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거 노 인 을 생 각 하 며 :
독거수
너와 함께 침대에 눕는다.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부끄러워요. 대낮 같이 환한 백열등 아래에서는 하기....... 싫어요. 불을 끈다. 대신 반딧불이처럼 은은한 형광등 조명을 켠다. 너무 캄캄하면 재미없으니까. 나는 시각적 쾌락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아름다운 너를 눈으로 훑는다.
나체와 문체는 비슷한 구석이 있지. 이처럼 섹스와 독서의 공통점은 최적의 환경이 둘 다 비슷하다는 데 있다. 나는 여기에 덧대어 무성영화를 틀어놓는다. 일종의 보조 조명으로 책을 읽다가 심심하다 싶으면 무성영화의 한 장면을 보곤 한다. 심야 독서에서 자주 보는 영화는 무르나우의 << 노스페라투, 1922 >> 이다. 드라큘라 이야기다. 드라큘라는 높은 성에 사는 귀족'이다. " 귀족 " 은 지배계급이자 특권층이자 가문의 후계자이니 낮은 땅에 사는 서민 가족에게 귀족은 선망의 대상'인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드라큘라는 폐족처럼 보인다. 열흘은 족히 굶었을 것 같은 외양에 남루한 외투를 입은 꼴을 보니 영락없이 빈민'이라. 그러려니......
다시 책에 집중하기로 한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리처드 커니의 << 이방인, 신, 괴물 >> 이다.
괴물은 단지 '저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 안'에 있다. 묵시록에 등장하는 사탄을 떠올리게 하는 용의 모습을 한 에이리언은 우리들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로 스며들 수 있다. 따라서 인간 우주인들이 가장 낯설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가장 친숙한 것이다. 그들은 진정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은 이미 친숙한 것 안에 침투해 있으나 이름 붙일 수 없고,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우리 내부의 에이리언이다...... 그 괴물들은 오래된 종교적 괴물들(질서와 통찰 내부의 무질서와 혼동)의 포스트모던적 모사물이다.
- 이방인 신 괴물, 92쪽
타자의 개념을 영화 << 에이리언 >> 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부분이 무척 흥미롭다. < 저편, 밖 > 과 < 여기, 안 > 를 나누어 설명하는 부분이 좋다. 사실, alien이라는 단어 자체가 저편 밖이라는 타자성을 내포하는 낱말이니 자연스러운 논리 전개'이다. 읽다가 지루하다 싶으면 다시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영화를 본다. 마침, 드라큘라는 자신이 누울 관을 지고 몰래 배 안으로 잠입하고 있다. 무릎 탁, 치고 아 _ 했다. 철이 철이요, 때가 때인지라 그 장면을 보니 가막소에서 독수공방, 고독에 몸부림을 칠 박근혜가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 드라큘라가 자신이 평소 애용하던 침대(관)을 몸소 지고 돌아다니는 장면은 박근혜는 자신이 평소 애용하던 변기에 대한 집착과 닮았다.
비록 환경은 바뀌어도 너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 아닌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 내 것이 아닌 변기 " 에 앉은 기분은 어떠했을까 . 기분이...... 더러웠을까 ? 관에 갇혀서 혼밥을 즐기는 노스페라투나 궁에 갇혀서 혼밥을 즐기는 박근혜는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독거수다. 영화를 보는 내내 피골이 상접한 노스페라트의 스키니한 얼굴을 지우고 박근혜의 얼굴을 대입하자 느닷없이 연민이 느껴졌다. 당신도 이제는 저편 밖에 사는 에이리언이 되었구나 _ 라는 그런 연민. 박근혜라는 괴물을 보면서 " 오로지 인간적인 것만이 비인간적일 수 있다 1)" 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때 영애였던, 영예롭던 혈통의 늙은 귀족이 이제는 저편 밖에서 독거수가 되어 늙어가니 독거노인이 된 셈이다. 앞으로 다가올 혹서기, 잘 버티시기 바란다. 당신이 원하신다면 사비를 털어서 더운 혹서기 때 솜이불 넣어드릴, 용의가 있다. 감기 조심하시라 ■
1) 스탠리 카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