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동방불패 [dts] - [할인행사]
정소동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동 방 불 패 :
목마와 숙녀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 << 오디세이아 1,2,3 >> 의 분량이 방대하여 책을 읽기에 앞서 신화 속 인물 관계도를 작성하려고 트로이 전쟁 약사(略史)를 정리하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트로이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쟁 명분이 된 < 파리스의 심판 - 서사 > 를 이해해야 한다. 신들의 결혼식 피로연. 평소 신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여신 에리스1)는 복수를 위해 피로연이 벌어지는 정원에 황금사과 한 개를 떨어뜨린다. 사과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 " 그러자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자기 것이라며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세 여신은 제우스에게 판결을 부탁한다. 일종의 미인 선발 대회 심사위원장으로 제우스를 선택한 것이다. " 제우스여, 우리 셋 중 누가 제일 예쁩디까 ? " 제우스는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왜냐하면 선택에서 탈락한 두 여신으로부터 원한을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결국, 심사위원장 자리는 인간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청년인 목동 파리스에게 돌아간다. 문제는 미스유니버스 월계관을 차지하기 위해 세 여신이 각자 그에게 은밀한 제안을 했다는 데 있다. 헤라 여신은 파리스에게 아시아를 통치한 권력과 부를, 아테네는 싸움(전쟁)에서 절대로 지지 않는 힘을,
아프로디테는 스파르타 왕녀인 헬레나를 뇌물로 내놓는다. 금도끼, 은도끼, 쇠도끼 - 서사인 셈이다. 헤라가 내놓은 뇌물은 동방 통치권이고, 아테네가 던진 미끼는 불패(불사) 권능이며, 아프로디테가 선보인 것은 사랑의 묘약이었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인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손을 들어 준다. " 허어, 이 사람 야망이 없는 남자네. 절대 반지(권력,불사) 대신 은가락지(사랑) 따위를 선택하다니...... " 이 선택은 결국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파리스와 사랑에 빠진 헬레나가 트로이로 도망치면서 트로이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미인 선발 대회에서 탈락한 헤라와 아테네가 트로이 전쟁에서 누구 편을 들지는 뻔한 예측. 그 유명한 목마가 성 안으로 유입되면서 트로이는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파리스와는 정반대로 헤라와 아테나에게 공동 수상을 준 미인 대회 심사위원장이 있다. 그가 바로 동방불패라는 이상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내'다2). 서극이 제작하고 정소동 감독이 연출한 무협 판타지 영화 << 동방불패 >> 에서 임청하가 연기한 동방불패는 " 규화보전 " 을 익혀서 강호를 " 제패한다. " 나중에는 재팬(japan)까지 규합하여 아시아 전체를 " 제패하는 " , 말 그대로 욕망의 도가니 같은 사내다. 그는 헤라와 아테나 모두에게 손을 들어주어 동방 통치권과 불패 권능을 얻은 악당이니 사랑 따위를 선택한 파리스와는 정반대에 놓인 인물인 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규화보전을 익히기 위해서는 거세를 해야 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임청하가 연기하는 동방불패라는 인물은 사랑 대신 권력과 불사를 선택한 인물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 역설 " 이 존재한다. 거세로 인해 여성이 된 임청하(동방불패)는 그만 이연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임청하는 이연걸을 죽일 수 있었지만 사랑 때문에 머뭇거린다. 이 머뭇거림은 임청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권력과 불사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랑 따윈 필요없다3)고 다짐했던 동방불패는 하찮은 " 사랑 따위 " 에 죽는다. 생각해 보면 파리스보다 불행한 쪽은 동방불패'다. 파리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죽고 동방불패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손에 의해 죽으니까.
성공을 위해서는 사랑 따윈 개라 주라지_ 라고 말하는 남자보다는 사랑밖에 난 몰라_ 라고 말하는 남자가 더 행복하다는 결론으로 이 글을 끝맺기로 하자 ■
1) 에리스 : 밤의 여신 닉스가 혼자 낳은 딸로 주로 고통, 전쟁, 살인, 싸움, 거짓 등을 불러일으켰다.
2) 유재원인 << 신화로 읽는 영화 >> 에서 동방불패를 파리스의 신화를 우라까이했다고 말한다.
3) 자발적 거세 행위야말로 사랑 따윈 필요없다는 선언이 아닐까 ? 술 마시고 노래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이연걸은 니체가 말하는 디오니소스적 인물이다. 그는 권력을 덧없이 바라보는 인물로 도가를 대표한다. 니체, 스피노자, 노자, 장자의 공통점은 " 몸-철학 " 에 있다. 몸의 쾌락이 정신을 지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