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와 선한 어르신 :
응답하라, 쌍문동 !
만국 공용어’라는 영어가 가진 힘은 막강하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이미 태생부터 커다란 기회의 불평등이 있다. 지식은 주류 언어를 중심으로 수집·배치되고 있으며, 비주류에 가까울수록 주류의 언어를 익히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영어 사용자 중에서도 억양에 따라 그의 정체성을 세부적으로 나눌 수 있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식별 수단이며 권력이다.
- <<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 >> 머리말 중에서
유교는 유학이라는 학문을 종교적 지위로 격상시켰다. 달리 말하면 유교는 忠(충)과 禮(예)를 중시하는 종교로 명절이나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풍습도 유교라는 일종의 종교적 제의인 셈이다. 골 때리는 점은 꼬박꼬박 제사는 챙겨도 유교 경전이라 할 수 있는 << 삼강오륜 >> 이나 << 사서삼경 >> 을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볼을 때려야 골이 될 수 있는데 골을 때리니, " 아 ~ 골이에요, 골 !!! "
그것은 마치 성경을 한번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자신을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유교는 원래 신분 사회에서 지배층에 해당되는 양반의 종교'다. 유교(儒敎)에서 한자 儒가 선비 유'인 까닭이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다. 지금 제사를 지내는 당신은 양반 가문이었나 ? 거개가 양민이요, 쌍놈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양반이라 우기니 이상한 사회다. 이제 유교의 흔적은 밥상머리 예절로만 존재한다. 나 또한 양반 가문의 18대손으로 밥상머리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한번은 밥상머리 앞에서 " 이빨 " 어쩌구저쩌구했다가 아버지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다.
이빨은 쌍놈들이나 쓰는 표현이니 치아가 흔들린다고 말하거라. 그 이후부터 내 기준에 교양인과 쌍놈은 치아를 이빨이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이빨을 치아라고 말하는가에 따라 구별했다. 이빨과 치아의 계급 차이를 인식하게 된 계기는 놀랍게도 물고기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잘생긴 물고기(붕어처럼 적당한 길이에 날렵한 유선형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비늘과 지느러미를 갖춘)는 대부분 " ㅡ 魚 " 로 끝나는 한자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청어(靑魚), 숭어(秀魚), 농어(鱸魚), 방어(魴魚), 민어(民魚), 잉어(鯉魚)라는 물고기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 물고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물고기의 표준 몸매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는 한자어 조합이 아닌 순우리말로 지어진 이름이 많다. 표준 몸매와 색깔에서 벗어난 것들은, 그러니까 " 몸꽝 물고기 " 는 한자 작명을 사사받는 과정에서 탈락된 것이다. 갈치는 몸이 길어서 탈락, 쏘가리는 비늘이 없어서 탈락, 망둥이는 생긴 게 이상해서 탈락, 멸치는 너무 작아서 탈락, 아귀(물텀벙이)나 가오리는 아이귀야, 가오리와 함께 너희 둘은 나가리 _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괴상하게 생겨서 탈락한 놈들이다. 유교가 한자를 중심으로 한 종교 세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양반이라는 어르신은 좋은 이미지'에는 한자 이름을 붙이고 나쁜 이미지'에는 한글 이름을 붙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생긴 것으로 치자면 문어나 오징어는 꼴뚜기와 다를 것이 없는데 왜 " - 魚 " 라는 한자 이름을 간택받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문어와 오징어가 먹물을 쏟아낸다는 점에서 선비들에게는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文魚라는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니까 양반 사회에서 한자는 교양어 대우를 하면서 한글은 저잣거리 입말로 대접한 것이다. 이빨과 치아의 차이도 같은 이유이다. 이러한 흔적은 워낙 광범위해서 사례를 뽑는 것은 어렵지 않다. < 착하다 > 와 < 선하다 > 는 말도 마찬가지다. 선하다에서 한자 善이 착할 선'이란 뜻이니 두 형용사는 같은 말이다.
아니다, 같은 말이 아니라 거울 이미지처럼 서로의 거울상'이다. 하지만 두 단어의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유교 예법으로 보자면 아랫사람이 어르신에게 " 착한 어르신 " 이라고 말했다가는 따귀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 착하다 > 는 단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쓰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깐 착한 어린이는 맞는 예법이지만 착한 어르신은 틀린 예법이요, 틀린 어법'인 것이다. 반면에 < 선하다 > 는 단어는 위아래 두루 쓸 수 있기 때문에 선하신 어르신이라는 말은 어법과 예법에 맞다. 이것 또한 한자는 숭배하고 한글은 폄하했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지배층의 시발스러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언어란 이처럼 교묘하게 계급과 계층을 선별하는 역할을 한다.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를 소비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경상도 사투리는 표준어에 밀려 차별을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성공한 계급어, 남성다운 계급어의 지위를 획득했다. 그래서 그들은 굳이 서울 표준어와 경상도 사투리의 대결에서 차별을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애써 사투리를 고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라도 사투리는 ? 이제 전라도 사투리는 양아치나 쌍놈이 사용하는 언어처럼 유통된다. 영화나 드라마 속 뒷골목 쌈마이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지만 검사가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전라도 출신에게 언어 세탁은 필수인 것이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좋은 시절을 다룬 티븨엔 드라마 << 응답하라 1988 >> 를 보다가 이제는 경상도 사투리가 대세가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쌍문동이라는 서울 변방의 꾀죄죄한 마을에서 동네 사람들은 대부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한다(예외가 있다면 성동일이 연기하는 덕선이 아버지인데 그는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한다). 배경만 서울의 쌍문동이지 사실은 경상도 어느 마을 풍경 같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이제 경상도 사투리는 서울이라는 중심부에서 소외된 변두리 지방 언어가 아니라 당당하게 서울 표준어와 겨뤄도 이제는 촌스럽지 않은 중심어가 된 것이다.
이 중심으로의 입주를 마냥 축하해야 하는 것일까 ?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소리이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경상도 사투리는 억압의 기표가 되었다. 언어는 문자 기호에 앞서 " 로컬리티 " 의 영역이기도 하다. 로컬리티는 필연적으로 정치적 색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언어는 정치적이다.
덧대기
국어사전을 볼 때마다 의아할 때가 많다. 국어 사전은 겨레말을 사랑한다기보다는 한자의 품격을 더 사랑한다는 생각이 든다. 국어사전은 지배계급의 욕망에 충실한 텍스트다. 고리타분한 정치적 수사와 욕망이 똥물처럼 넘쳐난다고나 할까. 친일 청산의 실패는 정치 영역에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한 어르신이라는 표현이 어법과 예법 모두 맞다면 착한 어르신이라는 표현도 어법과 예법 모두 맞다고 해야 정답이 아닐까 싶다. 아님 말고, 시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