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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지음, 폴 뮤즈 사진 / 현대문학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아 , 이 런 신 발 :
낡은 신발에 대한 마지막 배려
문장은 입말과는 달리 뺄셈의 미학'에 속한다.
< 입말 >
은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으뜸으로 치지만 < 문장 >
이 입말의 장관을 모방하면 상투어가 된다. 말을 능수능란하게 다룬다고 해서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김제동이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한다고 해서 김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구술과 기술은
다르다).
입말의 특징은 :
접속사, 형용사, 부사를 남발하고
추상적 표현보다는 구체적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또한 정제되지 않는 거친
표현도 즐겨 사용한다.
무성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에
맞추어 그 내용을 설명하는
변사(辯士) 가 좋은
예이다. 변사의 나레이션이 과장이 많고 상투어를 남발하는 것은 말이 장황해야 듣는 사람이
영화 내용을 잊어먹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흥남부두라고 지시하면 될 것을 한여름에도 "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 " 라고 강조하는 식이다. 얼어죽을 ! 한여름에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라니........
하지만 구술과는 달리
기술(記述)에 속하는 < 문장 > 은 접속사, 형용사, 부사를 남발하면 마침표 찍을 (원고지) 칸이 뒤로 밀리면서 지저분한 문장이
되기
일쑤다. 꼬리가 길어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내 이웃인
그녀의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다 보니 회색
톤으로 " 깔맞춤 "
한
미니멀 모던 인테리어 스케이프를 보는 맛이 있어서 뷰잉뷰잉하다. 절제와 생략이 주는 문장은 깔끔해서 좋다. 무엇보다도 무심한 듯 툭 던지는 유머
코드가 일품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거라. 하여 나는 작문 선생이 되어서
그녀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늘어놓곤 했다. 허어, 재능이
아깝구려. 소설을 써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
뭐, 문학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손바닥 소설부터 차근차근
실력을 키워보세요. 님은 재능이 있습니다. 나처럼 문학에 심미안을 갖춘 사람이나 이런 진주 같은 재능을 보는 법이지요. 허허허허. 그녀는 내가
손바닥 소설을 써보라는 지적에 겸연쩍은 모양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욱 의기양양해졌다. 이 심미안'이 유분수로 판명난
기간은 바른 정당 13인이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시간보다 짧았다. 그는 문예지 << 현대문학 >> 에 매달 글을 연재하는, 열렬한 국내 팬을 거느린 필자였던 것이다. 그가 내놓은 책만
해도 4권이나 되었으니....... 나는 넙치도 아니면서 넙죽
엎드리며 그녀에게 용서를 빌었다.
이화열의 <<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 는 2011년 6월호부터
2012년 12월호까지 『 현대문학
』에
연재되었던 에세이를 묶은 책이다.
맨스플레인에 대한 속죄의 의미로 주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고 말하자면 이 에세이집은 강제윤의 << 섬을 걷다
>> 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다. 그녀의 글이 빛나는 지점은 보다 먼 곳과 보다
먼
시간을 아련하게 떠올릴 때이다. 무엇보다도 <
신발 > 이라는 글은 깊은 울림이 있다.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
생제르맹데프레의 어느 상점에서 동생은 처음으로 가죽 신발을 샀다. 비행기를 타면서 그는 그 가죽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를 떠나보내고 스튜디오에
돌아온 저녁이었다. 냉동실에 그가 남겨
놓은 아이스크림을 퍼 먹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공간이 문득 낯설었다. 부엌문을 닫았을 때, 문 뒤쪽으로 동생이 버리고 간 농구화가
얼핏 보였다. 난 동생을 발견한 듯 깜짝 놀랐다. 마치 그가 벗어 놓은 허물같이 낡은 농구화는 그의 부재를 일깨웠다.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왔다. 그렇게 울어본 기억은 그때가 마지막이다. ( 131쪽 )
<
가위
각시님 > 이라는 글도 좋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막냇삼촌이 죽었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어 놓고 한강에 들어갔는데 다시 나오질 않았다고 했다. 삼촌이 열다섯 되던 해였다. ( 124쪽
)
한때 자살하는 사람들이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는 심리에 대해 골몰한 적이 있다.
범죄심리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해석이 불가능한 정돈이자 배려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숨을 거두는 사람은 죽음이라는 감정이
워낙 압도적이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다고 한다. 미리 쓰여진 유서가 아니라고 한다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쓰여진 유서는 대부분 짧고 간결하며 흘림체라고 한다.
만약에 현장에서 쓰여진 유서가 시시콜콜하게 장황한 글을
담고 있다면 형사들인 일단 의심부터 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숨을 거두는 사람은 왜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는 것일까 ? 우리는 종종 낡은 신발을
통해서 " 존재의 쓸쓸함 "
을
목격하곤 한다. 낡은 신발은 모든 하중을 묵묵히 견디는
오브제'이다. 우리는 날마다 얼굴을 씻고 깨끗한 옷을 입고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만, 정작 모든 무게의 짐을 짊어진 신발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자에게 낡은 신발은 아픈 손가락이리라. 그는 하중을 견딘 낡은 신발의 일생을 통해서 무거운 짐에 시달리다가 이제는 그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 그래서 신발을 벗어두는 행위는 자기 연민에서 오는 배려가 아닐까 ?
이화열은 동생의 낡은
운동화를 보며 동생의 부재를 일깨웠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프랑스라는 타관에서 쓸쓸하고 고독했던 자기 자신을 향한
연민에 가까웠을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면 << 앙리지누 街
사람들 >> 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르니에와 에밀 아자르의 향기를 엿볼 수 있다. 개 버릇 남 못준다고 했던가
? 책을 덮으며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내 생각이 맞았어. 소설을 써야 한다니까 ! " 공쿠르 수상 작가 목록에 이화열이란 이름을 발견할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