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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영춘권 마스터
서호봉 감독, 송가 외 출연 / 비디오여행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싸 움 의 정 석 :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여러분에게 나의 다크하면서도 파워풀하고 뷰티풀했던 흑역사 하나 알려줄까 ? 어릴 때 내 별명은 " 도꼬마리 " 였다. 갈고리 모양의 가시 때문에 옷이나 짐승 털에 붙으면 잘 떨어지지 않는 풀인데, 내가 한번 싸웠다 하면 악바리처럼 물고 늘어진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몸집이 왜소하고 힘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기술은 칡보다 " 질긴 근성 " 을 선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나와 싸움을 해본 놈들은 모두 섬유질 같은 싸움에 학을 뗐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박근혜가 좋아할 만한 캐릭터였다. 한번 물면 살점이 뜯어질 때까지 싸웠으니깐 말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2)로 아버지 고향으로 잠시 내려갔을 때, 그곳에서는 " 도꼬마리 " 를 " 도깨비풀 " 로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내 별명은 도꼬마리에서 " 불광동 도깨비풀 " 이 되었다. 무림 세계에서 토호 세력이 전입생을 가만 둘리 만무했다. 눈이 날카로운 조직의 조무래기가 쪽지를 건넸다. 몇 월 며칠, 둑방 굴다리 밑으로 !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 뿜빠라 뿜빠 ~
둑방 굴다리 밑에서 벌어진 1대 180 다구리 전투는 지금도 전설로 화자되고 있다. 당시 나는 홀로 쌍칼 조직원 180명과 싸웠다. 내가 누군가, 독고다이 도꼬마리가 아니었던가 ! 나는 아르마니 정장 수트에 중절모를 쓰고 둑방을 향했다. 둑방에 도착하자 FILA 골프웨어에 금목걸이를 한 조직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싸움은 장장 4시간 48분 17.5초가 소요되었다. 어, 어어어어어마어마한 싸움이었다. 나는 그동안 갈닦은 영춘권으로 쌍칼 조직원의 불알을 박살냈다. 한놈, 두식시, 석삼, 너구리, 오징어, 육계장, 칠칠이, 팔팔이, 구봉서 ! 다 나와바리, 이 시밤바들아 !!!!!
내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쌍칼이 휘두른 칼이 내 복부를 뚫었다. 응급 치료를 하지 않은 채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1시간 10분 7초 후에는 죽을 판이었다. 싸움이 끝났을 때, 내 양복 소매 단추 하나가 툭, 떨어져나갔다. 주먹을 휘두를 때의 엄청난 풍압에 단단히 묶인 단추가 떨어져나간 것이다. 1분 1초가 아쉬웠지만, 나는 그 길로 응급실 대신 먼저 세탁소를 향했다. 응급실 침대 위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가 말했다. " 선생님, 0.0000001초만 늦었어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 몇 년 전이었다.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이 찾아와서 울면서 소리쳤다. " 선생님, 싸움의 기술을 알려주세요. "
내가 말했다. " 무심한 듯, 시크하게...... "



S가 무협영화 << 사부, 영춘권 마스터 >> 라는 영화 속 주인공이 나와 싱크로율이 90% 일치한다고 해서 잠시 살펴볼 요량으로 접속했다가 그만 영화적 재미에 푹 빠져서 보게 되었다. 장르를 혼용하는 기술이 좋다. 느와르 무협 영화라고나 할까 ? 닮은꼴인지 어머머 별꼴인지는 여러분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지난날에 다크하면서 파워풀하고 뷰티풀했던 왕년이 생각나서 새삼 감회에 젖었다. 진 사부(영화 속 주인공)는 무도 정신을 아는 무도인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또래들이 성룡의 << 취권 >> 에 열광할 때 성룡의 거지스러움에 학을 뗐다. 거적때기 입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칠렐레팔렐레하며 무술을 선보이는 성룡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진정한 고수는 싸울 때 동선을 최소화한다. 휘두르는 놈은 스윙 동작이 간결해야 한다. 싸움 좆도 못하는 놈들이 오두방정을 떨며 온갖 아크로바틱한 스웨그를 떨지만, 진정한 고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심한 듯 시크하게 잽 하나 날리면 끄읏 ! 무술은 체조가 아니다. 이 영화에서도 사부와 아내는 그루터기에 걸터앉아서 인생 설계에 대해 논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부부 주변에는 아크로바틱한 스웨그 군단이 대화 도중에 끼어들면서 진사부를 공격하지만 주인공은 대화를 끊지 않은 채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그는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최소한의 동선으로 아크로바틱 스웨그 군단 57명을 작살낸다. 브라보 ! 진 사부, 가시는 길에 영광 있으라 ~
바로 이런 것이 진정한 무술이요, 무도의 자세'다. 내가 와이어 액션과 CG로 그려진 화려한 액션 영화를 보지 않는 이유는 무도인의 동선이 클수록, 그러니까 오두방정을 떨수록 매력은 떨어진다는 데 있다. 무술은 항상 무심한 듯 시크하게 ! 그런 점에서 무도는 패션과 닮았다. 진정한 무림고수는 패셔니스타'이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
1) < 식물 > 국화과의 한해살이풀. 줄기는 높이가 1.5미터 정도이고 온몸에 거친 털이 많으며, 잎은 삼각형으로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여름에 노란 두상화가 피는데 수꽃은 꼭지에 붙고 암꽃은 그 밑에 붙으며, 열매는 수과로 갈고리 모양의 가시와 짧은 털이 있다. 들이나 길가에 나는데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유럽,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2) 말이 좋아 사업 실패이지 사실은 조그마한 점방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나를 뺑끼 가게 아들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