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영화-들
1. 옛날에 다녔던 직장에서 그의 감투는 사외 이사'였다. 충무로 바닥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그의 인맥이 필요했다. 영화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 석 자를 공개하면 모두들 아, 하시리라. 그는 에로 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감독으로 어느 해는 흥행 랭킹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벗는 영화라면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딱히 할 일이 없어도 점심 시간 즈음에 들려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 것을 즐겼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여배우와 잠자리를 했는지를 고백하고는 했다. 말재주도 워낙 뛰어나서 우리는 밥을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도 모른 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그가 입만 열었다 하면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 너희들, 에로 감독이 얼마나 애로 사항이 많은 줄 아니 ? " 그가 에로 감독이기에 그 가족들이 겪었어야 할 슬픈 가족사는 제외하더라도 에로 감독이 에로 영화를 찍을 때 겪어야 하는 애로 사항은 다른 장르보다 심각했다고 한다. 80년대만 해도 검열 기준은 엄격해서 에로 영화를 만들 때 반드시 지켜야 할 4無 사항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올누드 금지. 둘째, 젖꼭지 노출 금지. 셋째, 거웃 노출 금지. 넷째, 키스 장면에서 혀 노출 금지. 이 지점에서 그는 폭발하고는 했다. " 야, 시발...... 너희들 생각해 봐라. 에로 영화에서 알몸도 안 된다, 젖가슴도 안 된다, 키스도 안 된다고 하면 대체 뭘 찍으란 거니 ? 옷 다 입고 에로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것 아니니 ? " 이 모든 제약을 뚫고 에로 감독은 에로-스러운 장면을 연출해야 되니 이만저만 속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외 이사는 이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 애마부인을 보렴. 이 모든 것을 통쾌하게 날려버린다고 ! " 나는 그날 그 길로 비디오 가게에 들려 << 애마부인 >> 을 빌렸다. 도대체 어떤 내공을 펼쳤기에 대한민국 최고의 에로 영화 감독이 이 영화를 추천한 것일까 ? 하지만 영화는 에로 4無 정신에 충실한 뿐이었다. 한다 싶으면 불타는 장작을 보여주기 일쑤이고, 한다 싶으면 꽃병 속 꽃을 보여주기 일쑤였다. 기껏해야 배우는 하얀 란제리를 입고 몽유병 환자처럼 밖을 어슬렁거렸다. 이내 천둥이 쳤다. " 비가 오겠네 ? " 아닌 게 아니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란제리가 비에 젖자 옷이 살에 달라붙으면서 속살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 올누드는 물론이고 젖가슴과 거웃까지도 말이다. 이 장면이 검열을 피했던 이유는 배우가 옷을 입었다는 데 있었다. 에로 감독이 오랜 고심 끝에 선보인 비장의 카드였던 셈이다. 쿠아아아아아. 나는 만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웃었다. 웃긴다, 정말 웃긴다. 그 이후로 << 애마부인 >> 시리즈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되었다. 이 영화에는 검열을 피하기 위한 감독의 몸부림이 엿보인다. 그 몸부림에 건배를 !
2. << 반지의 제왕 >> 을 만든 피터 잭슨 감독은 처음부터 A급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었다. 그는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들기 전에 고향인 뉴질랜드에서 저렴한 제작비로 B급 영화를 만들었다. << 반지의 제왕 >> 과는 달리 " 가짜 " 티가 팍팍나는 효과, 엉성한 연기, 엉터리 이야기로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나는 잘 만들어진 << 반지의 제왕 >> 보다는 << 고무 인간의 최후 >> 나 << 데드 얼라이브 >> 가 더 흥미롭다. 작정하고 못 만든 영화는 아니다. 만들다 보니 못 만들었을 뿐이다. << 애마부인 >> 이 검열을 피하기 위한 에로 감독의 눈물 나는 애로 사항을 엿볼 수 있다면, << 데드 얼라이브 >> 는 검열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자유분망한 " 퍽유 정신 " 이 엿볼 수 있어서 좋다. 이보다 더한 피범벅 영화가 있을까 ? 이 영화는 작정하고 좀비들의 신체를 절단한다. 사실, 내러티브도 없고 플롯도 엉성하다. 쉴 새 없이 자르고, 찌르고, 토하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재현될 뿐이다. 내가 이 영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영화는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데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문학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는 끝났다. 가라타니 고진이 지적했던 것처럼 근대 문학은 종언을 고했다.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빠지다 보면 << 지옥의 묵시록 >> 같은 형편없는 영화가 만들어진다. 코폴라 감독은 전쟁과 인간이라는 심연을 탐구한다고 설레발을 쳤지만, 사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있어보이고 싶어하는 감독의 자의식 과잉이 만든 참사'다. 이 영화로 인해 몇몇 영화사는 파산을 선고했다.
3. << 아비정전 >> 은 40번 넘게 보았고 << 쇼생크 탈출 >> 은 20번 넘게 보았다. 아비정전은 더 이상 보지는 않지만 쇼생크 탈출은 여전히 관람하고 있다. 볼 때마다 새롭다는 점이 새로운 영화'다. 그렇다면 이 두 영화가 내 인생의 영화 목록에서 1,2위를 다툴까 ? 그렇지는 않다. 관람 횟수와 감동은 좀 다른 측면이 있다. 베스트 목록을 작성할 때, 내가 항상 넘버1으로 뽑는 영화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 거울 >> 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는 20년 전에 한 번 본 후 본 적이 없다. 의도적이다. 더 이상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첫 번째 관람이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를 어느 허름한 시네마떼끄에서 보았을 때 영혼이 털리는 경험을 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할 때, 북극에서 오로라를 발견했을 때 느끼게 되는 어떤 환희를 기억한다. 그 기억이 완벽해서 다시 보기를 거부하게 된다. 완벽한 관람은 딱 한 번이면 된다. 욕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법이니까. 이 영화에는 느닷없이 부는 돌개바람이 등장한다. 계산된 바람이 아니었다고 한다. 또한 그 계절에 부는 바람의 종류도 아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돌발 변수였던 것이다. 배우는 예기치 않은 변수에 깜짝 놀라지만 감독은 이 변수가 신이 예술가에게 내리는 선물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예술이란 종종 계산에는 없는 변수에 의해 탄생하게 된다.
4. 요즘 자주 보는 영화는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의 << 길 >> 이다. 곱씹을 수록 좋은 영화'다. 미장센은 간결하지만 깊이가 있고, 내러티브와 플롯은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꽤 정교한 편이다. 또한 카메라 동선과 배우의 동선은 간결한 리듬감이 있어서 운율적이다. 누누이 하는 말이자만 50년대 영화가 21세기 영화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젤소미나가 짐파노에게 남긴 편지는 어느 아낙의 낭독(노래)으로 전해진다. 그러니까, 짐파노 입장에서 보면 젤소미나(가 자주 불렀던 노래를 따라부르는 아낙네)의 노래는 뒤늦게 도착한 편지인 셈이다. 뒤늦게 도착한 편지는 위험한 편지'이다. 그것은 죽음 같은 후회를 동반한다. 영화 << 파이란 >> 에서 이강재가 그랬던 것처럼 짐파노는 늦은 밤 해변에 엎드려 대성통곡한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그때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기에 이별이 주는 통증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짐파노의 통곡을 단순히 신파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이별을 경험하고 나서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영화로 다가왔다. 곱씹을 수록 슬픈 영화'다.
5. 수많은 드라큘라 영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영화는 무르나우 감독이 연출한 << 노스페라투,1922 >> 이다. 고전 무성 영화를 선정해서 나의 과시적 교양을 뽐내려는, 계산된 수작에서 비롯된 결정은 아니다. 정말, 이 영화는 끝내주는 뱀파이어 영화'다. 모든 면에서 << 노스페라투 >> 는 << 노스페라투 >> 이후의 영화를 압도한다.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연출한 << 노스페라투, 1979 >> 도 훌륭하긴 하지만 비교 대상은 아니다. 이 영화를 빛나게 하는 주요 원인은 조형의 순수성과 더불어 노스페라투를 연기한 맥스 슈렉이라는 배우의 아우라가 차지하는 몫이 크다. 압도적인 비주얼은 신화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이 무성 영화에 사운드를 입힌 블루레이가 출시되었지만 이보다 멍청한 기획은 없는 듯하다. 이 영화는 사운드 없이 무성으로 감상해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도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는 인간적이다. 그는 자신이 누울 관을 직접 들고 다닌다. 프랑코 모레티는 드라큘라를 자본(가) 상징'으로 읽었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불가촉천민처럼 보인다. 지상의 방 한 칸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현대판 하우스푸어 같기도 하다. 설핏, 웃음이 나는 대목이지만 이 어설픈 설정이 마음에 든다. 노스페라투, 무시무시한 걸작이다.
6. 고전 영화, 더군다나 무성 영화는 재미없다고 항문에 힘 주며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꼭 추천하는 영화가 있다. 바로 버스터 키튼의 << 스팀보트 빌 주니어, 1928 >> 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는 " 고전 영화는 고리타분하다 " 는 말을 하지 못한다. 무성 영화 특성상, 자막 카드가 화면에 자주 삽입되면 영화 관람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기 때문에 모든 무성 영화는 내러티브가 간결하다. 그렇기에 무성 영화는 줄거리가 단순하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무성 영화라는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 또한 내용은 간단하다. 태풍이 마을을 덮치고 주인공은 재난을 극복하고 가족의 영웅으로 우뚝 솟는다는 이야기. 이 영화는 진정한 재난 영화의 걸작이자 버스터 키튼이라는 이름 그대로 블록버스터'다 ! 개인적 취향을 고려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얀 드봉 감독이 연출한 << 트위스터, 1996 >> 보다 재미있다. 허풍 떨지 말라고 ?! 글쎄...... 야시야시한 허풍인지 무시무시한 태풍인지는 직접 보고 확인하시시. 이 위험천만한 장면은 특수효과로 인한 눈속임이 아니다. 태풍에 의해 건물 앞면이 찢겨나가는 목조 건물 세트는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집을 지을 때 사용되는 건축 자재로 만들었다고 하니 그 세트 건물 무게만 2톤이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이토록 위험천만한 장면을 리허설 없이 진행했다고. 리허설을 하게 되면 무너진 세트장을 다시 지어야 하니 눈도장으로 대충 서 있을 자리를 잡고 " 레디 ~ 악숀 ! " 를 외친 것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모한 용맹처럼 보인다. 2톤의 무게가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데에도 그는 " 스톤 페이스 STONE FACE " 라는 별명답게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할 뿐이다. 만약에 버스터 키튼이 위치 선정에 실패했거나 세트로 지어진 건물이 무너질 때 계산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면 그는 저승길을 걷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키튼의 최고 걸작을 뽑을 때 주로 << 제너럴 >> 이나 << 설록 2세 >> 를 선정하지만, 나는 << 제너럴 >> 이나 << 셜록 2세 >> 가 버스터 키튼의 최고 걸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 스팀보트 빌 주니어 >> 이다. 이 영화는 버스터 키튼의 자기반영성을 담고 있다. 아버지에 이끌려 모자 가게에서 모자를 고르는 장면이 무척 상징적이다. 결국 그는 포크파이(키튼을 상징하는 모자)를 고르지 못한 채 아버지가 고른 중절모를 쓰고 가게를 나온다. 하지만 이내 바람에 의해 모자를 잃어버린다. 인상 깊은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