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싸우듯이
정지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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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서   고 생 하 는   느낌  :

 

 

 

 

찰떡과 개떡

 

 


 


                                                                                        문학은 항상 새로운 형식에 대해 응답했다. 지금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신경숙도 옛날에는 기성'에서는 볼 수 없는 개성이 돋보였던, 혜성처럼 등장한 기라성 아니었던가.

 

주먹 불끈 쥐고 핏대 세우며 대의를 향해 소리쳤던 당대 문학과는 달리 신경숙이 독자에게 조곤조곤 귀엣말로 속삭였을 때 우리는 새로운 작가의 출현에 열광했었다. 그는 목에 핏대 세우던 문학이 주류였던 시절에 " 히마리 없는 말 " 로 승부를 본 작가였다. 히마리 없는 말이 힘껏 내달리는 말을 이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신경숙은 증명했다(그랬던 그녀의 히마리 없는 말을 상징하는 쉼표와 말줄임표의 과도한 사용이 이제는 지적 사항으로 바뀌었다)장정일과 하일지도 마찬가지였다. 채찍과 경마장, 그들은 각자 좋아하는 성적 취향의 도구로 거들먹거리는 주류를 " 사정없이 " 후려쳤다. 

 

새로운 것을 갈망했던 젊은 평론가들은 사정 없이도 사정없이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그들의 소설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다.  최근 8월 땡볕의 쇠불알처럼 축 늘어져 있던 문단이 정지돈의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에 환호를 보내는 데에는 정지돈 소설이 가지고 있는 실험성 때문이리라. 정지돈의 첫 번째 소설집 << 내가 싸우듯이 >> 에 대한 평단의 환대와는 달리 관객은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자서전도 아니고 명태전도 아닌 형식에 당혹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여기저기서 볼멘 목소리가 감지된다.  호들갑 떠는 평단의 지지에 주눅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이들이 판단을 유보한다는 의미로 ★★★ 를 주는 모양새'다.

 

그런데 나는 정지돈 소설이 과연 새롭고 실험적인 소설'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세계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의 인용으로 채워진 " 텍스트는 보르헤스가 이미 오래 전에 써먹은 수법이고, 기록물 - 들의 문서를 발췌, 인용, 배열, 주석을 다는 콜라보도 발터 벤야민이 << 아케이드 프로젝트 >> 에서 선보인 편집 방식이 아니었던가 ?  정지돈이 보르헤스와 벤야민을 끌어와 고다르-풍(여기서 풍은 약간의 경멸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고다르를 호명하는데 나는 왜 그가 강박적으로 고다르를 호명하는 이유를 모르겠다)으로 직조하는 방식은 전혀 새롭지 않다.

 

이미 작품 속에 작가의 실명을 기입하며 픽션과 논픽션을 자유자재로 엮는 방식은 소설가 손창섭이 50년대에 자주 써먹던 수법이었다. 정지돈 소설집 << 내가 싸우듯이 >> 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 내러티브는 실종되고 텍스트(혹은 특정한 판본)만 호출되는 " 소설이다.  그는 서사'를 뒤집어 사서(司書)의 영역으로 소설을 옮긴다. 그는 서사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실재하는 텍스트를 인용하거나 부재하는 텍스트를 만들어내거나 실재와 부재를 뒤섞은 텍스트를 만들어서 가본(假本)을 내놓는다. 그에게는 지식 저장소인 도서관이 소설가의 집필실인 셈이다.

 

그것은 벤야민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그 아래 짧은 코멘트를 붙였던 작업 방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작품론을 변명하기 위해 쓴 << 일기 / 기록 / 스크립트 >> 에서 벤야민에 대한 언급은 없고 엉뚱하게 고다르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은 의아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탄식을 내뱉었다. 의, 아, 예, 요 ! 당연히 내러티브 중심으로 소설을 읽는 독자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단편 << 눈먼 부엉이 >> 에서는 제목 그대로 " 눈먼 부엉이 " 라는 한국어판 판본을, << 창백한 말 >> 이라는 단편에서는 " 창백한 말 " 이라는 텍스트를, << 뉴욕에서 온 사나이 >> 에서는 장이 뉴욕에서 썼다는 << 말라 노체 >> 라는 단편에 대한 언급(호명)으로 채워진다. 

 

한번 호명된 텍스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텍스트를, 다른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를 호명하게 되는 순환 과정을 거친다. 쉽게 말해서 정지돈 소설집은 자신의 텍스트는 없고 타자의 텍스트(그 텍스트가 실재이든 허구이든)에 대한 끊임없는 오마주로만 채워진 영화 같다. 타자의 텍스트로 자신의 텍스트를 채우는 방식이 작품 의도였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개떡 같이 말하면 찰떡 같이 알아듣는 평론가를 위해 쓴 글이라면 유감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읽은 << 눈먼 부엉이 >> 는 좋게 읽었다. 하지만 동일한 형식이 변화 없이 반복되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술에 취하면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는 술주정뱅이의 주사를 보는 것 같다. 그의 단편 하나를 읽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지만 단편들로 묶인 소설집을 읽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작가의 시그니처이거등여 _ 라고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되받아치고 싶다. 아니거등여!  제사 음식이 맛있을 때는 제삿날이 전부이다. 이 소설집은 마치 제사 음식을 열흘 연속으로 먹은 느낌이다.  그는 한국 문학의 문제점이 서사의 과잉에 있다고 보는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한국 문학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는 서사의 과잉이 아니라 서사의 빈곤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집을 읽고 난 생각은 사서 고생하는 느낌 ?! 이 표현은 중의적이다.

 

사서(의 고행)를 자처하는 작가의 고생이 훤히 보이고, 또한 이 책을 사서 읽고 내용을 파악하느라 고생하는 독자의 고생도 훤히 보인다.  찰떡 같이 말했는데 개떡 같이 알아듣는 독자는 있어도 개떡 같이 말했는데 찰떡 같이 알아듣는 독자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독자의 잘못은 아니다. 내가 보기에는 개떡 같이 말해서 개떡 같이 알아들었던 것일 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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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as 2016-09-18 0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속시원한 리뷰네요 ;ㅂ;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17   좋아요 0 | URL
아. 저는 한국 소설이 제 체질에는 안 맞습니다..

hellas 2016-09-18 06:20   좋아요 0 | URL
그래도 전 다음작품도 읽고있을거예요. 한국문학 좋아하니까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26   좋아요 0 | URL
저도 말은 그렇게 하는데 여전히 읽고 있을 겁니다..

clavis 2016-09-18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정말 속시원해요 그 동안 문학에 대해 뭔가 짓눌리고 무식한 탓에 내가 오직 모를 뿐. . 했는데

그게 개떡같이 말했기에 개떡같이 알아들었던 것~😍다시한번 곰발님을 국회, 아니 유엔으로!!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18   좋아요 1 | URL
하도 정지돈 정지돈 하길래.. 기대 작뜩 하고 봐서 그런가..
짜증만 엄청 나고.. 실재가 가상을 섞는 것은 이미 30년부터 유행하던 건데 뭔놈의 새로운 미학이라는 것인지도 모르겠고..소설 읽으면서 이거 다 이미 50년 전에 손창섭 할베가 실험적으로 쓴 수법이거등.. 이러면서 읽었습니다..

clavis 2016-09-18 0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곰발님 페이퍼를 읽으면서 ˝남을 울게 하는 것이 시인이지 본인이 울면 안된다/망한다˝고 박남준 시를 평하는 최영미씨 글이 생각났어요 나날이 🙌만세셔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34   좋아요 0 | URL
오, 그렇습니까 ? 본인이 울면 신파이고, 독자가 울면 감동입니다. 마찬가지로 극중 배우가 울면 신파이고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배우를 보고 독자가 울면 감동입니다..

clavis 2016-09-18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사유. . 너는 콩나물을 많이 먹어서 그렇게 키가 크냐던 질문을 하고 싶어집니다 흙흙. . 지난 추석에 당췌 뭘 드셨기에 크헐👍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44   좋아요 0 | URL
짜장 대신 울면 먹었지요.. ( 솔직히 어제는 광어회 먹었습니다. 명절에는 회 종류로 느끼함을 지워야 함 )

clavis 2016-09-18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리스마스엔 울면 안된다던 그 울면을 드셨군요~콜레라 조심하십쇼!-! 여긴 명절 즈음의 지진이 핫 이슈였지요..언제나 멋쥔 통찰력과 생명력있는 사유가 넘실대는 광어같은 글 잘 읽고있습니다.감사드려유^^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06:57   좋아요 0 | URL
계속 술 마시느라 어제서야 달이 대따 똥그랗게 떠 있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한심해지더군요. 추석인데 그래도 달은 보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하는 마음..
어젠 달이 잘 보이더라고요..

clavis 2016-09-18 0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추석내내 달도 못보고 집에도 못갔는데 병원에 가서 아픈 사람 방문하고, 장례나서 다녀오고 했습니다. 브람스 간주곡 2번을 복용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꼭 한번 들어보세요^^제가 글렌 굴드 연주로 함 올려볼게용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2:43   좋아요 1 | URL
아이고 그러셨군요.. 힘내시기 바랍니다. 링크 건 곡 들었습니다. 다시 듣고 있습니다. 굴렌 굴드와 브람스가 만나니 정말 좋군요. 신기한데요. 음악을 들으니 마치 웬지 북유럽 이른 가을 야외 카페에 나와 있는 듯한 느낌이듭니다.

기억의집 2016-09-18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한국 문학 이야기가 없어서.. 실험은 그만두고 작가의 생각은 그만 담고 이야기나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지난 번에 무도 보다가 김영하의 검은꽃하고 군함도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2:45   좋아요 0 | URL
한국 문학의 고질병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인데 정지돈은 한국 문학의 서사의 과잉으로 간다고 느낀 모양이더군요. 맥을 잘못 잡은 듯. << 검은꽃 >> 은 그닥 좋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나쁘다고 할 만한 근거는 없슴..ㅎㅎ

yureka01 2016-09-18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어릴때는 소설을 읽었는데 최근에 다시 책을 잡고 부터는 소설은 전혀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이상하게 소설이 안땡겨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2:45   좋아요 0 | URL
저도 비소설만 읽어서 문학을 읽으려고 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사실 비문학이 문학보다 재미있잖습니까..

기억의집 2016-09-18 13:06   좋아요 0 | URL
저는 나이가 드니 비문학 위주로 책을 읽더라구요. 예전엔 일본소설도 많이 읽었는데... 점점 쟝르쪽만 선별해서 좋아하는 작가들 신간 위주로 읽고 비문학 특히 과학쪽으로 읽게 되는데....명절 보내면서 문학이든 비문학이든 읽는다는 건 끊임없이 프레임을 깨는 작업이고 내 안의 사고나 프레임이 살아 움직이도록 하는 게 중요하구나 싶었어요. 정말 사람들이 너무 책을 안 읽어서 평생 하나의 사고 프레임에 고정한 체 사는 거 보고 암담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3:15   좋아요 1 | URL
명절에 타이타닉 하길래 다시 봤습니다. 남들은 다 좋아하는데 왜 나는 싫어하게 되었나 ? 그걸 알기 위해서 말입니다. 드디어 발견했습니다. 윈슬렛이 디카프리오 스케치북을 들여다봅니다. 여자 나체를 그린 그림들. 윈슬렛은 질투가 나 묻죠. ˝ 사랑하는 사이였나 봐요 ˝ 쉽게 말해 침대에서 서로 뒹구는 사이`였냐고 묻는 거죠. 디카프리오가 말합니다. ˝ 아뇨.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장을 펼쳐보세요. 그녀는 다리 하나가 없슨니다. ˝ 둘 다 그 그림을 보고는 오해하서 미안하다는 듯 디카프리오를 보죠. 이게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거죠.

지금 서로가 비윤리적 태도로 일관하는 겁니다. 남자는 봐라, 다리 하나 없는 여자야. 이런 여자를 내가 사랑하겠어. 라고 변명하고 여자는 어머, 정말 다리가 없네.. 그때 비로소 방긋 웃죠. 얼마나 웃깁니까. 이 얼마나 폭력적인가요 ? 다리 하나 없는 장애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얼마나 아플까요. 감독은 굳이 그 장면을 넣었어야 했을까 ? 그림 속 모델을 다리 하나 없는 캐릭터로 설정한 후 히히덕거리게 만드는 데 대해 죄의식은 없었던 것일까.. 이런 생각들.. 그래서 이 영화가 싫었던 모양입니다..



기억의집 2016-09-18 13:15   좋아요 0 | URL
오홋 그런 장면이 있어요? 저는 아직도 타이타닉을 안 봤어요. ㅠㅠ 어제오늘 밀정볼까 하다가... 귀찮아서 연휴도 심심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3:16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전에는(극장에서 보긴 했씁니다만.. ) 생각없이 넘어간 부분인데 다시 보니 그게 진짜 걸리더라고요..

기억의집 2016-09-1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님 맞아요. 여러 사상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을 책으로 만나는 거 진짜 매력적이더라구요. 저는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변한 경우에요. 정치적으로도 그렇고 생활면에서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3:14   좋아요 0 | URL
저도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뀐 경우입니다. 저도 정치적 입장과 생활이 변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어쩌면 극우였을 것 같습니다. 끔찍한 경우...

stella.K 2016-09-18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돈이 정말 짜증나죠?
그런데 정지돈의 소설 저는 있을 수 있다고 봐요. 아주 후진 소설로.
화가 난 건 평론가들 때문이죠. 이 별로인 소설에 자기네들끼리 좋아서 난리 브루스를 쳤다는 게.
그리고 정지돈도 웃기지. 몇몇 평론가들이랑 후장사실주의 말장난이나 하고 앉잖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진짜 완전 또라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작가가 되가지고 평론가들이랑 놀기나 하고.

제가 글쓴이의 말을 그렇게 길게 쓴 것도 사실은 정지돈 때문이었어요.
글쓴이의 말을 어떻게 쓰나 고민 많이했는데 이 사람이 나를 건드린 거죠.
정지돈도 작가의 말 길게 쓰는데 나라고 못 쓰나 뚜껑 열린 거죠.ㅋㅋ
작가가 독자를 위하지 않는데 독자라고 작가를 위하겠냐고 깐 것도 정지돈을 비롯한
서사없는 작가들을 향한 독설이기도 하고.

그때야 비로소 독자가 할 일을 찾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평론가가 하지 않으니 독자가 하는 수 밖에요.
곰발님이 이렇게 훌륭하게 독자로서 그 일을 감당하고 계시잖아요.
이 책의 좋아요가 가장 많습니다 그려.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8 18:56   좋아요 0 | URL
저는 << 눈먼 부엉이 >> 는 좋았습니다.
왜냐. 처음 접한 정지돈 소설이니까.
그런데 똑같은 말을 8편 내내 하는 겁니다.
술주정으로 했던 말 반복하는 사람처럼..
그러니까 이 소설이 단편 1개로 이루어졌다면 좋지만 단편집으로 묶였다는 점에서
지루하고 지루하다는 말이죠..


stella.K 2016-09-18 18:58   좋아요 0 | URL
아, 저도 그래요. 그것 하나였으면 나름 괜찮게 봤을 거예요.

수다맨 2016-09-1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게 말하면 독자도 고도의 지적 배경을 쌓아야 읽을 만한 소설이고, 박하게 말하면 말씀하신 대로 `개떡같이 말하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자의 텍스트로 끊임없이 채워진 오마주`란 표현도 지극히 온당한 지적이란 생각이 들구요.
전에도 말했지만 저는 정지돈 같은 작가의 존재도 -그의 문학적 가치와 성취가 어떠하든 간에- 종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진정한 문제는 위에 스텔라님 말씀처럼, 정지돈을 최고의 젊은 작가로 일찌감치 비평적 규정을 하려는 몇몇 평자들의 섣부른 욕구라고 봅니다. 과연 정지돈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면, 독자와 작품이 밀도 깊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해야지요. 평론가가 먼저 `걸작이 나타났다`고 흥분하는 모습은 솔직히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례로 금정연(정지돈 작가와 같은 에콜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같은 평자들의 해설은 정말이지 읽기가 힘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9 19:18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저도 정지돈의 시도를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하지마 거의 아무런 변화없이 8편의 단편을 계속 쓴다는 것은 웃긴 거죠. 이게 무슨 얼어죽을 작가의 시그니처입니까. 니미, 피카소도 자기 색깔을 찾기 위해 수없이 다양한 시도 긑에 지금의 피카소 그림이완성되었고, 고흐도 마찬가지입니다.

기껏 신인 작가가 시작부터 자기 스타일에 자뻑이 든 경우죠. 위에서도 말했듯이 제사 음식은 제삿날에만 맛있죠. 이거 두 번 먹으면 느끼해서 못 먹습니다... 이 소설집은 마치 제사음식을 8일 동안 먹은 꼴..
 

 

 

 

 

 

 

 

 

 

 

 

 

 

 

 

                                       

 

내  가      싸  우  듯  이     :

 

 

정지돈과 나


 

 


                                                                                   " 쓰는 기계 " 스티븐 킹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소설가를 꿈꾸는 일반인이 습작 소설을 쓰다가 항상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데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우선 자신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대목이다.  얼마 전,  나는 소설 하나를 썼다. 말이 좋아 소설이지 사실은 소설을 빙자한 자서전이어서 내심 부끄러웠다.  스티븐 킹의 충고를 적극 반영한 것이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K에게 원고 심사를 부탁했다. 며칠 후 K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는 어이없다는 투로 내 습작 소설이 요즘 잘나간다는 정지돈의 소설 << 고개 숙인 남자 >> 를 노골적으로 표절했다고 지적했다. 감정이 섞인 말투였다. 뻔뻔하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깜짝 놀랐다. 내 인생을 가감없이 솔직하게 써내려갔을 뿐인데 표절이라니 ?!   그렇다면 내 인생이 허구적 삶이라는 말인가.

바로  정지돈의 << 고개 숙인 남자 >> 를 사서 읽어 보았다.  K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정지돈 소설과 내 습작은 싱크로율이 99%였다.   주인공 이니셜만 바뀌었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이야기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이 29살 때 찾아온 전립선 장애로 인한 발기부전으로 고개 숙인 남자가 되었다는 소설 속 설정도 현실 속 내 사정과 똑같았다. 이토록 은밀한 정보를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   그러니까, 정지돈 작가가 만들어낸 가장의 인물은 나였던 것이다. 그는 나를 모델로 소설을 쓴 것이다. 서로 모르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일까 ? 우여곡절 끝에 작가의 전화번호를 알게 된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 후에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 정지돈 작가이십니까 ? "  " 네에, 제가 정지돈입니다 ! " 나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당신이 소설 속에서 창조한 주인공이 바로 나'이다. 당신은 내 삶을 표절했다. 그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 혹시.......  치질로 고생하신 적 있으십니까 ? " 그는 매우 흥미롭다는 듯 추임새를 넣어가며 내 하소연을 경청했다.  그가 말했다. " 제가 지금 바쁜데 시간이 되시면 제 집으로 오시겠습니까 ?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 그는 약속 시간을 정한 후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가 알려준 주소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 1KM 남았다는 네비게이션의 기계음이 들렸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 동네는 내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였던 것이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이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자동차가 멈춘 곳은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남긴 주소는 내가 어렸을 때 살던 주소와 동일했던 것이다. 나는 부르스 윌리스도 아니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면서 정지돈이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제가 정지돈입니다 ! 그가 미소를 지었다. 섬찟한 미소였다. 




 

그는 내가 쓴 습작 소설을 꼼꼼하게 살펴본 후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 마음에 쏙 드는걸.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고 아비보다 근사한 소설을 완성했구나. "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그는 말을 이었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은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인물이 맞습니다. 제가 상상 속에서 키운 캐릭터죠.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처럼 말이죠. 그런데 그만......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겁니다. 킁킁. 그때부터 일이 묘하게 꼬이겐 된 거죠.  기억상실증에 걸린 피조물은 자신을 실존하는 인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당신을 만든 소설가이자 조물주입니다. " 나는 싸우듯이 정지돈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 조까, 오호츠크 시밤바 새끼야 !  그따위 새빨간 거짓말에 내가 속을 줄 아냐. " 

그는 차가운 시선을 내게 던지더니 웃음을 지었다.  " 그러는 거 아냐. 밥 주는 주인의 손을 물면 되나.  너에게 명령하노라. 빤스 벗고 엎드려뻗쳐 ! 어서 !!!! "  그때였다. 멱살을 잡은 내 손이 스르르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의 명령대로 빤스 내리고 엎드려뻗쳐를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 어어....  내가 왜 이러는 거지 ?  정지돈은 내 바지에서 허리띠를 잡아 뺀 후 한 손에 휘감았다. " 너 이놈,  정신 좀 차리자.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자. "  그가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 너의 후장은 내가 한 땀 한 땀 꿰맨 결과'다.  알았느냐 ! "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가상의 캐릭터란 사실을 말이다. 정신을 ! 차리자 ! 정신을 ! 차리자 ! 정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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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9-12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정지돈 책 읽어보고싶네요.
정신을 차리자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1:45   좋아요 0 | URL
재미 더럽게 없다고 악명 높은 책이니 사서 보지는 마십시오.. ㅎ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9-12 11:46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 가보면 항상 비치중이거든요. 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2:0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글쿤요... ㅋㅋ 새롭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소설집인 것 맞는 것 같습니다.
시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하거든요..

2016-09-12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키미 2016-09-12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돈의 책보다 곰곰생각하는발님의 글이 훨씬 재미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2:01   좋아요 0 | URL
이런 걸 두고 아비보다 자식이 낫다.. ㅎㅎ

수다맨 2016-09-1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지돈, 오늘날 한국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급진적인 실험성을 내장한 작가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의 글을 일독할 때마다 저는 약간은 갑갑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의 글은 굉장히 협소한 의미에서의 텍스트주의로 귀착될 여지가 강하다고 봅니다. 언젠가 제가 비유했듯이 외국에서 수십억원을 주고 들여왔다는 거대한 설치 미술을 보는 느낌입니다. 시에서는 예술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작품이라 상찬을 하지만 저로서는 정작 감정선을 자극할 만한 감응을 느끼지 못하는 거지요. 그냥 `저런 것도 있을 필요는 있겠지`라는 생각을 재확인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3:54   좋아요 0 | URL
문학이라는 게 늘 새로운 형식(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에 열광하다 보니 후장사실주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한때 하일지나 장정일도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난 포스트모더니즘 계열 소설로 관심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전 아직까지도 정지돈 소설을 읽지 못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정지돈 하니 이름 석 자만 알고 있는 형편..

yureka01 2016-09-12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놔......한참 웃었습니다..아 요즘 스트레스성 두통 생겼는데 한방에 날려주시네요...재미있게 읽었어요..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3 08:53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syo 2016-09-12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진짜 재미지다ㅠ

정지돈 이야기를 하셨지만 막상 글은 오한기 느낌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3 08:53   좋아요 0 | URL
굿모닝입니다. 지옥같은 명절 연휴이군요.. 그렇죠 ?

syo 2016-09-13 09:24   좋아요 1 | URL
곰발님도 굿모닝입니다.

저는 어른들과의 전투준비를 마쳤습니다. 잔혹한 말의 실탄을 잔뜩 구비해놓았지요.....

cyrus 2016-09-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옥같은 명절 멘탈 다치지 않게 무사히 보내세요. 살아서 다시 만나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4 05: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살아서 봅시다잉 ~
 

 

 

 


 





소설가와 편집자





                                                                                                 만약에 미키 루크가 내 글을 읽는다면 그는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겠지만 미키 루크는 잘생긴 얼굴보다는 망가진 얼굴이 더 잘 어울린다.  잘된 일이다. 몰락이 결국에는 영광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연기 인생에서 화룡점정을 찍은 << 더 레슬러 >> 는 망가진 얼굴이 만든 서정의 극점'이다.

얼굴은 위스키와 담배, 오욕과 모욕 그리고 주먹질이 만든 작품이었다. 이음매 없는 매끈한 얼굴이 아닌, 꿰맨 얼굴을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읽게 된다. 나는 꿰맨(이음매 있는) 얼굴이 좋다. < 흉터 > 는 세상과의 불화를 시각화한 서사'이다. 그것은 시작은 음각으로 새겨졌으나 끝은 양각으로 남게 되는 기록물이다. 그런 점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창조한 괴물은 숙명적으로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젊은 미키 루크(이음매 없는 얼굴)가 << 술고래 >> 라는 영화에서 곰보인 찰스 부코스키를 연기했다는 사실은 아니러니하지만 한편으로는 숙명이라는 생각도 든다.  조각 미남이었던 미키 루크는 세월이 흘러 추남인 찰스 부코스키를 닮아갔으니 말이다.  

아, 하게 되는 대목이다. 출판사 편집장이 찰스 부코스키에게 전업으로 글을 쓰면 평생 매달 100달러를 지급하겠다고 제안한 일화는 유명하다. 실제로 부코스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대물을 볼 줄 아는 편집장의 재능이 돋보인 경우'다. 그 편집자가 아니었다면 루저의 제왕이자 신화인 찰스 부코스키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  편집장(자)와 작가는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끝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그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담당 편집장(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신의 원고를 들여다보고 충고를 하거나 작가의 의도와는 달리 다시 쓰기를 권고할 때 분개해서 화를 내기도 하지만 일정 부분 동의하기도 한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친애하는 적'이다.

그런데 한국 문단을 보면 인기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여러 출판사로 분산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작가가 신경숙이다. 신경숙은 창비, 문지, 문학동네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절묘한 황금 분할로 내놓는다. 당연히 담당 편집자와의 끈끈한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3대 대형 출판사에서 애지중지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이다보니 출판사에 소속된 편집 위원들은 신랄하게 신경숙을 비판할 수 없다. 비록 이번 신간은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다음 차례는 자사 출판사에서 출간될 확률이 높기에,  출판사 입장에서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를 비판했다가는 나중에 작가와의 관계 단절이라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삼성이 광고로 신문사를 길들이는 방식과 유사하다(삼성은 자사에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한 신문사에 광고를 싣지 않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신경숙이 여러 출판사에 골고루 자기 작품을 배분하는 방식은 일종의 < 우리가 남이가 > 라는 이상한 이름의 뇌물인 셈이다. 비단 신경숙만의 수작은 아니다.  한국 문학의 질적 저하는 소설가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명관이 " 선생님 " 이라고 지적한 문단 마피아의 횡포에 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 문예지 편집 위원, 문창과 교수. 등단 제도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그들이 바로 천명관이 말하는 " 선생님 " 이다. 천명관이 지적했듯이 등단 제도는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제도이다. 문학 강국들은 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응원하는 역할을 문단 어르신들이 아니라 문학 에이젠트나 출판사 편집장이 한다.

미국이 한국의 등단 제도를 도입했다면 찰스 부코스키 같은 작가는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문학을 썪게 만드는 주범은 선생님들이다. 이음매 없는 매끈한 얼굴로 평론가 행세를 하며 지도편달이라는 고상한 이름으로 행하는 " 야로 " 를 놓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천명관의 말투를 흉내 내자면 이렇게 말하겠다. " 누군가 이 글을 읽고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가 바로 문단 마피아의 일원이거나 패밀리와 커넥션을 갖고 있는 작자일 것이다. 패거리를 짓고 조직을 만들어 권력자로 군림하려는 그런 새끼 말이다. " 문단 어르신 특유의 허옇고 매끈한 얼굴을 볼 때마다 흉터투성이 얼굴을 한 불굴의 얼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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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9-11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에 삽입된 책 표지 디자인이 압권이다. 술병 + 담배 + 남근(퍽유를 뜻하는 수화)의 디자인`이다.이보다 더 부코스키다운 디자인은 없을 듯.

2016-09-11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2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9-12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다~!

표지 디자인도 정말 좋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0:21   좋아요 0 | URL
야무 님이야말로 늘 사이다 같은 글이죠..

수다맨 2016-09-12 0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디자인이 정말로 끝내주네요. 한국에서 출간된 팩토텀(문학동네판)도 표지가 붉어서 자극적인 느낌이 없지는 않은데, 미국책 표지는 한국 표지보다 몇 배는 더한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2 10:22   좋아요 0 | URL
한국판 팩토덤에 대해서 누군가 연쇄살인마가 등장할 것 같은 표지라고 하던게 생각나네요..ㅎㅎ
 

 

 

 

 

                                                       

삼 시 한 끼 와  음 주 :


울지 않는 어깨

 

                                                                                                       1일1식을 실천한 지 어언 1년 6개월이 지났다. 처음 2달은 허기에 지쳐 숨을 내쉴 때마다 " 허기(헉) 허기(헉) " 소리가 났다.  점심을 굶은 아이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수도물로 배를 채우듯이 물배를 채우다 보니 어느 순간 허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신체가 상황에 맞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1식을 실천하자 여러 모로 얻은 게 많았다. 점심값을 아낄 수 있었고, 점심 시간 1시간을 활용할 수 있었고, 요요 현상 없이 몸무게를 10kg 정도 감량했으며, 혈압 약을 권고할 만큼 높았던 혈압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한 저녁은 1000칼로리의 황금 밥상을 선택하는 편이어서 포만감이 몰려오면 바로 잤다. 무엇보다도 9시가 되면 땡 하고 나타나는 박근혜 얼굴을 보지 않아서 좋았다.  이 정도면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다 동전 줍는 꼴이니 좋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음주'다. 주로 저녁에 술을 마시게 되는데 공복에 마시다 보니 남들보다 빨리 취하게 된다.

 

주량이 절반으로 줄어든 탓이다. 남들은 이제 시작이다, 라는 표정으로 불콰한 얼굴로 기분 좋은 얼굴이 될 때 나는 가수면 상태에 빠져들곤 한다. 평소 저녁 9시에 잠을 자는 생활 습관과 일찍 찾아오는 취기 탓에 눈은 떴으나 잠을 자고 있는 것이요,  귀는 열렸으나 듣지 않는 상태가 된다. 짖어라, 나는 잘 터이니. 이때부터는 기억이 없다.  눈 뜨고 잠을 자고 있으니 말이다. 아침에 나갈 때는 주꾸미처럼 짧고 단단한 다리로 야무지게 땅을 밟던 걸음걸이도 밤이 되어 집으로 돌아오게 되면 문어처럼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선명한 발소리 대신 흐느적거리게 된다.

 

어제는 s를 만났다. 소설가 김연수를 닮아서 만날 때마다 놀리는 데도 사람이 좋아서 그런가 히죽 웃을 뿐이다. 나는 그에게 읽던 책-들'을 주었다. 그중에는 한강의 << 내 여자의 열매 >> 도 있었다. "  읽다가 형편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책이요. 이 책에서 드러난 작가의 형편없는 역량이 별다른 성장 없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면, 한강의 작품은 읽지 않을 생각이요. 한강보다는 두만강에게 기대를 거는 수박에. 농담이요. 문학소녀의 들뜬 감수성이 작품을 망치는 케이스가 아닐까 싶읍니다. 좋은 가수는 아무리 슬픈 노래라 해도 울면서 노래를 부르지 않읍니다. 왜냐 ? 울면 호흡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음정과 박자를 놓치게 되기 때문이지오.

 

우느라고 공기를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게 되면 급하게 공기를 빨아들이게 됨니다. 고른 분배가 될 턱이 없조. 소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오. 작가에 감정에 빠져서 과소 호흡과 과다 호흡을 반복하게 되면 문장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한강의 소설이 대표적인 경우조. 한강은 울면서 노래를 부름니다. 적어도 이 소설집에서는 말이죠. 흠흠. " 나는 형편없는 발음으로 말을 이어갔다. " 영화 << 밀리언 달러 베이비 >> 보셨습니까 ?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 연출했읍니다. 내용은 아시죠 ? 사고로 인해 전신마비 상태인 제자를 위해 스승인 복싱 트레이너가 제자의 부탁으로 안락사를 시킨다는 내용.

 

병원 장면, 가장 슬픈 장면이기도 하조.  관객의 눈물샘을 1리터만 뽑아내면 흥행은 따 놓은 당상인 셈이죠.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감독은 두 배우의 슬픈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는 대신 카메라를 돌려 트레이너(이스트우드)의 뒷모습를 보여줍니다. 우는 얼굴 대신 울지 않는 어깨을 보여준 것이죠. 왜 그랬을까오 ? 그것은 무뚝뚝한 남자의 우는 방식이 아니까오. 카메라는 뒤로 물러났지만 관객은 누구나 그가 슬픔에 잠겨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읍니다. 가장 슬픈 통곡은 대성통곡이 아니라 울음을 참느라 흔들리는 어깨가 아닐까요 ?

 

한강은 실패했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성공한 지점입니다. 한강에게 필요한 것은 울먹이는 성대가 아니라 울지 않는 어깨입니다. " s는 존경의 눈빛으로 나를 우러러보았다. 그가 말했다. " 건대 ! 형편없는 목소리만 나이었다면 지금의 감독은 배가 나왔을 검니다(건배, 당신의 형편없는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연설은 두 배의 감동을 선사했을 겁니다- 라는 뜻). " 나는 쓸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낮게 소리쳤다. " 건대 ! 내 형편없는 몽소리를 위하여......  "  s의 눈이 촉촉해졌다.  그도 외쳤다. "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형편없는 목소리를 위하여 ! "

 

그도 울고...       나도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문어가 되지는 않았다. 두 다리는 주꾸미처럼 단단하고 빳빳했다. 전철 안 좌석이 텅 비어 있었으나 앉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2개와 맥주 1병을 샀다. 포장지를 뜯었다.그런데 명색이 김밥인데 김이 없고 흰 밥덩어리만 있는 것이다. 나는 기업의 비윤리성에, 브루스 윌리스도 아니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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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1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1 19:06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좀 예민하게 군 것 같습니다.
 

 

 

 

 

                                  

 

노 무 현 과   박 근 혜   :

 

 

 

 

 

대통령의 걸음걸이




                                                                                            가끔 연예 오락 프로그램에서 신인 배우의 연기력을 테스트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 눈물 - 연기 " 이다. 얼마나 빨리 눈물을 흘릴 수 있는가에 따라 연기 점수가 매겨진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드는 대목이다. 눈물을 흘리는 연기가 과연 난이도 높은 연기'일까 ? 사람들은 눈물 연기를 메소드 연기 취급을 하곤 하는데, 사실 가장 쉬운 연기가 우는 연기'다. 우는 연기는 직업 연기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자신을 방어하거나 변명하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색한 연기력으로 항상 논란이 되었던 박근혜조차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펼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눈물은 기본적으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집중시킬 때 발생하게 되는데 여기서 연민의 대상은 타자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해당된다. 그러니까 눈물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악어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인 타자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몰락한 자신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즉, 측은지심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연기에 대한 철학을 가진 배우라면 오히려 눈물 연기를 연기의 척도인 양 자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부끄러운 짓이기에 그렇다. 내가 배우의 연기력을 평가할 때 눈여겨보는 것은 우는 연기가 아니라 걸음걸이'이다. 흔히 연기는 얼굴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몸짓이다. 몸짓이 자연스러운 배우가 훌륭한 연기를 소화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극중 캐릭터에 맞는 걸음걸이를 선보이는 것은 고난이도 연기력에 해당된다. 소심한 사람이 걷는 모습과 정직한 사람이 걷는 모습은 다르다. 또한 직업에 따라, 성격에 따라, 계급에 따라 걷는 모습도 제각각'이다. 이 세상에는 수백만 가지의 걸음걸이가 있다. 어느 배우가 캐릭터에 맞는 걸음걸이를 연기한다면 그 배우는 극중 캐릭터를 이해하고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로 봐야 한다. 송강호라는 배우를 볼 때마다 감탄사가 나오는 이유는 영화마다 걷는 모습이 다 다르다는 데 있다.  << 살인의 추억 >> 에서 시골 형사를 연기한 송강호의 걸음걸이와 << 밀양 >> 에서의 카센터 사장을 연기한 송강호의 걸음걸이는 서로 다르다. 걸음 폭도 다르고, 걷는 속도도 다르며, 공중에 뜬 발이 땅에 닿는 부위도 서로 다르다. 어느 영화에서는 왼쪽 뒷굼치가 먼저 땅에 닿는가 하면 어느 영화에서는 오른쪽 뒷굼치가 먼저 땅에 닿기도 한다. 또한 앞부분이 먼저 땅에 닿기도 한다. 송강호는 성격에 따라 걷는 형태가 다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그것이 연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알고 있다. 좋은 연기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몸짓들이 모인 결과'이다. 이웃인 S 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보법이 인상적이라고 말한다. " 정치인 중에선 노무현 대통령님이 멋있는 보법 ! 갑 중의 갑이지요.. 그분 보법이 일명 호보(虎步 : 호랑이 걸음)으로 " 경쾌한 중량감 ! " 이 느껴지는 호쾌한 걸음이셨다 봅니다. " 니체 식으로 말하자면 노무현의 보법은 경쾌한 (발)소리가 나는 걸음걸이다. 니체는 정직한 사람과 정직하지 않은 사람의 걸음을 소리로 평가했다. 정직한 사람에게는 소리가 난다고 말이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배운 배우와 연극 무대 앞에서 연기를 배운 배우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기를 한다.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배운 배우는 몸짓이나 발짓보다는 얼굴 표정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영화 배우보다는 티븨 카메라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는 탤런트 같은 경우는 얼굴 연기 의존도가 무엇보다도 높다. 왜냐하면 티븨 연기는 풀숏(몸 전체를 보여주는) 이 아니라 클로즈업 화면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티븨는 극장 스크린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사이즈가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클로즈업된 얼굴 연기를 강조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반면 무대 앞에서 연기를 펼쳐야 하는 연극 배우는 얼굴 표정보다는 몸짓과 발짓(걸음걸이)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연극 배우에게 얼굴 표정은 몸짓보다 중요하지 않다.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 무대라는 스크린은 항상 풀숏인 셈이다. 그렇기에 연극 배우는 몸짓 언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송강호가 몸짓을 중요하게 인식한 데에는 그가 연극 배우 출신이라는 점이 큰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본 배우의 연기 중에서 최악은 박근혜였다. 워딩도 형편없을 뿐더라 그 흔한 눈물 연기도 형편없었다. 하물며 몸짓 연기가 뛰어날 리 없다. 걸음걸이는 뭔가 부자연스럽다. 그러니까 그 부자연스러움은 배우가 대통령이란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최상위 계급을 연기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자꾸 바닥을 보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저 높은 곳을 우러러보아야 하는데 내 눈은 밑바닥만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의 드라마가 재미있을 턱이 없다. 다...... 내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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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9-09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노무현 대통령의 보법을 연구한 사람이 있었단 말입니까?
그분이 어떻게 걸었는지 눈여겨 볼 걸 그랬습니다.
근혜 누님은 뭐 하나 칭찬 듣는 것 없이 임기를 마치시려나 봅니다.ㅠ

syo 2016-09-09 19:50   좋아요 0 | URL
임기 끝나면 칭찬할 일이 생기지 않을까요? 정권교체의 일등공신으루다가

stella.K 2016-09-09 19:53   좋아요 0 | URL
아, 그렇겠군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9 20:20   좋아요 0 | URL
이 패악질에도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재창출이 되면 그냥 이 나라 떠나야죠..

2016-09-1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0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0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0 16:29   좋아요 0 | URL
오케이ㅣㅣ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얼릉 오십셔..

2016-09-10 1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0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1 0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11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onan 2016-09-1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는 참석하겠습니다^^
미리 명절 잘 보내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1 13:27   좋아요 0 | URL
후훗... 내에.. 명절 잘보내시기 바랍니디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