리수거를 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이 나오는 건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8:28   좋아요 1 | URL
제가 자신있기 < 노 키즈 존 > 에 반대하는 이유는
차별하는 대상을 특징지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 노 에티켓 존 > 이라고 했다면 시니컬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핵심은 에티켓의 문제이지 아이의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에 그 논리대로라면 네일아트 가게 화장실을 여성들이 더럽게 사용한다는 이유로 노 우먼 존‘을 내세워도 할 말은 없지 않을까요. 그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은 에티켓의 문제인데 말이죠..

전 노 키즈 존 문제가 차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은 있으면 안 되죠..

꼬마요정 2017-09-27 18:34   좋아요 1 | URL
아이와 여성이 가장 차별당하기 쉬운 상대인데, 분별없는 부모 때문이야 하면서 노키즈존이로군요. 곰발님한테 설득당하고 갑니다. 그 문제와 별개로 아이를 위한 편의시설 많이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7 18:40   좋아요 1 | URL
전 모든 폭력이 약자를 향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가게 사장이 노 우먼 존‘이라고 하지 않고 노 키즈 존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가게 사장에게 손님은 갑이거든요. 그래서 애먼 아이들이 표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이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는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좋은하루 2023-01-2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너무 재밌어요. 감사히 읽고 갑니다. 책을 구매하기만하고 읽지 않는데 저도 님처럼 재미있게 글을 쓰고 싶네요.
노키즈존에 대해서는 존중받아야 할 입방이지 뭐 하고 별생각 없었는데 읽어보니 정말 설득이 되네요. 소중한 아이들을 온 지구가 지켜보고 돌봐주며 바르게 자라도록 인도하는데 서슴치 않는다면 정말 좋겠어요. ㅎㅎ 식당에서 뛰어다니고 큰소리를 계속 내는 아이가 만약 있다면 남의 아이지만 부드럽게 타이르고 엄마에게 데려다주고 밥 맛있게 먹으라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가는 모습 그런 거 상상해보면 좋네요. ㅎㅎ 글이 너무 재밌고 정말정말 저에게는 영감을 크게 주셨어요 감사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3-02-12 07:12   좋아요 0 | URL
ㅋㅋ 감사합니다요.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네요.
 

 

 

 

 

 

 


 





가을 모기에게 관용은 없다


 

 

 


                                                                                                                                                                                                내 문학적 취향을 고려하자면     :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 피츠제랄드보다는 헤밍웨이, 프루스트보다는 조이스, 스타인벡보다는 오웰, 칸트보다는 사드(혹은 라캉을 흉내 내며 칸트와 함께 사드를......), 김승옥보다는 손창섭 문학이 좋다.

약간 더 촌(村)스럽고 약간 더 광(狂)스러운, 꽃보다는 피로 쓴 문학에 더 많은 애정이 가는 것이다. 손창섭 문체가 김승옥의 도시적 감성체와 견줄 것은 못되지만 손창섭에게는 날것이 주는, 익힌 것에서 오는 안전한 전략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문학은 식중독 균을 염려하는 순간 따분해진다. 안전한 문학보다는 위험한 문학이 낫다. 비슷한 맥락에서,  귀족 출신이었던 사르트르보다는 알제리 하층민 출신이었던 카뮈'가 좋다. 마오주의자였던 사르트르는 프롤레타리아의 정치 개입을 강조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는 부르주아 엘리트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혼잣말) 재수 없는 놈.                      

카뮈는 나치 부역자 숙청을 반대하는 여론에 맞서며 이런 말을 했다. "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은 짓이다 "  이명박근혜 시절, 그 부역자들이 지금에 와서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지난 일을 잊고 미래의 번영을 위해 서로 화합하자는 주장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문장이다. 어제의 범죄를 벌하지 않는 것은 내일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다는 점은 친일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의 과오가 오늘에 이르러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살펴보면 그 심각성'을 찾을 수 있다.

정치에서 냉정한 숙청보다 나쁜 것은 낭만적 관용이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실패한 지점이기도 하다. 루쉰의 말처럼 물에 빠진 개(구악)은 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두들겨패야 한다. 그것이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사실, 산 자의 사적이고 은밀한 고통은 산 자끼리 겪는 갈등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죽은 자와 불화한 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와 화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거와 먼저 소통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이 덕장보다는 용장의 면모를 발휘했으면 한다.  다자이 오사무는 단편소설 << 잎 >> 에서 가을 모기는 앞으로 살 날이 얼마 없기에 불쌍하다며 모깃불을 피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모기는 항상 " 어제의 모기 " 보다는 " 오늘의 모기 " 가 더 미운 법이다. 모기에 대한 연민은 지나가는 딱정벌레에게나 줘 !                    모기는 여름 모기이든 가을 모기이든 보는 족족 죽이는 게 상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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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6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놈의 모기새끼들은 우리에게 한 푼어치라도 존재 가치가 있는 새끼들일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6 13:39   좋아요 1 | URL
모기라는 녀석은 어림 반 푼 어치입니다.

cyrus 2017-09-26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특이하고, 광스러운 이야기나 작가를 좋아해요. 토머스 핀천도 그런 작가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09-26 15:02   좋아요 0 | URL
촌스럽고 광스럽지만 멋진 경우는 역시 러브크래프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