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누구 없소 :
갑동이, 거기 없는 남자
아토피라는 피부병 때문에 알려진 아토피아(atopia)는 그리스어로 " 이상한... " , " 기묘한... " , " 원인을 알 수 없는... " 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a - > 가 부정과 결여를 뜻하는 접두사이고 < topia > 가 장소를 뜻하는 단어이기에 비장소성 혹은 탈장소'라고 번역되지만 매끄러운 조합은 아닌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아토포스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토피아가 아토포스의 명사형이니 같은 뜻이라고 하면 그들이 보기에 소크라테스는 이상하고, 기묘하며, 수수께끼 같은 남자였던 모양이다. 비장소성'이라는 딱딱한 번역투를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 지금 여기 없는 " 이다. < 지금 여기 없다 > 는 것은 < 현장 부재 증명 > 과 같은 뜻이다. 우리가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사용하는 알리바이의 뜻이 현장 부재 증명이라는 의미'다. 라틴어 alius(다른) 과 ibi(거기)가 결합한 구조로 아토포스와 알리바이는 서로 연관이 깊다. 형사가 용의자에게 요구하는 알리바이는 곧 타소 증명인 것이다.
현장 부재 증명은 타소 존재 증명이니까. 드라마 << 갑동이 >> 에서는 오래 전 화성 연쇄 살인범을 신이자 영웅으로 생각하는 백만장자 사이코패스(이준 분)가 주인공인데 그가 신이자 영웅으로 생각하는 화성 연쇄 살인범은 아토포스'다. 지금 여기 없다는 것은 비가시성을 전제로 한다. 여기 없으니 그를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백만장자 사이코패스에게 화성 연쇄 살인범의 원형은 이상하며, 기묘하고, 알 수 없는 존재이면서 신비한 존재'다. 신은 스스로 보이지 않는 존재이자 우리가 볼 수 없는 존재다.
신이란 항상 여기(가시성)가 아닌 저기(비가시성)의 세계에 존재하기에 알리바이가 없는 자'다. 그렇기에 신은 이상하며, 기묘하고, 알 수 없으며, 신비한 존재'다. 드라마에서 백만장자 사이코패스가 갑동이를 신이자 영웅이라고 고백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게도 갑동이는 신이었다. 드라마가 훌륭하다는 말은 아니다. 드라마는 13회를 기점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락한다. 추리 소설은 나는 여기(사건 현장)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용의자와 너는 여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탐정(or 형사)이 겨루는 장르다.
살인범은 여기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을 꾸미고 탐정은 사건 당시 여기에서 벗어난 거기에 있었다는 알리바이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폭로하는 사람이다. < 여기와 거기 > 의 충돌이 추리소설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인 셈이다. 롤랑 바르트는 사랑하는 대상이야말로 아토포스라고 말했는데 곰곰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사랑은 장소애'에 다름 아니다. 사랑을 추억한다는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장소를 추억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이별 후에 홀로 다시 찾은 그 카페에서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 사랑하는 그가 지금은 여기 없음 " 이다. 백만장자 사이코패스가 숭배하는 대상과 롤랑 바르트가 사랑하는 대상은 모두 아토포스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나는 종종 술에 취하면 혜어진 여자와 자주 갔던 혜화동에 있는 << 도어즈 >> 라는 술집을 찾는다. 예고 없이 자주 문을 닫는 곳이어서 늦은 밤, 그곳을 찾는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인 셈이다. 몇 번은 성공했고, 몇 번은 실패했다. 병맥주와 강냉이를 파는 소박한 술집이다. 갈 때마다, 나는 느낀다. 사랑하는 그녀가 지금 여기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은 여기에 없는 사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