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름 발 이 오 리 는 커 녕 오 리 무 중 :
순실, 왕이 된 여자

2012년, 그해 천만 관객 영화 두 편이 탄생한다. 한 편은 << 도둑들 >> 이고, 다른 한 편은 << 광해, 왕이 된 남자 >> 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지금 돌아켜보면 두 영화 모두 의미심장한 흥행 돌풍'이었다.
극장가 비수기인 9월에 개봉된 영화 << 광해, 왕이 된 남자 >> 는 잔잔한 반향 속에서 입소문을 타고 순항했고, 결국에는 관객을 1천만 명 이상 모았다. 9월에 첫 상영을 시작한 이 영화는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그 순간에도 몇몇 극장에서 " 절찬리 " 는 아니어도 " 솔찬히 " 상영중'이었다. 최근에 벌어진 최순실 게이트를 접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케이퍼 장르 영화인 << 도둑들 >> 이었다. 케이퍼 필름(caper film) 이란 범죄 영화의 서브 장르로써 주로 도둑'들'의 재기발랄한 활동을 다룬다. 여기서 핵심은 < 도둑 > 이라는 단수가 아니라 < 도둑들 > 이라는 복수'다.
이 장르가 주는 재미는 무엇보다도 다양한 인간 군상이 보여주는 케미'다. 이 분야 대표작으로는 < 리피피1) > , < 스내치 > , < 오션스 일레븐 > 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 속 인간 군상의 면면(面面)을 보면 규모 면에서 케이퍼 필름 속 케릭터를 압도한다. 신당에서 점괘를 보던 무당, 목마를 타고 독일로 떠난 숙녀(?), 호빠에서 여성을 상대로 몸이나 팔던 남자, 신파 날리는 뮤직 비디오 감독, 그리고 부동산업자가 의기투합하여 국가를 상대로 크게 한탕 해먹을 계획을 꾸민다. 그들의 목적은 은행 금고나 보석상이 아니라 청와대에 입성하여 세금을 강탈하는것이다.
여기에 에어로빅하던 여자와 유도하던 남자가 강남 의상실에서 회장님(최신실)을 위해 시다바리하는 에피소트는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이명박 정권이라고 해서 다를 것 하나 없다(이명박 정권의 케이퍼 필름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이명박 정권이 내세운 토템이 < 쥐 > 였다면, 박근혜 정권을 상징하는 토템은 닭이 아니라 < 말 > 이었다. 청와대의 주인이 닭이 아니라 말이라니 반전인 셈이다. 닭치고 내 말 들어 - 정권이라고 할까 ?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을 네 글자 사자성어로 요약하자면 " 쥐락말락 " 이다. 쥐락말락(쥐만 즐겁고 말만 즐겁다)이 대한민국 전체를 쥐락펴락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닭은 말에 비하면 존재감 없는 조연에 불과했으니 절뚝거리는 오리(레임덕)는커녕 오리무중인 셈이다. 닭의 카리스마는 말의 카리스마에 가렸으마. 오호통재'다. 실종 신고 전단지라도 전봇대에 붙여야 할 판이다. 집 나간 오리야, 어딨어. 엄마가 모든 걸 용서하신단다. 영화 << 도둑들 >> 이 홍콩 두목 한 놈을 상대로 도둑질을 하는 서사라면, < 최순실 스캔들 > 은 5000만 한국인 전체를 상대로 사기를 치는 영화이니 현실은 허구적 상상보다 스펙타클하며 케이퍼스럽고, 판타스틱하며 아스트랄하다. 보다 보면 이런 지랄. 이제 << 광해, 왕이 된 남자 >>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 광해 >> 는 동화 < 왕자와 거지 > 의 변형으로 광대에게 왕이 입는 곤룡포를 입히고는, 광대가 궁궐 생활이라는 과시적인 소비 문화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 것인지2)를 관찰하는 영화다. 과연 광대는 왕의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을까 ? 광해의 아바타인 광대는 오리지날인 광해를 뛰어넘는다는 점에서 원본(元本)보다 뛰어난 사본(寫本)이다. 보르헤스의 단편 << 삐에르 메나르, 『 돈키호테 』의 저자 >> 와 겹치는 대목이다3). 최순실 게이트 ㅡ 서사'가 뛰어난 점은 반전의 기술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다. 독자를 속이는 서사 구조의 쫀쫀한 맛이 일품이다.
그 누가 알았으랴. 눈에서 레이저를 쏜다는 박근혜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다는 것을, 왕녀가 아니라 시녀였다는 것을, 정권의 주인은 닭이 아니라 말이라는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인은 모두 속았다. << 광해, 왕이 된 남자 >> 와 << 순실, 왕이 된 여자 >> 가 다른 점이 있다면 광해는 미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왕의 역할을 무사히 수행했다면, 근혜는 실패했다는 점이다. 둘 다 원본(광해,순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야 하는 사본(광대,근혜)이지만 광대는 성공했고 근혜는 실패했다. 가짜 왕을 연기해야 하는 광대는 비록 광해를 흉내 내는 처지이지만 자기 주체성을 잃지는 않는다.
영화 << 광해, 왕이 된 남자 >> 가 주는 재미와 감동은 광대가 어느 순간 광해의 로고스(말씀)를 흉내 내는 것을 거부하며 자신의 로고스(logos)로 말을 하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광대의 자기 목소리는 광해 입장에서 보면 역린에 해당되지만, 바로 그 점이 광대의 목숨을 살렸다. 라캉의 고급 교양어를 빌리자면 그는 상상계에서 벗어나 상징계로 진입한다. 반면, << 순실, 왕이 된 여자 >> 에서 근혜는 " 순실-되기 " 에 실패한다. 그녀에게 " 최순실-되기 " 는 엄마 놀이'이다. 하지만 엄마를 연기하기에는, 전여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어린아이에게는 어려운 숙제다. 그녀는 언어를 매체로 하여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로고스를 가지지 못한 존재다.
김태형 < 심리연구소 함께 > 소장이 프레시안과 인터뷰한 내용(클릭)은 날카롭다. 그는 박근혜를 심리 분석하면서 심리 키워드로 " 두려움 " 과 " 의존성 " 을 내놓는다. 이를 뒷받침하는 대목이 전여옥의 진술이다.
박 대표 바로 뒷줄에 앉아 있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의원들이 말했다. " 대표님 머리에 우비 모자 씌워드려야지 " 나는 당황했다. 자기 우비 모자는 자기가 쓰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씌워드렸지만 박 대표는 한마디도 없었다 ....... 하루는 어머니들과의 대화를 위해서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는데 박근혜 위원장이 햄버거를 먹지 않고 있기에 ‘왜 먹지 않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더라. 보좌관이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오니 그제야 먹었다.
김태형 소장과 전여옥의 지적을 종합하면 박근혜는 엄마 없이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아이에 불과하다. 최순실이 모든 옷과 악세사리를 일일이 다 챙겼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박근혜에게 최순실은 보모이자 대모이며 성모 그 자체이다. 그렇기에 아이에 불과한 그녀는 어른 흉내에 실패하게 된다. 최순실은 박근혜에게 우비 모자를 씌워 주고 포크와 나이프를 손에 쥐어 주는 대가로 권력을 얻는다. 최순실에게 농락당했다는 점에서 박근혜에게 연민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공과 사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속담에 " 도둑의 두목도 도둑이요, 그 졸개도 또한 도둑이라 " 라는 말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두고 박근혜에게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같은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송파 세 모녀 방지법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고 한다. 삭감된 예산은 고스란히 최순실 게이트를 주도한 도둑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예산으로 책정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박근혜를 향한 연민은 거두자. 도둑의 두목도 도둑이요, 그 졸개도 또한 도둑이다. " 물에 빠진 개는 죽도록 패야 한다4) " ■
■ 본문과는 상관없는 덧대기 ㅣ 최순실에게 고마워하는 부류가 있다고 한다. 문단 내 성폭력으로 걸려든 남성 시인들이다. 최순실이 아니었다면 여론은 문단 내 성폭력 사건에 들끓었을 것이 분명하다. 박진성으로 시작된 폭로가 이제는 굴비 엮듯 엮인다. 박진성으로 시작해서 이이체까지 엮였고(이이체의 성폭행 시도는 악랄하기까지 하다), 이제는 다시 시작이다. 이런 속도로 나가다 보면 100명 정도 묶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 한 두름(열 개)이 아니라 한 접(백 개)으로 묶어야 할 판. 솔직히 고백하자면 최근 10년 간 나온 시집 가운데 제대로 된 시집은 주로 여성 시인이 주도했다. 여성 시인들이 치열하게 사물과 현상을 관찰할 때 남성 시인은...... 혹여, 이 글을 읽는 남성 시인이 있다면 빈정 상하겠지만 빈정 상하라고 일부러 한마디 하련다. 한국의 남성 시인에 대한 정의를 내 나름대로 정의하자면 이렇다 : ① 여자와 섹스는 하고 싶은데, ② 여자에게 매력적인 얼굴은 아니어서 ③ 여자 없는 이 꼴림을 홀로 서기로 해결하려니 서럽고, ④ 설상가상 돈이 없는 가난뱅이가 선택하는 직업군. 기분 나쁠려나 ?
1) 줄스 다신의 << 리피피 >> 는 범죄 영화의 걸작으로 한탕 영화의 원조 격이다. 어마어마하게 재미있다.
2) 영화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은 << 귀여운 여인 >> 에 대하여 " 과시적인 소비와 마주쳤을 때 어떻게 '똑바로' 행동할 것인지에 대한 불안함을 보여 " 준다고 지적한다.
3) 필경사 삐에르 메나르는 돈키호테의 걸작 < 돈키호테 > 를 필사하는데 공교롭게도 삐에르 메나르의 < 돈키호테 > 는 세르반테스의 < 돈키호테 > 보다 뛰어나다.
4) 루신, 산문 <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