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쿠 라 와 단 풍 :
200달러를 내고 20달러를 사다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경매에 붙여보자. 최저 입찰가는 천 원으로 시작해서 오백 원씩 오른다. 경매 입찰자 A가 1000원을 부르면 B는 1500원을 불러야 한다.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다. 최고 입찰가를 부른 사람에게는 최고 입찰가를 내고 오만 원짜리 지폐를 획득할 수 있지만 차점자는 자신이 제시한 입찰가를 경매를 진행한 사람에게 상납해야 한다.
복잡한가 ? A의 최종 입찰가'가 25,000원이고 B의 최종 입찰가는 24,500원이라고 했을 때, A는 25,000원을 내고 경매물인 오만 원짜리 지폐를 획득함으로써 25,000원의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차점자인 B는 24,500원을 손해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매를 주선한 이는 총 500원의 손실을 입는다. 이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입찰가가 오를수록 이익은 줄어들고 입찰가가 경매물 가치보다 높을수록 경매에 참여한 사람 모두 손해를 보게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자, 이제 경매를 시작하자. 시작은 1,500원부터다. 1500, 1500, 1500.... 2000, 네에, 2500 ! 3000 없습니까 ? 네에, 3000 ! 3000, 3000, 3500...... 입찰가는 순식간에 오른다.
40,000원, 40,500원, 41,000원...... 폭주는 멈추지 않는다. 차점자는 최고 입찰자가 되기 위해 50,500원을 부른다. 바로 이 지점이 경매 게임의 변곡점이다. 50,500원이 최고 입찰가로 끝이 난다면 결국에는 최고 입찰자는 500원을 손해보게 되고, 차점자는 50,000원을 잃게 된다. 둘 다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반면, 하우스를 개설한 경매 주선자는 총 50,500원의 이익을 얻는다. 만약에 이 상황에서 당신이 차점자에 속한다면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 GO " 를 외칠 것인가, 아니면 " STOP " 을 외칠 것인가 ? 백이면 백, 당신은 경매 푯말을 힘차게 올린 후 외칠 것이다. " 51,000 원 !!!!! " 어랏, 이것 봐라 ?!
눈 깜짝할 사이에 최고 입찰자에서 차점자가 된 사람은 다시 한번 괄약근에 힘을 주며 의지를 다진다. 손해를 보더라도 적게 손해를 보는 쪽이 마음 편하니까. 숫자는 다시 오르기 시작한다. 51500, 52000, 52500, 53000,53500,....... 235,000원 ! 결국에는 경매에 참여한 사람 모두 손해를 입게 된다. 그렇다면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 경매 제안자'이다. 경제학자 마틴 슈빅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20달러 지폐를 경매 물건으로 내놓고 경매 놀이를 진행했는데 단 한푼도 손해를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17,000달러를 벌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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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인은 참가자들에게 최고의 가격을 부른 입찰자에게 20달러를 준다. 첫 입찰자가 값을 부르면, 그 다음에 값을 부를 입찰자는 앞선 입찰자의 가격을 일정 액수(예를 들면, 50센트) 초과한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 입찰이 끝나면 최고가격을 부른 입찰자뿐 아니라 두 번째 가격을 부른 입찰자도 자신이 부른 금액을 경매인에게 지불해야 한다. 악마의 트위스트가 깃들어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고가를 부른 입찰자는 20달러를 받게 되지만, 차점자는 한푼도 받지 못한다. 이 게임을 해보면, 회사중역이든, 대학생이든 누구나 예외없이 악마의 트위스트에 걸려든다. 입찰이 시작되면 입찰가는 경매인이 제안한 금액의 절반인 10달러까지 순식간에 올라간다.
여기서 입찰자들은 잠깐 주춤한다. 더 이상 입찰가가 높아지면 상위 두 사람의 입찰가가 경매인이 제안한 20달러를 넘어서기 떄문이다. 이 고비를 넘기면 경매인은 손해 볼 일이 없다. 이때 9.5달러를 제안한 차점자는 결국 10.5달러를 부르게 된다. 9.5달러를 그냥 날리느니, 참가해 이겨 9.5달러를 버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대개 이때부터 나머지 사람들은 손을 떼고 상위 두 사람만이 남아 입찰가를 경쟁적으로 올리게 된다. 입찰가가 20달러에 가까워지면 입찰자들은 두 번째로 주춤거린다. 이때 최고가를 부른 입찰자는 경매에서 이기더라도 더 이상 이득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것이다. 현재 19.5달러를 부른 차점자 또한 20.5달러를 부를지 말지 주저하는 게 당연하다.
그는 이제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 있다. 여기서 그만두면 19.5달러를 고스란히 잃는다. 그러나 20.5달러를 불러서 이간다면 0.5달러만 손해 보면 된다. 여기서 그는 상대방이 포기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경매를 계속 진행한다. 20달러대를 벗어나면 경매는 다시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이제는 두 사람의 신경전으로 변한다. 50달러까지 가야 한 사람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사람들은 일정한 지적 수준을 갖춘다면 이런 무모한 경매게임에 빠져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게임이론과 전략적 상호작용이론 등 경영학 훈련을 받은 전문경영인들조차 이 게임에 쉽게 빠져든다.
예를 들면, 심리학자 맥스 베이저먼은 켈로그경영대학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난 10년간 이 게임을 벌여 모두 17,000달러를 벌었다고 한다.
ㅡ 승자독식사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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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는 20달러 지폐를 놓고 204달러 콜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최고 입찰가로 선정된 사람은 204달러를 내고 20달러를 가져갔다(차점자인 경우는 최고 입찰자의 손해보다 더 큰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을 것 같다). 마틴 슈빅의 20달러 경매 놀이는 인간의 " 손실 회피 편향 " 심리를 이용한 도박이다. 인간은 1만 원을 얻었을 때 느끼게 되는 행복감보다는 1만 원을 잃었을 때 느끼게 되는 상실감이 정서적으로 두 배나 크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잡은 고기보다 놓친 고기가 커보이는 심리와 같은 것이다.
뭐, 당연한 소리 아니냐 _ 라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지만 손실 회피 편향은 인간이 왜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되는가 라는 단서를 제공한다. 위험 부담이 크면 클수록 포기도 빨라야 하지만, 오히려 위험 부담이 크면 클수록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된다. 한국 사회는 20달러 경매 놀이 사회'이다. 기득권은 선심 쓰듯 툭, 20달러를 경매 물품으로 내놓는다. 경매를 통해 1달러로 20달러를 가져갈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 5000년 유사 이래 가장 많이 배운 세대라는 명성답게 놀이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 놀이가 함정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심리학을 전공한 이라면 인간의 손실 회피 성향을 노린 야바위'란 사실도. 이런 야비한...... 하지만 이론이 현실이 되면 헛똑똑이가 된다. 1달러로 시작된 경매가는 어느새 204달러를 향한다. 여기서 멈출 것인가 ? 침묵은 잠시. 누군가 204달러 50센트를 외친다. 이 정도면 막가자는 거지요 ? 이쯤되면 이성을 잃을 시기. 상대방이 외친다. " 그래, 시발놈아 ! 막가자는 얘기다. " 이 지점부터는 물귀신 작전이 시작된다. 웃는 사람은 20달러를 경매물로 내놓은 사람뿐이다.
그런데 마틴 슈빅이 고안한 이 놀이의 정식 명칭은 " 20달러 경매 놀이 " 가 아니라 " 함정게임(Entrapment Game) " 이다. 내 장르적 취향을 고려하자면 올가미 놀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하우스 개설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 죽는 구조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20달러 경매 놀이의 결과인 셈이다. 사쿠라 두 짝을 내보이며 두 팔로 판돈을 긁어갈 때 누군가가 조용히 외칠 것이다. " 잠깐 !!! 내가 빙다리 핫바지로 보이냐 ? 사쿠라는 단풍을 이길 수 없제 ~ " 얼핏 보기에 올가미 놀이에서 최종 승자는 전교 1등처럼 보이지만 등 뒤에는 전국 1등이 도사리고 있다.
관객들은 최후의 반전이라며 객석에서 일어날 즈음, 누군가가 이렇게 외친다. " 단풍이 그 아무리 아름답다 한들, 달밤에 송학이 날아오르니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을쏘냐. " 전국 1등은 우병우나 김기춘(같은 캐릭터)에게 밀린다. 그렇다면 최종 승자는 김기춘인가 ? 아직은 섣부른 판단이다. 김기춘이 20달러 경매 놀이를 제안한 하우스 개설자'인지, 아니면 경매 놀이에 참여한 참가자인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당신이 촛불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