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파워보다는 핑거 파워 :
좋까요
로고스(logos)란 언어(말), 진리, 이성, 논리, 법칙, 관계, 비례, 설명, 계산 등의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 그리스어로, 그 어원은 '말하다'(혹은 '말한 것')에서 나왔다. 로고스는 일상적 언어에서 차차 이성, 사유, 정신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정신적 기능과 관련된 개념으로 발전하게 되고, 나아가 종교적인 개념으로 변형된다. 이때의 로고스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내포하게 되는데, 우주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 이성의 능력 혹은 사유로서의 로고스와 우주적인 실재 혹은 사물의 합리적인 근거 내지 법칙으로서의 로고스이다. 로고스는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철학에서 중요한 사상적 기반을 이루고 있는데, 그 개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로고스 [Logos]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故 김대중 대통령은 억울하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해라 _ 라고 말했다. 그래야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무릎 탁, 치고 아, 하게 되는 대목이다. 얼핏 저잣거리에 떠도는 입말을 끌어다 쓴 표현처럼 보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정치는 말 겨루기의 장이라는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증거'다.
욕도....... 말이다. < 말하다 > 의 하드(hard)한 버전인 < 욕하다 > 는 교양 있는 샌님들에 의해 평가 절하된 언어로 평가받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공과 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욕이 약자를 향할 때는 폭력이 되지만 권력층을 향할 때는 폭로가 된다. 권력층이 검열과 막말 프레임으로 대중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하는 데에는 야생 말(語)의 거침없는 하이킥을 두려워한 까닭이다. 기득권은 항상 길들여진, 이리 오너라 하면 이리 오고 이따 오너라 하면 이따가 오는 순한 말을 우리에게 강요하지만, 우리는 히마리 없는 말은 말 그대로 힘이 없는 말에 지나지 않아서 울타리라는 굴레를 박차고 뛰쳐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 담벼락 " 은 21세기에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 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댓글창 등이 대표적인 온라인 담벼락이다. 특히, 억울한 이들이 모여서 < # 문단_내_성폭력 > 이라는 말꼬리표(해시태그)를 달고 폭로한 말은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 담벼락에 대고 욕 " 을 닮았다. 그들에게 트위터는 담벼락이었고, 폭로는 정당한 욕이었다. 문단이라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성폭력을 당했던 이들이 용기를 내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도 했더니 발기한 자지처럼 단단하고 딱딱했던 가해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나가는, 힘센 장어인 줄 알았는데 흐물흐물한 개불이었다는 사실이 폭로되었다. 장어인 척하는 개불 ?!
시인 김선태는 < 개불 > 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개불은 주로 연안의 모래흙탕 속에 u자형 구멍을 파고 사는데, 수축력이 워낙 뛰어나 몸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움직입니다. 큰 놈의 몸길이는 30쎈티미터, 항문 부근에 열 개 쯤 센털도 나 있지요. 이놈의 몸속은 바닷물로 가득 차 있어 평소엔 잔뜩 부풀어 있다가도, 물을 빼고 나면 형편없이 쫄아들어 쪼글쪼글해지고 마니, 그참 영락없이 사정 후 뭣 같지 않습니까(김선태, 시집 살구꽃이 돌아왔다) " 사정 후 뭣 같은 그들은 처음에는 골방에 숨어서 자판이나 두들겨대는 한심한 년이라고 대응했지만 자판이나 두들겨대는 손가락이 결국에는 문단 내 추문을 고발하고 문단 전체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오스틴 파워보다는 핑거 파워(finger power)다 !
이명박과 박근혜가 국정원을 동원하여 댓글 부대를 운영하는 것은 핑거 파워의 힘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곧 메시지이고, 메시지는 곧 댓글이다. 그리고 댓글은 여론을 형성한다. 국정원이 운영하는 댓글 부대는 정치 기사 댓글창을 초기에 독점해서 자신이 속한 조직에 유리한 댓글을 쏟아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침묵의 소용돌이가 형성된다. 알바에 의해 댓글이 한 진영의 주장으로 도배가 되면 대다수는 " 고립의 두려움 " 때문에 침묵하게 된다. " 고립의 두려움 때문에 침묵한다 " 라는 표현이 알쏭달쏭하다면 " 무서워서 피하냐 ? 더러워서 피하지 ! " 라는 문장으로 바꿔서 읽어도 좋다.
결국 몇몇 소수가 댓글창을 선점한 결과, 다수의 여론인 것처럼 호도되고 나중에는 대세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 침묵의 나선 이론 > 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당신이 생각 없이 단 " 1빠 " 가 여론을 선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악플로 도배가 된 댓글창에 같은 논조로 악플 하나 얹는 것은 다 된 밥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처럼 쉬운 동참이지만, 댓글 부대가 작성한 박근혜 좋아요 라고 도배된 댓글창에 박근혜 좋까요 라고 선플을 달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 좋아요의 바다에 풍덩, < 좋까요 > 라고 외치며
바다 속으로 빠지는 데에는 심청이의 결기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 -아 > 나 < -까 > 나 한 글자 차이지만 나중에는 거대한 나비 효과가 될 수도 있다. 조혜련도 < 아나까나 > 라는 노래에서 댓글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아나까나 까나리 까니 키퍼웨이. 바리쏘 ~ 올라잇. 유노유 걔한테 나있어 프란쌍 까르페이 바리쏘 올라잇 구쏘유 입싸 스피어스 허네 요 허니스 베너 샤론스톤 원루콤 포유 ~ " 번역하자면 아냐 까냐, 그것이 문제로다. 누군가는 < 좋까요 > 라는 댓글에 힘을 얻어 공감을 표현하고, 또 누군가는 그들의 용기에 힘을 얻어 함께 댓글을 달고, 결국에는 그것이 여론을 형성한다.
2002년 대선에서 14%의 지지율로 출발한 노무현이 60%의 지지율을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1빠의 힘과 좋아요의 바다에서 좋까요_ 라고 말한 용기가 한몫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노무현은 핑거 파워에 의해 탄생한 1호 대통령인 셈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운영하는 댓글 부대가 점령한 댓글창에 침묵하지 말고 좋까요를 날리자는 말이다. 더러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서 침묵하는 사람에게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며 침묵에 동참하는 것은 비겁한 변명이다(오히려 무서워서 침묵했던 사람이 나중에 양심 선언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겁쟁이는 후자 쪽이다).
억울해서 담벼락에 욕이라도 하다 보면 언젠가 세상은 바뀔 수 있다. 네모난 댓글창에 쓴 당신의 댓글은 벽돌 하나'다. 벽돌이 모여 담벼락을 이루고 집이 만들어진다. 펜이 칼보다 강한 시대는 끝났다. 차라리 손가락이 칼보다 강하다 ■
덧대기 ㅣ 朴대통령 지지율 '9.2%'...67.3% "하야해야"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달 31일 전국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박 대통령 지지율. 다른 여론 기관도 엇비슷하다. 리서뷰치 여론 조사 결과 박근혜 지지율은 10.4%. 지금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 대해 느끼는 분노가 IMF사태 당시 못지 않은 '절대 증오' 상태라 할 수 있다. 덧붙이자면, 당신의 불행이 나에겐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