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 국회 통과 기념 :
박근혜, 고릴라 그리고 용의자 X의 헌신
마술 쇼를 보다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될 때가 있다. 마술사가 백인이나 동양인인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데 흑인인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 왜, 흑인 마술사는 없는 것일까 ? " 이 엉뚱한 의문은 유사 이래 최초일 것이다. 지금 당신은 유사 이래 최초의 질문을 보고 계십니다 ! 곰곰 생각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 후까시ふかし 효과 > 였다. 마술 쇼가 펼쳐지는 무대를 꼼꼼하게 분석하면 인물(마술사) 배치, 의상, 역할, 미술, 핀 조명 따위가 " 마술사의 후까시 " 를 위해 총체적으로 계획되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무대가 어두울수록 검은 마술복을 입은 마술사의 하얀 피부는 강조된다. 마술 쇼에 초대받은 관객이 주목하는 곳은 (마술사) 얼굴이 아니라 흰 손이다. 흰 손은 현란하다. 마술사의 손이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며 수리수리 마수리 _ 주문을 외울 때, 관객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후까시 잡는 손을 주시하게 된다.
옥의 티를 반드시 잡아내고 말리라 ! 하지만 흰 손에 대한 집중도가 높을수록 마술사에게 속을 확률은 높다. 왜냐하면 후까시는 말 그대로 " 헛과시 " 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표현하자면 " 후까시를 넣다 " 는 말은 뭔가 있어 보이는데 알고 보니 " 좆도 아닌 것 " 이다. 어두컴컴한 무대 위에서 문어처럼 흐느적거리는 흰 손도 마찬가지'다. 트릭이 발생하는 장소는 흐느적거리며 주문을 넣는 오른손이 아니라 조용한 왼손이다. 관객이 모두 오른손에 주목하는 사이에 왼손이 동전을 감추는 것. 뛰어난 마술사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은 모르게 한다.
마술사는 오른손으로 관객의 주의력을 집중시키지만, 진짜 목적은 주의력 집중이 아니라 주의력 분산이다. 좋은 예가 < 보이지 않는 고릴라 > 실험이다. 1999년에 차브리스(Christopher Chabris)와 사이먼스(Daniel Simons) 는 검은 셔츠를 입은 사람과 흰 셔츠를 입은 사람이 섞여서 농구공을 주고받는 동영상을 학생에게 보여준다. 차브리스와 사이먼스는 진짜 의도는 숨긴 채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흰 셔츠를 입은 팀이 주고받은 패스 횟수를 세도록 했다. 동영상이 끝난 후, 두 사람은 학생들에게 묻는다. " 혹시...... 고릴라를 못 보았나요 ? " 고릴라 ?!
동영상을 리플레이해서 확인하면 검은 고릴라 한 마리가 무대 중앙에 등장하여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이 보인다. 화면에 집중했다면 고릴라의 출현을 모를 리 없지만 실험 참가자의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 농구공 패스 횟수에 집중하느라 고릴라를 보지 못한 것이다. 즉, 주의력 집중은 역설적으로 주의력 착각'을 낳는다. 마술사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 상황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 용의자 x의 헌신 >> 도 " 후까시와 트릭 " 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모녀가 중년의 남자를 교살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우발적으로 벌어진 살인이다. 평소 옆집 여자를 흠모하던 이웃집 남자는 그녀를 돕기로 한다.
이웃집 남자의 도움으로 시신을 유기하지만 곧 발견된다. 모녀는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로 알리바이를 조작해야 한다. 과연, 모녀는 형사의 집요한 수사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놀랍게도 모녀는 집요한 조사는 물론이고 거짓말 탐지기 검사도 통과한다. 감쪽같이 속일만큼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 셈이다. 모녀가 구사한 트릭은 무엇일까 ? 세월호 7시간 미스테리 서사는 어쩌면 용의자 x의 헌신과 유사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 차마 말 못할 사정 " 이 있을 것이라는 기본 전제 아래 온갖 일탈 행위에 대한 가설을 세웠지만,
어쩌면 청와대가 침묵하는 데에는 세월호 7시간 동안의 일탈 행위 때문이 아니라 평상시와 다름없는 일상 행위 때문인지도 모른다. << 용의자 x의 헌신 >> 에서 용의자는 형사에게 진실을 말했기에 완벽한 알리바이를 조작할 수 있었다면, 박근혜는 비상시에서 평상시와 다름없이 행동했기에 천인공로할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일상을 소화했는데 일탈이 되었다 ??! 지금까지 알려진 박근혜 씨의 동선은 다음과 같다.

박근혜 씨의 세월호 당일 행적을 살펴보면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일탈은 없다. 오전 10시 30분에 재난 보고를 받지만 동요는 없다. 긴급 재난 보고에 잠을 깬 박근혜는 모닝 커피를 마시며 아침마당을 보고, 정오에는 관저에서 티븨를 보며 혼밥을 즐긴다. 나라 전체가 패닉에 빠져있는 상황인데도 평화로운 마음을 가진 이는 대한민국에서 박근혜가 유일했을 것이다. 이 일상적 행위는 계속 이어진다. 세월호에 갇힌 아이들이 벗어나려고 손톱이 빠질 정도로 철문을 긁고 있을 때에도 박근혜는 평상심을 유지한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미용사를 불러 일명 " 후까시 머리 " 라고 불리는 올림머리(15시 22분~16시37분)를 한다. 박근혜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각료들에게 묻는다. 우아한가요 ? 네, 각하 ! 졸라 우아하십니다.
미용실팀이 퇴근한 후에도 여유를 부렸던 그는 17시 15분이 되어서야 집(관사)를 떠나 일터(중대본)에 도착한다. 그 유명한 어록은 이곳에서 탄생한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든가요 ? 그 목소리에서 다급한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다급한 목소리보다는 권태롭다는 인상마저 드는 목소리였다. 300명이 넘는 아이들의 발이 물에 젖어 퉁퉁 부어오르는 그 시간에도 말이다. 중대본에서는 몇 마디 형식적인 지시가 오가고 18시가 되자 집으로 돌아와 티븨를 보며 저녁 식사를 한다. 그녀는 그날에 세월호 뉴스 특보 채널이 아니라 철지난 드라마를 재방송하는 채널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거대한 비극 앞에서 < 대통령이 이토록 평범한 하루를 소화한다는 게 가능할까 _ 라는 의문 > 에 대해 < 박근혜이니까 _ 라는 허탈한 대답 > 을 할 수밖에 없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 악의 평범성 " 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밝혀진 " 세월호 7시간 중 일부 " 만을 놓고 분석하자면 박근혜 씨의 평상심은 극기의 결과라기보다는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이는 사람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타인에 대한 이타심, 양심에 따른 가책, 공감 능력, 죄책감 따위가 결여된 결과처럼 보인다. 그녀에게 300명의 생명보다 중요한 것은 후까시'다. 우아한가요 ? 네, 각하 ! 졸라 우아하십니다. 시체를 훼손하고 치킨을 배달해서 먹었다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 후일담이나 그 긴박한 상황에 평상시와 다름없이 시간에 맞춰 점심과 저녁을 먹고 후까시 머리를 올렸다는 후일담이나 다를 것이 무엇인가 ? 그녀가 저지른 죄는 탈법 때문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평소와 다름없는,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일상 행위 때문에 용서할 수 없다.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내가 너에게 묻고 싶다. 그 상황에 밥이..... 넘어가니 ? << 박근혜뎐 >> 이라는 범죄 스릴러는 독자가 추론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뒤집은 서사'다. 소설 작법으로 따지자면 매우 뛰어난 플롯인 셈이다. 상상 그 이상이니깐 말이다. 추론을 하자면 청와대에서 구매했다는 남성 탈모 치료제는 박근혜가 복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는 대머리(대머리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탈모 증상을 보이는 수준)다. 후까시 헤어스타일이 탈모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더군다나 그 헤어스타일을 20년 넘게 고수했다고 하지 않나. 우리는 모두 박근혜의 후까시에 속았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고 대한민국도 속았다. 지금 대전은요 ?
풍성한 볼륨감은 빈약한 머리숱을 감추기 위한 후까시다. 왼손의 트릭을 숨기기 위해 현란하게 움직이는 마술사의 오른손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