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계통발생학적 분류법 :
감자의 힘
격세지감을 느끼는 요즘이다. 지금은 강원도 하면 김진태 선생님이 연상되지만, 한때 강원도의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는 " 감자 " 였다. 주먹감자 먹고 힘 내드래요 !
내가 " 힘을 내요 감자 파워 ~ " 를 깨닫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때는 바야흐로 3년 전, 나는 동네에 작은 사설 탐정소를 차렸다. 정식 명칭은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테리 사설 탐정 사무소 " 였다. 일종의 블루오션을 노린 사업으로 사건 규모가 작아서 꺼리는 일'을 타겟으로 삼았다. 하는 일은 주로 이런 것들이다 : 쓰레기 무단 투기자 색출, 타이어에 빵구 낸 놈 찾기, 개똥을 치우지 않은 견주 찾기, 미용실 화단의 꽃을 뽑은 범인 찾기, 잃어버린 반려견이나 고양이 찾기가 주요 업무였다. 셜록 홈즈가 사업 파트너로 왓슨 박사를 선택했다면 나는 복덕방 주인과 내 구역을 담당하는 택배 기사를 섭외했다.
동네 장사이다 보니 팔 할의 정보는 복덕방 주인과 택배 기사에게서 나온다. 킁킁, 조사하면..... 다 나와. 나머지는 쓰레기봉투 속에 든 쓰레기를 관찰하면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이 할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다. 패셔니스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입은 옷이 나를 말한다. 반면에 미식가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먹은 음식이 나를 말한다. 그렇다면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터리 사설 탐정 사무소 대표이자 사우스코리아 시크릿 에이전트 협회 발기인 " 인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당신이 무심코 버린 쓰레기(봉투)가 당신을 말한다, 킁킁.
그러니까 당신이 버린 쓰레기는 쓰레기가 아니라 " 당신의 커밍아웃 " 이자 " 하이 퀄리티 인포메이션 " 이다. 이 글을 애독하는 독자 여러분'이라면 다들 아시겠지만 : 갈라파고스 섭지 코지 미스터리 사설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나는 몸무게가 35kg인 리트리버(예명은 봉달이고 본명은 펄럭이다)의 견주이기도 하다. 날마다 개를 산책시키는 일은 내 주요 업무인데 산책길에 오를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동네 주민이 있었다. 그레이트 캐슬 빌라 건물주이자 입주자'인데 그녀는 개를 끌고 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개가 동네 거리에 싼 오줌 때문에 냄새나서 못살겠다는 둥, 개가 싼 오줌 때문에 타이어가 녹았다는 둥, 개 짖는 소리에 불면증에 걸렸다는 둥...... 한두 번 들었다면 그러려니 했을 텐데 볼 때마다 내 뒤통수에 대고 악담을 퍼붓다 보니 화병이 생길 지경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개를 끌고 산책을 가는데 누군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 참치다 ! 맙소사, 참치가 개를 끌고 거리를 활보하다니. " 여기저기서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참치가 거리를 활보한다고 ?! 깜짝 놀라서 주위를 살폈으나 사람 흉내 내는 참치는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간이었다.
주변을 살피기 위해 도리질하다가 우연히 가게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봉달씨를 끌고 가는 참치는...... 나였다. 참고 참고 참다가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참치가 되었던 것이다. 살다살다 개가 오줌을 싸서 타이어가 빵구 났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시바, 에이리언 괴물도 아니고........ 언젠가는 복수할 날이 오리라. 일단 복덕방 영감님과 택배기사 김씨에게서 그레이트 캐슬 빌라 주민의 정보를 입수했다. 이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수십 억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알부자'라는 것. 이 동네 빌라는 대부분 부군이 지었다는 것,
봄이 되면 목련이 가장 먼저 피는 단독 주택 주민(http://blog.aladin.co.kr/myperu/9264413) 과 더불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동네 유지로 평소 없는 사람 무시하기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성질이..... 개같다는 것. 무엇보다도 공병 줍는 노인이 쓰레기 놓는 장소를 어지럽힌다고 주민센터에 신고를 하기도 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공병 팔아서 입에 풀칠하는 노인에게 할 짓이 아니었다. 복수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자세한 내용은 링크를 걸어둔다.
■ http://blog.aladin.co.kr/myperu/7605617 : 잃어버린 감자를 찾아서
■ http://blog.aladin.co.kr/myperu/7640693 : 감자 상자 도난 사건의 전말
평소 동네 유지랍시고 없는것들 업신여겼던 마님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 - 뱅이 " 라는 접사가 붙은 단어였다. 가난뱅이, 게으름뱅이, 주정뱅이, 좁쌀뱅이...... 그는 동네 주민을 가난뱅이, 게으름뱅이, 주정뱅이, 좁쌀뱅이 따위로 분류한 것이다. 그녀가 정한 계통발생학적 분류법에 따르자면 나는 어느 쪽에 속한 계급일까 ? 좁쌀뱅이 ? 가난뱅이 ?? 주정뱅이 ??? 그랬던 그녀가 머슴의 16,000원짜리 감자 상자를 훔치다가 들통이 났으니 이만저만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그 사건 이후, 그는 나만 보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는 냉큼 그레이트인지 에메랄드인지하는 캐슬 안으로 숨기 바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웃는 표정으로 그녀를 " 바라 " 보았다.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웃으면서 " 꼬라 " 보았다. 감자 상자 도난 사건 이후, 그녀와 마주치는 일은 점점 줄어들었다. 외출을 삼가고 있다는 정보도 들을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보이지 않았다. 궁금하여 복덕방 최씨 영감님'에게 물어보니 부자 동네로 이사를 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동네가 더럽고 시끄러워서 못살겠다는 변을 남긴 채 사라졌다고. 감자의 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