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
나에게 < 곁 > 이라는 철학적 개념을 선물한 사람은....... 놀랍게도 이명박이었다. 그가 서울 시장'이었을 때 지하철 역사 안에서 그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의 출현은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그를 중심으로 열댓 명이나 되는 참모들이 학익진 진형을 이루어 다가오고 있었다. 장관이었다. 참모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굽신거려서 수하에 가까웠고, 수하라고 하기에도 얼굴 생김새가 천박해 보여서 졸개 나부랭이에 가까웠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등신 새끼들, 떼로 몰려다니는구나. 그 당시에 그는 서울 교통 정책을 막 개편한 상태여서 민생 행정 시찰을 나온 모양이었다. 그가 먼저 나에게 손을 내밀며 쇠 긁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불행은 이어졌다. 나는 그가 꼴도 보기 싫어서 전철이 플랫폼 안으로 들어오자(문이 열리자마자)
심청이가 인당수에 냅다 뛰어드는 심정으로 전철 안으로 뛰어들어가 빈자리에 앉았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앉은 곳은 한 자리 건너 내 옆자리였다. 출근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대라 좌석은 텅 비어 있었지만 " 참모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굽신거려서 수하에 가까웠고, 수하라고 하기에도 지나치게 천박하게 생긴 놈이 대부분이어서 졸개 " 에 가까웠던 무리들은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이명박은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 참모들은 청솔모처럼 귀를 쫑긋 세운 채 두목이 하는 말을 귀담아들었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박장대소했고 심각하지도 않은 세태 진단에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이며 심난한 표정을 지었다. 지구가 멸망하는 날에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표정처럼 보였다. 운전기사 한 명쯤을 두었을 졸개 나부랭이들은 그렇게 20여분 간 서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은 젊은 경호원이 아니라 나이 지긋한 중년 남성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때 내가 받은 인상은 이명박은 절대로 곁을 내어주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수평적 사고 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서 있는 참모들에게 빈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하겠지만 그는 그런 배려를 잊은 듯했다. 그 후,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고 서 있던 졸개들은 청와대에 입성하는 영광을 누렸(으리라 추정된)다.
권력이 크면 클수록 곁의 공간도 넓어진다. 권력은 "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공간) " 을 확보하는 놀이이다. 박근혜가 경찰 직원에게 잡혀서 호송차 뒷자리에 앉게 되는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박근혜를 중심으로 양쪽에 경찰 직원 두 명이 그녀와 함께 호송차 뒷좌석에 착석했다. 수인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한 수칙이었다. 박근혜 입장에서는 첫경험이었다. 그는 차를 탈 때 평생 자기 옆자리에 누군가와 함께 동석한 적이 없다고 한다, 운명공동체였던 최순실마저도 ! 우정의 조건이 곁을 허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은 우정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처럼 보인다.
이런 관계를 그냥 " 우동 " 이라고 하자. 박근혜와 최순실은 어떤 사이였나 _ 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우동사리! " 곁의 공간 " 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 사이 " 가 된다. 이 공간은 보이지 않지만 거래가 가능하다. 워렌 버핏과의 점심식사가 30억에 낙찰된 사건이 좋은 예이다. 경매 응모자가 30억을 주고 산 것은 30억짜리 점심 메뉴가 아니라 " 1시간짜리 워렌 버핏의 곁 " 이다. 룸살롱 소비 문화도 대표적인 여성의 곁을 상품화한 것이다. 남성 고객이 지불해야 하는 것은 술값이 아니라 여성 접대부의 곁이다. 하지만 곁을 돈으로 사는 행위'는 윤리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장소를 물물교환하는 방식으로 物化한 거니까.
버지니아 울프가 << 자기만의 방 >> 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여성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프라이버시가 가능한 장소성topophilia 이다. 그렇기에 << 자기만의 방 >> 은 가부장 사회에서 소비되는 여성의 장소 상실 placelessness에 대한 불안을 다룬 작품이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임산부에게 자리를 내주는 것도 환대요, 참모에게 서 있지 말고 빈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는 것도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또한 여성에게 남성과 같은 조건의 일자리를 주는 행위도 환대'다. 이 환대가 금지되는 순간 사회는 지옥이 된다.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9년 동안 환대 없는 사회를 몸소 체험했으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