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의 썸머 - 아웃케이스 없음
마크 웹 감독, 조셉 고든 레빗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

 

 

 

 

                                                                                요리에는 젬병이다. 한때는 요리에 취미를 붙여볼까_ 하는 마음으로 요리책을 사서 연습을 하기도 했으나 불 같이 급한 내 성격이 불을 다루는 노동과 만나니 불난 데 기름 붓는 꼴이라.

차라리 양파나 마늘이나 까는 일이 내게는 어울린다. 내가 만든 음식의 팔 할은 실패'였다. 며칠 전이었다. 팬을 달군 후 기름을 넉넉히 붓고 약한 불에 부침개를 얇게 지졌다. 한쪽 면이 노릇노릇 익자, 나는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부침개를 뒤집어야 하는데 뒤집는 기술이 부족한 것이다. 실패가 쌓이면 경험이 되는 법. 나는 후라이팬을 앞으로 밀었다가 땡겼다. 너무 땡겼다, 젠장. 계획대로라면 부침개는 체조 선수처럼 공중에서 180도 회전을 한 수 팬 안으로 떨어져야 했다. 웬걸 ! 부침개는 바닥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나는 다시 부침개를 부쳤다. 반드시 성공하리라. 하지만 이번에도 강약 조절에 실패했다. 첫 번째가 너무 강했다면 두 번째는 너무 약했다. 부침개는 공중에서 회전하지도 못한 채 겹쳐서 반달 모양이 되었다. 이 정도 두께면 부침개가 아니라 팬케이크'였다. 실수를 어떻게 해서든 만회하려고 두 면을 뗄려고 수작을 부렸지만 익지 않은 면끼리 붙은 부침개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견우와 직녀처럼. 와플 두께의 부침개를 씹으며 생각했다. 참...... 다행이다. 그래도 먹을 수는 있으니까 ! 두께 때문일까 ? 익지 않은 밀가루 냄새 맛이 났다. 

 



 

 

톰(조셉 고든 레빗 분)은 운명적 사랑을 믿는 청년이다. 그는 직장에서 첫눈에 썸머(주디 디샤넬 분)에게 반한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라는 강한 확신. 반면, 썸머(주디 디샤넬 분)은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사랑은 하되 인연은 맺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진 여자'다.  마크 웹 감독이 연출한 << 500일의 썸머, 2010 >> 이야기'다. 서로 다른 연애관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_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궁금해 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다음과 같은 나레이션이 흐른다. "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먼저 알아둘 것은 이건 사랑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


얼핏, " 사랑의 콩깍지 " 는 유효 기간이 1년이라는 연구 결과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연인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변덕스러운 마음 탓이라기보다는 유전자 탓이라고 과학은 설명하고 있다. 그것이 인간 본성이라고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톰과 썸머도 300일 즈음에 서로 어긋나기 시작한다. 사랑의 빳데리가 다됐나 봐요 ~   영화가 끝나면 문득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 봄날은 간다 >> 가 생각난다.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썸머는 속을 알 수 없는 여자 은수(이영애 분)를 닮았다. 이 영화는 미국판 " 여름날은 간다 " 다.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판타지를 제거한 리얼리티에 있다.

비유를 들다면 기름을 쏙 뺀 수육 같다고나 할까 ?  사랑에 대한 환상을 말하기보다는 사랑이라는 현실을 들여다보는 영화'다. 살다 보면 누구나 다 사랑이 찾아온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실패한 부침개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랑이란 설익은 것과 설익은 것이 만날 때 이루어진다고.  익지 않은 한쪽 면이 익지 않은 한쪽 면과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을 때,  밀가루의 점성이 아닌 열병으로 서로를 녹여서 붙어버린 부침개를 보면서 사랑을 읽어내는 내 감성은 아마도 실패한 사랑을 경험한 남자의 뼈아픈 후회일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설익은 것'이다.  다 익은 부침개는 겹쳐 놓아도 붙지 않으니까.

 

정작, 이 글은 << 500일의 썸머 >> 리뷰인데 부침개로 시작해서 부침개로 끝나는 글이 되었다. 나란 사람이, 뭐... 그렇지 ■

  






덧대기 ㅣ 요즘은 영화나 책을 읽고 나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글을 쓰기 위해 영화나 책을 읽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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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7-14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리뷰를 쓰려고 덤벼들었지만 결국은 일기나 자서전의 한 페이지를 쓰고 마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요..... 전 부치려다 맨날 팬케이크 만들어먹는 꼴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2:54   좋아요 0 | URL
그런 글이 재미있죠. 솔까말, 저는 책 내용 요약한 리뷰를 보면 안 읽습니다. 뭣하러 그 리뷰 읽습니까.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소개 읽으면 되지.. 출판사 편집자들 모두 한 글 하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 책소개가 정확하니까요.

yureka01 2016-07-14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는 기술과 창작,그리고 응용이 합쳐져야 되더군요. 단순 음식은 그럴 필요가 없는 약간의 기교만 있음 되니까요..네 약간의 기교 ㅎ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2:56   좋아요 1 | URL
여름에는 뭐 해 먹자.. 이런 거 안해야겠어요.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우리 간편하게 잔치 국수나 해 먹지.. 뭐, 이런 말이랍서요.
멸치 육수 내고 지단 만들고.. 잔치국수가 얼마나 손 많이 가는 음식인지 모르고..

여름에는 그냥 뭐 먹고 싶으면 박으로 나가서 사먹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yureka01 2016-07-14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국수가 상당히 손이 많이가는 간단한 음식 인데 말이죠.ㄷ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3:06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몰랐습니다. 제일 쉬운 줄 알았아요. 왜 싼 음식은 패스트푸드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집에서 우리 간단하게 햄버거나 집에서 해서 먹지.. 하면 똑같은 생각들 하실 겁니다.. ㅎㅎ

stella.K 2016-07-14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진짜 왜 곰발님 부침개 실패 사례기와 이 영화가 무슨 상관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곰발님도 감당이 안 되시는군요.
부침개는 가급적 밀가루를 적게 사용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야채와 야채끼리 잘 어우러져 붙을 정도의 점성만 유지하면 되는 거죠.
그리고 최대한 얇게 펴주는 거죠. 두꺼우면 맛이 없거든요.
기름은 넉넉히 잡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노릇노릇 잘 구워지거든요. 뜨거워야 하구요.
더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면 맛이 없어요.
불은 중불이 좋은 것 같습니다. 너무 세면 새까맣게 타고,
너무 약하면 언제 구워질지 모르거든요.
그리고 겉표면이 그걸 뭐라고 표현하면 알아 들으시려나...밀가루 색깔이 아니고 반투명 꾸들꾸들해지는
그 순간이 있거든요. 그때 뒤집으면 되죠. 한번에 못 뒤집겠으면 그냥 반이고 찢어지는대로 찢어서
뒤집어도 되어요. 어차피 먹을 때 찢어 먹잖아요.
자, 다음엔 잘할 수 있으시겠죠?
뭐 사랑도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헉, 뭔 소리야...? 곰발님이 이상한 리뷰 쓰시니까 저도 이상한 댓글이...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3:56   좋아요 0 | URL
오기가 있어서 부침개 주걱 따위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될 때까지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찢어서 뒤집는 거... 그것도 저에게는 용서가 안 됩니다.
완전판으로 뒤집는 날이 올 때까지...



+

중불에 해야 되는군요.
전 약불에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약불에 하니
성격 급한 저는 미치겠더군요..
앞으로는 중불로 하겠습니다..

+

부침개는 확실히 두께가 얇아야죠. 약간이라도 두꺼우면 안 먹습니다..

stella.K 2016-07-14 14:12   좋아요 0 | URL
그렇게 성격이 급하시다면서 약한 불에 언제...ㅋㅋㅋ
좋아요 뭐. 곰발님의 그 오기와 투지로 뒤집기에 성공하시면
인증샷 올려 주세요.ㅋ

근데 곰발님 글 읽으니까 제가 백선생 집밥2를 안 보게 되는 게 생각났어요.
뭐 레시피가 점점 복잡해지고 백선생을 제외한 남자 넷이 요리를 못해 우왕좌왕 하는데
이제 좀 재미가 없더라구요. 전편 때 아니 이런 것도 못해? 보면서 남자들에 대해
새삼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저것도 뇌의 구조의 차이일까 그런 생각도 들고.
무엇보다 장동민이 나오니까 볼 생각이 확 떨어지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4:20   좋아요 0 | URL
어디서 전은 약불에 해야 한다고 해서.....


남녀 뇌구조 보다는 안 해봐서 그럴 겁니다.

samadhi(眞我) 2016-07-14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은 안 읽고 좋아요 만 하고 가요. 영화보고 나서 읽으려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3:54   좋아요 0 | URL
읽고 나서 영화 보셔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이 영화는 스포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1%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samadhi(眞我) 2016-07-14 13:55   좋아요 0 | URL
ㅎㅎ 네. 예전에 다운받아서 보다가 말았어요. 별로 안 당겨서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3:5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로코 별로 좋아하는 장르는 아닙니다.
근데 이 영화는 보고 나면.. 뭔가 좀 짠한 구석이 있어요..

samadhi(眞我) 2016-07-14 14:23   좋아요 0 | URL
제 오만인 줄 알지만
사랑 좀 해 본(?) 저는 서툴고 어색한 사랑, 재는 사랑, 오해하는 일들이 참 답답하더라구요.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기만 해도 될 텐데. 사랑한다면서 왜 자존심을 세우는지. 사랑은 자존심 따위 버려야 한다고 믿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4:50   좋아요 0 | URL
이것이야말로 사랑을 얻은 자의 자신감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사랑은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하는 것 .. 공감합니다..

samadhi(眞我) 2016-07-14 14:59   좋아요 0 | URL
우리부부는 전에 개그맨 변기수가 윤도현 러브레터 공개콘서트에서 바람잡이 할 때 했던 말을 정말 좋아했지요. 전 쓰레기니까요. 라는 말.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7:35   좋아요 0 | URL
변기수.. 요즘 뭐하나 모르겠군요..

기억의집 2016-07-1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이별 이야기죠. 미국에도 사랑을 믿는 청년이 있다니 신선한대요. 래빗이 아역배우부터 연기를 다져온 배우라는 걸 안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강해보이진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7:3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사랑이야기라기보다는 이별이야기죠. 전 이제야 봤네요. 래빗이 아역 배우로 유명했다고 하더군요..
강해보이지 않아서 캐스팅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전 강하지 않은 남자 배우가 좋더군요.. 레빗도 그렇고 해리 딘 스탠튼도 그렇고.. 우디 알렌도 그렇고...
제 개인적 남 배우 취향은 소심한 남자입니다..

ethika 2016-07-1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습니다 글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5 10:05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읽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에티카 님.. 에티카인가요 ? 닉네임이 ?

ethika 2016-07-15 10:08   좋아요 0 | URL
헙..네 ㅋㅋㅋ

최은진 2016-07-18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500일의 썸머. 몇년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다시 봐도 좋을 영화지만 굳이 영화관에서까지 다시봐야하나 싶어 고민하다가, 일본영화 환상의 빛 관람하고 멍 때리면서 귀가했네요. 개인적으로 어텀이라는 여자 이야기가 궁금했던.. 부침개에 빗댄 설익은 사랑이야기에 감탐하며 글 남기고 갑니다. ㅎㅎ 남자친구가 보고싶네요.. 이번 영화도 혼자보고왔어용ㅋ.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엄청 보고싶다는..감사합니다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8 18:33   좋아요 0 | URL
환상의 빛이 개봉했습니까 ? 그렇군요..
어텀과 톰의 이야기는 개인적으로 해피엔딩이었으면 하는...
지구 반대편에 계시는 군요. 돌아오시거든 달달한 연애하십시오.
 

 

 

 

 

 

 

 

아아, 딱딱한 아가씨군0)





작품이 무서울수록 그만큼 교화적이다. 굴욕을 강요할수록 그만큼 고상함을 가장한다. 더 많이 은폐할수록 그대로 드러낸다는 환상을 더 많이 불러일으킨다. 필요한 것은 공포이다. 비합리성과 위협에 기반한 사회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면 그러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ㅡ 프랑코 모레티, 공포의 변증법 中



프랑코 모레티가 << 공포의 변증법 >> 에서 드라큘라를 " 드라큘라는 진짜 독점 자본가이다. " 라고 해석했을 때,  나는 이 전복적 상상력'에 격하게 박수를 쳤다. 그는 마르크스 << 자본 1 >> 의 텍스트를 끌어들인다.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자본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더 많은 노동을 빨아먹을수록 더 오래 사는 죽은 노동이다 1) "  즉, un-dead 인 드라큘라라는 캐릭터는 인격화된 자본(가)인 셈이다. 인격화된 드라큘라의 등장에 " 산 자는 죽은 자 때문에 고통받는다 2) ".  프랑코 모레티 3)가 보기에 드라큘라가 산 자의 목에 이빨을 꽂고 빨아먹는 피는 돈에 대한 은유다.

말 그대로 피 같은 돈'이다. 드라큘라가 귀족 계급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브람 스토커의 << 드라큘라 >> 에서 그는 금을 투자하는 사업가로 소개된다. 그뿐이 아니다. 하수인으로 등장하는 조나단 하커는 부동산업자이고, 인격화된 자본인 드라큘라 백작이 즐겨 읽은 책은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 >> 이다.  피를 훔친다(착취한다,빼앗는다)는 점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인 셈이다.  또한 흡혈귀가 강할수록 살아 있는 사람은 약해진다는 설정은 독점 자본이 강할수록 서민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처럼 << 드라큘라 >> 원전은 프로이드적 분석보다는 마르크스적 해독이 더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상위 1%인 드라큘라가 보기엔 99%는 자신에게 피를 공급하는 수급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99%의 죽음을 원치 않는다. 피는 필요한 만큼만 착취한다. 99%를 살려두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다. 그것은 연민도 아니고 자비도 아니다. < 수요 공급의 원칙 > 에 충실할 뿐이다. 며칠 전,   2급 교육 공무원 향욱 씨'가 민중은 99%가 개·돼지'라고 말한 후 먹을 것만 주면 된다고 말했을 때 내 머리 속에서 번개처럼 반쩍거린 이미지는 드라큘라'였다. 향욱 씨가  " 개 돼지로 보고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 " 고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는 필요한 만큼만 피를 빠는 드라큘라의 소비 습관을 닮았다. 좀비와 드라큘라의 차이는 명확하다. 좀비는 과식을 하고 드라큘라는 소식을 한다.

드라큘라에게 중요한 것은 먹잇감을 살려두는 것이다. 99%를 개·돼지로 취급하는 1%가 역설적으로 저출산 현상을 심각하게 보는 데에는 개·돼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피(=돈)를 수혈할 수 있다는 데 핵심이 있다. 그가 2급 공무원이라는 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 1%에 소속되기 위한 2% 공무원의 욕망 " 이다. 그는 1%를 동경했고, 이 동경이 크면 클수록 자신이 속한 혈계를 경멸했던 것처럼 보인다.  영화 << 아가씨 >> 에서 출세를 위해 뼛속까지 일본인이 되고자 했던 조진웅(이모부 역)을 닮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향욱 씨의 " 과잉의 확신과 결핍의 무지 " 는 << 맨스플레인 >> 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는 설명을 듣는 사람(기자)이 설명을 하는 사람(자신)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혹은 올바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술자리에 모인 기자들은 여성 기자 2명이었다. 가부장 사회에 익숙한 경상도 사내,  그것도 고속 승진으로 거듭난 엘리트 사내에게는 여성 기자들의 반박에 고개를 숙인다는 게 자존심이 상했던 것은 아닐까 ?  평상시에 그는 남자는 설명하는 위치에 있고 여자는 이해하는 위치에 있다고 믿었던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영화 << 아가씨 >> 에서 사용된 반전은 남자는 설명하고 여자는 설득당한다는,  익숙한 서사 4) 를 뒤집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맨스플레인에 대한 조롱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사태는 계급 인식에 따른 차이가 아니라 여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남자의 똥고집이 만든 아수라장인지도 모른다.  남성 몰락을 다룬 영화는 수직 - 이미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영화에서 남자는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고 여자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다. 영화 << 킹콩 >> 은 몰락하는, 수직성의 비극을 다룬다. 그 낙차가 클수록 비극은 더욱 강조된다. 그런 점에서 1% 상부층 진입을 코앞에 둔 2%인 그가 이번 사태로  100% 밑바닥으로 추락한다는 점에서 웅장한 비극이다.

 

영화 << 아가씨 >> 에서 김태리(하녀 역)는 김민희에게 방중술을 가르치며 묻는다. " 더 가르쳐 드릴까요, 아가씨 ? " 나는 이 대사를 나향욱 씨에게 돌려드리고 싶다. " 더 가르쳐 드릴까요, 아저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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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the traitor >> 2막 2장. " 아아, 딱한 아가씨군 " 을 패로디

1)        마르크스, << 자본 1 >> 비봉출판사, 296쪽

2)        마르크스 자본론 서문에서 발췌

3)        프랑코 모레티의 << 공포의 변증법 >> 에 대한 내 별점은 ★★★★★★  만점에 1점 더 주겠다. 로빈 우드의 <<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 >> 와 함께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은 평론집니다.

4)        " 설명하는 남자 vs 설득당하는 여자 " 라는 구조는 자크 랑시에르가 << 무지한 스승 >> 에서 " 설명하는 스승 vs 이해하는 학생 " 과 유사하다.  랑시에르에 의하면 현대 교육은 스승과 학생을 수평적 관계가 아닌 수직적 위계로 설정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자코트 실험'에서 밝혀졌듯이 학생은 무지하지 않으며 스승은 반드시 유식할 필요도 없다. 그는 이 사례를 들어 수평적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 << 아가씨 >> 에서 김민희는 책 읽는 학생이다. 반면, 이모부인 조진웅은 스승이다. 전형적인 스승과 학생의 관계이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반전을 숨기고 있다. 독자인 우리가 이 영화의 반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데에는 < 맨스플레인 - 서사 > 에 익숙해서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아가씨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주체가 아니라 새롭게 쓰고 해석하는 주체다. 중국집 가게 이름 같은 " 나향욱 " 은 자신을 설명하는 남자(가르치는 스승)으로 설정한 후 여성 기자를 설득당하는 여자(이해하는 학생)으로 인식한다. 기자가 반론을 제기하자 입장을 번복하지 않은 이유는 " 쪽팔리다 " 는 데 있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는 없다는 가부장 고집.  그에게 쪽은 남근이며 리비도'다. 쪽을 판다는 것은 거세를 의미한다.  사실..... 쪽이란 " nothing " 에 불과하다. 그는 그것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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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3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13   좋아요 0 | URL
에구구.. 왜 또 칭찬을..... 고맙습니다.
하튼 제가 보기엔 맨스플레인이 부른 참사 같습니다.
숙일 때는 성별 없이 숙여야 합니다.
나이 어린 사람한테도 숙일 때도 있고, 여성에게도 그렇고...
한국 남성들 보면 어린 사람이나 여성에게 고개 숙이는 것을 엄청난 수치로 여기더군요..
그런 짓은 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시이소오 2016-07-1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가. 무릎을 치게 만드네요.
<공포의 변증법> 읽고 싶네요.
이거 또 좋은 책을 소개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26   좋아요 1 | URL
이 책, 강력 추천합니다. 책 추천을 거의 안 하는데..
제가 자신있게 추천하는 이유는...
이 책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해외 평론가들마자 무릎 탁, 친 평론집니다.
유명한 평론집이죠... 이 책 나왔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난니 모리테 감독 아시죠 ? 즐거운 나의 일기... 라는 영화 만든...
그 감독 형입니다..

시이소오 2016-07-1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니 모레티 형이군요. 완전 영화가군요. 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32   좋아요 1 | URL
형은 문학을 아우는 영화 쪽을.... 명문가인 셈이죠..
둘 다 맑시스트죠..

stella.K 2016-07-13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작가 조정래씨가 국민을 개 돼지로 봤다면
그들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나 씨는 기생충 아니냐고 했다는데
정말 그러네.했습니다.

언젠가 뇌과학자 김대식이 그런 말을 했죠. 남자는 경험한 것을 말하고,
여자는 이해한 것을 말한다고. DNA 구조상 그렇게 생겨 먹었다고.
그 사람이 경험한 바가 그 사람을 말해주는 거겠죠.

미국만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은 아예 그 싹을 자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비해 우리나라는 잊을만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슬거머니 그 자리를 다시 채우고.
나향욱이 일벌백계로 삼아 다시는 이런 막말하는 공직자들 나오지 못하도록 해야하는데
징계 수위를 보니 향후 5년 동안 공직에서 일할 수 없으며 월급도 얼마간 감봉이라는데
이거 좀 더 강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봐요.
겉으로 볼 땐 추락 같아 보이지만 왠지 바닥엔 풍신한 매트리스 하나는 깔려 있는 느낌입니다.

즐거운 나의 일기? 그런 영화도 있었나요? 왠지 끌리는 제목이군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4:41   좋아요 0 | URL
생각해 보면 향욱이는 2인자 컴플랙스에 빠진 사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1를 가지고 싶은데 항상 2가 되어야 했던...
그래서2이하를 경멸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 인간은 먹고살 길은 있을 겁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꺼야 하니까...




즐거운 나의 일기.. 함 보십시오. 영화가 굉장히 좋습니다..

cyrus 2016-07-13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가 칭찬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갑니다.
여자가 문제점을 지적하면, 쓸데없이 잔소리라고 불만.
남자는 여자 앞에 서면 말이나 동작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 않으려고 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6:48   좋아요 0 | URL
한국 남성들, 이젠 좀 남성다움을 20%만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낯 뜨겁고 낯 부끄럽고....
검사부터 선수까지 죄다 까놓고 음란하게 그 짓을 하니......

samadhi(眞我) 2016-07-13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국집이름같은... ㅋㅋㅋ 오늘 독서모임에서도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향욱씨를 언급할 수밖에 없었죠. 어쩌면 삶이 무료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0:40   좋아요 0 | URL
여긴 불지옥 같은 하루 시작이군요. 딱 보니 너무 더울 날씨입니다..
얘길 안 할 수가 없죠. 누가 나에게 개돼지새끼라고 욕을 했는데 한마디 안 할 사람이 없죠..
전, 화를 누그려뜨리고 늦은밤 500일의썸머를 보러갔습니다.

영화 좋던데요. 꼭 보시기 바랍니다..

samadhi(眞我) 2016-07-14 10:44   좋아요 0 | URL
평일엔 바쁘고(안 하던 일을 하다보니) 주말엔 캠핑가고 영화를 볼 여유가 없네요. 재개봉 소식은 들었습니다. 저는 환상의 빛도 보고싶은데 시간을 못 내고 있네요.

기억의집 2016-07-14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값도 만만치 않네요~ 500일의 썸머 울 아들도 좋아하던데.. 예전에 다락방님 페이퍼에 자주 올라와서 구글에서 구매한 적이 있었어요. 울 아들이 심심해서 보다가(구글은 티비로 연결되어 있어 티비로 보니 편하긴 해요) 어찌어찌 보았나보더라구요. 고든주니어 래빗 영화를 꾸준히 찾아서 보던데... 아, 전 영화는 진짜 안 보게 되요. 미드는 사십분이라 수사물 찾아서 보는데... 영화는 나이 드니 참 힘드네요.

드라큘라의 해석이 맞아 떨어지긴 하는데....드라큐라 자체가 상징적이긴 하죠. 뭔가 약탈해가는 캐릭터니깐.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4 12:22   좋아요 0 | URL
기억의 집 님을 위해서 500일의 썸머 리뷰를 올립니다...
 

 

 

 

 


나향욱에게 쪽을 파는 일이란 ?




                                                                                        양아치는 양심은 팔아도 쪽팔리는 일은 수치라고 여기는 부류'다.  영화 << 친구 >> 에서 준석(유오성 분)이 부하에게 죄를 씌우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 " 쪽팔려서 " 다. 쪽을 파느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을 선택한다. 그들은 부정문을 사용할 때마다 " 남자새끼가 쪽팔리게...... " 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쪽을 파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비단 양아치 집단만은 아닌 것 같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를 포함한 남성 대부분은 양아치처럼 쪽을 파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해서 차라리 양심을 파는 쪽을 선택한다. 한국 남성에게 < 쪽 > 은 남근이다. " 쪽을 판다는 것 " 은 거세를 의미한다. 우리가 흔히 저잣거리 입말로 사용하는 " 쪽도 못 쓰는 주제.... " 라는 표현은 고개 숙인 남자라는 의미이지 않은가. 유하 감독이 연출한 << 말죽거리 잔혹사, 2004 >> 는 쪽생쪽사에 대한 이야기'다. 말죽거리에 사는 열여덟 살 소년들은 쪽에 살고 쪽에 죽는다. 우식(이정진 분)은 3학년 선배 10여 명과 맞짱을 뜬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쪽팔리잖아, 쪽팔리면 끝이야. " 영화 << 곡성 >> 에서 경찰관 딸을 연기한 아역 배우 김환희라면 이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 쪽이 뭐시 중허냐고 !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 " 하지만 수컷들에게 쪽은 중요하다. 그렇기에 전학 온 모범생 현수(권상우 분)는 쌍절곤을 휘두른다. 여기서 쌍절곤은 쪽을 간직할 수 있게 만드는 남근'이다. 내가 보기엔 개,돼지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나향욱 2급 공무원의 몰락은 쪽을 지키려다 망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영화 << 친구 >> 에서 유오성이 쪽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가고, 이정진이 10명과 맞짱을 뜨고, 모범생 권상우가 발기한 남근을 닮은 쌍절곤을 휘둘러서 OUT 되었다면 나향욱은 여자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한다는 일이 쪽팔려서 오기를 부르다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사건을 다룬 최초 기사를 보면 기자들은 몇 차례 나향욱에게 발언을 철회할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향욱은 사과를 거부했다. 이 거부의 몸짓은 혹시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는 의지 때문은 아니었을까 ?  한국 남성들에게 있어서 힘 센 남자 앞에서 쪽을 못 쓰는 상황보다 힘 쎈 여자 앞에서 쪽을 못 쓰는 상황이 더 견딜 수 없는 쪽팔림'이다. 그들은 남자가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여자가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 한다.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도 핵심은 여자가 나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 혐오 사건이었다. 태풍이 불면 부러지는 것은 갈대가 아니라 나무라고 한다. 성별과 상관없이 고개 숙일 땐 고개 숙여야 한다. 남근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게 강하면 화를 부르게 된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 남근을 간절히 원하면 진짜로 남근이 되는 수가 있다. 좆 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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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의 핵심은 여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남자의 오기가 부른 대참사다. 당시 경향 일보 기자단은 주로 여성들로 이루어졌던 모양이다. 향욱 씨 입장에서 자신이 한 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기를 부린 것은 감히 여자들이 자기가 한 말에 대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syo 2016-07-1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신 쓰레기인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병신 쓰레기 찌질이였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8:14   좋아요 2 | URL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맨스플레인 현상입니다.
여자들아, 봐봐.. 이런 것이다...
막 설교를 하는데 여성 기자들이 동의를 하기는커녕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더란 것이죠.
오기가 난 향욱 씨는 더욱 자신의 주장에 강도를 높이다가 결국은...

맨스플레인이 부른 대참사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7-1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이 더 따박따박 말대답해야겠어요~ 쪽팔리기 싫어 하는 찌질이들 걸러내기위해서라도요~~
조용히 살까 했는데.. .요즘 자꾸 말을 하라는 군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9:11   좋아요 1 | URL
아마도 상대 기자가 중년의 남성 기자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겁니다.

나향육 : 아, 제가 말실수를 했나 봅니다. 사과드리죠...

yureka01 2016-07-12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면될듯하더군요.자리 내려 오면 어떤지 알게 될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07   좋아요 0 | URL
누가 봐도 이건 파면이죠.. 전 파면 안 당하길 바랍습니다.
그래야 여론이 들끓어서 새누리가 몰락할 테니깐...

yureka01 2016-07-13 10:12   좋아요 0 | URL
ㅎㅎㅎ여론을 빨리 잠재울 방법은 파면이 즉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걸 그들은 알죠.
하나 떨궈내는 거야 쉬울테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20   좋아요 1 | URL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솔까막 청와대에서 2급 공무원은 그냥 듣보잡이죠..
이런 놈 지킬려고 목숨 걸 여사님이 아니시죠..

만화애니비평 2016-07-12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름생각하니 마치 중국집 요리 같습니다. 고량주는 남자술이니 여자기자는 고량주가 어울리지 않아! 라구 말이죠. 요새 술 잘마시는 분 많은데 말이죵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0:06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오향장육이라도 시켜 먹어야 겠습니다..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했던가. 김윤옥 씨가 개 돼지들1)이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김치 칵테일'을 만들었을 때,  먹는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는구나 _ 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근미래에는 지구인들이 사진을 찍을 때 치즈 대신 김치 _ 라고 할 세상이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김치가 세계를 제패하는 날이 오면 가수 정광태의 유일한 메가 히트곡 << 라면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이라는 노래 제목은 <<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 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재미로 미소를 지을까. 그런...... 날이 올까 ?

한식 세계화가 국격을 높이는 짓이라면 인도와 베트남은 카레와 쌀국수로 초강대국이 되었을 것이다. 한식과 관련된 전문가 집단이 늘상 하는 말은 " 한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 " 라는 소리'다. 여기에는 한식 요리가 손이 많이 간다( = 정성이 담긴)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는 없다. 손이 많이 가는 음식, 사랑으로 만든 음식, 정성이 담긴 음식은 웰빙 푸드이며 슬로우 푸드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 사랑과 정성이 많이 담긴 요리가 반드시 웰빙 푸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역설적이지만 채소나 과일을 갈아서 마시는 생과일 주스나 즙을 내서 먹는 액기스는 대표적인 패스트푸드'다.

하루야채 광고 따위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루야채 한 병에 들어 있는 식이섬유를 얻기 위해서는 야채를 산더미처럼 쌓고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산더미처럼 많은 분량을 날씬한 병으로 축소해 놓은 것이 하루야채라는 음료인 셈이다. 역설적이지만 하루야채 한 병으로 과식을 실천할 수 있다고 광고하는 것이다. 집에서 만들어 먹는 생과일 주스도 다르지 않다. 한 번의 " 드링킹 " 은 과일을 " 백 번 " 씹을 때와 동일한 것이니, 이 얼마나 패스트한 풍경인가 !   실제로 건강한 재료(로 만든 요리)라고 해서 맘 놓고 먹는 생과일 주스나 액기스'가 과잉 열량을 유발하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건강한 재료로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 비만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등장해야 될 악당이 있다. " 햄버거, 너 나와 !! "  햄버거는 패스트푸드를 이야기할 때 인스턴트 식품인 라면과 함께 상징적인 음식이 되었다. 누군가는 패스트푸드가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없다는 점을 들어 정크푸드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즉석 주문 요리(=패스트푸드)란 손쉽게 만들어서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뜻한다. 이 정의가 맞다면 김밥도 패스트푸드'다. 이 정의에 대한 반론은 분명하다. 집에서 김밥을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김밥이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 햄버거를 위한 변명 " 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집에서 햄버거를 만든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햄버거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햄버거 패티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기를 다져서 밑간을 해서 잠시 숙성을 시켜야 하고,  머스터드 소스도 만들어야 하며, 다양한 속 재료도 준비해야 한다. 집에서 김밥을 만드는 데 소요된 시간이나 집에서 햄버거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엇비슷하지 않을까. 햄버거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있다. 비만의 친구이자 다이어트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욕은 다 먹었으니 말이다. 내 기준에 의하면 주문 즉시 음식이 나온다는 점에서 점심 시간에 직장인이 몰려 있는 번화가 식당에서 파는 모든 한식은 패스트푸드다.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고, 나온 음식은 " 패스트 " 하게 먹어치워야 한다.

 

프랑스 식 음식 문화를 흉내 낸다고 여유를 부리다가는 식당 주인으로부터 욕 먹기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다. 패스트푸드인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김밥이 좋은 음식이라면 햄버거도 좋은 음식이며, 한식이 웰빙이라면 양식도 웰빙이다.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점은 " 슬로우 푸드 " 를 " 패스트 " 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인은 천성이 < 빨리빨리 유전자 > 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의 DNA가 만든 현상이 아니다. 서울 토박이였던 내가 지방에 내려가 살면서 겪게 되는 곤경 가운데 하나는 < 걷는 속도 > 였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의 걷는 속도에 익숙하다 보니 옆사람과 보조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출근 시간에 느림보 걸음으로 수다를 떨며 걷는 모습은 나에게는 진풍경이었다. 반대로 느림보 걸음에 익숙해질 무렵 다시 서울로 상경했을 때는 서울 사람들의 총알 걸음에 보조를 맞출 수 없었다.  그때, 절실히 깨달은 것은 걷는 속도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시가 만든다는 점이었다. 국가가 패스트푸드를 불량식품 취급한다면, 국가야말로 패스트푸드의 주범이다. 왜냐하면 국가 시스템이 " 슬로우푸드를 패스트하게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 만들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는 맘 놓고 점심을 즐길 시간이 없다.

 

어느 노동자는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서 연장 가방에 컵라면을 넣고 출근했다가 사고로 죽기도 했다.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대한민국이라는 컨베이어 밸트 속도를 쥐새끼처럼 야금야금 높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속도에 맞춰 뛰어야 한다. 노동자를 근로자라고 바득바득 우기는 것만 봐도 그렇다. 노동과 근로는 같은 말이 아니다. 노동은 <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근로는 < 땀이 나도록 열심히 일하다 > 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은 슬로우 푸드를 패스트하게 섭취한다. 슬픈 풍경이다.

 

이처럼 패스트푸드의 주범은 햄버거도 아니고 김밥도 아니다. 10분이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를 대표하는 컵라면마저 먹을 시간이 없는 사회2)를 만든 것은 누구일까 ?  대한민국이야말로 모든 음식을 패스트푸드로 만드는 주범이다 ■


​                                                

 

 

※ 각주 1,2 가 길어서 하나로 통합

 

                                                                                                                                                                       나향욱 교육 정책 기획관이 " 민중은 개 돼지...... " 라며 대한민국은 신분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원래 교육의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향욱이라는 사람이 교육 정책을 맡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지만, 나는 그가 교육 정책 기획관이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했다고 생각한다.  푸코는 << 감시와 처벌 >> 에서 교육은 지배 계급이 피지배 계급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반 일리히는 << 학교 없는 사회 >> 에서 학교는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을 공고히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이제 서울대라는 브랜드는 기회의 평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 대다수가 서울대 출신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하는 기호로 작용한다.  서울대는 현대판 음서제'다. 자크 랑시에르는 << 무지한 스승 >> 에서 < 자코토의 실험 > 을 예로 들어 학생은 설명하는 스승 없이도 스스로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은 오히려 "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 " 을 대량 생산하는 공장이다.  경제학을 배운 인간은 경제에 대한 지식만 쌓고, 간호학을 배운 인간은 간호에 대한 지식만 얻게 된다. 대학이 본래 지식을 확장하고자 하는 장치라고 한다면,  현대 교육은 완벽하게 실패한 것이다.  확장은커녕 축소되기 때문이다.  대학에 올인하는 교육 정책은 인간을 똑똑한 바보로 만든다. 똑똑한 바보라는 표현은 자크 랑시에르가 즐겨 사용하는 말이다.  나향욱이라는 인간의 탄생은 아는 게 그것밖에는 없는 인간을 찍어내는 엘리트 교육 정책이 낳은 참사'다. 개, 돼지 발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 (구의역 사고로 사망한 청년에 대해) 어떻게 내 자식처럼 생각되나. 그렇게 말하는 건 위선이다" 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나향욱의 자식이 걱정된다. 비록 당신이 위선이라며 핏대를 세울지라도 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그가 정작 교육 기관에서 배우지 못한 것은 측은지심'이다. 그의 잘못은 아니다. 한국 식 교육은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가 인간을 짐승으로 비유했으니 어느 짐승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을까 한다. 실험실 원숭이에 대한 이야기다. 바나나가 있다. 맛있는 바나나다. 실험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짚으면 옆 칸의 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 한다. <<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 >> 에서 실험 대상자를 인간 대신 원숭이로 대체한 것이다. 그 원숭이는 어떤 행동을 취했을까 ?  원숭이는 15일 동안 굶었다.  15일 동안의 측은지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이란 생각이 든다. 민중이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 그에게 감사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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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1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을 달았는데 없어져 버려 다시…
블랙 코메디 한 편 보았다고 생각해야 하겠군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 교육이 측은지심을 가르치지 않음을 알지만 같은 교육을 받은 99%은 어떻게 측은지심을 발현하는 것일까요. 사람 됨됨이가 배우지 않아도 깨치는 능력이 함양되고 서서히 개인차를 만든다고 봐야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37   좋아요 1 | URL
저 인간은 그냥 소시오패스죠.. 아니 스무살 청년이 일에 쫓겨서 죽은 사건을 두고 내 자식처럼 슬퍼하는 건 위선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전형적으로 소시오패스죠..

오거서 2016-07-12 09:39   좋아요 0 | URL
토요일에 기사를 보고 댓글에 남겼지만, 저 역시 공감하는 바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46   좋아요 1 | URL
제가 독재자라면 민중을 ˝ 발등에 떨어진 불 - 상태 ˝ 로 만들겠습니다.
생각할 틈을 안 주는 거죠. 학생에게는 공부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졸업생에게는 취업 준비를 위해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비정규직은 콧등에 땀이 맺힐 때까지 일해야 하니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을 안 주고...
이게 모이면 정치적 무관심을 만들어냅니다. 그들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독재자의 적은 민중이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오거서 2016-07-12 09:55   좋아요 0 | URL
앗!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는군요.

yureka01 2016-07-1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육자중에 조련사인지 교육자인지 분간 못하는 경우..사육인지 교육인지 구분 안되는 경우....아닐까요...ㄷㄷㄷ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52   좋아요 1 | URL
비서울대는 서울대 때문에 차별을 받습니다. 모든 주요 관직은 모두 서울대가 장악했으니 말입니다. 이제 교육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역설이죠. 교육이 바로 서야 되는 것은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평등한 교육법이라고나 할까요.

보빠 2016-07-12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몇년전에 이책 읽었지만 곰곰발님같은 생각못했는데...멋지십니다 썰전에 출연해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0:17   좋아요 0 | URL
썰전에서 불러준다면 무조건 달려가겠습니다..

2016-07-12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2 1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7-12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측은지심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측은지심을 간직한 짐승으로 사는 게 웰빙!
멋진 말이군요!
곰발님을 썰전으로!!!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13:47   좋아요 0 | URL
말만 하지 마시고 썰전 제작진에게 제보를 ㅂ부탁ㄹ 드립니다..
 
[블루레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마야 모르겐스턴 외, 멜 깁슨 / 20세기폭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아픔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다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그동안 수많은 폭력 영화를 보았지만 이 영화만큼 많은 상처가 난 육체 이미지'를 본 적이 없다. 이 정도면 그로테스크를 초월해서 스팩타클의 장'이라 할 만하다. 이 상처 이미지는 당대 최고였던 분장 전문가인 케이트 반델란과 특수 분장 전문가인 그레그 켄놈이 만들었다. 내가 맬 깁슨의 << 패션 오프 크라이스크 >> 를 비난하는 대목은 " 상처의 리얼리티 " 에 있다. 비도덕적이라고 비난받는 영화 장르들(스플래터, 고어, 호러, 폭력)은 상처를 재현할 때 리얼리티를 회피한다. 왜냐하면 상처가 진짜처럼 보일 때 관객이 느끼게 될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관객은 스플래터, 고어, 호러 영화 속 육체에 거부감이 없다. 그것이 " 가짜 "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현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리얼하게 묘사한다. 그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 리얼 " 하다는 게 반드시 좋은 요소는 아니다.

 

 


                                                                                                    맬 깁슨이 배우가 아닌 감독이 되어 연출한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 2004 >> 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다룬 영화'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전주 영화제와 맞물리면서 이 영화를 그곳에서 본 것 같다(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   이때, 이상한 경험을 했다.

나를 비롯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관객 대부분은 교회에서 단체 관람을 온 모양이었다.  서로 알음알음 아는 사이이다 보니 영화 상영 전부터 영화관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나는 영화관 안에서 타관살이에서 오는 외로움에 덧대어 소외감마저 들어 울쩍했다. " 집에 가면 술이나 한 잔 해야겠구나. "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예수가 피범벅이가 되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나를 제외한 사람들 대부분이 울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이 부끄러워서 훌쩍이는 것과는 다른 반응이었다. 작은 울음이 모여서 통곡이 되었다. 당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종교 수난극이 아니라 스플래터-고어 장르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도륙 당하는 십 대 역을 예수가 맡았을 뿐이었다.  혼자 소시오패스가 된 느낌.  

내가 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한 데에는 기독교에 대한 개인적 반감 탓은 아니었다, 예수라는 사내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으니까.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맬 깁슨이 이 영화를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에 집중한 의도는 명백했다.   예수의 고통 앞에서 " 너희는...... 흘러라, 눈물이여. " 가 아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불편과 불쾌가 변덕스러운 애인처럼 마음 속에서 오락가락했다. 이 느낌은 불편한 것인가, 불쾌한 것인가 ?  내 기준에 의하면 영화가 나에게 불편(한 마음)을 주었다면 좋은 영화인 것이고  불쾌(한 마음)했다면 나쁜 영화에 속했는데,  이 영화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가 않아서 애매모호했다.    하는 수 없이 판단중지(epochē)를 내렸다. 아, 몰라 ~ 

2년 후,    맬 깁슨이 연출한 << 아포칼립토 >> 가 상영되길래 이 영화와 함께 << 브레이브하트 >> 를 연속으로 보았다.  세 영화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  << 아포칼립토 >>  ,  << 브레이브하트 >> 가 가지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 고통을 견디는 몸 " 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을 극복하는 남성 몸'이다.  쇠꼬챙이가 살을 찌를 때 느끼게 되는 고통 따위를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 리얼 " 하게 만든다. 이 통각에는 " 판타스틱 " 이 없다.  맬 깁슨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는 < 상처의 리얼리즘 > 을 위해 당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던 분장 전문가인 케이트 반델란과 특수 분장 전문가인 그레그 켄놈을 고용한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상처가 가짜처럼 보여서 (관객이 느끼는) 통각 지수가 떨어지는 것이다. 목적은 명백하다. 그가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를 만들기로 마음 먹은 데에는 예수의 정신이 아니라 고통을 견디는 몸에 있었던 것이다.  자고이래로 예수보다 극한 고통을 견딘 사내가 있었던가 ?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내 스스로 내린 에포케는 해제되었다. 영화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는 불편한 영화가 아니라 불쾌한 영화'다.  영화평론가 허문영은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끔찍하게 도륙당하는 하드 바디 예수 >> 라는 글에서 " 멜 깁슨은 실은 해석하지 않는다.  

목회 장면들이 가끔 삽입되지만 끔찍한 고문 장면들이 거의 전부인 이 영화의 서사는 어떤 종교적 질문도 시도하지 않는다 1) " 고 비판한다. 예리한 지적이다. 이 영화를 해석할 수 없는 이유는 서사가 부재하다는 데 있다.  이상하게도 성서에는 예수의 마지막 12시간을 크게 다루지 않는다. 몇 줄(혹은 몇 장?!)이 고작이다. 채찍질을 당했다더라_ 가 전부인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도 말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기독교에서 중요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성령에 있라는 것. 맬 깁슨은 성서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재현했지만 그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 고통을 받는 육체의 감각 " 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서사는 없고 감각만 남았다 2).   맬 깁슨이 보기에 예수는 영적 성웅이 아니라  육체적 영웅이다.   그는 육체적 영웅인 예수를 << 리셀웨폰 >> 시리즈 영화에서 주인공 릭스 형사와 동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    서사보다는 감각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둘 다 갈라진 < 틈 > 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포르노 영화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포르노는 여성 - 성기에 집착하고 이 영화는 도륙당한 남성 - 상처에 집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고통을 성찰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픔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비교적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고통을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가 심리적 통각이라면 후자는 육체적 통각이다.  아픔이란 고통 뒤에 오는 것이다. 못이 손을 뚫었을 때 느끼는 통각은 고통이지 아픔이 아니며 고통에는 서사가 없지만 아픔에는 서사'가 있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보는 한국 사회의 반응도 이와 유사하다. 한국 사회는 피해 여성의 고통에는 공감하지만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항상 실패한다.

내가 맬 깁슨의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 를 형편없는 영화로 취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맬 깁슨은 예수의 고통에 집착한다. 고통에는 서사가 없다. 내가 예수에 공감하는 부분은 예수의 고통이 아니라 예수의 아픔이다






​                                            

1) 허문영, 세속적 영화 세속적 비평 471쪽

2) 한국 문학도 서사는 없고 감각만 난무한다. 신경숙 소설이 대표적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의 감각을 웅성거리는데 막상 서사는 부재한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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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b급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 가짜 티 ˝ 가 너무 많이 난다는 데 있다. 가짜 티가 많이 난다는 것은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는 것인데, 바로 그것 때문에 거부감이 없다. 우리는 두동강이 난 시체를 보며 웃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짜 마네킹이기 때문이다. 감독은 친절하게 이 영화 가짜입니다, 아셨죠 ? 라고 친절하게 가짜 티로 증명한다. 반면 저런 영화를 리얼리티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학대한다.

마립간 2016-07-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피해 여성의 고통에는 공감 못하지만 아픔을 이해하는 데에는` (항상?) 성공한다. ; 라고 할 만하겠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1:44   좋아요 0 | URL
글세요.. ㅎㅎ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이 먼저 선행되어야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마립간 님은 고통도 이해하고 아픔도 이해하는 축입니다.

마립간 2016-07-11 12:04   좋아요 1 | URL
그것은 이해와 공감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다르겠죠. (제가 독후감을 안 올린 책) ≪나, 소시오패스 ≫를 추천합니다.

직장 동료 A가 모친 상을 당했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신 동료 B는 조문을 하지만 자신이 이해하고 느끼는 바가 전부인가 생각합니다. 동료 C는 20년 전에 모친상이 있어 그 때 일을 떠올리며 동료 A를 위로하지만 그리 슬프지는 않습니다. 직장 동료 D는 A와 친구이며 돌아가신 어머니와 생전에 교류가 있어 A와 함께 울음을 터뜨립니다.

공감의 정의에 따라 C와D가 나뉘며, 이해의 정의에 따라 B와 C가 나뉘죠. ; 마립간의 분류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2:07   좋아요 0 | URL
오호, 그렇군요. 마립간 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갑니다.. 예로 든 예시가 딱이군요..

stella.K 2016-07-11 1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곰발님과 같은 생각에서 이 영화가 불쾌한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맬 깁슨이 신앙심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그런 의혹은 남죠.
너무 잔인해서 보다 말았습니다.
누군가 너는 기독교인으로 이런 것도 끝까지 안 보냐고 한다면 그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전 이건 기독교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기독교를 희롱하기 위해 만든 영화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인 거죠.
이런 불쾌한 영화를 그저 예수님 이미지를 덧씌웠다고 기독교 영회라고 생각하고
홍보까지 해 주니. 기독교가 문화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수준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게
전 오히려 통탄하게 되더군요.
기독교가 문화를 비판한다는 게 고작 20년 전 뉴에이지 비판이었습니다.
정말 예수님 고난 당하신 건 성경에서 얼마 다루어지지 않죠.
그것을 크게 확대해석하고 싶어 하는 게 교횐데
그것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저러다 기독교인을 메저키스트로 몰아가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3:43   좋아요 1 | URL
100% 동의.
종교 영화를 빙자한 고어 영화죠. 자상이 저렇게 많은 육체 이미지는 처음 봤습니다.
맬 깁슨은 자극적인 설정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죠.
예수를 읽지 못했습니다.
이 영화는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서사를 해석하는 힘도 0%에 가깝습니다.
영화에서 서사에 대한 해석과 질문이 빠지면 그건 영화가 아니죠..

고어 영화입니다. 고어 영화는 그래도 양심은 있씁니다.
상처가 가짜라는 것을 보여주거든요. 일급 분장사를 쓰지 않죠.
고어가 워낙 제작비가 저렴하다 보니..
분장이 대체로 형편없거든요..
근데 이 팍품은 정말 상처처럼 보여서 고통스럽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1 13:45   좋아요 2 | URL
제가 한국 영화 최악의 영화로 자주 언급하는 영화가
<< 악마를 보았다 >> 인데..
영화 보면 가해자인 최민식을 체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놓아줍니다. 이병헌이...
그럴 수록 희생자는 늘어나죠.
관객은 늘어난 희생자만큼 끔찍한 고통을 계속 훔쳐보게 됩니다.
보면서.. 김지운 이 개새끼네 했습니다.
고통을 눈요깃감으로 전락시키다니....

clavis 2016-07-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저의 판단중지에ㅡ지난 선거때부터해서..강한 설득력으로 득세하시는 곰곰발님 만셉니다.저도 예수 곁에 살다가 조용히 먼 길 떠나고 싶은,일인으로써 고통 이전의 아픔을 성찰해주신 발님께 깊게 감사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2 09:05   좋아요 1 | URL
입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손으로 먹고 살고 있으니... ㅎㅎ.
이 리뷰를 쓰게 된 동기가 맬 깁슨이 < 패션 오프 크라이스트 2 > 를 찍는다고 하더군요.
흥행 영화 속편을 만드는 경우는 있어도 종교 영화 속편을 만드는 경우는 살다살다 처음입니다.
종교적 영감보다는 말 그대로 흥행을 노린 거죠. 그는 예수를 판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