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픔 의   반 대 말 은   환 희 일 까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성공학은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성공 키워드를 제시하는 분야'다. 1년에 쏟아지는 성공학(자기계발서 포함)를 헤아리면 성공의 열쇠는 수천 가지'라는 말이 성립된다. 어떤 이는 열정을 성공 키워드로 뽑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유를 성공 키워드로 뽑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잘 놀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누구 말이 옳은 것일까 ? 성공학에서 내놓는 수많은 키워드는 성공의 열쇠이기도 하지만 실패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좋은 예가 심형래가 내놓은 성공 키워드'이다. 그는 무모한 도전 정신을 성공 키워드로 뽑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계획이 전무한 무모한 도전이 몰락을 자초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성공학의 저자는 성공을 윤리적으로 깨끗하고, 어렵긴 하지만 노력하면 가능한 도전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 말한다는 것은 오히려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 그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가 << 국부론 >> 에서 내놓은 통찰이 정직하다.

 

그는 << 국부론 >> 에서 " 큰 재산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큰 불평등이 있다. 한 사람의 부자가 있으면 적어도 500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소수자의 풍요는 다수자의 가난을 전제로 한다 " 즉, 성공은 누군가에게 기회를 빼앗은 결과'이다. 카네기 인생론 따위에서는 정직이야말로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하지만  정직했기 때문에 실패한 사례가 더 많다는 점에서 카네기 인생론은 거짓이다. 이따위 추파춥스형 책은 파나마 모자 장수와 같다. 에누리가 없어서 파나 마나 이윤을 남길 수 없는 파나마 모자 장수처럼 이런 책을 읽으나 마나 한 책이다. 차라리 이종오의 << 후흑학 >> 을 권한다.

 

후흑학은 마음이 검고 얼굴이 두꺼운 놈이 성공한다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박근혜의 검은 마음과 이명박의 두꺼운 얼굴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이처럼 키워드는 동전의 양면 같은 구석이 있다. 성공학을 사랑학으로 치환해서 성공과 실패를 (사랑하는 사람의) 장점과 단점으로 바꿔도 맥락은 비슷하다. 연애 초기에 그 사람이 가지고 있던 장점은 고스란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단점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그 남자의 남자 - 다움에 매력을 느끼지만 결국에는 그 남자 - 다움은 가부장적 억압과 폭력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그 남자의) 섬세한 마음에 끌렸던 그녀는 헤어질 때에는 소심한 마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바로 꽁깍지 효과'다. 소심한 마음을 섬세한 마음으로 이해하거나 으스대는 남성성을 남자 - 다움으로 오해하는 과정이 바로 사랑이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가진 장점에 후한 점수를 준다는 것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그 사람의 노래 솜씨에 반해서 사랑하게 된다면 나중에는 그 노래 솜씨로 다른 여성을 유혹하는 그 사람을 보게 될 것이다. 바로 그 지점, 그러니까 롤랑 바르트가 << 사랑의 단상 >> 에서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장점에 끌려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의 어리석음을 꿰뚫어본다. 그에게 < 앓다 > 는 처음에는 단점이지만 나중에는 장점으로 발전하는 열병이다.  통증은 푼크툼이다.

 

그 사람이 아프다고 인식할 때 사랑은 오래 지속된다.  페데리코 팰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1954 >> 에서 짐파노는 잴소미나를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연민과 후회에 쌓여서 통곡하게 된다. 그는 " 앓는 여자 " 를 받아들임으로써 진정한 사랑에 눈을 뜬다.  어쩌면 환희는 아픔의 반대말이 아니라 같은 말이 아닐까 ?  아픔을 사랑한다면 끝에 가서 환희를 얻는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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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6-08-15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는 말 대신.. `나는 너가 아퍼..`
이렇게 고백했던 적이 있었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5 14:14   좋아요 0 | URL
멋진 고백이었군요..

clavis 2016-08-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십자가와 부활이 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5 17:16   좋아요 1 | URL
동감 !

예수는 앓는 존재이면서 아픈 존재입니다.
아프기 때문에 성인이 된 사내가 예수님이 아닐까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5 1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영화 << 멋진 하루 >> 를 다시 보았습니다. 전도연은 능글능글한 하정우를 징글징글 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전도현이 그에게 매력을 느낀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잘생긴얼굴, 모두에게 친절한 매너 따위가 좋아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이제는 바로 그 이유로 그가 싫다는 것의 모순. 결국 사랑이란 어떤 장점에 끌려서 하게 되면 나중에는 그게 단점으로 보일 것이란 생각이 문득.

비로소 롤랑 바르트의 ˝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 라는 비문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랑의 단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 앓는 사람 ˝ 이라고 정의하는 부분도 있지 않습니까.

저에게 앓는 사람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예수입니다. 내가 예수에게 처음 관심을 보인 이유는 십자가라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앓는 존재, 아픈 존재이기에 성인이 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16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동정이나 연민이 사랑이기도 한 거지요. 부처의 자비와도 통하는 마음. 그래서 저는 공명이라는 말이 좋아요. 함께 우는 것. 니가 울면 나도 눈물이 나.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1:07   좋아요 0 | URL
아. 공명이 그런 뜻이었군요. 한수 배웠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16 11:08   좋아요 0 | URL
제 맘대로 해석하는 거예요.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1:2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이죠. 명이 울 명이니 함께 울림 이니겠습니까..

또 봄. 2016-08-16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제목의 노래가 있습니다.
한동안 그 노래만 들었던 시간들이 생각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20:22   좋아요 0 | URL
에피톤 노래 말씀하시는거죠 ? 저도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블루레이] 멋진 하루
이윤기 감독, 전도연 외 출연 / 라이프랩스미디어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하정우와 효도르




                                                                                                        약속 장소에 나갔더니 차 유리가 검은 코팅이 된 검은 색 그랜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랜저가 출세한 남자를 상징하는 오브제'였다. 그랜저의 경적이 가볍게 울렸다.

나에게 보내는 신호 같기에 다가갔더니 창문이 열리면서 오늘 만나기로 했던 그녀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 타세요 ! "  내가 차 안을 두리번거리며 구경하자 여자는 말했다. " 아빠 차예요. "  차가 멈춘 곳은 외진 곳에 넓은 정원이 있는 한정식집이었다.  한눈에 봐도 고급 요리집인 모양이었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이곳이 정치인이 자주 찾는 곳이라고 귀뜸을 해주었다. 그녀의 직업은 조리사로 청와대 조리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 요리집에는 메뉴판은 있으나 가격 표시는 없었다. 가격 보고 요리를 정하는 식당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날 먹은 요리는 한상차림이 아니라 한정식 코스 요리여서 종업원이 들락날락거렸다.

촌놈인 내가 이런 자리에 앉아 있으니 여간 불편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최고급 요리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술 한 잔 사겠다는 제안에 선뜻 응했더니 이렇게 부담스러운 장소인지는 몰랐다. 대접이 고맙기는커녕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계산을 할 때 엿들은 바로는 음식값으로 대략 30만 원 정도가 나온 모양이었다. 나는 깜짝 놀랐으나 태연한 척 내색은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백수였고 연애에 실패했으며 통장에는 20만 원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고급 요리집에서 그녀에게 투사한 불쾌한 감정은 내 자격지심이었던 셈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계획에도 없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전도연과 하정우가 출연한 << 멋진 하루 >> 였다.

 

 

 

멋진 하루

 

많으면 많고 적으면 적은 돈 350만 원.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떼인 그 돈을 받기 위해 1년 만에 그를 찾아나선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희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빌린 350만원을 갚기 위해 돈을 빌리러 나선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병운이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초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희수는 경마장에 들어선다. 두리번두리번, 경마장을 헤매는 희수. 마침내 병운을 발견한다. 병운과 눈을 마주치자 마자 내뱉는 희수의 첫마디. “돈 갚아.” 희수는 서른을 훌쩍 넘겼다. 그리고, 애인도 없다. 직장도 없다. 통장도 바닥이다. 완전 노처녀 백조다. 불현듯 병운에게 빌려 준 350만 원이 생각났다. 그래서 결심한다.  꼭 그 돈을 받겠다고. 병운은 결혼을 했고, 두 달 만에 이혼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다가 실패하고 빚까지 졌다. 이젠 전세금까지 빼서 여행가방을 들고 다니는 떠돌이 신세다. 한때 기수가 꿈이었던 병운은 경마장에서 돈을 받겠다고 찾아온 희수를 만나게 된다. 병운은 희수에게 꾼 돈을 갚기 위해 아는 여자들에게 급전을 부탁한다. 여자관계가 화려한 병운의 ‘돌려 막기’에 기가 막히는 희수지만 병운을 차에 태우고 돈을 받으러, 아니 돈을 꾸러 다니기 시작한다. 한때 밝고 자상한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병운을 좋아했지만, 대책 없는 그를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 1년 전엔 애인 사이, 오늘은 채권자와 채무자…… 길지 않은 겨울 하루, 해는 짧아지고 돈은 늘어간다. 다시 만난 그들에게 허락된 ‘불편한 하루’가 저물어 간다.

 

 

네이버 영화 소개에서 발췌

 

 

 

 

 

 

이 영화에는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롤랑 바르트의 말을 빌리자면  :  남들에게는 스투디움인데 나에게는 푼크툼인 장면이 나온다. 


 

하정우는 전철 안에서 전도연에게 말한다. " 어느 날인가 티븨에서 효도르를 봤어. 생긴 거나 몸매는 착한 옆집 아저씨 같은데,  수줍은 표정으로 링 위에 다소곳이 기다리고 있다가 경기가 시작하니까 사람이 막 변하더라고. 난,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나 싶더라고.......  링에서는 천하무적인데 밖에서는 불쌍한 사람 도와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근데..... 꿈에 저 사람이 나왔어. 글쎄, 한국말을 하더라고. 너 괜찮아. 많이 힘들지. 막 그러는 거야. 그 말에 나...... 막.... 가슴이 벅차서 내가 그에게 말했지. 당신만 있으면 난 괜찮아. 그리고는 한동안은 정말 신기하게도 괜찮아지는 거야. "   

그 철없는 이야기에 전도연은 전철 안에서 소리없이 운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전도연이 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괜찮아 ?  많이 힘들지 _ 라고 말해주는, 이 형식적인 위로가 때론 위로가 된다는 사실.   하찮은 위로에 위안을 얻는 그런 날.  영화를 본 탓일까. 그날 내 꿈에 효도르가 나왔다. 하정우의 말처럼 생긴 거나 몸매는 착한 옆집 아저씨 같은데 가까이 다가오면 위협적인 사람이었다. 꿈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그는 이제 곧 나에게도 다가와서 유창한 한국말에 " 너 괜찮아. 많이 힘들지 ? " 라고 말하리라. 그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내심 기대에 찬 시선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는 러시아 말로 이노무새끼저노무새끼시모노새끼자지깔까 _ 라고 하더니 지나쳐갔다. 라이터( зажигалка 좌지깔까) 있냐 ?  뭐 그런 소리 같긴 하다만........ 시발놈, 어따대고. 피식, 웃음이 났다. 꿈이라는 게..... 참, 그래요. 후후  


 

 

 

 

                               

내 꿈 장면은 재미를 위해 조미료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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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14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지할 줄 알았더니 오늘은 삼천포로군요.ㅠ
<미쓰 홍당무>에서 보면 황우슬혜가 저런 대사를 하긴하죠.
저게 진짜 러시아 말인가 의문스럽기도 하고.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랑은 잘 안 맞아서 보다가 말았는데...
<멋진 하루>는 나름 좋았는데 본지가 꽤 오래됐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4 18:40   좋아요 0 | URL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급 요리집 가니 영 불편하더군요. 접시 비우면 어떻게 아는지
바로 다음 접시를 들고 나타나고... cctv가 달렸나. 감시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오늘 술값 나에게는 술집 10번 정도 갈 수 있는데.. 이런 생각도 들고..
뭐. 그런 생각 들었네요..
아. 좌아지까까는 실제 러시아어로 라이타라고 합니다..

stella.K 2016-08-14 18:56   좋아요 0 | URL
그때 돈 30만원이면 지금의 150만원쯤 되지 않을까요?
뭐 어떻습니까? 다시 만날 사이도 아니었나 본데.ㅋ
하긴 어제 <굿와이프> 보니가 윤계상에게 관심있는 법대 여대생이
8백만원짜리 와인을 선물을 했는데 이걸 먹을까 말까 계상이 고민하더군요.
결국 8만원짜리 와인이라고 속이고 전도연이랑 마시던데
그 법대 여대생이 생각이 없는 거죠. 그러면 좋아할 줄 알고...후후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5 10:46   좋아요 0 | URL
글세요.. 그때 영화값이 8000원이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samadhi(眞我) 2016-08-14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림의 ˝위로˝ 라는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는 것처럼 그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이 노래 들으면 정말 위로가 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5 10:49   좋아요 0 | URL
위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들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이 노래 알죠..... 좋은 노래입니다. 정말 위로가 되네요..

기억의집 2016-08-15 2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어로 댓글 쓰고 싶지만... ㅋㅋ

저는 이 영화는 안 봤지만 책으론 읽었어요. 중편정도의 분량이었나. 몇 시간 만에 읽을 정도로 심각한 소설은 아니였는데 괜찮게 읽었던 소설이었어요. 근데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저 하정우가 효도로 말한 건 기억 안 나네요. 원작에는 없는 대사 같은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6 11:08   좋아요 0 | URL
그냥 가볍게 읽은 소설입니다. 명랑 만화 같은 소설이라고나 할까요..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영화 속 대사는 당연히 각색된 지점입니다..
 

 

 

 

 

 

 

 

 

 

 

 

 

 

                                

 

이  런      등  신  들    :




 



친절하지 않을 권리


 



 

 

​                                                                                              만화 기법 중에 " 데포르메 " 라는 게 있다.  그 만화의 " 톤 앤 매너 " 와는 달리 8등신 미녀가 느닷없이 2등신 / 3등신 꼬마로 변형되는 경우를 말한다. 만화가가 내용이 너무 진지하다 싶으면 쉬어가는 코너로 마련한 코드'이다.

무게감 있는 작품을 그리는 김혜린의 << 불의 검 >> 에서도 만화 주인공은 종종 데포르메 형태로 변형되기도 한다. 그것은 선동적인 연설가가 가끔 유머를 구사하는 것과 같다. 진지하기만 한 캐릭터가 귀여운 형태로 변신하여 웃음을 주니 만화 깨나 읽었다는 사람은 < 막간에 쉬어갑시다 - 코너 > 를 애정하는 사람이 많다. 만화가가 8등신 미녀를 3등신으로 과장해서 변형시키는 의도는 명백하다.  데포르메 형태에서 " 가와이이 " 를 뽑아내려는 목적이다. " 가와이 " 라는 형용사는 축소지향적이다. < 가와이 > 는 귀엽다와 사랑스럽다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작다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말로 " 앙증맞다 " 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남자가 여자에게 " 귀엽다 " 라고 말할 때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위계에 따른 위상이 정립된 결과'다.그 남자는 같은 눈높이로 여성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여성을 내려다보는 시선에 가까우며,  6등신에서 2등신으로의 강등은 대상을 미성숙한 것(어린것)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내포한다.  2등신 성인 여성은 없으니까, 또한 8등신 아이는 없으니까.  대한민국 대중이 여성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데포르메'이다. 대중은 아이유나 하연수를 성인(8등신)으로 인식하고 상품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2/3등신) 이미지로써 상품을 소비한다.  그들은 아이유와 하연수를 귀엽고 사랑스럽다며 찬사를 보내지만

 

이 호감은 어디까지나 데포르메 캐릭터에게 보내는 " 가와이이 " 다.  가와이이의 대상은 독립된 자아를 거부하는 얼라에게 부여되는 아우라'라는 점에서 퇴행적 욕망'이다. 대중은 오빠를 자청함으로써 귀여운 아이들의 소꿉놀이에서 스폰서를 자청한다. 아이유 미니 앨범 chat-shire'가 논란이 되었던 지점은 로리타 취향이었지만 본질은 아이유가 성인 여성으로서 독립을 선언했다는 데 있다. 그녀는 이 앨범을 통해 국민 여동생이라는 3등신 데포르메를 벗어나서 8등신 성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 여성 만세를 외친 꼴이라고나 할까 ? 

아이유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어긋나는 지점이다. 그녀가 당당하고 똑똑하며 독립적인 여성을 선포하자 대중은 배신감을 느낀다. 겉으로는 로리타 취향을 걸고 비판했지만 사실은 성적 자유 여성에 대한 반감이다. 그렇기에 평소 앙증맞던 그녀가 잔망스럽게 보인다. 대중이 아이유에게 바라는 것은 미성숙한 여성 이미지'이다. 하연수 논란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그녀는 귀여운 데포르메'다. 아이-스러운 앳된 외모가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케이스'이다. 하지만 그녀는 꽤나 진지하고 당당한 여성에 속한다. 할 말을 애둘러 말하지 않는 성격인 모잉이다. 그래서 " 진지충 " 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나 ? 

하연수가 sns에서 사용하는 문장 형태를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말을 줄이거나 일부러 오타를 사용하거나 이모티콘을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글에 정색을 하고 댓글을 다는 것이다. 하연수 sns 댓글 논란에서 대중은 하연수의 미성숙한 태도를 질타했지만 사실은 미성숙한 데포르메인 줄 알았으나 미성숙하지 않다는 데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하연수는 1990년 생으로 올해 27살인 성인 여성이다. 하연수에게는 친절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대중은 하연수의 댓글에 불쾌감을 표출하지만 그보다 수위가 높은 남성 연예인의 댓글에는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영화 << 부산행 >> 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 김의성의 트위터는 그 수위가 높은 데에도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그것이 그의 개성이기 때문에 그렇다. 같은 이유로 하연수가 남긴 댓글을 개성으로 보면 그다지 불편할 게 없다.  판타지는 판타지일 뿐, 데포르메는 만화에서나 가능하다.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된다. 만약에 당신이 12살의 로리타 혹은 데포르메'로 대상을 고착시키려 한다면 당신은 험버트 험버트'다. 연예인은 감정 노동자일까,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연예인이라는 직종이 감정 노동에 속한다면, 나는 감정 노동자의 친절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여자는 자라서 성인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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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8-13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글은 사안에 대한 정보와 논리를 가지고
곰발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지를 정확히 전달하려고 한다는 것에 있을 겁니다.
게다가 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할 말은 한다는 거죠.

그런데 그 언어라는 게 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성성과 여성성 뭐 그런...?
여성이 구사하는 언어는 대체적으로 상대가 들어서 알아 먹을 수 있는 거냐,
듣기에 좋거나 무난하냐 친절하냐 등 뭐 이런 타자를 위한 것에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비난을 서슴치 않죠.
말하자면 높은 사회성을 요구하고 그것을 발전시키지 않았나 해요.

그런데비해 남성의 언어 패턴은 다듬어지지 않거나 좀 폐쇄적인?
뭐 알아 먹던지 말던지, 좋게 말하면 시크한 거고 그걸 야성이라고까지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동물의 세계에선 수컷이 암컷을 유혹하고 그래서 수컷이 더 자기들의 소리와 언어를 발전시켰겠지만
인간은 그 반대잖아요. 오히려 여성이 더 유혹적이라고 보죠.
생각해 보면 그게 유혹하고 싶어서라기 보단 자기안전의 수단 뭐 그게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하연수는 여자인 제가 들어도 듣기에 따라선 좀 거슬릴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비난까지는 좀 그렇다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4:11   좋아요 0 | URL
절묘한 비유이십니다. 맞습니다. 인간이 아닌 짐승은
암컷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를 다듬거나 깃털의 색깔을 화려하게 하려고 진화했죠.
그런데 인간은 정반대죠...
의사전달을 여성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 됐어. 그만 해 ! 그만하라니까.. ˝
라는 식으로 중단시키고는 하죠..
불성실한 의사 표현 때문에
무슨 말이야_ 라고 물으면
못 알아듣는다고 타박... 이상한 지점이죠..

저는 한국 노동자의 친절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합니다.
고로 하연수의 친절하지 않을 권리도 지지합니다.


stella.K 2016-08-13 14:26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생각해요.
솔직히 히프에 대해 물어 본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든
하연수를 자극했겠죠.
얘는 뭐 이런 것 까지 나한테 물어보나 하지 않았을까요.
거기에 그 정도로 반응했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저격하는 것도 생각이 없기는 마찬가지죠.
전 하수연이 저럴 때 좀 더 강하게 나갔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해요.
무조건 잘못했다고 지금부터 빌면 나중에 어디까지 빌고 살아야할까요?
그게 또 소속사에 피해가 갈까봐 그런 거겠죠.
하연수 저격수들은 모르긴 해도 여자들이겠죠.
남자가 하연수한테 히프에 대해 묻진 않았을 거 아니예요.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연대할 생각은 안하고 짜잘한 거 가지고...ㅉ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4:28   좋아요 0 | URL
연예인은 소속사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구조 아닙니까.
논란 생기면 손해를 보는 쪽은 대중이 아니라 100% 본인이니
여기서 물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stella.K 2016-08-13 14:33   좋아요 0 | URL
ㅎㅎ 곰발님의 저 이모티콘 아주 좋습니다.
자주 애용해 주세요!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08-1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 유명인은 한순간에 대중의 사랑을 받다가 한순간에 대중의 적이 됩니다. 대중의 적이었다가 다시 사랑을 받게 되고요. 하연수가 하프의 기원을 설명한 댓글에서 맨스플레인이 느껴졌어요. 저도 맨스플레인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하연수 논란을 보는데 죄를 지은 기분이 들었어요. 저렇게 댓글을 달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4:27   좋아요 0 | URL
그런 측면도 있죠. 하지만 저는 개인의 친절하지 않을 권리를 지지합니다. 하연수라고 해서 왜 꼭 친절해야 되는지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팔을 하면 될 뿐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불친절이 논란이 되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WU 2016-08-13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하연수는 싹바가지가 없었어요 사안이 달라요 인간이 정색을 아무때나 하고 지랄이야. 정도였다면
김의성은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죠
미친아 가서 소라넷이나 해라 이런것
분석은 좀 어려울 거 같아요
만약 지적으로 보이는 그냥 어른 여자 이를테면 김혜수라고 할까요?
마찬가지로 까였겠죠 존나 싸가지없다 따위의 단어로.
그게 하연수니까 그나마 그 정도인거죠 이건 젠더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공유보세요 여전히 공유가 누굴 존경한다고 했는줄 알면서도 아직도 공유가 좋다고? 라는 반응이 나오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7:1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긁적긁적. 근데.. 공유가 누굴 좋아한다고 합디까 ?

기억의집 2016-08-13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유가 박정희 존경한다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20:52   좋아요 0 | URL
!!!

stella.K 2016-08-14 18:24   좋아요 0 | URL
헉, 정말요? 전후사정이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공유가 박정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놀랍다기 보다
공유니까 가능했을 거라는 우리나라 사람들 연예인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
뭐 그런 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공유가 당당하게 밝히는 것도 인상적이고,
김의성 같은 경우도 그래요. 그가 서울대 출신이 아니고
평범한 대학출신이거니 고졸이어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할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4 18:29   좋아요 0 | URL
진짜 의외인 경우는 클린튼 이스트우드죠.
그는 이번에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stella.K 2016-08-14 18:32   좋아요 0 | URL
헉!!!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4 18:42   좋아요 0 | URL
이스트옹이 유명한 공화당 지지자이기는 하지만
트럼프를 지지할 줄은 몰랐씁니다.
상당히 실망해씁니다..

기억의집 2016-08-14 18:51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잡지 인터뷰 기사를 온라인에 누가 올린 거더라구요. 저거 올라와서 한동안 공유 욕 좀 먹었었어요. 박근혜 된지 얼마 안되서 아부성 발언인지....

곰발님.. 저도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실망스럽더라구요. 트럼프라니. 트럼프를....싸울 기회라는 워렌 자서전 읽어보면 오바마하고 케네디가가 정치가로서 정말 매력 있어요. 특히 케네디가는 왜 미국에서 그렇게 인기 있는지 알겠더라구요. 전 ㅋㅋ클린트 이스트우드 영화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런지 더욱더 재수 없어지네요.

stella.K 2016-08-14 19:12   좋아요 0 | URL
공유는 저도 좋아하는 배운데 왜 그랬을까요?
크린트이스트우드는 예전에 좋아했는데 늙고 나서는 별로더군요.
케네디를 싫어하기란 쉽지 않죠. 멋있잖아요.
먼로하고의 스캔들만 빼면...ㅋㅋ

2016-08-13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3 2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스템은 혐오 발언을 생산한다  :

 

 

 

다음 침공은 어디 ?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자는 멍청하다고 배운다. 일일 드라마 속 주변부 여성 캐릭터를 분석하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드라마 속 여성은 눈치가 없고, 수다스러우며, 욕심이 많고, 아둔해서 현명한 남편으로부터 핀잔을 받기 일쑤'다. 이성을 잃고 화를 내는 아내를 제지하는 역할은 남편 몫이다. " 내 아내가 무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 이런 시츄 ~ 

 

드라마에서 남자는 여자에 비해 똑똑하고 예의바른 편이다. 없다고 무시하는 쪽은 금시계 찬 사장님보다는 알반지 낀 사모님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 역을 맡았던 수많은 중년 여성 탤런트의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뿐인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주인공은 캔디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남성 의존형 캐릭터'다. 캔디형 캐릭터가 주인공인 드라마에서 상대역은 대부분 백마 탄 왕자'다. 백마 탄 왕자'가 캔디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곱창이 필요하다. 태어나서 곱창 한 번 먹어본 적 없는 왕자는 주저하는 마음과는 달리 젓가락질은 주저하지 않는다. 한때 똥물이 흐르던 곱창은 캔디와 백마를 이어주는 밴드가 된다.

 

이런 미역 줄거리 같은 드라마는 내용이 뻔해서 왕자의 신분이 노출되기 마련. 여자는 신분을 속이고 서민 행세를 했던 재벌 2세'에게 " 날 가지고 놀지 마세요 ! " 라고 계급 의식을 드러내며 저항하지만 결국 재벌 2세는 그녀를 가지고 노는 것으로 끝난다. 그토록 당당하고 독립적이던 여자는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순간 심순애로 변한다. 드라마는 여기서 끝나지만 사장님 사모에게 없다고 무시받던 그녀는 결국 사장님 사모가 된다는, 이런 미역 줄거리 ~    이 편견은 고스란히 김치녀, 된장녀, 개똥녀로 투사된다. 이들은 전체 중 일부이지만 한국 사회는 부분을 전체로 받아들인다. 주디스 버틀러의 말을 살짝 비틀자면 시스템이 혐오를 생산한다. 알라딘 서재 활동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장면은 모 알라디너의 " 나야 좋지, 쌍년 " 이라는 말이었다.

내용은 간단하다. 상대 여성이 성적으로 호감을 보이자 혼잣말로 내뱉은 말이다. 성 경험 혹은 성에 적극적인 여성을 쌍년 취급하는 건축학개론형 남성은 흔하디 흔한 풍경이어서 새삼 놀랄 일은 아니지만 정작 내가 놀랐던 지점은 욕 자체가 아니라 여성 회원이 많은 알라딘에서조차 눈치 볼 필요 없이 지껄일 수 있는 남성의 자유에 있었다.  여성은 때와 장소에 따라 남성 눈치를 보지만 남성은 때와 장소에 관계 없이 여성 눈치를 보지 않는다. 이런 유형의 남성이 소수가 아니라 다수라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영화 << 건축학개론 >> 은 남자 주인공은 여자가 선배와 잤다고 믿는 순간 쌍년 취급을 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흥행에 크게 성공한 데에는 남성 관객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분석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멜로 영화는 여성 관객들이 주요 소비층인데 반해 << 건축학개론 >> 은 특이하게도 남성 관객이 많았다고 한다. 남성 관객의 전폭적인 지지가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한국 남성은 남자 주인공의 쌍년론에 공감하는 것이 아닐까.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 << 다음 침공은 어디 >> 에서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여성이 정치/사회 영역에 많이 진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야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군가는 이 다큐를 보고 되묻곤 한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남성 대통령일 때보다 최악인 이유가 무엇인가 _ 라고 말이다.

그 질문에 대해 할라 토마스도티어 전 아이슬란드 상공회의소장은 말한다. " 국제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사회에 여성이 3명 이상이 되면 문화가 바뀌기 시작합니다. 1명이나 2명은 안 돼요. 왜냐면 1명은 형식적이고 2명은 소수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3명이 되면 갑자기 집단 역학이 변합니다. 대화 방법이나 토론 주제가 변하죠. 테이블 주위에 여자가 많이 있으면 균형이 깨진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어요.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 대해 더 많이 묻기 시작합니다. 전 이걸 별개의 도덕관과 윤리 나침반이라고 부릅니다. 이건 오늘날 아주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오늘날 이런 것이 없으면 장기적으로 사업에서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여성이 정치 / 사회 영역에서 많이 진출할수록 지금의 한국 정치 / 사회 문화는 바뀔 수 있다. 1975는 아이슬랜드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이상한 총파업이 진행되었다. < 여성 파업 > 이었다. 그중 90%는 직업이 없는 여성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거의 모든 시스템이 멈췄다. " 집구석에 쳐박혀서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여성 " 과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작동을 멈추기 시작했다. 학교가 문을 닫고, 기업이 문을 닫고, 버스가 문을 닫았다.  현재 아이슬랜드는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이며 여성이 가장 행복한 나라이기도 하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사회, 비장애인보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 어른보다 아이가 행복한 사회, 남성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건강한 사회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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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 여성 총파업이 발생했다. 90%는 직업이 없는 여성이었다. 특정 집단의 총파업은 늘상 있는 일이지만 여성이 파업에 들어가자 나라 자체가 모든 일을 멈췄다. 학교도 문을 닫고, 은행도 문을 닫고, 아이들은 못 먹고, 버스도 운행을 중지했으며, 섹스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여성 파업은 뭘 하는 게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여자가 일을 안 하니 시스템 자체가 붕괴된 것이다.

남성이 멍청하다고 했던 여성의 몫이 사실은 모든 분야에서 영향을 끼친 것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파업을 하면 남성은 직장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
결국 가정이나 직장이나 멈추게 된다. 하지만
남성이 파업을 하면 직장은 일시 멈춰도 가정은 돌아간다.

cyrus 2016-08-12 13:55   좋아요 0 | URL
<복지의 배신>이라는 책에 보면, IMF 시절에 여성 실업자가 재취업 기회 또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분석한 내용이 있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공무원들은 여성 실업자들이 재취업하는 대신에 가정 일을 돌보기를 원했습니다. 남성 실업자들은 일하고, 여성은 가정을 담당해야 하는 생각하는 고정적인 성역할의 영향이 컸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4:05   좋아요 1 | URL
제가 imf 때 남성들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 라고 징징거릴 때마다

네가 그렇게 힘들 정도면 약자인 여성은 얼마나 더 힘들었겠냐... 라고 되받아치고는 했습니다.

아엠에프 때 가장 많이 실직을 당한 부류가 여성이죠. 그런데 불구하고 남성들은 자기가 가장 힘들었다고 징징대니...

cyrus 2016-08-12 14:08   좋아요 1 | URL
맞아요. IMF 시절 드라마에 나오는 아내들은 일자리 잃은 남편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편의 무능력함을 탓하는 존재였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4:11   좋아요 0 | URL
이 시절 나온 영화가 < 실미도 > 입니다. 천만관객 동원한..
전 이 영화를 고개 숙인 남자의 임포텐트 극복 판타지로 이해했습니다.

주인공이 우린 죽지 않아 ! 라고 외치는 데 이게 꼭 우린 반드시 치료 잘 받아서 발기할거야.. 처럼 들리더군요..

ㅎㅎㅎㅎㅎㅎㅎ 실미도는 병원이요, 훈련은 치료요, 죽지 않아는 발기에 대한 소원.. 뭐, 그런...

다락방 2016-08-12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 이 좋은 글에 잠깐 딴지를 걸자면, 마지막 단락에서 장애인과 함께 가는 게 `정상인` 이라기보다는 `비장애인`이 적합하지 않을까 싶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3:08   좋아요 0 | URL
아, 예리한 지적이십니다. 읽고 나서 0.1초 만에 교체했습니다. 정상인대 장애인이라니.. 이런 쌍스러운 표현을 쓰다니.... 죄송...

지금행복하자 2016-08-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사고치고 남자는 수습하고... 어제 본 책에서도... 세상의 접시를 다 깨버리고 싶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3:22   좋아요 0 | URL
여자가 의회의 절반 정도는 차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뀔 수 있지요. 사실 국회의원이 똑똑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일은 의원 보좌관들이 입법 절차를 만든느 것이니 말이죠. 우수의원으로 뽑힌 사람 중에는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청소노동자였죠..

지금행복하자 2016-08-12 13:28   좋아요 0 | URL
여자라고 해서 의회에 뽑아줬더니 다 파란지붕의 그 분같음 어떡하죠? 설마 그런일은 없겠지만 대한민국은 예측불가라...
그래도 절반을 여자가 차지했음 좋겠습니다. 법룰로 정해서라도.. 기회라도 있어보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3:32   좋아요 0 | URL
남자새끼들만 득실거려서 만들어놓은 지금의 여의도를 보면 여자만 득실거리게 될 때는 적어도 남자만 득실거리게 될 때 발생하게 되는 상황보다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네요...ㅎㅎ 상공회의소장이 말했듯이

남성과 여성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1명은 상징적 의미일 뿐이고, 2명은 소수일 뿐이니 5명에서 6명의 이사회에서 3명이 차지하는 것은 중요한 것.

다락방 2016-08-12 13: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여태 살면서 저한테 논리없다, 이성적이지 못하다, 아는 게 부족하다 라고 지적하는 남자사람을 겁나게 많이 만나봤는데요, 그들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여성들(자기보다 더 좋은 학교를 나왔다거나 더 나이가 많다거나 더 사회적 지위가 있다거나 해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더라고요. 아마도 그래서 레베카 솔닛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고 했는지 모르겠어요. 분명 틀린 걸 제가 지적한 적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는 어리석고 생각이 깊지 못하고 논리도 없는 여자가 돼요. `너에겐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라고 말했더니, `그랬다면 사과한다` 라는 당연한 반응대신 `난 너뿐만 아니라 다른 여자들도 다 무시해`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여자 무시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그게 자랑인줄 알고, 자신의 원래 성격이 원래 그런거니 니가 이해하라고 보란 듯이 얘기해요. 징글징글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3:20   좋아요 0 | URL
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사과를 하면 그나마 양반이죠. 대부분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냐... 이런 말을 하잖습니까. 여자를 무시하는 캐릭터를 마치 쿨한 남성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것은 쿨한게 아니라 진상인데 말이죠..

cyrus 2016-08-12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는 여자를 만만하게 보는 성향이 있어요. 특히 여자가 하나라도 잘못했으면 죽이듯이 달려들죠.

어제 펜싱 여자 단체 8강전 보셨나요? 저는 라이브 중계를 보지 못했는데요, 우리나라가 아쉽게도 경기에 졌어요.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니까 최인정 선수가 점수를 쉽게 허용 당했어요. 그 경기를 본 사람들이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경기를 허무하게 내주니까 최인정 선수를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어요. 그 중에 성차별적인 내용의 댓글도 있었어요. 실력이 없는데도 예쁘니까 국대에 뽑혔다느니 펜싱 그만두고 시집이나 가라는 등 정말 몰상식한 말들이 많았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4:01   좋아요 0 | URL
올림픽 중계는 아예 안 보고 있습니다. ㅎㅎㅎ.

흠흠 그런 일이 있었군요.
뭐 그런 여성 다구리는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고...
한국도 여성들이 총파업을 했으면 좋겠네요...
한 달 정도 하면 다시는 그런 태도 보이지 않을 겁니다.. ㅎㅎ

시이소오 2016-08-1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치는 여성이 해야된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은 아는것도 없이 목소리만 크고 오만하고ᆢ

박 그네는 여성이기 이전에 아픈사람이죠. 환자죠. 정신병자는 청와대가아니라 정신병원에 보내야하는데.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4:1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감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 날립니다.
정치는 여성이 해야 합니다. 물론 부작용도 있겠지만 똥보다는 재가 덜 더럽죠...

2016-08-12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8-1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야 좋지 쌍년맨 저도 놀라서 그때 곰발님께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출몰하나요? 그 사람 정체가 뭔가요?

우리나라 드라마 문제많죠. 그런데 드라마의 거의 대부분이 여자가 쓴다는 거
아닙니까? 그놈의 사랑굿 타령은 언제쯤 바뀔지...
요즘 볼만한 드라마는 <굿와이프>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게 미국산이라잖아요. 그럼 그렇지 했습니다.

2016-08-12 15: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3 10:43   좋아요 0 | URL
메뚜기도 ˝ 한철 ˝ 이라지 않습니까..

기억의집 2016-08-1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리자베스 워렌상원의원이 상원의원 출마했을 때 다 질 줄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여권운동이 그런대로 제대로 자리잡힌 미국조차 상원의원은 남자들의 싸움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서. 그 대목 읽고 완전 놀랐어요. 21세기 미 국도 그렇구나 싶은 게.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6:21   좋아요 0 | URL
소비 형태만 봐도 남자는 충동적이고 여자는 전체를 봅니다.
남자 중에 유통기한 보거나 성분 재료 보는 사람 있나요. 그냥 쓸어담지..
반면 여성은 꼼꼼하게 보는 편이잖아요.

정치는 그냥 직감으로 버튼 잘못 누르면 지구 멸망합니다.
그 어느 영역보다즉흥성보다는 전체를 봐야 하는 영역...

이 영역을 여성이 40% 정도 차지하자 아이슬랜드가 바뀌기 시작한 겁니다.
아마.. 1975년에 벌어진 여성 파업이란 아이디어가 급진 페미니즘 진영에서 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레드 스타킹인가 그랬죠..

대한민국도 여성이 힘을 모아서 한번 여성 파업 했으면 좋겠습니다.
간단하잖아요.

2016-08-12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2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8-1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슬랜드로 가야겠네요. 이 나라는 유리벽이 너무 두꺼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8:36   좋아요 1 | URL
유리천장이 아니라 콘크리트 천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로그인 2016-08-2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자는 자신이 능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두려워하고 소인은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남을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의 재능을 키워주지만 소인은 남을 눌러서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담배 피우는 여자, 담배 피우는 남자






                                                                                               독립출판 << 언니네 마당 >> 여름호를 뒤늦게 받았다. 중간 과정에서 배달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이 잡지에는 청탁을 받고 쓴 내 글이 실려 있다.  제목은 " 잠재적 가해자 " 이다.  원고를 보내기에 앞서 제목을 놓고 잠시 고민했다.   

 

< 나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였습니다 > 라고 썼다가 다시 원안대로 고쳐서 송고했다. 이 자리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잠재적 가해자였고 동시에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였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내 과오에 대한 반성이지 과시는 아니었다.  옛 애인이 10년 전에 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뺨을 맞은 일이 있었다.  죄목은 여자가 감히 거리에서 담배를 피웠다는 범죄였다.  깜짝 놀랐다.  한국 사회는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밖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유죄가 되는 사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게 되면 어떻게 될까 ? 그 후, 십 년의 일이다.

 

유모차를 끌고 가던 여성이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에게 금연을 요구하자 횡단보다 앞에서 따귀를 맞은 사건이 발생했다.  여자는 아이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위력을 행사하는 남자를 밀쳤다.  연약한 여성이 밀었다고 건장한 사내가 뒤로 넘어질 리는 없었다. 

 

 

 

 

경찰이 내린 결론은 쌍방 폭행에 의한 쌍방 과실이었다.  여성이 밀친 행위를 정당방위가 아닌 폭력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토록 공평한 君師父의 황홀한 세계.  법이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규범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하는 대목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에게 법을 수호하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여성이 아니라 父를 위해 바다에 뛰어내리는 심청이나 夫를 위해 수청을 거부하고 목숨을 내놓는 춘향이다. 남자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찬미 앞에서 할 말을 잊게 만든다.

 

10년 전의 미러링이라면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남자의 뺨을 때려야 하지만 오히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지나가는 여자를 때린 것이다.  이 극단적 상황은 한국 여성 지위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다음은 언니네 마당 여름호에 실린 < 잠재적 가해자 > 전문이다.



 



 

 

 

잠재적 가해자

 


 

이십대 초입이었으니 오래 전 일이다. 나는 영화 서클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은, 그렇다고 친목 모임이라고 하기에는 단단하지 않은 결속력으로 뭉친 영화 모임의 회원이었다. 이들은 모두 시네마떼끄에서 오고가다 만난 사이였는데 뜻이 맞는 사람끼리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모임을 만들었다. 남성 두 명과 여성 두 명으로 이루어진 구성이었는데 내가 가장 나이가 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여서 영화를 감상하고 토론을 하는 모임이었다. 그리고는 감상한 영화에 대한 리뷰와 각자 맡은 분야의 꼭지 글을 모아서 팸플릿(신문도 아니고 잡지도 아닌 회지라 해 두자)을 발행했다. 이 모든 일은 인쇄소 직원으로 일하는 회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모임 장소를 제공한 사람도 그였다. 그는 이 모임의 창립자이자 든든한 스폰서였다. 매달 우편으로 발송되는 팸플릿을 집에서 받아보는 재미가 쏠쏠해서 연애 편지를 쓰듯 열심히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다 같이 모여 영화를 보는데 평소 활발하고 씩씩했던 여성 회원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면서 모니터를 내동댕이치는 일이 발생했다. 쓰러진 모니터 옆에서 여자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때 상영된 영화가 무엇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그때 일어난 일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추론하건대, 영화 속 장면 하나는 그녀가 그토록 감추려고 했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으리라. 공교롭게도 영화 속 장소가, 공교롭게도 영화 속 악당의 얼굴이, 공교롭게도 영화 속 강간 피해 여성이 입은 옷이, 공교롭게도, 공교롭게도, 공교롭게도…….

      우리는 그녀의 신경 쇠약과 히스테릭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레짐작으로 알 수는 있었다. 폭력은 공소 시효가 있지만 악몽은 공소 시효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는 순간이었다. 그 일 이후, 그녀는 더 이상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느슨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모임도 흐지부지 끝났다. 팸플릿은 폐간 소식을 알리지도 못한 채 폐간되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또 하나의 일이 생각난다. 내 옛 애인은 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남자에게 머리를 잡힌 채 따귀를 몇 차례 맞았던 일이 있었다. 늦은 밤도 아니었고 으슥한 골목길도 아니었다. 대낮, 남산 도서관 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애인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이면서 전한 말에 의하면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남자였다고 한다. 묻지 마 폭행인 셈이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여자가 감히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나는 흡연이라는 개인적 기호(嗜好)가 남자에게는 허용되지만 여자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세기말 사회에 경악했다. 그리고 본 적도 없는 그 남자를 상상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나는 그 남자가 아니니까. 상대와 나를 분리하고 나서 대상을 타자화하는 것은 쉬운 일이이니까. 그러니까, 타자와 나를 구별 짓는 행위는 위안을 주었다. 대상이 흉악한 짐승이 될수록 나는 선한 목자가 되었다. 이 프레임이 자기 기만이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꽤 흐른 후에 깨닫게 되었다.

      오래된 연인의 관계가 그렇듯이 우리는 잦은 다툼으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마음이 돌아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여자가 냉정한 얼굴로 돌아서자 나도 모르게 늦은 밤 거리에서 여자의 뺨을 때렸다. 내 안에 잠재된 약자에 대한 폭력성이 눈을 뜬 것이다. 당혹감 뒤에 찾아오는 절망감. 어쩌면 도서관 앞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여자를 때리는 못난 놈이 나였을 수도 있다는 자각을 한 계기였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앞에서 괴로웠다. "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대해서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 " 라는 표현은 내 블로그를 자주 왕래했던 사람이라면 이미 익숙한 표현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에 있어서 남성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나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평소에 나는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뿐만 아니라 성차별적 행동을 일삼는 남성도 혐오했으니깐 말이다. 그날, 나는 왜 애인의 뺨을 때렸을까.

      스탠리 밀그램은 1961<< 권위에 대한 복종 연구 >> 실험에서 인간 본성을 탐구한다. 실험 결과, 우리가 그토록 믿었던 평범한 사람의 착한 본성은 온데간데없었다. 실험 결과가 말하고 있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잠재적 범죄자라는 사실 말이다. 내가 " 남성은 여성 폭력에 대해 잠재적 가해자 " 라고 지적했을 때 부분을 전체로 확장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었다. 여성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은 고작해야 1% 미만일 것이라고, 남성 한 명의 죄를 모두의 잘못으로 확대 해석하지 말라고, 그러한 프레임 설정이 또 다른 남성 혐오 문화를 만들고 남성을 피해자로 만든다고 말이다.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에 앞서서 40명의 심리학자와 정신분석의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에게 실험 결과에 대한 예측을 하도록 했는데 대부분은 실험 참가자가 450v의 전류가 흐르는 버튼을 누를 확률은 고작해야 1% 미만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예상치는 완전히 빗나갔다. 실험에 참가한 지원자의 65%가 최고 단계인 450v 버튼을 눌렀다. 수성(獸性)이 착한 본성을 이긴 것이다. 어쩌면 당신이 예측한 (여성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남성은 고작해야) 1%는 인간의 본성을 과신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며 이성을 통제하는 것은 상황이다. 인간은 상황적 동물이다.

        1971, 독일 브란트 전 총리가 바르샤바에서 무릎 꿇고 사죄를 했던 일이 있었다. 전쟁 책임과 유대인 학살에 대한 사죄였다. 하지만 그는 가해자는 아니었다. 가해자가 아니면서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책임을 통감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꼿꼿한 허리가 아니다. 폭력은 공소 시효가 있지만 악몽은 공소 시효가 없다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때린 남자는 쉽게 잊지만 맞은 여자는 쉽게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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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8-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발님의 글이 잡지에 정기적으로 실렸으면 좋겠습니다. ^^

우리 사회에는 폭력의 고통에 겪은 사람들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요. 폭력을 가한 사람에게 분노감을 표출한다고 해서 폭력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태도로 보기 어렵습니다. 폭력은 언제 어디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1:17   좋아요 0 | URL
첫 번째 여성의 경우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 왕언니 스타일이어서 잘 챙기고 인심 좋고 입심 좋고 성격 좋고 잘 웃는 여성이었습니다. 그런 아픔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때가 제가 군대 가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때는 잘 몰랐는데 요즘 다시 그 일이 자주 떠오르네요..

cyrus 2016-08-11 11:29   좋아요 0 | URL
트라우마가 무서워요. 숨길려고 해도 어느 순간에 끔찍했던 상황이 떠오르니까요.

마립간 2016-08-11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못자국 http://blog.aladin.co.kr/maripkahn/431284

비슷한 내용의 제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그런 아픔 ; 꽤 흔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1:25   좋아요 0 | URL
마립간 님 좋은 글인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복사해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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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매우 장난이 심하고 난폭하며 잘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마치 놀부처럼. 부모님이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타이르고, 야단도 치고, 여러모로 바로 가르치려 했지만 아이는 도무지 나아지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집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부모님은 아이가 잘못을 할 때 마다 나무에 못을 하나씩 박았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그 나무에는 수많은 못이 박혔습니다.

아이가 어느 날 부모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왜 나무에 못이 박혀있냐고. 부모님은 ‘네가 잘못을 할 때 마다 못을 하나씩 박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는 못을 보고 너무 놀라 부모님께 다시는 잘못된 일을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한 후, 앞으로 선행을 하려 하는데 한 가지 선행을 할 때마다 못을 하나씩 빼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아이는 선행을 착실하게 하였고, 못은 나무에서 모두 뽑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이가 변화된 자신의 모습에 뿌듯해 하며 나무에 다가섰을 때, 나무의 못은 모두 뽑혔지만 한참 동안의 시간의 지난 후에도 그대로 있는 나무의 못자국을 보았습니다.

다락방 2016-08-1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 적에 반복적인 성추행을 당했던 저는, 제가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지만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되는데요. 곰발님이 예로 드신것처럼, 티비를 보다가 아동 성추행이 나오면 펑펑 울어버리는 거에요. 제 안에도 이 트라우마는 엄청 강한가 봅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많이 얘기하고 또 다른 많은 피해 여성들의 얘기도 함께 듣곤 하지만, 그래서 이전보다 제가 좀 나아진 듯 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그건 지울 수 없는 상처에요. 이렇게 댓글로 쓰다가도 울컥 눈물이 나요.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2:04   좋아요 0 | URL
긴 댓글을 달려다가 뭐라 할 말을 잊었습니다. 잠재적 가해자로서, 또한 한때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쾌유하시길 바랍니다.

samadhi(眞我) 2016-08-11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주로 버스에서 성추행을 많이 당했어요. 6학년 때 처음 그런 일이 있고 학교에 도착해 친구를 부등켜 안고 엉엉 울었지요. 중학교에 가서도 그런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요.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소리라도 지르지 라든가 거부를 하라는 둥 말을 합니다. 그런데 당하면 그래요. 몸이 공포로 굳어서 움직이지 못 합니다. 소리도 안 나옵니다. 삐쩍 마른 여자애를 그렇게 만져(?)댔다니까 몇 년 전에 제 친구가 저더러 터치를 부르는 몸 이라는 농담을 했었는데요.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대처했겠지만 10대 초반엔 그럴 힘이 없었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1 15:36   좋아요 0 | URL
거의 모든 여성이 성추행을 당하더군요. 이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다시 딸 아이를 가진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참 암담하죠.. 이 공포를 남성들은 잘 모를 겁니다.
그러니까 소리라도 지르지 그랬어, 멍청아 ! 이런 소리나 하고 있는 것이죠..

2016-08-11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8-11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6-08-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성추행 당하면 암말 못해요. 왜냐하면 익숙한 게 아니고 첨 당하는 거라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하게 되더라구요. 성이라는 게 우리 세대만 해도 워낙 금기시되는 분위기라서.. 저는 버스에서 당했는데 첨엔 그게 뭔지도 몰랐어요. 나중에 그 남자가 왜 그렇게 집요하게 달라붙었는지 알고 나서 분노가....

그래서 울 딸한테는 성추행 당할 때 지랄지랄거리는 법을 가르쳐줘요. 저는 성추행이란 말도 스무살 넘어서 들었을 정도로 그쪽 방면에는 무지했어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깐요. 혹 이문열에 일그러진 영웅 읽어보셨나요? 거기서 여자아이가 성추행 당하는데.. 그런가보다 했을 정도였다니깐요. 요즘은 딸뿐만 아니라 울 아들한테도 조심하라 하긴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8-12 10:03   좋아요 0 | URL
성추행 당하지 않은 여성보다 성추행 당한 여성이 더 많은 것 같군요.
하긴.. 남자들끼리 만나면 윤간한 경험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게 수컷 세계죠.
내가 아는 부류가 그런 쪽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남성은 성의식이 좀 비정상적입니다..
고대 카톡 사건만 봐도 그렇고요.

기억의 집 님 말씀처럼 정말 성교육이 중요한 것은 남자입니다..

2016-12-28 1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28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