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두    다   독 한    말 들   :

 

 

 

 

 

 

 

 

 

생강을 생각하다.

 

 

 

 

 

 

 

                                                                                                        생강은 오묘하다. 다른 이들이 종의 번식을 위해 화려함과 달콤함으로 영역을 확장한다면 생강은 정반대 전략을 구사한다. 씹으면 통각에 가까운 고통을 주는 생강은 음각으로 파인 상처가 터지고 곪아서 생긴 양각의 흉터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untouchable 하다. 생강의 통각은 쓴 맛과는 다르다. 그것은 맛이 아니라 상처이고 흉터이며 통증이다. 나는 생각한다. " 흉터에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거든 " 1) 매혹적이다, 달콤한 미래를 속삭이는 자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하지만 과거가 궁금해지는 사람은 신비한 사람이니까. 우리는 흉터의 깊이가 클수록 그 흉터의 기원이 궁금해진다. 흉터가 전부인 사람은 오로지 복수라는 감정 하나만 남은 자이다. 바늘 침대에서 잠을 자고 곰 쓸개를 씹으니 복수를 제외한 만감은 사치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생강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 같다.  생강 같은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문장의 힘은 뺄셈에서 나온다(덧셈과 곱셈은 문장을 지저분하게 만든다). 중언부언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내뱉은 말 혹은 글에 대해 스스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방증. 자신감이 없으니 강조를 하게 되고, 반복이 되며, 군더더기로 남는다. 그런 점에서 김훈과 코멕 맥카시는 뼈대만 남은 문장으로도 서사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이다. 뜬금없는 결론이지만 문재인의 승리'를 보았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생강이었다. 적이 선명할수록 목표는 뚜렷해지듯이 흉터가 깊을수록 목표 또한 분명한 법이다.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 유대감은 슬픔이며 가장 견고한 조직은 비통함을 공유한 단체이다.                                 코맥 매카시의 << 모두 다 예쁜 말들 >> 에 나오는 문장이다. 문재인을 지지했던 유권자 심리의 기저는 슬픔이었고, 그 비통함을 공유한 조직이었다. 그동안 패권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북처럼 두들겨맞았던 3철(양정철, 전해철, 이호철)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운 공격이었다" 며 " 여한이 없다 ! " 고 말한 대목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그러니까 문재인 지지자의 심리적 기저는 한이었던 모양이다. 문재인이 19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세월호에 진 빚이 많다. 나는 그가 잘 하리라 믿는다

 

 

 

 

 

 

 

 

 

 

​                                            


1) 모두 다 예쁜 말들, 코멕 맥카시 p189  : 아직 그의 소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은 행운이다. << 모두 다 예쁜 말들 >> 과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를 추천한다. 문체의 변화를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 오늘의 추천곡 ㅣ 아마추어증폭기 << 금자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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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7-05-16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오늘도 문장이 생강차처럼 좋으십니다^^고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5:02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 님 위해서 노래 한 곡 띙부니다..

clavis 2017-05-16 15: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듣고있던 제 힐링 레파토리 라흐 피협 2번 2악장을 끄고 금자탑 잘 들었습니다♥같이 걸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5:24   좋아요 1 | URL
클동지!!!! ^^

만화애니비평 2017-05-16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강을 평소 먹기 어려우니 마늘을 좀 먹어야겠습니다..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5:24   좋아요 0 | URL
만동지, 마늘이 보면 은근 단맛이 있습니다.. 구우면..

clavis 2017-05-16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동무!!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5:47   좋아요 0 | URL
흙흙...

2017-05-16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6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6: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페이퍼를 올리자 누군가 비밀댓글을 달았다.

˝ 후덜덜, 그런 사람인 줄 몰랐네요.... ˝



문재인을 지지하면 무서운 사람이 된다는 인식은 돼지발정제당이 틈만 나면 취하는 종북 빨갱이 논리이다.
좆같아서 댓글을 삭제했다.



돌궐 2017-05-16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둘 다 좋아하는 작가에요. 다만 곰곰님 같은 발칙함과 유머가 없어서 아쉬울 뿐.

돌궐 2017-05-16 16:47   좋아요 1 | URL
<흑산>에서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오빠, 저문다. 집에 가자.
하던, 그 아침가리 화전밭의 여동생이었다. 박차돌은 여동생의 시체를 지게에 지고 잠두봉 중턱으로 올라갔다. 멀리, 허연 강이 보이는 자리였다. 박차돌은 삽을 휘둘러서 땅을 팠다. 박차돌은 누이동생 박한녀의 시체를 구덩이 밑에 내려놓았다. 염도 없고 관도 없었다. 얼굴을 위로 향하게 하고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해주었다. 고운 흙부터 덮어나가서 모래와 돌멩이로 마무리를 했다. 봉분은 없었다. 묻기를 마치고, 박차돌은 그 자리에 쓰러져서 해가 뜰 때까지 울었다. 240쪽.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8:28   좋아요 1 | URL
흑산 좋죠. 칼의노래 이후, 현의 노래는 좀 동어반복 같아서.. 실망이 컸는데 흑산은 좋더군요..


코멕은 확실히 초기작과 후기작이 문체 변화가 심합니다. 나름 코멕 빠여서 다 읽어보았는데 초기작은 좀 만연체 스타일이다가 후기작으로 갈수록 간결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뼈대만 남은 문체를 좋아하는지라....


모두 다, 노인을 위한, 로드.. 전부 다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압권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7-05-16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고기를 더 많이 만들고싶은 분들이 많군요. 이이쿠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8:26   좋아요 0 | URL
만동지 ! 달달한 연애 시작하시니 알라딘 마을에 시루떡 돌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

시이소오 2017-05-1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역시 김훈을 한국의 코멕매카시라고 생각했었는데요.
찌찌뽕입니다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9:56   좋아요 0 | URL
김훈 최고죠. 몇몇 작품은.. 아차, 이제 8시이니 뉴수룸할 때네요.
요즘 뉴스가 드라마 같아서..
 

 

 

 

 

  

 

 

 

 

 

 

 

문재인 정권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이유

 

 

                                                                                                      모든 언론과 여론은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 최악의 환경(지상파와 종편의 보수 편파성, 사드 문제, 위안부 문제 , 여소야대) " 에서 국정을 운영해야 된다고 주장했지만 나는 오히려 " 최상의 조건 " 이라고 생각했다. 첫째, 종이는 죽었다. 

지금까지 언론 권력은 종이 신문'이 대표했다. 종이 신문이 메시지를 유포하면 방송 권력은 확성기 역할을 담당했다. 방송용 확성기는 문자성을 구술성으로 변환하는 도구였다. 식자력(識字力)은 높지만 문해력(文解力)은 낮은 편에 속하는 고령층을 콘트롤하기에 좋은 구조였다. 그런데 지금은 환경이 180도 바뀌었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구독자는 해마다 줄어들어서 이제는 인기 좋은 팟캐스트 방송의 다운로드 수보다 낮아졌다. 이제는 종이 신문이 의제를 자지우지하는 시대는 끝났다. 그뿐이 아니다. 그동안 팩트 체크는 티븨 방송사와 종이 신문사의 몫이었으나 이제는 유투브 유저들이 실시간으로 팩트 체크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기록의 편리성과 정보 접근성이 쉬어졌다는 말이다. 당연히 막말을 일삼는 쪽이 불리한 환경이다. 둘째, 홍준표의 25% 득표는 좋은 징조다. 대선 결과를 지켜본 유권자들은 하나같이 홍준표가 25%나 득표했다는 사실에 아연질색했다. 하지만 극우는 세계 어디에서나 20% 정도 암약하고 있다. 좌파가 다수인 프랑스에서 극우인 르펜이 1차 투표(1위 마크롱 23 : 2위 르펜 21)에서 21%의 지지율을 얻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1차 투표에서 르펜이 얻은 21%는 위협적이지만 확장성을 떨어진다. 최종 결선 투표'에서 마크롱은 23%에서 63%로 도약한 반면에 르펜은 21%에서 37%로 도약하는 데 그쳤다.

홍준표의 25%(정확히는 24%)도 마찬가지다. 25%가 대구 경북에 집중되었다는 점도 문재인에게는 호재이다. 특정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지역당은 확장성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유사 자민련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셋째,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 1700만이 참가한 촛불 혁명은 직접 참여 민주주의가 만든 결과였다. 내가 만든 판이었고 내가 만든 궐석이었으며 내가 만든 대통령이라는 자신감은 문재인에게는 큰 자산이다. 촛불 정국에서 촛불 시민이 목격한 것은 (시민이) 뭉치면 (나쁜 권력은) 흩어진다는 것이다. 이 승리에 대한 쾌감은 문재인 정부라는 든든한 " 빽 " 을 바탕으로 보다 더 큰 목소리로 당당하게 싸울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이 실패한 지점을 인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패의 DNA가 쌓이다 보면 학습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노무현이 실패한 대목은 안철수가 실패한 지점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내가 갑철수입니까, MB아바타입니까 _ 라고 스스로 자신에게 부정적인 프레임으로 망했듯이, 노무현은 언론 개력을 위해서 항상 조선일보를 거론했지만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노무현의 조선일보 프레임은 안철수의 갑철수 프레임과 겹친다. 문재인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다른 방식을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사드 문제와 위안부 문제도 문재인에게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은 적다.

그것은 박근혜가 싼 똥이지 문재인이 싼 똥은 아니니깐 말이다. 이 모든 것을 종합했을 때 문재인은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정권이다. 그래야만 하고 그럴 수밖에 없다

 

 

 

 

 

 

 

​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  좌지우지는 자지우지로, 아연실색은 아연질색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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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7-05-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씀에 동의하지만,
그래도 수구보수의 총공격이 우려가 되긴 합니다.

72년 동안 쌓아온 기득권층의 파상 공세에 개혁
의 전열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5 14:28   좋아요 1 | URL
수구보수를 지탱한 힘은 개인적 판단으로는 종이신문의 권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종이가 이제는 종이호랑이 같은 종이신문이 된 것이고..


사실 종이신문은 맹렬하게 문재인에게 악담을 퍼붓고 있는데
이걸 아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이 신문을 지금 사람들이 안 보고 있거든요.

이런 의문은 가능합니다. 종이신문에서 메시지를 전하면 종편에서 퍼트려야 하는 것 아니야 ?

여기에 종편의 딜레마가 있는데 종편은 종편 심의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통과 못하면
하루 아침에 문을 닫아야 하거든요.그러니 정부에 비판적 자세였다가 이제는 꼬리를 살살 흔들고 있습니ㅏㄷ.
전 나름 진보 진영의 선전을 믿습니다..

cyrus 2017-05-1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이신문을 주로 읽는 사람은 나이 드신 어른들입니다. 이 어른들은 종이신문의 프레임에 죽을 때까지 갇히게 된 셈이죠.
 

 

 

 

 

 

 

 

 

 

 

여민관과 위민관

 

 

 

 

 

 

 

 

 

다음은 한겨레 임석규 논설위원의 글 전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12월, 청와대에 3개 동의 비서실 건물이 새로 들어섰고 ‘여민관’(與民館)으로 명명됐다. 여민, 국민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맹자> ‘양혜왕장구 하편’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에서 유래했다. 왕이 자기만 즐기면 백성들이 반발하지만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하면 백성들도 함께 기뻐할 것이란 뜻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9월, 여민관을 위민관(爲民館)으로 바꿨다. 위민, 백성을 위한다는 뜻이다. 세종의 위민정치를 본받겠다는 명분이었는데, 실은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의 일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틀 만에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되돌렸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위민은 국민이 객체가 되는 개념이고 여민은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여민은 국민을 주체로 바라보는데 위민은 국민을 대상으로 본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정부를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부른다. ‘촛불시민’의 힘으로 만들어진 정부이니 ‘더불어 정부’란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 ‘더불어’는 아무래도 ‘위민’보다 ‘여민’에 더 가까운 단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위민관보다 여민관이 나을 수도 있겠다. 정권이 바뀌면 전임자가 만든 이름을 바꾸고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운다. 위민관은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었다. 후임자는 그것을 또 바꾸고 흔적을 없앤다. 여민관이란 ‘본명’을 되찾는 일이 행여 이런 악순환의 연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여민이나 위민이나 뜻은 다 훌륭하다.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같이해도 좋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는 것도 나무랄 게 없다. 그런데 위민을 내세우고 친서민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은 백성들보다 토건업자들 배를 더 불렸다. 문패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속에 담긴 뜻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임석규 논설위원 sky@hani.co.kr)

 

나는 여민이나 위민이나 뜻은 다 훌륭하다는 임석규의 말에는 일단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동의하지 못한다. 철학의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 여당 與 > 의 사전적 의미는 정부 정책을 지지하여 서로 짝이 되는 무리'라는 뜻이다.  동반자요, 수평적 관계이다. < 여민 與民 > 도 마찬가지다, 당의 자리에 민을 대입했으니까. 하지만 < 위민 爲民 > 은 다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 백성을 위한다 " 는 뜻인데 가만 보면 " 누가 " 라는 주어가 빠져 있다. 도대체 누가 백성을 위한다는 것일까 ? 지금은 왕정이 아닌 공화정 시대이니 임금이 백성을 위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애티튜드는 엿볼 수 있다.

< 위민 > 은 국민을 위한다라는 뜻과 함께 국민을 다스린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 위민부모 > 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임금이나 고을의 원은 그 다스리는 백성의 어버이가 된다는 뜻이다. 21세기 소년소녀라면 대뜸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누구 마음대로 ??!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라는 말도 나쁜 말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도포 입고 수염 휘날리는 시대에서나 통하는 애티튜드이다. < 여민 > 이 정부와 국민의 수평적 관계를 강조한다면 < 위민 > 은 정부와 국민의 수직적 관계에 방점을 찍는다. 작은 차이처럼 보이지만 큰 차이이다. 임석규는 " 정권이 바뀌면 전임자가 만든 이름을 바꾸고 전 정권의 흔적을 지운다 " 며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원래 이름을 되찾아준 것을 두고

" 본명을 되찾는 일이 행여 이런 악순환의 연장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 고 충고한다. 할 일이 태산인데 쩨쩨하게 이름 하나 가지고 왈가왈부하냐는 투'다. 하지만 < 여민 > 이냐 < 위민 > 이냐는 문제는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는 행위만큼 사소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갈 국정 철학의 근간을 세우는 일이다. 쟈크 데라다는 똘레랑스(관용)가 권력을 쥔 자의 시혜적인 느낌이 강해서 불편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위민도 그런 의미에서 권력을 쥔 자(정부)가 국민에게 주는 환대라는 느낌이 강해서 불쾌한 이름이다. 나라님이 백성을 어여삐 녀겨 스물여덟 자를 맹가서 노는 시대는 지났다. 국민은 국가의 자식새끼가 아니다. 

 

 

 

 

 

                         

 

여담 ㅣ 언론은 국가 권력을 감시할 사명이 있다. 반면, 시민은 국가 권력을 감시할 사명은 없다. 전문 지식이나 정보 접근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굳이 그럴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 시민은 언론 권력을 감시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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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7-05-16 14: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위민과 여민에 대해서 몇마디 쓸까하다가 말았는데 이렇게 자세히 올려주셨네요.

저도 위민보다 여민이 맞다고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4 21: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가 그 말을 하는 겁니다. 지들이 뭐라고 뜬구름 위에서 뒷짐 지고서는 개똥밭에서 구르는 이승의 비참을 논합니까. 웃긴 말이죠.

레삭매냐 2017-05-14 2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화국에서 위민이라니,,, 너무 왕정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시민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각설하고 ˝여민˝이 더 좋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4 22:09   좋아요 0 | URL
수학 공식으로 말하자면


위민은 정부 > 시민
여민은 정부 = 시민



글구보면 mb 이 인간도 참.. 예민한 *이에요..
이 인간도 위계질서는 무진장 따지는 듯합니다..

2017-05-14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5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5-1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민, 위민 다 필요없고, 무조건 서민이 짱입니다! 서민 교수님, 사랑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2:09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 님 라임이 일취월장하십니다그려..
 

 

 

 

 

 

 

 

 

                               

 

왜   반 말 하    야 구  :

 

 

 

 

 

영화의 반대말은 야구다.

 

 

 

                                                                                                    1. 영화의 반대말은 야구다. 투수가 8회까지 완벽한 공을 던졌다 한들 9회 2사 만루에서 홈런을 맞으면 욕을 먹기 마련이지만 영화는 내내 지루하다가도 라스트씬 10분이 뛰어나면 모든 과오를 덮을 수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낸시 사보카 감독이 연출한 <<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 dogfight, 1991 >> 은 라스트씬이 뛰어난 영화'다. 카메라는 거리를 유지한 채 두 사람이 포옹하는 장면(뒷모습)을 담담하게 담는다.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고 뒤로 물러나지도 않는다. 또한 이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 오래 잡아두지도 않는다. 이 수줍은, 조용한, 내성적인 카메라 동선이 마지막 장면을 빛나게 한다.  그것은 마치 경기 내내 죽을 쑨 타자가 9회말 2아웃 만루에서 쌀밥을 날린 경우다. 경쾌하게 하늘로 치솟는 공을 보며 아나운서는 이렇게 말하리라. 쳤습니다 !!!!!!!!!!!!!! 아....... 하늘 위로, 하늘 위로, 하늘 위로 쌀밥이 높게 치솟고 있습니다. 만루 싸~~~ 알알알알밥 !!!!!!!                                      봄비 내리는 봄밤에 생각나는 멜로드라마이다. 쌀밥처럼 단백한 맛이 일품이다.

 

2. 왕가위 감독은 " 뒷모습 " 을 가장 잘 찍는 감독 중 한 명'이다. << 화양연화 >> 는 뒷모습에 페티쉬를 가진 감독의 취향을 제대로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슬픔은 종종 얼굴을 감출 때 빛이 난다. 박근혜처럼 눈물로 슬픔을 연기하는 배우는 형이하학이다. 장만옥은 슬픔을 연기하기 위해 슬픈 얼굴 대신 흔들리는 어깨를 보여준다.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리는 화가처럼 장만옥은 슬픔을 연기하기 위해 사랑에 흔들리는 어깨를 연기한다. 지금 당신은 형이상학을 보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통곡은 소리 없이 우는 어깨가 아닐까 ?   영화 << 아비정전 >> 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어깨가 등장한다. 아비(장국영)가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게서 다시 버림받았을 때, 그는 슬픈 마음을 애써 감추고 씩씩하게 걷는다. 하지만 슬로우모션에 갇힌 그는 제자리걸음이다.

 

 

 

3. 다시 쌀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  쌀밥왕 베이브 루스는 통산 729개의 쌀밥을 때린 전설이었다. 그런 그가 은퇴를 선언하니 은퇴 경기 당일에는 수많은 사진가들이 그 앞에 나타나  카메라 후레쉬 벌브를 터트렸다.  모두 다 전설적 영웅의 화려한 얼굴을 찍느라 정신이 없을 때 단 한 사람, 나다니엘 페인은 거인의 쓸쓸한 뒷모습을 찍는다. 이 사진은 그해 퓰리처상을 수상한다. 이 사진이 가진 아우라는 " 거리 " 가 주는 힘이다. 만약에 사진가가 더 가까이 다가갔거나 혹은 더 뒤로 물러났다면 이 사진이 획득한 정서는 실패했을 것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앞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뒤에서는 선명하게 보이는 어깨이다. 어깨는 생각보다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4. 이 글의 끝은 문재인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둥근 어깨와 굽은 등이 좋다. 그가 시민 곁으로 다가가 낮은 자세로 눈을 맞추며 손을 잡을 때 만들어지는 그 둥글고 굽은 어깨는 권위적이지 않아서 좋다. 곡선의 힘을 믿는다, 아름다운 어깨다

 

 

 

 

 

 

 

 

 

 

 

 

덧대기 : 푸아그라와 송로버섯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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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4 1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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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06: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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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4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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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1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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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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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6 15: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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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15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오랜만에 야구에 대한 곰발님의 글을 보고 싶어요. 요즘 삼성, 아니 제일 라이온즈 하는 것 보면.. 진짜.. 이번 시즌 못 할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못 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진짜 100패 찍을 것 같습니다.. 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7-05-16 12:04   좋아요 0 | URL
최저 승률까지 도달했죠 ? 삼미보다 낮은 성적이었다고 하더군요.. 뭐, 백 패 한 번 찍어보죠ㅡ 뭐... ㅎㅎㅎㅎ
 
환대에 대하여 동문선 현대신서 177
자크 데리다 지음, 남수인 옮김 / 동문선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빠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떠오른 책

 

 

 

                                                                                                            에스키모인에게는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의무가 있다. 설원에 쓰러진 자가 비록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해도 집으로 데려가 극진히 보살펴야 된다는 것. 극한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관습법인 셈이다.

하지만 절대적 환대가 언제까지나 계속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봄 기간이 정해져 있기에 몸을 추스린 원수(손님)는 그 집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 순간부터 집주인의 " 잠시 중지된, 혹은 유예된 복수 " 는 유효해진다. 그러니까 주인이 부모를 죽인 원수에게 보내는 환대는 환대인 듯 환대 아닌 적대이며 동시에 적대인 듯 적대 아닌 환대인 셈이다. 말장난하기 좋아하는 데리다는 이 상황을 환적(歡敵, hostipitality)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한다. 환적(歡敵, hostipitality)은 " 환대의 적대 " 라는 의미로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을 담고 있다. 그것은 절대적 환대라기보다는 조건부 환대인 것이다.

데리다는 전자가 이상적이기는 하나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것은 후자'이다. 노무현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진보 진영으로부터 환대받은 적이 거의 없다.  당시 시민 사회와 진보 언론은 지지보다는 감시와 비판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양쪽 진영으로부터 난타를 당했다. 훗날, 노무현은 자기 편이라 믿었던 진보 진영의 벼린 칼끝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박근혜를 비난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노무현을 비난하는 것은 안전하다. 박근혜를 비난하면 무시무시한 보복이 따르지만 노무현은 그러지 않았으니까. 하여, 우리는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노무현을 비난했다.

 

그것은 지적 우월성이 주는 쾌락이었으며 안전한 과시였다. 하지만 꽤나 용기있는 충언처럼 보였던 진보의 무차별적 비판 뒤에 숨은 고약한 심리는 노무현이라는 약자를 짓밟을 때 오는 우월감이었다. 그동안 문재인을 향했던 비난도 마찬가지다. 진보 진영이 갖추어야 할 미덕은 비난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지적 우월성의 증명이 아니라 따스한 환대'이다. 우리는 노무현이 땅에 든든한 뿌리가 내릴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 까방권(지지) " 을 만들었어야 했다. 진보 시민 사회의 감시와 비판은 허니문 기간이 끝난 후에도 충분하니깐 말이다. 우리는 싹의 뿌리가 땅에 내리기도 전에 물을 준답시고 수압이 높은 소방 호수로 물을 준 꼴이다.

 

노무현에게 필요했던 것은 소방 호수에서 쏟아지는 물벼락이 아니라 물뿌리개에서 내리는 안개비'였으리라. 내가 문재인의 빠돌이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떠오른 책이 바로 데리다의 << 환대에 대하여 >> 이다.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하더라도 돌봄 기간 중에는 극진히 원수를 보살펴야 하듯이,  비록 당신이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 허니문 " 기간 중에는 증오를 멈추고 그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여, 나는 감시를 잠시 멈추고 조건부 환대의 방식으로 그를 맞이할 생각이다. 합리적 이성이 승리를 거두기 위하여 잠시 비이성을 선택2)한다

 

 

 

 

 

 

 

                                      

 

 

덧대기

 

 

2 )        합리적 이성을 위하여 비이성을 선택하는 방식이 모순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뜨거운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사랑은 비이성의 소모적 열정이니까. 평상심을 잃고 기울어질 때 사랑은 시작된다. 모든 사랑은 비이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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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7-05-13 1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신은 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바마가 가고 트럼프가 오듯이, 때론 박근혜가 가고 문재인이 온다.

2017-05-15 14: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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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14: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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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14: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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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3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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