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랑    밖    에     난     몰라   :  


 

 

 

 

 

 

 

 

신형철, 비평의 에티카



 

 

 


 

                                                                                                 신형철은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공감 없이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가 써 온 글은 모두 공감을 바탕으로 쓴 글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말은 마치 자신은 억지로 글을 쓴 적이 없다는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글을 써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이라면 쉽게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청탁을 받고 글을 써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밥벌이를 위해서는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글을 짜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형철이 공감 없이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자못 비장한 어투로 자신을 포장한다면,  조지 오웰은 텍스트에 공감하지 못하지만 밥벌이를 위해서 칭찬을 남발했던 자신을 비판한다. 그는 << 나는 왜 쓰는가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책을 무차별적으로 평하는 일을 오랫동안 한다는 건 유난히 달갑지 않고 짜증스럽고 피곤한 노릇이다. 그것은 쓰레기를 칭찬하는 일일 뿐 아니라 그냥 두면 아무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책에 대한 반응을 계속해서 날조해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 중략 )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서평을 하다보면 대부분의 책에 대해 과찬하지 않는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책과 일종의 직업적인 관계를 맺고 보며 대부분의 책이 얼마나 형편없는 것인지를 알게 된다. 객관적으로 참된 비평은 열에 아홉은 ' 이 책은 쓸모없다 ' 일 것이며, 서평자의 본심은 ' 나는 이 책에 아무 흥미를 못 느끼기에 돈 때문이 아니면 이 책에 대한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 일 것이다...(중략) 내가 보기에 최선의 방법은 대부분의 책은 그냥 무시해버리고 중요해 보이는 소수의 책에 아주 긴(최소한 1000단어는 되게) 서평을 쓰도록 하는 것이다. ( 같은 책 287쪽 )



 

 

신형철은 명색이 문학 비평가인데 비평(criticism)의 사전적 의미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그는 경향신문(2008.12.11 비평가 신형철, 4년간 익힌 문학에 대한 사랑 고백) 인터뷰에서“ 비평과 비판은 동의어가 아니다. 작품을 보고 단점을 찾아내 지적하는 것보다     미덕을 찾아내는 일이 더 어렵고 가치있는 일이며 그런 관점에서 글을 쓴다”고 말했는데,   정말...... 그럴까 ?   칭찬의 과잉이 아부이고 지적의 과잉이 트집이라고 했을 때,  트집보다 아부가 더 가치있는 일인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아부는 그 대상이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트집은 그 대상이 완벽할 때는 실패하게 되는 질투'다. 

 

영화 << 밀양 >> 에서 전도연의 연기를 두고 트집을 잡는다면 당신은 그보다 더 많은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아부보다는 트집을 잡는 일이 더 많은 제약이 따른다.  criticism은 곧 critique이다 1.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답은 명확하다. 비슷한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 비평과 칭찬 > 조합보다는 < 비평과 비판 > 조합이 계통과 계열 면에서 보다 유사한 한통속처럼 보인다. 전자의 조합은 동의어도 아니고 유의어도 아니며 반의어도 아니지만 후자는 유의어에 속한다. 신형철 식 평론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점은 " 비판은 칭찬보다 생산적이지 못하다 " 는 그의 태도에 있다.   말이 좋아 " 공감의 비평 " 이지 나쁘게 말하자면 주례사 비평이요, 정실 비평이다. 

 

" 청탁이 들어오면 해석은 가급적 모두 " 쓰겠다는 " 책과 일종의 직업적 관계를 맺고 있는 "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 아름답게 말하는 것 " 이다.  < 아름답게 말하는 비평 > 은 청탁이 들어오면 해석은 가급적 모두 써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로서는  최상의  정략적 선택인 셈이다.   저잣거리 입말로 말하자면 " 안전빵 ! " 이다.    no 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보다는 yes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출세하는 법이니까.   문학 권력 혹은 주례사 비평을 비판 2 할 때마다 자주 등장하는 이가 신형철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감 없이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 그의 고백을 내가 곧이 곧대로 믿지 않는 이유이다 3나는 그가 신경숙의 << 엄마를 부탁해 >> 와 김애란의 << 두근두근 내 인생 >> 에 대한 글에서 쏟아낸 성찬이 의심스럽다.

 

누가 봐도 큰 옷인데 옷가게 점원이 " 어머, 어쩌면 이렇게 몸에 딱 맞으실까... " 라고 칭찬을 할 때 느끼게 되는 이질감 ?!  무엇보다도 실패한 소설로 기록될 << 두근두근 내 인생 >> 을 두고 " 박수를 아낄 생각이 없다. "  라고 극찬 4 했을 때,  신형철은 문학 비평가보다는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문학을 이야기할 때보다 영화를 이야기할 때 보다 정확한 분석을 내놓는다. 그 이유는 문학과 영화가 서로 이해관계로 묶여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렇기에 << 몰락의 에티카 >> 보다는 <<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이 좋다. 그가 영화에 대해 쓴 글은 주례사나 정실 비평이 아니다.

비평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정직은 식재료이고 미문은 양념이다. 싱싱한 대구 생선에는 별다른 양념이 필요없듯이 좋은 비평의 첫 번째 조건은 양념이 아니라 정직이다. 비린내가 많이 나는,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일수록 양념이 많이 들어간다. 후자는 사심 없이 한발짝 물러나서 좋아하는 것을 진심을 담아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 몰락의 에티카 5 >> 은 나쁘고, << 정확한 사랑의 실험 >> 은 좋다. 비판은 없고 칭찬만 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어려운 한국 문학에서 고군분투하는 가난한 작가에게 힘이 되기 위해서라는 대답을 내놓았는데,  오히려 그러한 공감의 비평이 한국 문학을 고사시킨 것은 아닐까 _  싶다. 


그는 벤야민이 보들레르를 칭찬하거나 김현이 이청준을 칭찬하는 것을 들어 자신을 옹호하지만 벤야민은 < 비평가의 테크닉에 관한 13개의 테제 > 라는 짧은 글에서 칭찬보다는 비판이 비평의 덕목이라고 주장한다.  비평은 도덕적 사안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후 열정보다는 " 책을 없애버리려는 자만이 비평할 " 자격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비평가가 " 항상 대중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록 해야 " 한다고 말한다. 신형철은 가라타진 고진의 <<  근대 문학의 종언 >> 에 반하여 몰락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아가페를 고백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비평(가)의 윤리적 태도다.


아가페란 조건 없이 대상에게 다가가는 행위인데 벤야민은 " 비평이란 정확하게 거리를 두는 문제이다. 비평이란 본래 있어야 할 곳은 원근법적 조망과 전체적 조망이 중요한 세계 " 라고 말한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처럼,  과연 문학이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행위일까 ?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던 것 > 이 사실은 < 불가능한 것의 세계 > 란 사실을 일깨우는 게 문학의 본질이지 않을까.  열정적 아가페보다는 냉정한 에티카의 정립이 우선이다. 이로써 이 정리는 증명되었다.  비평가로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나는 쉽게 그에게 공감할 수가 없다 ■ 

 

 

 

 

 

 

                          

 

1)         오길영, << 힘의 포획 >>

 

2)         그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가급적 청탁이 들어오는 해설을 모두 쓰려고 합니다.”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청탁이 들어온 문학 작품 대부분은 훌륭한 작품이어서 글을 쓴 것일까 ? 내 독서 경험에 의하면 전체 독서의 20%가량 정도만 만족을 느끼는 편인데, 신형철은 청탁 받은 작품마다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놀라운 적중률이다.

 

3)     손아람은 객관적인 수치를 제시하며 대형 출판사 문예지들의 자체 공모전 혹은 책 출간 작가들의 선호현상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 1 ~ 2 년 간 대형 문예지에서 언급한 작가 혹은 작품을 찾아봤더니 대부분이 자체 출판사 공모전에 당선 됐거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사람이었다" 면서 "정확히 말해 창비에서는 20명 중 16명, 문학동네에서는 30명 중 28명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서른 번 가운데 스물여덟 번을 문학동네 관련 작가에게 할애하면서, 절대로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한 작가이기 때문에 지면을 내줬다'고 말하진 않는다. 마치 이 작가의 작품이 비슷한 시기 출간된 다른 작품들보다 문학적으로 탁월하기 때문에 지면을 내줄 가치가 있다는 것처럼 포장을 한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이건 기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 대형출판사 '공모'와 '문예지'로 작가 지배한다" 중 뉴시스 기사 내용에서 부분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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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의 지적을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자사 문예지나 자사 출판사의 작품이 아니라면 " 거들떠도 안 본다 " 는 소리이다. 신형철은 편집위원들이 좋은 작품을 골라내다 보니 그리 되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지만 좋은 작품들이 문학동네에만 몰려 있다는 것(28/30)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문학동네라는 문예지는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책(혹은 작가)를 홍보하는 창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있을 때 작성된 글 모음인 << 몰락의 에티카 >> 는 문학동네의 홍보용 팜플렛이 아닐까 ?  비평가의 덕목은 미문이 먼저인가, 윤리적 태도가 먼저인가 ?

 

4)        김애란 소설의 장점은 맹랑에 있는데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명랑만 할 뿐이다.  김애란 소설에서 맹랑이 빠진 명랑은 거품 빠진 맥주요, 탄산이 빠진 사이다'다. 명랑하지만 맹랑한 구석이 있을 때 김애란 소설은 김애란답다. << 두근두근 내 인생 >> 은 사회적 거리는 제거된 채 낭만적 골목만 비췄다. 나는 신형철이 이 작품을 두고 극찬했던 대목( 장점이 총집결되었다, 이야기의 윤리를 고민했다,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목적지에 잘 도착했다)에서 이 소설의 단점을 읽었다. 이 소설은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이 노출되었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쉬운 길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었다.  

http://blog.aladin.co.kr/myperu/7120569 : 우사인 볼트와 김애란

 

5)           << 몰락의 에티카 >>  서문은 가라타니 고진의 << 근대 문학의 종언 >> 에 대한 응답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니까 < 종언 > 에 대한 응답이 < 몰락 > 인 것이다. 가라티니 고진의 종언과 신형철의 몰락은 같은 말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 문학이 힘을 잃어 한갓 오락거리로 몰락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에 이제는 문학에서 윤리적 애티튜드를 기대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문학은< thing > 이지 < soul > 이 아니다. 신형철은 바로 그 지점에서 반발한다. 그가 서문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윤리적 애티튜드의 회복이다. 그런데, 이 태도는 웃기다. 한국 문학의 몰락을 부추긴 자는 작가라기보다는 출판 자본과 출판 자본에 소속된 편집위원들이다. 작가들이 글만 써서 먹고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문예지에 자신이 쓴 작품이 선정되기를 바라거나(손아람 작가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사 문예지에 작품을 출품하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한다. 즉, 자사 출신 작가만 키우겠다는 속셈이다), 국가 지원금 혹은 문예지에서 할애한 청탁에 의존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편집위원들의 몫이다. 작가들이 국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작가를 선별하는 것도 그들 몫이다. 그들에게 밉보이면 끝이다. 결국, 작가는 출판 자본(에 소속된 편집위원) 아래 굴복하게 된다. 그렇다면 신형철은 이 몰락에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그는 몰락에 대한 책임은커녕 몰락한 상황에 슬퍼하며 윤리성을 강조한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문학의 윤리성이 아니라 자신의 윤리성에 대한 자아 비판이다. 그는 몰락을 이야기할 자격이 없다. 그 몰락에 슬퍼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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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7-24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을 좋아합니다만 주례사비평에 대해선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죠.

제 생각에 신형철은 비난하는 글을 쓰기엔 사람이 너무 맑아요.

비난글은 저처럼 모난 사람들이 해야 ㅎ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7:01   좋아요 0 | URL
후후... 아닙니다. 시이소오 님은 모난 돌이 절대 아닙니다. 보석이십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형철은 < 몰락의 에티카 > 를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종말에 딴지를 걸며 글문을 시작하는데
아마도 근대문학의 종말이 곧 문학비평가의 종말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르트는 텍스트의 죽음을 선언했으니 문학비평가의 죽음은 당연한 겁니다.
그가 벤야민을 옹호하면서 보들레르에 대한 찬사를 들어 자신의 달달한 비평을 옹호했지만, 벤야민이 ˝ 바보들이나 비평의 쇠퇴를 애석해 한다. 비평의 맥락이 끊어진지는 이미 오래이다, ˝ 라는 말을 한 것은 미쳐 깨닫지 못한 것 같습니다. 벤야민은 보들레르를 문학 텍스트으로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문화 현상으로써 문학을 관찰한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뭐.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니 제 비판을 타인에게 강요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글을 잘쓰는 비평가인 것만큼은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저는 다만 비평가로서의 윤리성을 지적하는 것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형출판사가 내놓은 문예지의 편집위원들은 안전한 밥그릇을 차지 하고는 스스로, 그러니까 문학비평가를 프랑켄슈타인 박사에, 문학 작품을 괴물로 위치지었다. 그들이 보기에 자신들의 비평적 개입은 죽은 자(작품)에게 숨을 불어넣는다고 착각한다. 즉, 자신들의 마사지를 통해 작품은 새 생명을 얻는 것이다. 손아람 작가가 지적했듯이 문예지에서는 항상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평가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같은 문예지 출신의 작품을 선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착각한 결과가 한국 문학의 죽음이다. 문학은 비평의 하위 주체가 아니다. 남진우, 권혁욱, 신수정, 권희철, 신형철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그들은 새 숨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를 흡혈한 것이다. 불어넣다가 빨아들이다를 혼동하지는 말자.

stella.K 2016-07-24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저도 그점이 미심쩍어요.
각 출판사에서 주관하는 문학상이 얼마나 권위 있을 수 있으며
얼마나 공정할 수 있는 건지.

지난 번 정지돈의 책을 저도 난도질 했지만 정지돈이 욕을 먹는 건 어찌보면
필요 이상일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정지돈 같이 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평단이 마치 정지돈이 대단한 사람이 나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거죠. 또 스스로도 잰척 한 것도 없지 않았고.

냉정한 의미에서 밟힘을 당해봐야 그 작가가 더 클 수 있는 작가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평론가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혹독한 독자에 의해서 크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론가가 주는 설탕물을 먹고 자라는 작가는 기형이 될 확률이 많죠.
오래 살아남지도 못하고.
저는 천명관을 지지하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작가와 독자 사이에 평론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똑똑한 편집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9:51   좋아요 0 | URL
저는 정지돈 책을 읽지 않아서 정지돈 스타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소설 같지 않은 소설 경향은 요즘 추세이기는 한가 봅니다.
하긴 여러 매체에서 정지돈을 이야기하는 걸 보긴 봤씁니다.
스타일에 새롭나 보죠 ?

전 비평가가 비평가다워야 한다면 가급적이면 작가들과의 접촉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친구아이가, 이러다 보면 친분 때문이라도 좋은 평론 못 쓰죠.
제가 비평가가 팟빵 하면서 작가들 초대하고 뒷풀이로 술마시는 꼴을
못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손석희가 그런 말을 했죠. 자신은 100분 토론의 공정성을위해서
일부러 사람들을 안 만났다고요.

이런 이야기는 문재인도 했죠. 그가 수석을 지낼 때
항상 혼자서 밥을 먹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고립성이 필요하죠. 비평가에게는 말이죠..
비평가와 작가가 형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 굉장히 보기 안 좋습니다..

stella.K 2016-07-24 21:37   좋아요 0 | URL
햐아~!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군요.
손석희와 문재인.

스타일의 다양성이라면 정지돈도 있을 수 있다는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작가들은 자신이 작가가 되는 순간 독자였던 때를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본질이 아닌 비본질적인 문체 등에만 매달린다는 거죠.

곰발님은 정지돈 읽지 마십시오.
혈압 올라갑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5 10:53   좋아요 0 | URL
읽지 말라면 읽는, 청개구리 습속을 가진 저로서는 언젠가는 읽게 될 것입니다.
저는 스타일의 다양성은 지지하는 편입니다.
한때 장정일도 무지 새로운 스타일이었죠.


솔직히 저는 전문 교육을 박은 문학비평가의 비평보다는 차라리
교육 받지 않고 쓴 서평가의 서평을 더 신뢰하는 편입니다.

가만 보면 한국 문학은 비평가가 운을 띄우면
독자들은 그 기준에 맞춰 작품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stella.K 2016-07-25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분명히 화날 텐데... 근데 곰발님 보시고 어떻게 평하실지 궁금하긴 하네요. 그러지 마시고 제가 일전에 말씀 드렸던 영화나 보시고 평 좀 해 주시지... 아, 그러면 안 되겠구나. 일전에 말씀 드렸던 그 영화 절대로 보지 마십시오!ㅋ

그게 다 주입식 교육의 폐해 아니겠슴까.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5 14:40   좋아요 0 | URL
기회 되면 그 영화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ㅎㅎ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평화 발자국 9
김수박 지음 / 보리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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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람의 목숨, 한순간의 쾌락





                                                                               속초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다. 택시를 타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간다고 했을 때 택시비는 5000원이면 족하다. 그래서 속초에서 머물 때 버스를 탄 기억이 별로 없다 1. 동네가 작다 보니 또래끼리는 한 다리 건너 혈연, 지연, 학연으로 얽힌 사이'다. 서로 인사하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대충 누군지는 알고 있다. 심지어는 외지인에 속하는 나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알음알음 알고 있었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 이름은 < 바다네 > 였다. 외동아들 이름을 따 지은 식당인데 보수적인 색깔을 가진 동네 사람들은 식당 주인 내외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아내는 식당을 운영하고 남편은 카센터를 운영했는데, 부부는 모두  진보 정당 당원이었다. 부부의 교육관도 튀었다. 외아들인 바다'만 봐도 그렇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바다는 어깨 밑으로 내려오는 긴 머리에 노란색으로 염색을 했다. 바다는 방과 후 드럼을 배우러 다녔다. 바다의 선택은 아니었다. 부모가 피아노 학원이나 태권도 학원 대신 드럼 학원에 보낸 것이다. 피아노보다는 다른 악기를 가르쳐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이는 말수가 거의 없었지만 나를 잘 따랐다.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이스크림을 사 주고는 했으니까.  아이는 나를 부자라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자라는 것이다. 피식,  웃었다.     부모가 바다에게 바라는 것은 딱히 없었다.    자유로운 바다가 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저씨를 강원도 좌파 아저씨라고 부르곤 했다. 보궐 선거 때 진보 정당을 찍기 위해 잠시 서울에 내려가야 한다고 했을 때는 그는 진보의 승리를 기원하며 나에게 차비까지 주었다. 우린 종종 식당 문을 닫고 식당에서 술을 마셨다. 그때 강원도 좌파 아저씨가 내게 인상적인 이야기를 했다. 아무개 딸이 도시 나가서 병을 얻어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무개는 딸이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좋아라 했는데, 이만저만 슬픈 일이 아니었다고.

 

그 딸이 죽었단다. 병원 치료 받고 집으로 오는 길,  딸은 택시기사인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 뒷자리에서 숨을 거뒀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이 덥다 해서 차창을 열고 춥다 해서 차창을 닫았다고. 그게 딸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고. 좌파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슬픈 사연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이야기가 삼성 반도체 공장에 다니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황상기·황유미 부녀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이야기는 << 또 하나의 약속 >>  이라는 영화를 통해 알려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영화는 실망스러웠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라운드펀딩에 참가한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영화보다는 김수박의 만화 << 사람 냄새 >> 가 깊은 울림을 주었다.

 

만화에는 황유미 씨의 손글씨가 삽입되어 있는데 그 글씨체를 보는 순간 마음이 생강처럼 아렸다. 손목에 주저흔을 남긴 사람의 흉터를 보는 기분이었다.   죽은 사람이 쓴 글씨체는 항상 흉터로 다가온다. 황상기·황유미 씨 부녀가 삼성 반도체에게 요구했던 것은 소박했다.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산재 처리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국가로부터 치료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삼성은 냉정하게 거절했다. 그들이 툭, 내놓은 것은 500만 원이 전부였다. < 이건희 성매매 사건 > 보도 후,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를 돕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죽어가는 딸 앞에서 삼성이 "이걸로 끝내자"고 딸의 병원비로 내민 500만 원... 치료비가 없어 그걸 뿌리치지 못해 눈물 흘린 유미 아빠 황상기씨는 9년 동안 삼성과 세상을 향해 삼성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이 처한 실상과 산재 사망을 알려왔다. 삼성이 온갖 수작으로 은폐하려 했지만 76명의 죽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삼성은 반성은 커녕 세상을 조롱하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회사의 비호하에 아무렇지도 않게 벌인 불법 성매매 (의혹) 뉴스를 보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성매매 (의혹) 여성에게 건넨 500만원...유미와 유미아빠에게 삼성이 건넨 500만원은 조롱의 돈이다.




한사람의 목숨과 한순간의 쾌락이 동일한 값으로 처리되는 과정을 보면서 삼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단체 교섭할 권리, 임금 협상할 권리 등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무노조 경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삼성은 탈법을 넘어 초법적 기업인 셈이다.  사람 위에 헌법 있고, 헌법 위에 삼성이 군림하고 있다. 사람들은 삼성이 망하면 이 나라가 망한다고 걱정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업 하나가 망한다고 나라 전체가 망한다면 그런 나라는 차라리 망하는 게 낫다고 말하곤 했다.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삼성이 망해야 대한민국이 산다. 삼성은 반드시 망해야 한다. 노키아가 망했다고 핀란드가 망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열대야에 잠을 설쳤다. 잠시 후, 쏴아 ~  비가 쏟아졌다. 열대야에 내리는 비는 더위를 식혀 주니 시인 두보가 말했던 호우(好雨)2 못지 않다. 아,  바다 보고 싶다. 내가 500원짜리 비비빅을 고를 때 항상 2000원짜리 프리미엄 아이스크림을 골랐던 아이. 가난한 내 주머니 사정은 고려하지도 않고, 그렇게 눈치도 없이 ■ 






​                                                        

1)       속초에 머물 때 제일 먼저 산 물건은 자전거였다. 속초는 자전거 하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2)       雨知 (호우지시절 당춘내발생 수풍잠입야 윤물세무성 ; 단비는 시절을 알아차려 봄을 맞아 모든 걸 펴 나게 하네. 바람 따라 살그머니 밤에 들어와 만물을 적시되 가늘어 소리 없구나.)<두보 춘야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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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개미 2016-07-24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은 피도 파랗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08:42   좋아요 0 | URL
파란 피라면 뭐.. 메뚜기 그런 종류인가 보군요. 요즘은 쥐, 닭, 메뚜기 이런 것들이 사람 흉내를 내는군요..

만화애니비평 2016-07-2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로공단 보면서 여성노동자들이 그렇게 사라져가는구나 라고 느꼈죠. 또 하나의 약속, 야속한 세상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4:06   좋아요 0 | URL
위로공단을 아직 보진 못했습니다. 전 남자가 요즘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남자가 요즘 사는 게 힘들 정도면 어제는 더 힘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시이소오 2016-07-24 16: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오백만원인건가요? 떡칠때는 회당 이천이면서. 삼성은 꼭 망할겁니다. 삼성 망하는날 축배를 듭시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7:18   좋아요 1 | URL
회당 따지면 2000이죠. 자기네 상품 만들다가 23살 꽃다운 나이에 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동자에게는 그토록 인색했던 자가 이 짧은 쾌락을 위해서는 2000천 을 펑펑 쓰는 것을 보니 역겹기 그지없더군요.. 삼성이 망할까요. 네 이웃님 말씀에 의하면 이 나라가 망해도 삼성은 망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이 말에 공감합니다.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시이소오 2016-07-24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 십년안에 망합니다. 안 망할수가 없는구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8:13   좋아요 0 | URL
rmfjgt그렇습니까 ?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권불십년이라...

2016-07-25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5 10:50   좋아요 0 | URL
피가 푸르다길래 그냥 메뚜기라 한 겁니다. 누구의 의인화는 아닙니다..
 

 


 

 

 

 

 

 

 

 

                                                         

 

나향욱 사건이 9월 8일 이후에 벌어졌다면 : 

 

 

 

 

 

 

 

 



만찬 앞에서 가난을 말한다는 것







                                                                                                 검색창에 나향욱이라고 입력하면 개돼지'라는 연관 검색어가 자동적으로 노출된다. 쉼 없이 읽으면 " 나향욱(은) 개돼지 ! " 가 된다. 그가 그토록 멀리 내다버리고 싶었던 개돼지는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가 되어, 사면발니처럼 몸에 달라붙어서,  이제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문득 그는 개돼지(발언) 때문에 개돼지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개돼지였기에 개돼지 발언을 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일로 변절한 조선인이 자기합리화를 위해 내놓은 것이 " 조선(인)은 우매하다 " 는 변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욱 씨의 혐오는 타자를 향한 혐오가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계급에 대한 혐오가 되는 셈이다.  요샛말로 말하자면 셀프 - 디스인 셈이다.  영화 << 아가씨, 2016 >> 에 나오는 백작(조진웅 분)처럼 친일에 부역했던 조선인이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 일본인보다 조선을 더 경멸했던 예는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박정희'다.  그는 천황에게 혈서를 써서 충성을 증명했다.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눈보라가 휘날리는 만줄 벌판에서 천황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 오갱끼데스까. 와따시와 갱끼데스 ! " 출세를 위해서라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우리'에 침을 뱉는 행위,   박정희는 성공했고 나향욱은 실패했다.  향욱 씨는 나르키소스보다는 메두사에 가깝다. 나르키소스가 자기애에 따른 죽음이라면 메두사는 자기 혐오에 의한 죽음이니까.  하지만 자기애와 자기혐오는 서로 상반되는 감정이 아니라 뱀처럼 " 서로 얽힌 감정 " 이다.  자기애가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혐오 1 도 강하다.  대상에 대한 기대치가 클수록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실망도 그만큼 큰 법이지 않은가. 나향욱을 지지할 생각은 1%도 없지만 사건에 연루된 경향일보 기자도 그리 떳떳한 태도는 아닌 것 같다.

양비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불의에 대항한 정의로운 기자의 울분 따위로 보이는 것에 대한 반감 탓이다.



 

나향욱의 개돼지로 2주일 살아 보았다      :     링크를 걸어 둔 글에서 내가 공감하는 것은 " 그날 나 씨를 비롯한 교육부 공무원과 기자 등 총 5명이 한정식집에서 39만 원 어치의 음식과 술을 먹었다고 한다. 1인당 약 8만 원이다. " 라는 대목이다. 술값은 교육부가 지불했다고 한다. 이 말은 국민 세금으로 술값이 쓰였다는 뜻이다. 공직자와 언론인이 식사 비용으로 3만 원 이상을 대접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는 김영란법(2016.9.8 이후 시행) 을 염두에 뒀다면 1인당 식사비 8만 원짜리 자리에서 구의역 컵라면 운운하며 주먹 불끈 쥔 기자 역시 떳떳하지는 않다는 소리'이다. 접대를 당연시하는 기자들의 태도는 언론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실천요강에는  "(기자협회) 회원은 취재원으로부터 제공되는 일체의 금품, 특혜, 향응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만약에 이 사건이 2016년 9월 8일 이후에 벌어졌다면 기자는 떳떳하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있었을까 ? 그들은 40만 원짜리 공짜 상차림 앞에서 이른 아침 구멍가게에서 산 1000원짜리 컵라면을 먹지도 못하고 죽은 청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2 이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뜻은 아니다. 나향욱은 똥 묻은 개가 맞고 그 사실을 알리는 것이 기자의 일이라는 것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기자들이 주먹 불끈 쥐며 정의 운운하는 것은 웃기다. 그동안 언론이 김영란법에 대해 유난히 까칠하게 반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론 종사자들이 김영란법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기자들은 접대만 받다 보니 접대 문화의 폐단을 잘 모르는 모양 3 이다. 신문사에서 추렴 문화를 장려할 때마다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클래식 공연 기획자가 기자들의 공짜 티켓 요구(혹은 할인 티켓)에 질려버려서 아예 " 할인 티켓 제로 선언 " 을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기자들,  공짜 너무 좋아한다 ■


​                                                 

1)       박애적 성격이 강한 사람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보다 자기 혐오가 약하다.

2) 

3)       접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중국집에서 간장 대접 안 준다고 거의 실명 비판에 준하는 비난을 쏟아냈던 기자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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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3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3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amadhi(眞我) 2016-07-23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아있는 기자가 참 드문 세상입니다. 매일 벌어지는 기막힌 뉴스들을 만나며 양극화, 계급화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고 있음을 인식합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예요. 그런 일에 가장 민감한 직업군이 오히려 변질되기 쉬운 법인 듯해요. 기자같은 사람들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07:07   좋아요 0 | URL
기자들의 갑질은 유명하죠. 하물며 조선일보 기자들의 갑질은 얼마나 심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열대야에 잠을 설쳐 일어났더니 밤에 비가 오더라고요.. 얼마나 좋던지...

samadhi(眞我) 2016-07-24 07:50   좋아요 0 | URL
여긴 춥습니다 ㅋㅋ 개 데리고 계곡 가세요. 팔 다리가 시려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08:40   좋아요 0 | URL
앗. 지금도 야영 중이시군요 ?

samadhi(眞我) 2016-07-24 09:29   좋아요 0 | URL
네 ㅎㅎ 여름엔 그냥 자연에서 살아요. 주말 뿐이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3:51   좋아요 0 | URL
좋겠수다.. 쳇 비나 와라 ~~

samadhi(眞我) 2016-07-24 14:27   좋아요 0 | URL
비 와도 우린 우중 캠핑을 즐기지만 너무 맑아서 철수하는데 더워죽을 뻔 했어요. 우리 명당 자리를 누군가 차지해서 햇볕드는 곳에 자리잡았더니... 울 남편 친구랑 당구친다고 오늘 일찍 철수했어요. 에구 더워라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4:3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아이고. 알콩달콩 사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철수하실 때 왜 송곳으로 텐트 몰래 찢고 가시지 그랬습니까..

samadhi(眞我) 2016-07-24 14:40   좋아요 0 | URL
엥? 왜요? 텐트 하나 사려면 허리가 휘는데요. 저는 중고로 샀지만 ㅋㅋ 한번도 안 쓴 중고
미친듯이 다녀서 그 값 충분히 뽑았다 할 수 있지만.

samadhi(眞我) 2016-07-25 09:03   좋아요 0 | URL
저는 남편 당구 치는 동안 책이나 읽으려고 했는데 남편친구놈(전부 동갑이라 친해요)이 울 시누이한테 연락해서 저랑 놀아달랬나봐요. 저랑 같이 차 한잔 하고 울 시누이네 집 근처에 헌책방 생겼다고 둘이 거기 가기로 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15:01   좋아요 0 | URL
농담이에요. 명당자리 차지한 그 텐트 찢고 오라는 농담...ㅎㅎ
 

 

 

 

                                                      

​내 이웃의 끝없는 아아와 오오뿐1 :

내 곁에 네가 너무나 많다

                                                                                                        엄기호는 << 단속사회 >> 라는 책'에서 한국 사회를 " 곁을 밀치는 사회 " 라고 말한다. 공동체의 해체를 두고 한 말이다. 곁을 밀치는 사회는 가수 임재범이 무릎 꿇고 " 내가 만약 외로울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바로 여러분 " 라고 절규하듯 노래할 때 < 바로 여러분 > 이라는 가사가 삭제된 사회'다. 한국 사회는 내가 만약 외로울 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_ 로 끝나는 사회'다.

그런데 엄기호가 말한 곁을 밀치는 사회라는 표현이 계속 입에 겉돈다. 내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 밀치는 사회 > 가 아니라 < 밀어붙이는 사회 > 다. 전자가 " far away " 라면 후자는 " close-up " 된 사회다. 엄기호는 인간 소외 현상을 " 내 곁에 아무도 없다 " 에서 찾지만 그것은 본질이 아닐 수 있다. 핵심은 < 아무도 없다 > 가 아니라 < 너무나 많다 > 가 아닐까. 즉,  한국 사회의 소외 현상은 " 내 곁에 너무나 많다 " 에서 찾아야 한다. 나향욱 씨가 민중을 개·돼지라고 말했을 때 그가 본 것은 " 다닥다닥 붙어사는 " 서민의 꼬라지였을 것이다. 꼬라지 하고는.....   인간을 짐짝 취급하거나 개·돼지 취급하게 될 때 제일 먼저 박탈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영토권'이다.

인간에게는 < 사회적 거리 > 와 < 개인적 거리 > 가 존재한다. 일상을 관찰하다 보면 사람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사회 생활을 유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신사일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거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신사는 대화를 할 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개인적 거리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팔을 뻗어 악수를 할 때 발생하는 거리가 " 개인적 거리 " 이다. 그 거리보다 더 가까이 다가서면 상대방은 불편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꼰대들은 종종 이 거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위계를 이용해서 너무 가까이 붙는다. 성추행이 대표적인 경우다. 성추행은 개인의 영토권을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 새끼가 너무 가까이 다가와 붙을 때가 성추행이다.

 

▶   제국의 배가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본국으로 싣고 가는 이미지. 이 폐소공포증적 상황은 타인이 내 곁을 침범할 때 발생한다. 이 장면에서 개인적 거리(개인의 영토)는 파괴된다. 그들이 보게 되는 것은 클로즈업된 타인의 신체'다. 그들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인식한다. 포르노도 마찬가지'다. 포르노는 집요하게 부분을 탐색한다. 나치에 의해 가스실에 갇힌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미지와 겹친다.  " 옷은 곁을 만드는 상품 " 이다. 발터 벤야민은 << 아케이드 프로젝트 1,2 >> 에서 옷은 계급 차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발달했다고 지적했는데 비싼 옷을 입은 사람일수록 사회적 거리는 확장된다. 백성은 먼 발치에서나마 그를 볼 뿐이다. 반면 헐벗은 자에게는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헐벗었다는 것은 영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의 상인이나 나치 부역자들이 노예와 유대인에게서 옷을 벗기는 행위는 " 인간 부정 " 에 있다. 호모 사케르, 벌거벗은 존재는 인간이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에게 행위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개인적 거리를 제거한다는 것은 곧 인간의 권리를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노예선에 갇혀 짐짝 취급을 받던 아프리카 흑인이나 가스실에 갇힌 홀로코스트 유대인은 개인적 거리가 파괴된다. 나향욱이 99%를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얻는다는 것은 " 거리의 확장 " 을 의미한다.  최고 권력자는 가장 넓은 영토권을 확보한 자이다. 그가 보기에 아침 출근길 2호선 지옥철 풍경은 개인적 거리를 잃은 개, 돼지나 다름없다. 고양이에게 쫒기던 쥐가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르면 도주를 포기하고 태도가 돌변하여 고양이와 싸우는 이유도 개인적 거리의 붕괴에 있다. 개인적 거리는 도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간격이기 때문이다.

▶   악수 행위는 상대의 돌발 공격에 대처할 수 있는,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경고'다. 상대가 주먹을 휘둘렀을 때 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 두기'인 셈이다. 이 거리 두기에 실패하게 되면 상대가 휘두른 주먹(혹은 무기)에 상처를 입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묻지 마 범죄는 개인 일탈이라기보다는 다닥다닥 붙게 되는, 곁을 타인에게 침범당한,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데에서 찾아야 한다. 고시원이라는 공간에서 유독 묻지 마 범죄가 빈번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클로즈업된 초밀접 근경사회'이다.  보드리야르가  클로즈업된 얼굴은 가까이에서 관찰한 성기와 똑같이 외설적이다. ” 라고 말한 이유도 개인의 영토권과 관계가 깊다. 이미지가 아닌 일상 생활에서 클로즈업된 얼굴을 볼 수 있는 상황은 키스를 하거나 섹스를 할 때(혹은 얼굴을 들이밀며 싸움을 할 때)가 전부다.

섹스를 하는 관계란 다른 말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개인적 거리를 허용한 관계라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보드리야르가 클로즈업된 얼굴은 포르노라고 말한 이유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포르노 사회인가 ?  에둘러 말하지 말고 서둘러 말하자면,      " 그렇다 ! "    먹방이 포르노인 이유는 식욕이 성욕의 은유이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클로즈업된 이미지를 집요하게 사용한다는 데 있다. 한국 사회는 너무 다닥다닥 붙었다. 옆집에 사는 이웃의 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훤히 아는 사회가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더덕더덕 붙어살다 보니 옆집의 섹스라이프는 꿰뚫고 산다.

 

이웃집 아내가 흥분하면 아, 라고 하는지 아니면 오, 라고 하는지도 말이다. 이게 무슨 미더덕 같은 삶인가. 내 곁엔 네가 너무도 많아 내가 쉴 곳이 없다. 한국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곁을 밀치는 것이다

 

 

 

 

 

 

 

                                   

 

우리 청춘의 끝없는 < 아아 ! > 와 < 오오 > 뿐 ㅣ 니체, 즐거운 지식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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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2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하나로는 부족함..100개는 되어야 하는데요...공간의 이격거리가 그래서 중요하거든요..너무 붙어 살면 숨이 막혀서 ㄷㄷㄷㄷ적당히 떨어져야 사람도 그리운 법이지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서로 못이 되어 찌르게 되는 경우겟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2:00   좋아요 1 | URL
이거 완성된 글이 아니어서 실수로 올려졌기에 지우렬고 왔는데 댓글이..ㅎㅎ
에드워드 홀의 << 숨겨진 차원 >>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무척 흥미로운 책인데... 거기에서 사회적 거리와 개인적 거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거리를 탐구한 학자이죠...


왜 쥐 실험에서 평화롭게 살던 쥐들이 인위적으로 개체수가 증가시키면 그때부터는 적정량이 될 때까지 서로 물어뜯어 죽이는 실험 결과 있잖습니까. 한국 사회가 그꼴입니다..

마립간 2016-07-21 12:06   좋아요 0 | URL
그 거리에 시간의 개념을 포함시켜도 동일하게 작동할 것 같습니다.

아주 짧은 거리에는 양자역학이 아주 먼 거리에는 상대성 이론이, 인간적 거리에서는 뉴턴 역학이.
아주 짧은 시간에는 양자역학이 아주 먼 시간에는 상대성 이론이, 인간적 시간에서는 뉴턴 역학이.

생각할 시간과, 감정을 환기할 시간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2:16   좋아요 0 | URL
포르노 이미지가 순간의 쾌락을 위한 것이니 마립간 님이 거리를 시간으로 도치하는 것도 일리가 있군요..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 종종 지하철에 있는 승객 30명이 30명 모두 핸드폰을 들여다볼 때
자주 공포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yureka01 2016-07-21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좋은 글인데 지우기는 요..지우지 마시고 오픈 시켜 놓으시길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2:03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그럼 오픈 결정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2:37   좋아요 1 | URL
제가 유레카 님 이미지를 좀 긁었씁니다..

yureka01 2016-07-2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미지니까 문제없죠^^.

cyrus 2016-07-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로즈업은 포르노그래피’라고 먼저 말한 사람이 보드리야르였군요. 저는 한병철의 생각인 줄 알았습니다. <아름다움의 구원>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4:14   좋아요 0 | URL
정확힌 출처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보드리야르가 << 섹스의 황도 >> 에서 했던 표현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stella.K 2016-07-21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남자연예인들 성폭행 사건이 좀 이해가 안 가요.
이게 이렇게까지 꼬리의 꼬리를 물 수가 있는 건가?
어찌보면 사생활인데. 10시간 넘게 조사 받고 나왔다고 하면
다 까발려졌을 것 아닙니까?
조사란 명목에 이것 또한 정신적 학대는 아닌가?
상대 여성은 꽃뱀으로 몰리고. 이거 뭐하자는 낭장판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걸 보도하는 것들도 그렇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4:24   좋아요 0 | URL
뭐. 합의 하에 이루어지면 사생활이 되지만(100% 지켜져야 되지만...)
이미 강간 당했다고 고발한 사건이니 사생활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기는 합니다.
사생활이란 어디까지만 법적 테두리 안에서만 존중받아야지 그것이 범법이 될 경우
법의 영역으로 가는 것이니 말이죠..

사실.. 이진욱 같은 경우는 납득하기 모호한 구석이 있긴 있습디다..

기억의집 2016-07-21 15:21   좋아요 0 | URL
이진욱건은 저도 여자지만 약간 의심스럽더라구요. 블라인드를 달아준다고 이진욱이 전화를 해서 여자가 주소와 현관번호를 알려주었다는데..... 제가 블라인드나 커튼봉 달아봐서 아는데, 밤 11시에 블라인드 설치하면 이웃 주민 칼 들고 옵니다. 전동드릴이 소음이 장난 아니여서. 게다가 낮도 아닌 밤에 이진욱이 블라인드 달아 준다는 미끼 던질 때, 미끼 안 물고 싶다면 이 밤중에 무슨 블라인드를 다냐고 거절했을텐데... 좀 이상하더라구요. 상황이.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5:31   좋아요 0 | URL
뭐 커피 한 잔 하고 가겠지... 그런 생각으로 알려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로 메시지를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소를 알려준다는 메시지를 이진욱은 잘못 이해하고
블라인드를 달아준다는 메시지를 여성도 잘못 이해하고... 뭐 그런 것 아닐까요.. ㅎㅎ

2016-07-21 15: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7-23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간과 포르노가 이렇게 연결되는군요. 통찰력에 xx를 탁 치게 만드는 글이네요. 근데 곰발님 생각에 나쁜 글이라도 왠만하면 안지우셨음해요. 곰발님 지우신 글중에 다시보고싶은게 두개 정도 있음. 그거 너무 아쉽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4 07:2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ㅎㅎ.. 짧은 글들은 메모처럼 후딱 쓴 글들이어서 별 생각없이 지우고는 합니다.. 앞으로는 신중하게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                     

두 개의 象  :



백설공주 외전(外傳)








                                                                                                       거울은 신기한 힘을 가졌다. 상(象)은 동일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달라진다. 자신감이 넘쳤을 때 거울을 보게 되면 잘생긴 얼굴처럼 보이지만 우울할 때 거울을 보게 되면 못생긴 얼굴처럼 보인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순간이다.  즉, 象은 같지만 對象은 같지 않다. A ≠ a 다.  이 차이는 마음이 대상에게 투사된 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울을 통해 보는 대상'은 시각 이미지라기보다는 지각 이미지(게슈탈트)에 가깝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은 인지상정이다보니 거울 속 대상이 잘생겨 보이면 " 나 - 답다 " 고 느껴지고, 반대로 못생겨 보이면 " 나 - 답지 않다 " 고 느껴진다.

전자는 거울 속 대상을 < 낯익은 것, canny > 으로 후자는 < 낯설은 것, uncanny > 으로 인식하게 된다. 나 - 답지 않다는 것은 " 내 안의 너 " 를 인식하게 된다는 소리이다. 농담 반 진담 반 섞어서 말하자면 " 거울 속 타자는 항상 못생겼다 "   거울 속 나는 자아이면서 동시에 타자이다.  그것은 시인 이상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현실 속 < 오른손잡이인 나 > 와 거울 속 < 왼손잡이인 나 > 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과 일치한다. 판타지를 다큐로 각색하자면  :   동화 << 백설공주 >> 에서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하는 " 거울 - 이미지 " 는 왕비의 불안이 만든 환시幻視요, 환청幻聽일 가능성이 높다. 그녀는 노화가 진행되는 육체를 보며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면 < 황홀한 남근 > 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왕비가 거울을 보며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냐 _ 고 묻는 순간, 이미 그녀는 자신감이 결여된 상태가 아니었을까 ? 왜냐하면 자기 모습에 자신감이 있다면 굳이 자기와 타인을 비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꾸밈 > 은 자신을 향한 애정이면서 동시에 타자에 대한 의식'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자신을 치장할 필요가 없다.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못생겨 보일 때는 아름다운 대상을 본 이후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창회 모임에서 몰라보게 예뻐진 동창을 보고 났을 때가 그런 경우'다.  왕비가 거울에게 묻는 순간도 이와 같다.

왕비는 백설공주가 자신보다 예쁘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녀가 거울을 통해 보게 되는 백설공주 象은 거울 기계가 스스로 내린 판단 결과가 아니라 왕비의 마음이 투사된 결과'다. 거울은 평범한다. 왕비가 가지고 있는 거울이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거울이나 똑같다. 그것은 말하지도 않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사람을 비추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 낸 환시요, 환청일 뿐이다. 그렇기에 왕비가 거울을 통해 본 실제 상은 자신이지만 왕비는 자신을 타자(백설공주)로 인식한다. 성형 중독에 빠진 사람의 심리는 왕비의 심리와 동일하다. 성형 중독에 빠진 사람은 거울을 통해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그들은 자기 얼굴에서 결핍을 본다. 이마는 손예진처럼 되었으면, 코는 심은하처럼 되었으면, 입술은..... 즉, 성형 중독에 빠진 사람은 거울에서 자기 얼굴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닮고 싶은 타자를 열망하게 되는 것이다. 왕비는 성형 중독에 빠진 사람의 원형이다.

 

▶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타자로 잘못 인식한다면,  오비디우스의 << 변신 이야기 >> 에서 나르키소스는 물 속에 있는 남자를 디오니소스로 인식한다.  왕비의 오류와 나르키소스의 오류는 동일하다.

 

거울에서 타자를 본다는 것은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했던가 ? 나는 이 욕망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변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 욕망에 가깝기 때문이다. 포유동물은 결핍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보려는 경향이 있다. 거울은 두 개의 상을 반사한다. 하나는 자신이며 다른 하나는 타자이다. 나는 타자이다(Je est un aut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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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7-20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Jedes Ding hat zwei Seiten...^^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0:51   좋아요 0 | URL
복사해서 해석했씁니다. 모든 것은 양면이있다는 뜻이군요. 전 오타인 줄 알았씁니다..

표맥(漂麥) 2016-07-20 11:15   좋아요 0 | URL
랭보의 Je est un autre 를 보니... 유일하게 외우고 있는 저 독일어가 그냥 생각이 나더군요...(랭보는 프랑스인이지만요)
이번 곰~발님 글은 우와~ 감탄이 나오는... 참 괜찮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1:56   좋아요 0 | URL
제 문장 실력이 일취월장했는지 이웃들로부터 칭찬을 듣곤 하네요.
미친 문장을 넉넉한 마음으로 봐 주시다니 고맙습니다..

미친 문장이 아니라 미천한.. ㅋㅋ

2016-07-20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1:57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뒤늦게 신화에 빠져서리.... 신화 공부 좀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신화와 연결해서 보게 되네요..

고양이라디오 2016-07-20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는 타자이다.` 멋진 문구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2:33   좋아요 0 | URL
랭보의 그 유명한 시구입니다.. 시 제목은 생각이 나진 않지만...

cyrus 2016-07-20 1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텔레비전은 24시간 돌아가는 입체 거울입니다. 닮고 싶은 사람들이 매일 계속해서 나오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0 13: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텔리비전은 24시간 풀가동 입체 거울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7-20 2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울을.. 깨 버릴까요?? ㅋㅋ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 별로 안좋아합니다 ㅎㅎ
꼭 변신을 해야할것 같아서요~~ 변신하든 안하든 여자는 무죄입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21 11:50   좋아요 0 | URL
지금행복 님 댓글 읽다가 갑자기 노래 하나 생각났씁니다.
김국환의 접시를 깨자인가요...

맞습니다. 변신하든 안 하든 무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