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마



타인의 손에 이마를 맡기고 있을 때
나는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아
너의 양쪽 손으로 이어진
이마와 이마의 아득한 뒤편을
나는 눈을 감고 걸어가 보았다

이마의 크기가
손바닥의 크기와 비슷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가난한 나의 이마가 부끄러워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곤 했는데

세밑의 흰 밤이었다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벙어리처럼 울었다

내가 오른팔을 이마에 얹고
누워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 자세 때문이었다

ㅡ 허은실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 문학동네, 2017



 


                                                                                                        허은실 시인의 < 이마 > 라는 시를 읽다가 문득 빈집에서 나홀로 나흘을 앓다가 서러워서 한 소금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의 일을, 나는 이렇게 쓰고 있다.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나흘을 앓았(던 적이 있)다. 혼자 끙끙 앓다가 독거사로 죽는, 그런 사회면 기사가 떠올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감기 따위로 죽지 않을 자신감과 감기 따위로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으니까. 그냥......  끙끙 앓았다. 무료했던, 어느 삼경 즈음. 라디오에서 심야 방송 디제이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소개했는데 이민자의 악전고투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머나먼 타관(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었다)살이에 지쳐 있었다고. 결혼은 실패하고 사업도 망했으니 부모 볼 면목이 없던 그녀. 빈 방에서 심한 감기로 누워 있었는데...... 죽기로 결심했던 터라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우주보다 캄캄한 방에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고. 그때였다고 한다, 캄캄한 천장이 스크린이 되어 한국에서 즐겨 먹던 순댓국이 북위 37도 전갈자리 전방 19도에 위치한 sk인공위성 불빛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던 순간.  죽기로 결심했던 여자는 눅눅한 비린내에 말캉거리는 비계를 떠올리니 침이 고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그녀는 아픈 몸을 추스리고 통장에 남아 있는 잔고를 금성 탈수기처럼 탈탈 털어서 택시를 타고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고. 그리고 따순 국밥 위에 씨뻘건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 순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녀에게 인생 음식은 순댓국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몸을 추스리면 순댓국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1). 오소리감투 듬뿍 넣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녀처럼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던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순댓국을 먹었다. 감기따위로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허기'가 아니라 차갑고 텅빈 마음을 따스하게 녹일, 단순한 온기'였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그녀처럼 나 또한 몸이 아프면 순댓국 생각이 난다.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것은 식욕을 돋우는 음식이 아니라 단순한 온기'였다. < 이마 > 라는 시를 관통하는 서정도 " 단순한 온기 " 다. 앓는 이의 이마를 짚는 행위는 그의 체온을 체크하기 위한 행동이지만 반대로 앓는 이가 타인의 손바닥 온기를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레이몬드 카버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픈 사람의 이마를 짚는 것은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1)이 된 " 다.  앓는 이의 이마에 손을 얹는다는 것은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갓 구워서 따스한 빵과 차 한 잔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  환대하는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 시인은 마음이 " 조금 선량해지는 것 같 ㅡ " 다고 고백한다. 


그리고는 어느 " 세밑의 흰 밤 " 을 떠올린다. " 어둡게 앓다가 문득 일어나 / 벙어리처럼 울었 " 던 기억. 타자의 환대도 없이.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캄캄한 밤. 빈집에서 홀로 펄펄 끓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었던, 춥고 쓸쓸해서 설웁던 그 밤. 




​                      


1)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레이몬드 카버 : 소설가들의 소설가로 불리는 레이몬드 카버 단편소설 << A Small, Good Thing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은 위로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단편소설에는 아들의 여덟 번째 생일날 뺑소니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와 생일이 지나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고객 맞춤 주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아서 화가 난 빵집 주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사소한 약속(생일 케이크)을 챙기기에는 아들의 죽음은 거대한 불행이었고, 그 속사정을 알 턱이 없는 빵집 주인은 생일이 지났는데도 주문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이 미워서 수시로 재촉 전화를 했을 뿐이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말한다. " 이제는 스카티(아들 이름)를 잊어버린 모양이군 ! "  한쪽은 아이의 죽음 때문에 혼이 나간 상태이고 한쪽은 상한 케이크 때문에 화가 난 상태이다.  이 불협화음은 어두컴컴한 터널처럼 끝에 가서야 환해진다. 빵집을 찾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울부짖는 젊은 부부 앞에서 늙은 빵집 주인은 어쩔 줄 몰라 한다. 일단, 사과의 말은 건네지만 고슴도치처럼 몸을 웅크리며 울고 있는 부부를 어떻게 위로할지는 모른다, 사과와 위로는 다른 말이니까.  그는 부부 앞에 철제 의자 두 개를 가져와 앉게 한 후 따듯한 커피와 갓 구운 롤빵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어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겁니다....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됩니다. 더 있어요. 다 드세요. 먹고 싶은 만큼 드세요.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 있으니...... "  극심한 고통 때문에 며칠 동안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었던 부부는 비로소 롤빵을 먹기 시작한다.  달콤하고 따스한 빵이다. 아내는 롤빵을 세 조각이나 먹는다. 부부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고 거짓 감정도 없이 진심을 다해 사과를 전하는, 위로의 말 없이도 위로를 전하는 빵집 주인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순간이다.  소설은 새벽 동 트는 창밖의 풍경을 묘사하며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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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21-03-07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찬바람이 불면 뜨거운 국밥 생각이 간절하죠. 호호 불어 천천히 식혀가며 먹으면 될 것을 급하게 털어넣느라 입천정을 데어가며 그래도 좋다고 웃으며 먹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7 21:25   좋아요 1 | URL
반갑습네다. 진아 님. 잘 지내시지요 ? ㅎㅎ 이 시를 읽다가 문득
이마와 손은 서로 닮은 구석은 없지만
솥과 솥뚜껑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마와 손바닥의 크기가 비슷하듯이 솥 둘레와 솥뚜껑도 같은 크기이니 말입니다.

samadhi(眞我) 2021-03-07 21:58   좋아요 1 | URL
그 시를 쓴 시인처럼 곰발님 연상도 참신한데요.
제가 찬바람이라고 한 건 제겐 찬바람이 외로움이고 그리움이어서요. 어릴 땐 삐쩍 말라서 추위를 많이 타 추운 걸 싫어했는데 살이 붙으니까 제 속에서 지방장군(?)들이 든든히 버텨줘서 추위를 좋아하게 됐어요. 저는 찬바람이 불면 사람이 그립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춥게 입고 다녀요. 그러면 사람들이 막 짠하게 보고 애틋한 눈길을 던져주면서 챙겨준답니다. 그러면 이때다 하고 앵겨요. ㅋㅋㅋ 그럼 하나도 안추워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8 18:38   좋아요 1 | URL
저도 옛날에는 추위에 강했는데... 이제는 봄날에도 추워서 오들오들하니... ㅎㅎㅎㅎ

samadhi(眞我) 2021-03-08 19:30   좋아요 1 | URL
곰발님은 1일1식 효과(?)인거죠. 지방장군이 못견디고 달아나버려서. 장군님을 아껴줬어야죠.

바람돌이 2021-03-07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이먼드 카버의 저 소설 정말 별것아니지만 위안이 되었었어요.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죠. 정말 위안이라는건 별거 아니구나. 내가 타인의 슬픔에 진심으로 동감하면 되는거구나... 나에게 저 소설이 위안이 되었듯 나역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위안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막 결심했던.... 그대로 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팠던 곰곰님에게 순대국을 배달로 보내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내일부터 또 월요일인데 남은 하루 편안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7 21:26   좋아요 0 | URL
이 단편, 읽었을 때 정말 큰 감동을 줬죠. 작가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도움이 되는 작은 환대라고 말하지만 이 소설은 별것 아닌 것 같은 줄거리지만 엄청 큰 감동을 준... 저의 1등 단편입니다..

막시무스 2021-03-07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음 따뜻해지는 글 감사합니다! 이마를 가리는 손에서 전달되는 단순한 온기가 이마를 통해서 내려오면서 가슴 깊은 곳에선 온정이되네요! 초코파이 마음이라고 해야할까요?ㅎ 카버의 저 단편 읽고 퇴근길에 롤캐익과 캔맥주 사서 먹으며 가슴속에 이는 찡함을 감동이라고 생각만 했었는데 곰발님 글을 보니 단순히 피상적 위로가 아니라 제게 결핍되었던, 제가 받고 느끼고 싶었던 위로의 온기였네요! 온기라는 환대!
즐거운 한 주되셔요!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8 18:39   좋아요 1 | URL
카버의 단편은 인생 단편이었죠. 정말 별것도 아닌 내용인데 묘하게 카버의 단편은 감동적인 구석이 있죠..
 















                                       


격렬비열도의 추자도 같은 세계에서 :











신경숙이 돌아왔다고 ?












신경숙이 << 아버지에게 갔었어 >> 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빙그레 방그레 헬렐레. 오해는 하지 마시라. 한쪽 입꼬리가 유독 위로 올라간 것을 보면 비웃음에 가까우니 말이다. << 엄마를 부탁해 >> 로 대박을 치다 보니 이제는 아버지가 필요한 모양이다. 이 책을 읽지는 않았으나 똥인지 된장인지 꼭 먹어봐야지만 아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안 봐도 유튜브다.  전작에서는 엄마에게 징징거리더니 이제는 아빠에게 징징거리는 모양이다.  신경숙의 신간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궁금했던 것은 작품성이 아니라 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의 해제가 부록으로 붙어 있을까 _ 라는 점이었다. 


신경숙이라는 브랜드로 단물을 쏙쏙 빼먹었던 평론가들이 표절 논란 이후에 출간된 책에 용기를 내서 해제를 쓸 수 있을까 ? 평소대로라면 신경숙 소설에 해제를 붙이는 것을 가문의 영광쯤으로 여기던 그들이 말이다. 나는 그들이 그럴 용기가 없다는 데 500원 걸겠다. 한국 문단이 겉으로 보기에는 고상해 보여도 파고들면 격렬비열도의 추자도 세계와 같다. 비열하고 추잡스럽다는 뜻이다. 신경숙의 작품 세계가 대부분 엄마와 아버지에 국한된 것을 보면 유아기적 집착을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다.  신경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듣기에 " 유아기적 집착 ㅡ " 이라는 표현이 거슬리겠지만 신경숙을 조롱하기 위해 고른 표현은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신경숙 문학의 특징은 혼잣말처럼 읊조리기,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혼자서 옹알이하다가 결국에는 말줄임표로 끝내기, 쉼표를 남발하기가 아닐까 싶다. 이러한 태도는 전형적인 미성숙 아동의 문장 구사력이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를 대표하는 작가랍시고 한국 문단을 호령했으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다 보니 나이 쉰을 훌쩍 넘긴 작가가 툭, 하면 엄마와 아빠를 찾는다. 무엇보다도 그의 사회 인식이 심각한 것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케어의 영역을 부모에게 전가시킨다는 점이다. 가족 문제는 가족끼리 해셜하셔 ~ 뭐, 이런 마인드인 것이다. 


그동안 신경숙을 숭배했던 문단 평론가들에게 묻고 싶다(특히 신형철에게). 이게 성숙한 문학이냐, 이게 세계 문학이야 ?            과연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려서 젖 달라고 질질 짜는 문학을 성숙하다 할 수 있을까 ?  나는 한국 작가들이 왜 그렇게 엄마와 아빠에게 매달리는지 이해가 안 간다. 한국 문단 평론가들이 참말로 철딱서니가 없다고 느낀 것은 << 외딴 방 >> 을 노동소설로 규정했을 때였다. 도대체 어떤 정신머리를 가져야 이런 소설이 노동소설이 될 수 있는 것일까 ?  신경숙 컴백홈 기념으로 그 전에 써두었던 리뷰로 갈무리한다. 




 









신경숙의 << 외딴 방 >> 에서 보여지는 퇴행적 역사 인식과 오류





​눈을 감으세요 / 모두 눈을 감으세요


ㅡ 징병검사장에서, 윤희상 







                                                                                                                                 버 지니아 울프는 << 자기만의 방 >> 에서 여성 예술가는 독립적 공간을 위한 < 자기만의 방 > 과 경제적 자립을 위해 < 500파운드의 돈 > 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 남성 " 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한 장소로 " 자기만의 방 " 을 선정한 셈이다.  < 방 > 이 버지니아 울프를 대표하는 장소성'이라면 < 부엌 > 은 신경숙 문학을 대표하는 장소성'이다.  하지만 신경숙이 집착하는 부엌이라는 장소성은 버지니아 울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기만의 방이 남성으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잰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면 신경숙의 부엌은 남성들과 결탁하여 스스로 그 욕망에 부역하고자 하는 장소로 퇴행한다.

부엌에서 만들어진 밥은 남성(욕망)을 위해 바치는 보시施 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 여성은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실제 크기의 두 배로 확대 반사하는 유쾌한 마력을 지난 거울 노릇을 해왔 " 다고 비판했는데 신경숙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이에 해당된다.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 외딴방 >> 에서 1인칭 여성 화자인 < 나 > 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사랑하는 오빠를 위해 저녁상 차리는 것을 최고의 행복이라 믿는다.  "  나는 정치 같은 건 몰라, 그냥 오빠에게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는 행복만을 느끼고 싶어 !  "   이 깜짝 놀랄만한 언술은 한국 남성들이 여성 대부분을 " 정알못 " 으로 규정 짓는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저녁 드라마는 여성에게 양보할 수 있지만 저녁 뉘우스는 남성이 독점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신경숙은 < 나 > 라는 어린 여성을 통해서 남성에게 봉사하고 집안 살림을 꾸리는 것이 여성이 갖춰야 할 본질적 의무'라고 강조한다. 이 퇴행적 잰더 인식은 남성적 가치에 순응함으로써,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남성 욕망에 빙의된 여성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가부장제에 봉사한다는 점에서 < 나 > 는 고유한 W가 아니라 M이 뒤집어진 형태의 W다. 내가 이 소설이 굉장히 악질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70년대 말에서 8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적 배경과 구로공단에 위치한 동남전기주식회사의 열악한 노동 현장이라는 지정학적 위치를 정조준한 소설이면서도 애써 탈정치적 노스텔지어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주인공 < 나 > 가 노조를 배신하면서 말했던 해도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우리들의 희망은 소모전이었던 것이다 " )는 변명은 7,80년대 노동 운동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신경숙의 퇴행적 사회 인식을 대변한다. 신경숙이 보기에 7,80년대 노동 운동은 쓸모 없는 소모-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는 줄기차게 주인공 < 나 > 의 입을 빌려서 노동 운동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데, 이 행위 자체가 정확하게 강경 자본가 우파의 " 정치색 " 을 띤다는 점에서 < 나 > 가 강박적으로 정치에는 관심이 없다고 고백하는 언술은 이율 배반에 해당된다. 노동 운동을 단순하게 " 해도 해도 안 되는 ㅡ " 무용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자본가가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노동자를 협박하거나 회유할 때 자주 사용하는 언술이라는 점에서 << 외딴 방 >> 에서 주인공 나는 < 외피는 구로공단 여공 작업복을 둘렀지만 내피는 자본가 / 기득권 / 수구 보수 남성의 실크 넥타이를 맸다는 점에서 속내를 숨긴 캐릭터 > 로 읽힌다. 그것은 여성W이라는 외피를 둘렀지만 내피는 뒤집어진 남성 M 이라는 간교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광주 시민을 학살했던 학살자(대통령)의 얼굴보다 싫은 것이 무우국을 끓이려고 사다 놓은 무우가 꽝꽝 얼어버려가지고 칼이 들어가지 않는 가난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화자의 철딱서니 없는 논리는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지지하기 위해 내세웠던 태극기 집회 무리의 산업화 논리와 다를 것 하나 없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친 - 노동소설이 아니라 반 - 노동소설에 가깝고 친 - 여성소설이 아니라 반 - 여성소설에 가깝다. 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가면극인가. 하지만 문학동네 편집위원이었던 남진우는 이 소설을 "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이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노동소설 " 이라는 놀라운 진단을 내린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회'가 아닐 수 없다. 이 헌사는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쓰여진 글이었으니 비평문이라기보다는 세레나데요, 프로포즈'인 셈이다. 사, 사사사사사...... 아니, 좋아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가까운 한 시대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증언록이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이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노동소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정평이 난 그녀의 풍부한 울림을 담은 문체나 감성을 상찬하는 것을 넘어서 우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 걸까. 대상을 나타나게 하면서 사라지게 하는 글쓰기의 비의. 이 비밀스러운 힘을 포착할 때 우리는 신경숙 문학의 또다른 매력 앞에 서게 된다.


- 남진우, 수물의 어둠에서 백로의 숲까지 : 신경숙의 외딴 방에대한 몇 개의 단상 중

 


반복해서 말하지만 << 외딴 방 >> 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정알못'이라고 강조하지만 유감스럽게도 < 나 > 는 그 누구보다도 정치적 입장을 당당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존재'이다. 이 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고 조선일보가 남진우를 앞세워서 조선일보 지면에 대대적인 작품 홍보를 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문학동네가 조선일보 비호 아래 짧은 시간 안에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은 문학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출판사 문학동네는 한국 문학사에서 1970-80년대 실천문학을 정치색에 함몰된 저질 프로파간다 문학으로 평가절하하면서 문학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하여 탈정치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다. 문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환 시도인 셈이다.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 신경숙 작가이고 신경숙 문학의 최고봉이 << 외딴 방 >> 이다.  이 소설 또한 1970-80년대 노동 운동을 평가절하하면서 탈정치화를 선언한 구로공단 여공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문학동네와 신경숙은 동일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탈정치화를 주장하는 행위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인간은 정치적이다.  이 전제를 바탕으로 하자면 인간을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정치화를 선언한 신경숙 소설뿐만 아니라 그를 옹호한 문학동네 또한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이익집단이다. 비극은 그들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신경숙은 문학을 " 사적 내면화 " 라는 틀거리 안에 가두고는 

외부의 일에 간섭하지 말고 눈을 감고 내면의 이야기를 하자고 속삭인다. 눈을 감으세요. 모두 눈을 감으세요.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두 눈 부릅뜨고 외부를 바라보아야 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목이 잘리는 노동자가 있고 지금도 철탑 위에서 408일 동안 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있다.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을 하는 것은 쓸모 없는 소모가 아니라  숭고한 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한때 해도 해도 안되는 일을 희망 없이, 하지만 절망도 없이 수행한 그들의 희생 덕이다. 나는 ...... 기꺼이, 신경숙 문학에 침을 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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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3-06 20: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이 돌아왔다고 했을 때 곰발님 생각 했어요. 왜 글이 안 올라오나 하고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6 20:35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ㅎㅎ 제가 요즘 알라딘에 좀 뜸했죠. 신경숙 오셨으니 언급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런데 신경숙 제대로 된 사과는 했나요 ? 사과 안 했던 걸로 아는데.... 변명만 늘어놓고는 사라졌다가
이제 다시 나오셨네요.

라로 2021-03-08 20:05   좋아요 0 | URL
네, 그레게요. 요즘 뭐 준비하시는 거 있으세요??? 그러신거라면 좋겠다는 생각~~.^^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9 14:49   좋아요 0 | URL
쥐 죽은 듯 코로나가 하루빨리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스크... 하, 정말 이제는 지긋지긋..
 
지지 않는 하루 - 두려움이라는 병을 이겨내면 선명해지는 것들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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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소설가는 굳이 좋은 사람일 필요는 없다. 소설은 어차피 " 구라의 세계 " 이니 구라쟁이가 빛을 발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도둑보다 도둑놈 심보를 잘 아는 이는 없지 않은가 ! 그렇기에 소설가의 사람 됨됨이로 작품을 평가하는 것은 꽤나 웃긴 일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문학 작품에 있어서 좋은 태도보다 앞서는 것은 좋은 문장이다. 


반대로 에세이는 사정이 다르다. 좋은 에세이스트가 갖춰야 할 것은 좋은 문장보다 좋은 태도에 있다. 평소에 갑질하는 사람이 갑질을 비판하는 칼럼을 쓴다면 그 칼럼이 좋은 칼럼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으뜸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평소 작가가 실천한 삶에 대한 좋은 태도 " 에 있다. 내가 하루키 문학 작품을 좋아하지는 않으나 하루키 에세이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평소 작가의 건강한 생활 태도에 있다. 좋은 사람이 좋은 에세이를 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에서 나뒹구는 에세이는..... 팔 할이 쓰레기'다. 


직설하자면  :  신달자(with유안진st)나 김미경 류의 에세이는 좋은 글이 아니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고, 입증보다는 간증에 집착하고, 교사보다는 선생이 되어서 ㅡ 질(선생질) 을 남발한다. 이런 책들은 서로 다른 사연을 제각각 이야기 하고는 있으나 내 눈에는 모두 다 똑같은 내용으로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  말 그대로 천편일률( : 천 권의 책이 모두 한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음. 죽 모든 사물이나 글에 차이점이 없이 똑같음)적이다. 하 _ 하는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에는 하악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 알고 보니 고양이였엉 ?  


지금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 이도 있다는데 이런 책 읽고 나서 사람-되기는커녕 하악질을 남발하는 고양이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독자를 고양이로 만드는 책은 나쁜 책이다. 이화열 에세이집 << 지지 않는 하루 >> 는 신형철의 지적대로 한국식 에세이의 나쁜 관습이 말끔히 제거된 책이다.  동정이나 연민을 이용해서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고,  자신의 불행을 쓰빽따끌한 간증의 서사로 이용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의 좋은 생활 태도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 좋은 태도와 함께 좋은 문장도 돋보인다. 


이 책 첫 번째에 수록된 < 트라디시옹 > 이란 에세이는, 박완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구슬 같은 작품이다.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열 번은 읽은 듯하다. 작가는 빵집에서 트라디시옹이라는 프랑스 전통 빵(바게트와 비슷한 빵?)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 사이, 이런저런 생각과 대화가 오고 간다. 주문한 빵이 나오고 그는 따스한 빵을 겨드랑이에 끼고 집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냄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 오늘도 빵 머리를 뜯고 만다 ".  집에 오면 제품 사용설명서 같은 남편이 기다렸다가 한마디 한다. 이에 아랑곳할 그녀가 아니다. 


파먹힌 빵 한 귀퉁이를 잘라주며 말한다. " 오늘은 진짜 더 맛있어. 얼른 먹어봐. "  일상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일상적인 풍경을 묘사한 글이지만 묘하게도 감동적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빵 만드는 사람의 기분처럼 빵 가게 빵 맛은 매일 똑같은 맛이 아니다. 하지만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한다. 만약 매일 완벽한 빵을 산다면 완벽한 맛에 대한 경탄은 당연함과 식상함으로 바뀔 터이니.


음식 맛의 민감한 변화에도 노발대발하는 백종원이 읽었다면 고기를 씹다 뱉는 버릇처럼 이 책을 냅킨에 싸서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모른다. 이건 아니쥬 ! 이건 초심을 잃은 거유. 소비자가 뭔 잘못이래유 ? 그래유,안 그래유 ?  그에게는 " 단골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끔은 망한 트라디시옹을 감수 " 해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공장에서 찍어내서 슈퍼마켓에 파는 바게트의 일정한,  천편일률적인 맛보다는 가끔은 단골 가게의 망한 트라디시옹을 옹호한다. 그래야지 " 오늘은 진짜 더 맛있 " 는 빵을 먹는 즐거움을 덤으로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이 에세이를 읽는 내내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 이 떠올랐다. 레이몬드 카버가 생활 에세이를 쓴다면 아마도 이런 문장과 분위기였을 것이다. 평소 좋은 책은 맛있는 초콜릿이 든 과자 상자와 비슷해서 아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하루 만에 다 읽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으련다. 좋은 책과 초콜릿 상자의 차이점 중 하나는 좋은 책은 텅 빈 초콜릿 상자와는 달리 다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저자의 쾌유와 건투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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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21-02-10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고 싶은 책으로 장바구니에 넣어 두었는데 곰곰님 리뷰까지 읽고 나니 더이상 구매를 미룰 수가 없군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0   좋아요 1 | URL
네에. 얼른 구매하셔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메리크리스마스 ~

수이 2021-02-14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나왔네요! 두근두근

곰곰생각하는발 2021-03-06 17:07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네요... ㅎㅎㅎ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강추 ~
 





















겨울 곡간에서 가을 곶감을 빼먹듯이 








영화 << 타짜 >> 에서 운전기사는 한숨을 푹 쉬면서 보스 곽철용에게 올림픽대교가 막힐 것 같다고 걱정을 한다. 그러자 곽철용이 대수롭지 않은 듯 툭, 되받아친다. "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새꺄 ? "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플랜B를 제시하기보다는 걱정부터 앞서는 나는 전형적인 운전기사 캐릭터'다. 만약에 마포대교가 무너졌다고 한다면 나는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내비게이션에도 없는 삼천포로 빠졌을 것이다. 반면에 블로그 이웃인 이집주인 님은 곽철용 같은 캐릭터'다. 마포대교가 무너졌다 한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서강대교는 무너졌냐, 색햐 ! " 나는 그가 투병 중이란 사실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투병 중이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나간 소식을 전하면서 무심한 듯 시크하게 그 사실을 알렸기에 나는 그것을 단순히 감기 정도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대목. 그는 불행 앞에서 쉽게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 대하여 깊은 연민에 빠지는 성격이 아닌 듯하다. 그가 쓰는 글도 그의 성격을 닮았다. 신형철 평론가로부터 " 한국식 에세이의 관습이 말끔히 제거되어 있는 글 " 이란 찬사를 받은 사실은 그의 에세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비록 신형철과는 앙숙 관계이기는 하나 그의 상찬에는 적극 동의한다. 오늘 동네서점에 들려 책을 예약 주문했다. 설 연휴에 읽기 좋은 책이(라고 자신한)다. 이번 설 연휴에 겨울 곡간에서 가을 곶감을 빼먹듯이 야금야금 읽을 생각이다. 한국식 에세이에 질려버린 독자'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신달자 에세이를 상상해 보라). 한 편의 잘 만든 독립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 할 것이다.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블로 가 ! "  내 지레짐작은 틀린 적이 없다.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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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02-06 19: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와! 곰발님이 이리 칭찬을 하시니 읽어보고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6 19:13   좋아요 4 | URL
이 분 글을 정말 잘 쓰시는 분이십니다. 강추 ~~

라로 2021-02-08 15:24   좋아요 0 | URL
네네 꼭 읽을게요!!! 사게 되는 날 땡투도 곰발님께!!!👍👍👍👍👍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1   좋아요 1 | URL
라로 님, 메리크리스마스 ~

붕붕툐툐 2021-02-06 21: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명절에 읽을 책을 두둑히 마련해야 하는 시기가 왔군요! 저도 읽고 싶은 책장에 담아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1-02-10 18:51   좋아요 1 | URL
네에. 메리크리스마스 ~
 











싱어게인에 대한 시대 유감 










영화 << 웬디와 루시 >> 에서 주인공 웬디는 낡은 차를 끌고 반려견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를 향한다. 그곳에 가면 일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는 고장이 나 엔진이 멈춘다. 그녀에게는 500달러가 전 재산이지만 차 수리비는 그녀가 가진 돈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다. 


이 우연한 불행과 불행한 우연 앞에서 그녀는 오리건 주 작은 마을에 발목이 묶여 오도 가도 못 가는 신세가 된다. 빈털터리가 된 웬디는 동네 마트에서 개에게 줄 싸구려 통조림 몇 개를 훔치다가 그만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청년에게 발각된다. 식료품점 점원은 그녀를 점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녀에 대한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 개 먹이도 구할 능력이 없는 주제에 개를 키우면 안 됩니다. 모든 규칙은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 용서 대신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점원의 주장을 받아들인 점장은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은 웬디를 구치소에 가둔다. 


그 사이에 루시(개 이름)는 사라진다.  이 영화에서 악인다운 악인은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지만1)  능력주의와 공정주의를 강조하며 용서보다는 처벌을 강조하는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점원은 악인보다 더 무자비해 보인다. 하나의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낳고, 그 불행이 도미노처럼 자립의 기회를 연속으로 쓰러트릴 때 웬디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  이 불행은 전적으로 웬디 개인의 능력 문제일까 ?  가난하다는 것은 시간의 속도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절차는 부자보다는 가난한 자일수록 복잡하고 까다롭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난 루시는 임보자의 보살핌 아래 마당 넓은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녀는 사랑하는 개 루시를 위해서는 무엇이 현명한 선택인가를 알고 있다. 돈 벌어서 다시 오겠다는 웬디의 다짐에는 힘이 없다. 마치,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링 위에 오르는 복서처럼 말이다. 감독은 극빈층으로 전락한 웬디에게 자본주의의 도덕 강령인 능력주의와 공정주의가 얼마나 냉혹하게 그녀를 단죄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식료품점 아르바이트 점원처럼 공정을 강조하는 쪽은 공화당 트럼프 지지자였을까, 아니면 민주당 힐러리로 대표되는 진보 엘리트였을까 ?  


트럼프 지지자들은 현실은 불평등한데 공정만을 강조하는 진보 엘리트들의 위선에 넌더리가 났고, 그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괴물의 탄생이었다. 마이클 샌들은 << 공정하다는 착각 >> 이라는 책에서 " 공정함은 곧 정의 " 라는 통념을 조목조목 반박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재능과 노력이 만든 능력을 높게 평가하면서 공정을 추구하지만 능력주의는 전혀 공정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한다고 말한다.  마이클 샌들의 지적은 트럼프를 지지했던 저학력 백인 노동자의 불만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내가 JTBC 전국노래자랑 쇼 프로그램인 << 싱어게인 >> 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마이클 샌들이 정의한 " 능력주의의 폭정2) " 과 맥을 같이 한다. 제작진은 이름을 지우고 번호를 부여한 무명 가수들에게 "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 " 라고 친절하게 말하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능력은 착취의 다른 이름이다. 무명 가수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 때문에 돈을 버는 쪽은 방송국이다.  방송국은 상금 1억 원, 음반 제작 지원, 전국 공연 투어라는 상금을 내걸었지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최후의 승자 1인'뿐이다.  나머지는 출연료조차 없다. 


음악 전문 채널을 강조하는 모 방송국의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해서 8강까지 진출했던 출연자가 받은 돈은 고작 3만 원이 전부였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출연자는 식사는커녕 도시락을 제공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가 방송국에서 받은 음식이라고는 차가운 김밥 2줄이 전부였다고 한다. 시청자인 우리는 언제까지 능력과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능력 착취 방송에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감동해야 할까 ?  이것은 과연 윤리적인 태도일까 ?  감동하지 마시라. 당신의 감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죄다. 








​                          


1) 숲에서 만난 부랑자는 악인이라기보다는 정신 이상자에 가깝다. 

2) 능력주의에 대한 맹신이 야기한 천박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전여옥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하면서 내뱉은 " 국졸 대통령 " 이라는 말일 것이다. 교육은 신분의 차별 없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 제도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교육이 차별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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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01 2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경연 프로그램의 무대 뒷편에는 기회를 미끼로 희망을 모아서 좌절로 주져앉혀 버리는 아픔이 있었네요!ㅠ
경연도전자의 건절한 마음이 노래에 덫입혀져서 이런 류의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좀 더 의식하면서 봐야겠습니다! 즐건 저녁시간 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0   좋아요 1 | URL
나는가수다였다면 매니저와 가수에서 돈 1000만 원씩 출연료 지급했을 텐데... 단지 무명이라는 이름으로 0원. 일종의 열정 페이죠.

북다이제스터 2021-02-01 21: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명 가수 덕택에 돈을 버는 건 방속국인 것처럼 요즘 주식 투자 광풍에 결국 돈버는 건 수수료 챙기는 증권사인 것 같습니다.
결국 다 누구 좋으라고 누군가는 놀아나는 것 같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1   좋아요 0 | URL
ㅎㅎ 재주는 곰이 부리는데 돈은 조련사가 받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

기억의집 2021-02-01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넷플릭스라는 책을 읽으면 능력주의의 끝판왕 등장입니다. 읽는데 엄청 불편하더군요. 오로지 능력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곳이 넷플릭스였어요. 그 책 읽으면서... 왜 우리 같은 평범한 능력의 사람의 호주머니에서 월정액을 요구하면서, 능력최고주의만을 외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기업은 능력을 발휘하는 게 맞지만.. 넷플릭스의 능력주의 모토(퇴직금을 더 주더라도 능력 안 되는 사람은 내보내라!!)는 좀 그랬어요. 센델의 저 작품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3   좋아요 0 | URL
소설 제목이 < 능력주의 > 였나 ? 그런 소설도 있었죠. 작가가 능력주의 엄청 까거든요. 그 사람의 예견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억의집 2021-02-01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미스터 트롯도 출연료 못 받고 상금이 전부 였다면서요! 참 날로 먹으려는 악덕 자본가들 천지예요.

곰곰생각하는발 2021-02-02 15:04   좋아요 0 | URL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닙니까 ? 출연자의 재능으로 돈을 버는 놈들이 정작 그 출연자들에게는 기본 소득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게 말입니다. 이 정도면 날강도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