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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인사이드 - 포토 에세이
김선정 글, 백 감독, NEW 제공, 용필름 제작 / 예담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안 보이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
눈동자가 뒤통수에 있었으면 좋겠어
남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서 있다고 하던데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날마다 얼굴이 바뀌어 있다. 내 얼굴은 어느 때는 남자였고, 어느 때는 여자였고, 어느 날은 노인이었으며 다음날은 아이였던 적도 있다. 또한 흑인이었던 적도 있고 갈라파고스 원주민이었던 적도 있다.
내면의 나는 오로지 나일 뿐이지만 외면은 항상 타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일생은 하루짜리 하루살이나 다름없는 것이어서 一生이 아니라 日生이었던 셈이다. 오해는 금물. 이 글은 뻥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한다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 누군가는 내 서사에서 낭만적 증후를 읽는 이 있겠으나 또 누군가는 비극적 허무를 읽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루살이 일생이다 보니 사랑이라는 감정따윈 사치에 불과했다. 하룻밤에 뜨거운, 아...... 땀방울이 등골을 타고 또르르 흘러내려 엉덩이 골짜기에 고이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한들 무슨 소용이랴. 한갓 원나잇스탠드에 불과할 테니 말이다. 내 사전에 사랑따윈 없다 !
나는 부실한 괄약근에 힘을 주며 다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운명이란 허공에 향해 던진 럭비공 같아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일이다. 그 여자를 처음 본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동네 앞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었다. 평상시, 괄약근에 힘을 주고 다니던 나는 남근에 힘을 주며 그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나에게도 기회가 오리라. 날마다 외모가 바뀌다 보니 가끔은 강동원이나 원빈처럼 생긴 얼굴로 변했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한참 동안 거울 앞에서 넋을 놓고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늘씬한 키에, 박연폭포 같은 시원한 어깨, 손대면 툭, 하고 끊어질 것만 같은 콧등과 턱선, 킨타쿤테 같은 입술과 우수에 찬 눈동자.
그뿐인가 ? 목욕탕에서나 울릴 법한 중저음의 목소리는 매력적이었다.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 다자꼬자 그녀에게 데이트 신청을 했다. 초, 초초초초초초초밥 좋아하십니까 ? 그녀는 지금 벌거벗은 채 내 곁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새근새근 숨쉬는 소리가 5월 한낮에 부는 한들바람 같다. 아, 따스하여라. 하지만 이 행복도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잘알고 있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늘의 나이지, 내일의 나는 아닐 테니까. 그래서 지금 나는 그녀 노트북을 사용해서 이 글을 남긴다. 아침에 일어나면 그녀는 노트북에 남긴 이 메시지를 읽을 것이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럴 때는 눈동자가 뒤통수에 있었으면 좋겠어.
애란 씨 ~ 날이 밝으면 나는 떠나오. 당신에게 떠나는 내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구려. 앞에서 보면 보이지 않으나 뒤에서 보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어깨라오. 영원히 잊지 않으리다.
- 곰곰생각하는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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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글은 뮤직비디오와 CF 감독으로 명성을 쌓았던 백종열 감독이 연출한 영화 << 뷰티 인사이드, 2015 >> 를 내 식대로 줄거리를 각색해서 요약한 글이다.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 바뀐다는 설정이 흥미롭다(이 영화 줄거리는 기업 광고용 단편 영화를 각색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이 영화가 주는 교훈은 명백하다. 재능 없는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 기획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형편없는 졸작이 된다는 것. 영화 주제는 제목에서 드러났듯이 " 내면의 아름다움(더 뷰티 인사이드) " 을 강조하지만 영화 내용은 " 외면의 아름다움(더 뷰티 아웃사이드) " 에 집중한다.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남자 캐릭터 때문에 시나리오에는 우진 역을 109명의 남자 배우가 소화하는데 공교롭게도 달달한 로맨스는 모두 미남 배우들하고만 이루어진다. 첫 번째 데이트는 박서준이고, 첫 번째 스킨쉽은 이진욱이며, 반지를 끼워주는 장면에서는 유연석이 등장한다. 홍이수를 연기하는 한효주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남자 배우들과는 이렇다 할 감정적 교류가 없지만 빛나는 외모를 가진 배우들이 등장할 때에만 불꽃이 터진다. 말 그대로 " 뷰티 아웃사이드 " 인 셈이다. 한효주는 우진 78을 연기한 김민재라는 배우에게 " 볼 때마다 낯설다 " 고 핀잔을 주지만 우진 84를 연기한 이진욱에게는 적극적으로 달려든다.
영화를 본 관객은 < 마음이 고와야 남자지 얼굴만 예쁘다고 남자냐 > 라는 감독의 작품 의도를 < 그래도 외모가 자본이 될 수밖에 없는 판타지 > 로 읽게 된다. 인내심을 가지고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새 욕지기가 튀어나온다. 이럴 때는 용수철 흉내를 내는 팝콘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극장을 나올 수밖에. 이 영화는 뮤직비디오나 기업 광고를 만들던 감독이 극영화를 만들 때 범하게 되는 모든 실수를 망라한다. 그림은 좋은데 내용은 없다. 그리고 조연들은 하나같이 입체적이지 못하고 평면적이다. 가장 예뻐 보이는 얼굴만 보여주려는 사람은 매력이 없는 것 1) 처럼 이 영화 또한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다. CF 광고를 돈 주고 본 느낌이 든다.
주름살 없는 얼굴은 희노애락 없는 인생과 같다. 시대가 하수상하다 보니 영화를 보다가 느닷없이 박근혜 씨가 떠올랐다. 근혜 씨야말로 가장 예뻐 보이는 얼굴만 보여주려는 사람이어서 매력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는 < 군주민수 君舟民水 > 였다. 속으로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사태는 총론은 < 박근혜 게이트 > 요, 각론은 < 최순실 게이트 > 이지만 달리 보면 < 강남 게이트 >요, < 교수 게이트 > 이기도 하다.
한국의 모든 정권에서 교수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른바 대통령을 하겠다는 포부를 갖는 사람들은 ‘씽크탱크’란 것을 만들고 거기에 많은 교수들이 참여한다. 교수들은 국정 전반에 대한 로드맵을 구상하고 이후에 실제 권력집행에 참여해 다양한 직책을 맡아 수행한다. 관료들의 일이라 여겨졌던 것들도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교수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차관, 청와대 비서관까지 교수들이 맡는 일이 늘어났고 대학총장을 했던 분이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그런가 하면 순수 관료로 삶의 중요한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이 대학으로 와 정부에서 지원하는 각종 연구비나 사업비를 수주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일도 흔해졌다. 이런 관료들은 교수로서 총장, 부총장 등 대학의 주요 보직을 맡아 일하기도 하고 재단 이사회로 들어가기도 한다.
ㅡ ‘가르친다’는 일의 위중함과 위선자가 될 위험 …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김혜숙 이화여대·철학
내가 뽑은 올해의 사자성이는 < 후까시虛誇示) > 다. 세월호 참사는 주름살 없는 얼굴에 대한 욕망이, 오로지 예뻐 보이는 얼굴만 보여주려는 욕망이 측은지심보다 우위에 설 때 발생하게 되는 비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후까시 잡는 영화에 질린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양 감독이 연출한 << 하나 그리고 둘 >> 이라는 걸작 영화를 추천한다. 이 영화에서 양양(남자의 어린 아들)은 카메라로 사람의 뒷모습만을 찍는다. 어린 아들은 사람의 뒷모습만을 찍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안 보이는 것을 보여주려고요. " " 우리는 우리의 앞면만 볼 수 있을 뿐, 뒷모습을 볼 수 없으니까요. " 나는 앞모습이 화려한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끌리지만 뒷모습마저 화려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경멸하는 편이다. 뒷모습은 원래 외롭고 초라하며 빈곤한 이미지의 영역인 것이다. 하여, 앞모습은 물론이거나와 뒷모습마저 화려한 사람은 사이비이거나 사탄이거나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
박근혜는 후대에 뒷모습마저 후까시로 포장하려다 추락한 악인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 근혜 씨이 ~ 뒤통수는 외로움에게 양보하시라 ! " ■
1) 영화 칼럼리스트 김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