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을 만들라고 했더니 수류탄을 만들었어요
대한민국 주류 언론이 이판사판 아사리판을 넘어 개판'이라는 사실은 << 갤럭시 7 폭발 사고 >> 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핸드폰을 만든다고 하더니 수류탄'을 만들었으니 토끼가 늑대 새끼를 낳은 것이요, 가전업체가 알고 보니 군산업체'라는 사실을 폭로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 전량 리콜 결정, 그전과는 다른 삼성 경영진의 발빠른 행보 " 라거나 " 경제적 손실을 떠나 신뢰 회복에 역점을 둔 삼성 경영진 " 이라는 프레임으로 논점을 흐렸다.
전량 리콜을 손실을 무릅쓴 정직한 행동 따위로 묘사한 것이다. 잘못했으면 매를 들어야 하는데 사탕을 준 꼴이다. 이게 과연 공정 보도일까 ? 핸드폰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류탄이었다면, 그것을 전량 리콜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언론은 바람직한 경영 윤리라고 떠벌렸다. 이런 보도를 추파춥스 보도'라고 한다. 특정 기업이나 집단을 " 빨아주는 " 행위이니 말이다. 아, 당연히 < 추파춥스 보도 > 라는 말은 처음 듣는 표현일 것이다. 내가 지어낸 말이니 말이다. 이런 보도는 전파가 아니라 특정 대상에게 충성을 맹세하고자 하는 추파'에 지나지 않는다. 언론이 갈 데까지 간 것이다. 니미, 이러다간 새되겠어 !
문제는 언론이나 검경만이 개판은 아니라는 점이다. 문학판도 못지 않은 개판'이다. 추파춥스 문학'은 선생님과 어르신이 주도한다. 사실, 박하사탕도 아니면서 박하게 말하자면 평론가와 작가는 앙숙 사이인데 대한민국 문학판은 유독 평론가와 작가의 관계는 " 우리가 남이가...... " 에 가깝다. 그들은 서로 만나 친분을 과시한다. 가난한 문학(가)을 두고 차마 싫은 말은 못하겠어요 _ 라는 모 평론가의 말'은 착한 심성으로 포장된다. 신인 작가들은 자신이 살 길을 쥐새끼처럼 깨닫는다.작가 동인 모임보다는 선생님과 어르신의 술자리에 나가 음주가문'을 하는 게 출세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덕담과 정실과 주례'가 남발되는 이유이다. 한국일보 황수현 기자는 << 왜 내 시집 기사 안 써줘요 >> 라는 칼럼에서 한국 문단이 지속적으로 여혐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는 언뜻 세계와 불화하는 듯도 하다. 가진 자와 성공한 자들에 비해 처량하고 궁상맞은 자신의 신세를 노래한다. 그러나 ‘죄라고는 사랑한 죄 밖에 없는, 가난하고 불쌍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낭만적인 나’의 서사 밑엔 늘 여자가 방석처럼 깔려 있다. 그는 세계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한탄하지만, 여성을 착취하는 세계의 메커니즘에서 내려올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 시절에 여자가 ‘밥 혹은 몸’이었듯, 그의 시에서도 여자는 ‘밥 혹은 몸’이다. 야만의 세계를 꼭 빼 닮은 야만의 시에 여자의 자리는 없다.
그 옛날, 김정란 시인의 조선일보 비판에 대한 조선일보 홍위병을 자처한 남성 어르신들의 처절하고 너절한 응징'은 뒷골목 쌈마이의 그것보다 노는 꼴이 더 험악했다. 문학을 이야기할 때는 그토록 정확한 수사와 미문을 사용하더니 정작 정치적 영역으로 옮기자 혐오와 조롱 그리고 막말이 쏟아졌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문학판이나 정치판이나 결론은 문장력이 아니라 정치력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문단에서의 으스대는 남성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집필실이 아닌 술집으로 옮기면 선생님은 어느새 한량이 되어 갓 등단했거나 작가를 꿈꾸는 예비 여성 작가를 술이나 따르는 작부 취급하곤 한다. ( 출판사가 어느 정도 명성이 있는 남성 선생님을 모실 경우 술자리에 젊은 출판사 여직원을 동석시키는 경우는 흔한 풍경이다. 입만 열면 사람은 염치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던, 이름 석자 대면 모두 아는 모 소설가는 며칠 놀다 오라고 건낸 출판사 법인 카드로 딸래미 결혼 혼수를 장만했다고 한다. 사용한 액수가 1억이 넘는다고. 이름 밝히면 누구나 아, 하는 모 시인은 젊은 여성 편집자에게 나의 섹스파트너가 되지 않겠느냐고 추파를 던졌다. 출판계에서는 이미 유명하신 분이라고 ! )
물론, 일부분이지만....... 또 그것을 일부분이라고 말하기에는 꽤 흔한 풍경이어서 망설이게 된다. 내가 백 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랴. 다음은 시인 김현의 말이다.
어디서 뭘 배웠기에 문단에도 이렇게 씨발 새끼들이 많을까요? 차례대로 적어보겠습니다. 한 출간기념회에서 저는 우연히 남자 1이 혼자 있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1이 말했습니다. 너의 오늘 목표는 저 누나들을 이 자리로 끌고 오는 거야. 그의 손가락은 술자리 한쪽에 (아마도 그를 피해) 앉은 여자 시인들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욕으로만” 듣던 모 시인이었습니다. 남자 2는 송년회에서 만났습니다. 술에 취한 2가 자신보다 후배인 한 여자 시인에게 맥주를 따라보라고 명령했습니다. 맥주가 컵에 꽉 차지 않으니 그는 태연하게 자신의 바지 앞섶에 컵을 가져가서는 성기를 잡고 오줌 싸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자기 혼자 막 웃었습니다. 저 개새끼는 누구니, 아 저 개새끼가 말로만 듣던 그 개새끼구나. 술에 취하면 여자 시인들 아무한테나 걸레 같은 년이니, 남자들한테 몸 팔아서 시 쓰는 년이니 하는 바로 그 개새끼로구나. ‘술이 죄지, 술에서 깨면 사람은 착해’라는 말을 들으며 점점 개새끼가 된 그 개새끼구나, 그를 욕하곤 하였습니다. 3,4,5는 또 그러더랍니다. 젊은 여자 후배 시인들 이름을 열거하며 꼴리는 순으로, 따먹고 싶은 순으로 점수를 매겨보자. 술만 취하면 여자가 무슨 시를 쓰느냐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는 9도 있고, 걸레 같은 년, 남자들에게 몸 팔아 시 쓰는 년 - 이런 말은 어쩌다 이런 사람들의 단골 멘트가 되었을까요 - 이라는 말을 동료 여자 시인에게 내뱉으며 스스로 “명예남성”임을 자칭하는 여자 시인 0도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11도 있고 12도 있고 13도 있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1-1, 2-3, 3-5, 4-7, 5-9의 반복적인 사례도 많습니다. 문단 사람이라면 대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여전히 ‘잠재적 방관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문단의 이런 사람들은 왜 아직도 처벌받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여전히, 그곳에, 버젓이 살아남아 가해자로 사는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요?
- 김현, 「질문 있습니다」중. (『21세기문학』2016년 가을호)
만약에 이 기사를 읽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면 당신은 문학판 돌아가는 꼴에 대해 까막눈일 가능성이 높다. 김현의 폭로가 아니더라도 이미 잘 알려진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와 소송으로 얽힌 악연을 가진 모 시인'은 이 분야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그 시인과는 육두문자를 남발하지는 않았지만 오두문자 수준까지는 갔다. 재판에 사용될 증명 서류들이 오가다가 극적으로 합의를 본 경우였다 ).
문제는 위험한 폭력성과 성범죄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그 시인의 기행 정도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범죄이지 기행이 아닌 데도 말이다. 범죄를 기행으로 미화하는 방식은 마치 수류탄을 만든 삼성을 두고 잘하는 짓이라고 치켜세우는 꼴을 닮았다. 여성혐오'로 번역되는 misoginy는 여성혐오보다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다. " 문자 그대로의 '여성혐오'만이 아니라, 여성 보호, 여성 존중, 여성 애착 등 겉보기에는 매우 여성친화적으로 보이는 태도들 역시 차별적인 젠더역할을 고정화시켜 남성지배의 구조를 영속화시키는(김명인) " 전략도 misoginy 라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문학판은 미소지니를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독자와 평단으로부터 출중한 중견 작가라는 평을 받는 모 작가의 패턴은 전형적인 미소지니이다. 그의 소설은 항상 일상에서 권태에 빠진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이 권태를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묘령의 여인을 만나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고 활기를 얻은 남성은 다시 도시로 복귀한다는 내용. 이상하게도 그 작가의 소설 속 남자는 낯선 여인과 섹스를 하면 활기를 얻는다. 여성과의 섹스가 모든 근심을 해결하는 박카스이자 날이면 날마다 오면서도 날이면 날마다 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약장수가 파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작가의 순진함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여성을 단순히 여성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자신의 병을 치유하기 위한, 황수현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본적으로 바닥에 깔리는 방석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문학을 두고 여성의 근원을 탐구하는 오디세이아 따위로 포장하면 답은 없다. 핸드폰을 만들라고 했더니 수류탄을 만들면 야단을 쳐야 하듯이, 여성 찬양이라는 근사한 껍데기를 벗기면 그 속에 여성 착취가 내재되어 있다면 그 또한 매서운 채찍을 휘둘러야 하는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