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만 먹고 가지요 :
29,900원의 정치경제학
유니클로 철학의 핵심은 19,900원이다. 최저가 상품인 19,900원이라는 미끼 상품은 소비자를 매장으로 끌어모으고 장렬히 전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씨알 굵은 장작을 피우기 위해 잔가지가 불쏘시개로 쓰이는 이치와 같다. 원래 미끼 상품은 남는 게 없는 장사에 속하지만 소비자를 유혹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장사꾼 입장에서 보면 19,900원짜리 경제학은 극장에서 파는 영화표나 구멍가게에서 파는 담배와 비슷하다. 19,900원(짜리 유니클로), 영화표, 담배 따위는 매장에 진열된 다른 상품을 사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담당한 상품이다. 담배를 사면서 습관적으로 음료수나 껌을 사듯이 말이다. " 19,900원 " 이라는 표현이 소비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음, 이다. " 우주 최강 최저가 " 라는 자신감과 함께 이래도 흥정할 테냐 _ 라는 볼멘소리로도 읽힌다. 푼돈 경제학이라는 점에서 19,900원과 29,900원은 같은 의미이며, 29,900원과 39,900원, 49,900원, 99,900원도 맥락은 동일한 상품이다.
- 990원으로 끝나거나 - 9900원, - 99,900원'으로 끝나는 모든 상품은 장사꾼이 소비자의 주머니 걱정을 하며 밑지지만 팔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절대 - 99,000원으로 떨어지는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명품을 새롭게 정의 내리자면 가격의 끝자리가 - 9,900원 따위로 마무리되지 않는 상품을 의미한다. 명품은 - 0,000,000원의 세계이다. 잔돈으로 끝나는 가격은 명품의 품격이 아니다. 루이비통 가방 가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19,999,900원이라면그 가방은 명품이 아니라는 소리이기도 하다. - 999는 서민적인 숫자 조합이며 배열이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 은하철도 999 >> 에서 9열차가 999호인 이유는 999호 열차가 서민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라는 데 있다. 그런 점에서 푼돈을 경멸하는 집단인 경총이 최저 시급을 놓고 100원 단위로 깎네 마네 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러니한 풍경이다.
유니클로 철학의 핵심이 19,900원이라면, 김영란법의 핵심은 29,900원이다. 공무원, 교직원, 언론인이 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서는 29,900원짜리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온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삼겹살 2인분에 맥주 몇 병만 시켜도 30,000원은 거뜬히 나온다며 김영란법은 책상머리에서 짜낸 엉터리'라고 연일 쏘아붙이고 있다. 당장 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접대비를 30,000원에서 50,000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상황이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김영란 씨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30,000원으로 삽결살에 소주를 마실 수 있느냐가 아니다.

▶ 얻어먹는 것이 일상이 된 기자가 보기에 김영란법은 해괴하다. 특히 조선일보 기자들이 보기에는 더욱 그렇다. 제목이 << 한우의 한숨 굴비의 비명 >> 인데 행간을 들여다보면 한숨과 비명은 모두 기자들이 내뱉은 장탄식이다. 대한민국이 접대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는 국가'라면 그런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 물론 김영란법으로 인해 울상을 짓는 이도 있겠지만, 그들 때문에 김영란법을 다시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면 그것은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는 꼴과 같다. 김영란법과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언론의 발광과 호들갑을 목격하게 된다. 기자들의 속내를 드러낼 수는 없으니 애궂은 교사나 농어민 그리고 상인을 들먹이며 대대적으로 김영란 씨에게 십자포화를 때리는 모양새다. 적당히 해라.
29,900원의 정치경제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접대라는 관행을 뿌리뽑자는 것이다. 접대가 업무의 연장이라면 " 낮에 커피숍에서 만나면 되는 것이지, 밤에 술 마시며 서로 도원결의하며 밤문화를 양산하느냐 ? " 는 것이 김영란 씨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 것이다. 00,000,000의 계급을 선망한 나머지 99,999,900의 세계를 개돼지라고 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나향욱 사태'도 물밑으로 접근해서 바라보면 접대라는 관행이 만들어낸 참사'다. 이날 교육부에서 경향신문 기자 두 명을 접대하기 위해 사용된 접대비는 39만 원이다. 저녁 밥값만 1인당 8만 원짜리 요리였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경향신문 기자 - 들은 정의감에 불타서 구의역 하청 노동자의 1000원짜리 컵라면을 이야기하며
정의 사회 구현을 외쳤지만 8만 원짜리 식사를 대접받는 것에 대한 문제 의식에는 둔감한 모양이다.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가 남이 하면 불륜인 셈이다. 기자는 접대(받기)의 왕이다. 접대를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이제는 대접(간장 종지 사건) 가지고도 딴지를 걸며 기사를 송출하는 사태도 발생하게 된다. 얻어먹는 주제에 비용이 많네 적네 라고 떠드는 것 자체가 볼썽사납다. 비용이 술 마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면 술 대신 차를 마시면 될 것이고, 3만 원짜리 술상이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각자 추렴해서 더 좋은 식당에 가면 그만이다. 얼마나 간단한가. 공짜 술은 작작 마셔라. 주당인 내가 할 소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