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문학동네 시집 43
윤희상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못 이야기


흉터는 신기한 힘이 있지 과거가 진짜로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거든 

_ 모두 다 예쁜 말들 

 

어릴 때 사람들이 인형이나 로보트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어린 나는 망치를 들고 놀았다.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고사리손으로 나무조각에 잔못을 박던 기억. 하루 이틀이면 그려려니 했을 텐데 날마다 가게 구석에서 나무에 못을 박고 있으니 어머니는 걱정이 크셨다. " 커서 뭐가 되려고 ! " 가게를 오고가는 사람들도 망치질 하는 꼬마를 보며 궁금한 표정을 짓곤 했다(혹은 묻곤 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궁금할 것이다. 왜..... 그러셨어요, 네에 ? 사람들은 모른다. 못이 반듯하게 나무를 파고 들어갈 때 느끼게 되는 감동. 아버지는 아들이 못질을 할 때 손을 다칠까 봐서 푸석푸석한 나무와 목통(木桶)에서 잔못을 골라 내게 주셨다. 나는 그 나무토막이 못투성이가 될 때까지 못질을 했다. 사람들은 못질하는 꼬마의 행동을 목적 없는 유희'라고 생각했지만 내게는 분명하며 은밀한 목적이 있었다. 못투성이가 된 나무를 물이 담긴 세숫대야에 넣자  못투성이 나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와아 ~  철의 무게가 나무의 부력을 이긴 것이다.

비가 오는 밤이면 종종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연출한 << 길, La Strada, 1954 >> 이라는 영화를 본다, 그 옛날 습관적으로 << 아비정전 >> 을 보았듯이. 문득 깨닫게 된다. 이 영화는 여자 마음에 못질을 한 남자와 못이 박힌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그 옛날 물 속으로 가라앉은 못투성이 나무를 기억하며 회한에 젖는다.  못투성이가 된 마음은 얼마나 무거울까 ?

 

 

변두리 다방에 가서 앉는다. 종업원 아가씨는

두 잔의 커피를 가지고 와서 옆에 앉는다. 그 무렵부터

여자는 옷을 벗기 시작한다. 내게는 쉽게 벗는 것

처럼 보인다. 벗은 몸에는 여러 개의 못들이 박혀

있다. 들여다보면 못의 머리에는 남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반쯤 덜 박힌 못이

있다. 때로는 속옷이 걸려서 찢어진다고

그런다.

           ㅡ 시집 <<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 >> ,  '못 이야기'  전문


변두리 다방에서 티켓을 파는 종업원 아가씨도 한때는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생생한 부력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를 읽다가 경찰의 성매매 단속을 피해 통영 앞바다가 보이는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죽은 여자를 생각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부자가 된다는 것은 부력을 가지고 가난뱅이가 된다는 것은 중력을 얻는다는 사실. 울컥 내려앉은 마음으로,     통영으로 내려갔다. 계획에 없는 여행이었다. 그녀가 뛰어내린 모텔 6층에 머물렀다. 그곳에서 부력을 잃은 여자를 생각했다. 17살에 딸을 낳고 24살에 죽은, 못투성이가 되어 가라앉은 한 여자. 그날 내 노트에 남긴 메모. 


 

 

그녀에게

 

형사들이 들이닥쳤을 때 부끄럽지는 않았아요 어차피 내 生은 벌거벗겨진 몸이었으니까요 또래 친구들이 화사한 옷을 몸에 걸치고 사내를 만나러 갈 때 나는 낯선 남자 앞에서 옷을 벗어야 했어요 내 새까만 거웃이 가난의 얼룩처럼 보여서 서러워서,   사내 앞에서 거웃을 가리던 때도 있었지요  16살에 집을 나왔어요 거리에서 생강처럼 작고 독한 남자를 만나 17살에 딸을 낳았지요 너무 어린 나이에 씨앗 품어 도사리 같던,  내 딸 그래요 형사 아저씨  돌이켜보면 내 生은 늦겨울 묵정밭에 핀 하얀 무꽃처럼 근근히 버티는, 삶이었어요  늙은 아비는,  허리를 다쳐 바닥에 눕고 딸아이는 저렇게,  해맑게 피어나고 나는 점점 웃음을 잃었습니다 통영 앞바다 새파란 남해가,  참 아름답네요 다, 내려놓겠습니다.

 

나는,         영화 << 길 >> 에서 짐승처럼 목 놓아 우는 짐파노를 이해한다.   깊은 밤 雨中.  내 못질 때문에 가라앉은 사람을 생각하며 목 놓아 운 적이 있다 

 

 

 

 

 

 

 

 

 

 

 

 

 

 

 

 

덧대기 ㅣ 정인의 뜨거운 안녕,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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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04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무렵 곰발님 올렸던 희곡이 지금도 가끔씩
생각납니다.
이 리뷰를 읽으니 또 생각이 나는군요.
오늘 리뷰는 정말...!!!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5:04   좋아요 0 | URL
스텔라 님 말씀에 문득 저도 다시 읽고 싶어 뒤졌는데
보이질 않네요.
참... 안타까운 죽음이었죠.
티켓 팔아 병든 아버지 병원비 대고 딸을 키웠다는데....

stella.K 2016-07-04 16:07   좋아요 0 | URL
저도 찾아 봤는데 못 찾겠네요.
그때 별찜했어야 했는데...ㅠ

대신 찾다가 예전에 `실크 보다 부드러운`이 발견이 됐어요.
그때 정말 제가 곰발님 시각장애자인 줄 알았다 깜빡 속아서
분개해서 쓴 댓글이 보이더군요. 다시 보니 얼마나 웃기던지...ㅋㅋㅋ
그때 이후로 퇴폐를 안 쓰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읽는 `세속도시의 시인들`에서 김요일을 두고
고은 시인이 퇴폐시를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시인 중 한 사람이라고
극찬을 하더군요. 여기 또 한 사람 있는데...물론 시는 아니지만.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6:30   좋아요 0 | URL
좋군요. 제가 쓴 글이지만.
제 나름대로는 페이퍼소설이라는 식으로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김요일이 누군지는 잘 모르겠네요. 댓글 달고 나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은 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나와같다면 2016-07-04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소리와 함께 듣는 정인의 `뜨거운 안녕` 뭉클하네요.. 잘 들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1:20   좋아요 0 | URL
정인이란 가수 노래를 아주 잘합니다..
유희열이 불렀을 때는 그지같았는데 말입니다.

samadhi(眞我) 2016-07-0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가슴이 찡합니다. 비와 어울리는 글이네요. 곰발님 못(멋)째이~^^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5 11:19   좋아요 0 | URL
비는 오고.. 술은 한 잔 걸쳤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금이야 옥이야 :

 

 

 

부, 동산 노다지 활극



                                                                                        산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중노동에 가깝다. 촬영 장비 무게가 만만치 않은 데다 이동이 간편한 스테디캠으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뛰다가 울퉁불퉁한 돌부리에 자빠지기 일쑤다. 하다 못해 바닥에 레일을 깔 때도 삽질은 필 수다. " 삽질의 추억 " 인 셈이다.

 

오죽했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 << 피츠카랄도, 1982 >> 에서 클라우스 킨스키가 연기 포기 선언을 하자 감독이 총탄이 장전된 총을 머리에 겨눈 채 배우를 협박했을까. " 찍을겨, 아니면 죽을겨 ? "  피츠카랄도  촬영장은 전쟁터'였다. 클라우스 킨스키는 촬영 내내 화가 나서 감독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고, 원주민들은 킨스키를 (실제로) 죽여주겠다고 감독에게 은밀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광기 어린 클라우스 킨스키의 얼굴 표정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였던 셈이다. 산에서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이 정도라면 제작진이 이 영화에 쏟아부은 노동 강도는 말해서 무엇하랴.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이 영화는 거대한 증기선을 산으로 옮긴다.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 << 곡성 >> 을 좋게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촬영하는 내내 촬영 스텝을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영화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둔 까닭이다(제작 스텝을 구할 때 첫 번째 조건은 체력이었다). 영화 << 사냥 >> 도 주요 무대가 " 산 " 으로 금을 차지하기 위한 엽사 무리와 원주민의 한판 대결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도 배가 산으로 가는 영화'다, 나쁜 의미로 !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제작자인 김한민 표 영화'다. 피천득 수필 << 인연 >> 을 흉내 내자면 " 나는 김한민(영화) 과 세 번 만났다.

첫 번째는 << 최종 병기 활 >> 에서, 두 번째는 << 명랑 >> 에서, 그리고 마지막 만남(사냥)은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 걸 그랬다.   영화는 개연성이 부족하고 통일성도 없다. 영화를 만드는 학생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영화'다. " 이렇게 만들면...... 좆되는 겁니다, 아셨죠 ? "  몇 가지만 나열하기로 하자.   ㉠ 아버지(안성기)가 전화를 받지 않자 딸이 아버지 집을 찾는다. 딸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막말을 쏟아낸다. " 차라리 죽어버리던지 !!! " 부녀 관계가 심상치 않다. 감동적인 결말을 위해 설정된 불협화음인가 ? 

마지막에 딸에게 용서를 구하는 아버지. 뭐, 그런 구도 말이다.  하지만 웬걸 !  다음 장면에서 아버지와 딸은 둘도 없는 사이가 되어 희희낙락하며 사이 좋은 부녀 관계를 연출한다. 양극성 장애 환자 캐릭터 같다.  딸을 연기하는 배우는 신동미 씨로 실제 나이는 1977년생이다. 40대 중년 여성이다. 젊게 봐준다고 해도 삼 십대 중반. 아들로 나오는 이해영이라는 배우는 1970년생으로 40대 중년 남성이다.  내가 배우 나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영화 속 사냥꾼으로 나오는 주인공(안성기) 나이를 추론하기 위해서다. 자식들이 중년인 것으로 보아 그가 젊었을 때 결혼했다고 해도 60대 중반인 셈이다.

백발이 성성한 외양만 봐도 짐작이 간다.  영락없이 << 반지의 제왕 >> 에 나오는 간달프'다. 그런데 활동량은 람보 못지 않다. 무진 계곡에 나타난 칠순 람보 같다.  물 속에 숨어 있다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물 밖으로 나와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누가 봐도 << 람보 >> 를 패로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상당히 민망하다. 이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관객이 있을까 ?   이 영화 주제가 " 인생은 60부터 " 라고 한다는 할 말은 없지만,  아로나민 골드 광고 보려고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 금을 좇는 외지인들은 엽사 무리로 묘사되는데 왜 꼭 엽사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엽사는 짐승을 쫓는 사람들이지 금을 좇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 이 영화는 기획자가 내놓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무기를 활용해서 쏠쏠한 재미를 본 탓일까 ? 이 영화는 김한민의 무기 3부작'처럼 보인다.   ㉢ 정말 황당한 것은 쌍둥이 형제로 나오는 조진웅 캐릭터'다. 쌍둥이로 나온다는 것은 어떤 트릭을 위한 묘수일 터인데 영화 내내 도플갱어 트릭 장면은 한 컷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가 멍청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보기엔 그 시나리오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제작진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려야 할 것 같다. ㉢ 개연성은 제로에 가깝고 통일성도 전무하다. 

안성기는 서울 표준어를 쓰고, 조진웅이 1인 2역을 하는 쌍둥이 형제는 경상도 사투리의 흔적이 묻어나고, 한예리는 아예 대놓고 << 웰 컴 투 동막골 >> 에서 강원도 사투리를 능청스럽게 구사한 강혜정을 심하게 우리까이한다. 이 정도면 한예리가 강혜정 목소리를 성대모사하는 수준이다. 이 영화가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 로컬리티의 재현 " 은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어이없게도 실종되었다. 감독에게 묻고 싶다. 영화적 배경인 장소는 서울 외각입니까, 경상도 산골입니까, 강원도 광산 마을입니까 ? 배경에 맞는 말씨와 환경 설정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제일 먼저 체크해야 될 가장 기초적인 항목인데 감독은 그 사실을 놓쳤다.  

한국 영화가 늘상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느닷없이 핏줄에 대한 이야기로 끝난다. 기승전부(父)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이 영화에 대한 기자들의 평점이다. 영화판에서 논다고 너무 후한 점수를 주셨다.  아마, 20자평을 쓰면서도 스스로 민망했을 것이다. 이게 이 영화를 제작한 김한민 파워인가 싶다.  이런 영화를 두고 액션 영화라고 한다면 민망하다.  이 영화는 액션 장르가 아니라 노다지를 노리는 자의 탐욕을 다룬 " 부동산 활극1) " 이다. 이 영화를 요약하자면 람보를 연상시키는 조선 하드-바디인 노인이 애타게 반지를 찾아 떠나는 모험 ? 혹은 반지 전쟁 ??!  나라면 10점 만점에 0.5점 준다. 1점도 후하다 ■

 

 

 

 

 

                                  

 

1) 부동산 활극은 평론가 김소영이 영화 << 짝패 >> 를 언급하면서 사용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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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6-07-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성기 올해 59년차라고 하더군요. 내년이면 60년.
아역부터 했으니 아무리 적게 잡아도 60대 후반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전 김한민 감독에게 점수가 후한 편인데...
그냥 남자다운 근육질을 보여줘서 장면에도 공을 많이 들이잖아요.
스토리야 어땠던 지간에.ㅋ
조진웅과 안성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기대되던데
곰발님은 아니셨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9:19   좋아요 0 | URL
나이가 59세가 아니라 연기 경력 59년차라는 거죠 ?
근데... 왜 연기는 늘지 않는지..
전 안성기가 연기 잘한다는 생각을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뭔가 다 어색합니다, 안성기는...

부러진 화살에서는 좋았습니다만.. 나머지 영화는 영..


stella.K 2016-07-02 19:38   좋아요 0 | URL
ㅎㅎ 뭔지 알아요.
별로 연기한다는 느낌 안 들죠?
뭔가 엉성한 것 같고. 그런데 그게 또 먹어주는 배우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대표적인 게 안성기고.
그래서 주연은 안 맞잖아요.
그냥 아무 영화나 끼어도 물 흐르는 것 같고 있는 듯 없는 듯.
연기를 잘해서라기 보단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질 보다 양으로 승부해서 그 자리까지 간 것 아니겠습니까?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9   좋아요 0 | URL
안성기란 배우가 워낙 성실하고 자기 관리를 잘하니
모자란 연기도 다 커버가 된 듯합니다.
한국에서 배우 한다는 것은 정말
도 닦아야 하는 직업..
한번 실수하면 끝이잖습니까..

samadhi(眞我) 2016-07-02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성기 연기 못 한다 생각해요. 중년이상 배우들, 몇 십년 연기한 유명배우들 연기도 진짜 엉망이더라구요. 최불암, 송재호 등등
저도 이 영화 안 보고 싶었는데 확실히 안 봐도 되네요. 평점은 현저히 낮던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8   좋아요 0 | URL
최불암은 잘하지 않나요 ? ㅎㅎ. 하여튼 저는 안성기와 설경구 연기가 그렇게 거슬릴 수 없습니다.
위의 스텔라 님이 지적했듯이 안성기는 이제 조연으로 주연으로 끼면 뭔가 좀 안 맞아요..
성실성 하나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samadhi(眞我) 2016-07-03 12:00   좋아요 0 | URL
저도 여태 잘 하는 줄 알았는데 식객 드라마에서 놀랐습니다. 중견배우가 무조건 연기 잘 한다는 선입견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게 됐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2:05   좋아요 0 | URL
드라마 연기에 익숙하다 보면 만날 똑같은 패턴의 연기만 하죠.
개인적으로 정보석 연기는 못 봐주겠습니다. 정보석은 연기를 하면 안 되는 배우..

samadhi(眞我) 2016-07-03 12:09   좋아요 0 | URL
정보석같은 사람이 넘쳐난다는 게 문제예요. 끊임없이 굵직한 역할을 하고 연기 변화 없이 화내고 소리지르고 어색하게 노려보기만 하는 배우들이 몸값을 어마어마하게 가져가는 바람에 정작 조연이거나 엑스트라 배우들 몫이 줄어드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15:38   좋아요 0 | URL
정보석 그래도 하이킥에서는 제대로 웃기셨습니다. 이젠 연륜이 쌓이면
폭발하는 순간이 있겠죠.
김민희 보십시오. 전 이 배우가 연기를 잘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배우가 되어 돌아왔더라고요..

가넷 2016-07-0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음이 뭉게지는 느낌을 받았는데, 내 주관적인 느낌일 뿐인 건지.;;;; 여튼 저도 개인적으로 안성기 연기는 별로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3 11:56   좋아요 0 | URL
배우로서 발성이 좋지 않죠. 사실 배우에게 목소리는 매우 중요한데 안성기는 목소리가 좋질 못해요..
 

 

 

 

 

 

 

 

이 쓸쓸한 청춘

 


1.     내가 돈 주고 산 첫 번째 책'은 썬데이-서울'이었다. 이때 내 페니스는 파이(π)를 넘지 못했다. 핑크 빛 누드가 넘실거렸다. 아랫도리가 간지러웠다.

 

2.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을 초등학교 6 학년 때 읽었다. 그 시절, 내 페니스는 파이(π)의 범위를 넘어선 상태였지만 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이 작품에서 중요 갈등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목에 새겨진 키스마크'인데 소설은 그 성애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했다. " 아하, 이런 과정이구나. "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책에서 묘사한 키스마크가 누나 목덜미에 새겨져 있길래 나는 큰소리로 누나를 가리키며 키. 스. 마. 크 라고 외쳤다.  누나가 다가와서 내 뺨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누나는 그날 한여름에 스카프'를 하고 학교에 갔다. 한여름에 스카프라니 !

 

3.    중 3 수학 시간'에 카프카가 쓴 변신'이라는 소설을 읽다가 수학 선생에게 걸렸다. 선생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봐서 변신'이라고 말하자, 병신 같은 놈_ 이라며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럴 시간에 수학 공식 하나를 더 외우라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수학 시간에 열심히 삼중당 문고를 읽었던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수업 시간에 수학 공식 따위나 열심히 풀었다면 이 글을 읽는 당신과 나는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카프카'가 당신과 나'를 연결시켜준 것이다. 이게 바로 문학의 힘'이다.

 

4.    옛날에는 알랭 로브그리예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고무지우개' 라는 책을 읽기 위해서 도서관은 이 잡듯이 다 뒤진 것 같다. 이 책'은 딱 두 군데 배치되어 있었다. 나는 정독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삼중당 문고에서 나온 책이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조심조심 넘겼다. 오래되어서 종이가 부서질 것 같았다. 사실, 그 소설이 좋았다는 점보다는 발견했다는 점'이 더 좋았다. 좋은 책이란 숨어 있는 책'이고, 좋은 독자란 숨어 있는 책'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책들은 꽁꽁 숨어 있을 것이다.

 

5.    스무 살 무렵, 나는 어느 유부녀를 사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여자'는 그냥 행실이 좋지 못한 여자였던 것 같다. 그 여자'가 내게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신이현의 숨어있기 좋은 방'이었다. 여자는 속지에 이렇게 적었다.  그 소설 속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소설 속 주인공 또한 행실이 좋지 않았다. 자기 변명을 교묘하게 문학적으로 포장한 최초의 여자였다.

 

6.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서 죽다'라는 소설을 읽었다. 리마 북동쪽으로 10km를 달리면 그곳에 새들이 비처럼 쏟아져 죽는 그런 작은 해안이 있다고 했다. 책을 덮었다.

 

7.    헌책방에서 카네티가 쓴 군중과권력'이라는 책을 산 적이 있다. 맨 앞장 속지 여백을 보니 책 주인이 쓴 메모'가 있었다. " 이 쓸쓸한 청춘 ㅡ " 으로 시작하는,    늘 그렇고 그런 고민이 묻어나는 문장이었다.  헌책은 타인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피식 웃었다. 나는 앞으로 이런 촌스러운 문장은 쓰지 말아야지 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책에 메모를 하지 않는다.

 

8.    어느 날이었다. 민음사에서 출간된 가타리와 들뢰즈의 앙티오이디푸스'를 꺼내 읽었다.  건성건성 책장을 넘겼다. 넘기다 보니 아주 오래 전 영화표 2 장을 발견했다. 영화 제목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그 옛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지도 못해 끙끙대던 시절에 우여곡절 끝에 함께 본 영화였다. 그때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하여 책을 덮었다. 술을 마셨다. 아마, 영화를 보러가던 그날 이 책'을 가방 속에 넣어두었었나 보다.

 

9.    카뮈와 사르트르에 열광한 적이 있다. 전적으로 이 열광은 김치수와 김화영 교수의 몫이 컸다. 김화영은 카뮈를 더 높이 평가했고, 김치수는 사르트르를 더 높이 평가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라이벌이면서 동반자였다. 누가 나보고 당신은 뫼르소(이방인)'를 더 좋아하십니까 아니면 로깡탱(구토)을 더 좋아하십니까_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한참을 망설일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마치 찰리 채플린이 더 좋으냐, 버스터 키튼이 더 좋으냐'는 질문처럼 들리니까. 그래도 한 명을 뽑으라면 뫼르소'를 뽑겠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뮈가 좀더 근사했으니까. 레인코트 깃을 세우며 담배를 피우던 그 사진, 멋있었다

10.    어느 날, 생각없이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코멕 메카시 소설 모두 다 예쁜 말들이 생각났다. 이유는 모른다. 아비정전을 생각하다가, 장국영을 생각하다가, 장만옥을 생각하다가 불현듯 모두 다 예쁜 말들이 떠오른 것이다. 다시 읽기 위해 찾은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냥......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 책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코멕 메카시가 쓴 소설을 모두 골라냈다. 핏빛 자오선, 국경을 넘어서, 평원의 도시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로드...... 하지만 여전히 모두 다 예쁜 말들은 보이지 않았다. 분실한 모양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이 갑자기 생각났다. 나는 천장이 낮은 옥탑에서 산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했다. 그 여자와는 헤어졌다. 그 책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책인 즐거운 지식이 내 책장에 있는 것처럼.  기억이란 늘 이렇게 의뭉스러운 점이 있지. 생각해 보니 아비정전'도 그녀와 함께 본 영화였다.

 

11.    톨스토이는 싫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좋다. (이제는)사르트르는 싫고 카뮈는 좋다.  정성일은 싫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좋다. 마르크스는 쉽게 썼으나 알뛰쎄르는 어렵게 썼고, 프로이드는 추리소설을 썼으나 라캉은 SF소설을 썼다.   그래도 둘 다 재미있다.  라캉보다는 푸코가 더 좋고,  데리다보다는 롤랑바르트'가 더 좋고, 공자보다는 묵자가 더 좋고, 칸트보다는 스피노자가 더 좋다.

 

12.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놀이'는 세계 문학 전집 맨 뒷장에 기재되어 있느 출간 목록'에서 읽은 책 제목에 노란 색연필로 밑줄을 긋는 것이다.

  

13.    동네 헌책방에서 새 책이나 다름없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구입했던 적이 있다. 속지에는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to. **    나에게 사랑에 대한 다른 시각을 심어준 책. 용기를 준 책. 이 책이 지금 너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줄거라 믿는다. 항상 밝은 모습. 긍정적 사고 잃지 말자. 사랑해. p.s 늘 항상 똑같이 !!     2010.4. ** 이가.           살해당한 시체와 읽은 책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둘 다 어떤 식으로든 증거를 남긴다는 점.  밑줄을 긋거나, 페이지를 접거나, 갈피 사이에 눌린 서표의 흔적이 있거나, 혹은 잘 말린 네 잎 클로버가 있거나 하는 식이다. 읽은 책은 반드시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 책은 읽은 흔적이 전혀 없었다. 특이하게도 출판사는 책과 함께 (소설에서 소개한 음악으로 구성된) 시디'를 책날개 안쪽에 붙여서 사은품으로 제공했는데 시디를 감싼 비닐 커버가 봉인된 상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니깐.....  여자는 남자가 선물한 책을 읽어 볼 생각도 없었고 음악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 남자는 알고 있었을까 ?

 
 

14.    내가 마지막으로 읽을, 마지막 읽을거리'는 뭘까 ? 카프카? 도스토예프스키 ?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내가 죽기 바로 전에 읽을 것'은 내가 쓴 ( 미리 작성한 ) 유서일 것이다. 이 쓸쓸한 청춘으로 시작하는 ,  늘 그렇고 그런 문장으로 끝나는, 그런 촌스러운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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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6-07-02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초딩때 빙점을 읽었지요. 기억이 새롭군요...^^
그런데 요즘은 빙점과 설국의 내용이 왔다리갔다리... 얼마전엔 실수도 했답니다...에궁~~~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52   좋아요 0 | URL
빙점이 청소년 문고로 지정되어 있잔습니까. 사실. 성애 장면이 꽤 나오는데 말입니다.
아야꼬였나요. 여자 이름이 ? 가물가물하군요..

표맥(漂麥) 2016-07-0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야코는 작가이름이고 주인공은 아마도 요코였을겁니다... 저도 가물...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58   좋아요 0 | URL
아. 미우라 아야코였죠. 작가가.. ㅋㅋ..
진짜 가물가물하네요. 갑자기 함 읽어보고 싶네요..

시이소오 2016-07-02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니 사르트르가 카뮈를 미위한겁니다. 보부아르를 의심하고
안구돌출된 눈으로 도무지 그림이 안나오잖아요.

3년전 글인데 풋풋하네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29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는 귀족으로서의 우월의식이 있었죠. 엘리트라는...
사실 사르트르가 보기에 카뮈는 천민 출신에 가까웠죠.
카뮈가 노벨상을 타자 그렇게 험담을 많이 했다고..

시이소오 님과 나눈 대화에서였나요. 숨어있기좋은방이란 소설에 대해 언급하셨길래
찾아보다가... 나름 풋풋한 글이어서 꺼내보았습니다.

시이소오 2016-07-02 11:34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아닌데요 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39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 이 건망증.. 다른 분인 것 같군요.. 요즘 기억력이 3초입니다..

기억의집 2016-07-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보니 몇년 전에 제가 연상되서... 빙점의 인기가 얼마나 굉장했는지 아마 우리 세대만 알 겁니다. 진짜 빙점인기 어마어마했죠. 몇 년전에 갑자기 저도 빙점이 생각나더라구요. 여기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물리치며..어쩌고 저쩌고 그 뻔한 스토리가 갑자기 추억으로 새록새록 생각나 일단 전자책으로 미우라 아야코의 수필을 구입해 읽는데,,,, 너무 유치한 겁니다. 그리고 며칠 후 도서관에서 대여했는데..하핫 최초 몇장 읽다 반납했습니다. 유치 오글오글 거리는데,더 이상 그 시대의 향수를 못 느끼겠더라구요. 그 책 읽으면서 위대한 책이란, 혹은 수백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책이 왜 위대한지, 시대를 초월한 시대정신뿐만 아니라 신파와 감정 과잉의 배제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해주는 주요 요인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3   좋아요 0 | URL
어린 나이에 제가 그 책을 읽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때는 이 책이 대형 베스트셀러였던 것 같습니다.
줄거리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고.. 키스마크 때문에 사달이 나는 이미지만 남아 있고..
확실히 지금 생각하면 통속이죠.

저도 처음에는 재미웞는 고전을 왜 읽나 했는데
이젠 알겠습니다. 고전은 확실히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의 원형성을 간직하고 있으니깐 말이죠. 오이디푸스 읽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samadhi(眞我) 2016-07-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즐겁습니다. 곰발님 회상은 재미 가득해요. 저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책을 제일 많이 읽었는데. 뭔 짓 하는지 걸리지 않으려 책상 위에 사전과 책을 가로로 잔뜩 쌓아놓고 책 읽거나 편지쓰거나 자거나 3년 내내 그러고 살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5   좋아요 0 | URL
저는 아예 교과서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수업시간에 책 읽던지 낙서를 하던지 둘 중 하나였던 것 같군요. 새록새록 기억이 나네요. 나름 학원사 책 열심히 읽었는데...

학원사 문고 아직도 있나 모르겠네요..
가끔 서점에서 범우사 책 보면 굉장히 반갑습니다. 범우사 디자인 변경하지 말고 계속 옛날 판형으로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범우사 종이 재질(누런.. ) 을 제가 좋아하거든요..

samadhi(眞我) 2016-07-02 11:47   좋아요 0 | URL
범우사 책 정말 좋지요. 양장본만 만드는 짓 안 했음 좋겠어요. 책값만 비싸게 받고. 누런색이 눈에도 좋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 양장은 무겁기만 하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범우사 판형이 딱 좋아요. 우리가 흔히 접하는 판형은 조금 큰 편이고..
민음사 세계 전집 시리즈는 너무 길잖아요. 딱 질색..


범우사 판형이 제일 좋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선데이서울은 담임샘이 사오라고 해서 산 잡지였던 것으로 기억.
국군장병아저씨가 보내는 물품에 이 잡지가 포함되어있었는데 내가 그걸 사기로 한 것..
각자 맡은 물품이 있다. 어느 학생은 비누, 어느 학생은 수건.. 이렇게..

가넷 2016-07-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빙점은 1년전에 읽었네요. 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구요. 그런데 생각의 나무는 망하지 않았나요? 다른 출판사인가... 책 자체는 좋은데 만듦새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출판사는 아니였죠.

<칼의노래>는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읽은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고향으로 가면 꺼내서 읽어봐야겠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1:50   좋아요 0 | URL
망했죠. 생각의나무 출판사 책은 조금 읽다 보면 반으로 쪼개집니다. 아마 그런 경험은 다 하셨을 듯.
좋은 출판사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자음과모음 출판사보다는 낫나 ? 최근 최악은 자모인 듯.

syo 2016-07-0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곰발님 글을 볼 때면
`이 양반은 정말 재미난 일로 점철된 인생을 사셨을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마냥 그렇지만은 않았군요!
그래봤자(?) 글은 항상 너무 재밌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2:00   좋아요 0 | URL
재미없는 삶이니깐 재미있게 포장하는 겁니다.
글은 저에게 미원이죠.
언제부터인가 글을 멋스럽게 쓰는 것에 대해 염증을 느껴고 있습니다.
한때 문청 흉내 내던 게 부끄럽더라고요..ㅎㅎ

cyrus 2016-07-02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번 공감합니다. 나만의 도서목록을 만들어 놓은 뒤에 목록에 있는 책을 다 읽고, 글을 작성하면 표시를 해둡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5:39   좋아요 0 | URL
연속으로 10개 정도 밑줄 그으면 짜릿하죠. 어느 때는 표적 독서를 해서 열 개을 연달아 밑줄 긋기도 합니다.

stella.K 2016-07-02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2번에서 빵 터졌습니다.
대체로 같이 사는 사람들이 적인 경우가 많죠. 더구나 누나와 남동생인데...ㅋㅋ
저는 17, 8살 무렵에 범우사판으로 빙점을 읽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게 제가 처음 읽은 일본 문학이었던 것 같은데 정말 좋았죠.
그리고 나중에 두꺼운 책 2권 짜리로 다시 읽었는데 좋긴 했지만 처음만 같지는 않더군요.

알랑 로브르리예 어렵지 않던가요? 몇년 전 질툰가 하는 소설 읽을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결국 실패한 기억이 납니다.ㅠ

근데 오늘 글 정말 좋네요. 짧게 써도 이렇게 좋은데 전 항상 만연체를 구가하고 있으니...ㅠㅠ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7:52   좋아요 0 | URL
누나와는 1년 동안 말을 아하고 지낸 적도 있습니다.
뭐 워낙 성격이 다르다 보니 지금도 누님은 식구들에게는 비싼 옷 자주 사주면서(오늘도 형님 등산복 사준다고 수원에서 일부러 올라와서 백화점 갔음)
저는 만 원짜리 티셔츠 한번 사주지 않았습니다. 아마, 이때부터 갈들의 싹이 .. ㅋㅋ



그땐 어려서 로브그리예란 작가의 작품은 일종의 컬트마니아가 희귀 비됴 찾아다느는 쾌락에 읽었던 것 같습니다. 희귀본 구해서 읽는 심리하고나 할까요..

푸른희망 2016-07-0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런글을 한번 써보고싶은데 기억이 안나요 ㅜㅜ 뭘 읽고 뭘 생각했는지 참 전 오래된 책갈피에서 빳빳한 이만원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넣어둔 내돈이지만 좋았지요 역시 책속엔 뭔가 있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4 09:20   좋아요 0 | URL
댓글이 늦었네요. 미안합니다. 저도 사실 연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정도 때쯤 그런 책을 읽었지... 하는 추론일 뿐이죠. 푸른 희망 님의 독서의 역사를 듣고 싶습니다..
 

 

 


 

 

 

 

 

 

 

 

 

 

 

 

                                                   

 

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


  

 

 


                                                                                             " 센 언니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  범죄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녀 스스로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팜 느와르(악녀) 같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에는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속 여성 캐릭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간다. 

< 여자 나홍진 > 같다고나 할까 ?  독자는 목이 졸린 상태에서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끝까지 읽게 된다.  누군가가 그래도 팬 서비스를 위해서 희망이라는 빛 한 줄 정도는 넣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리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꿈이나 희망 따위를 내 소설에까지 요구하지 마세요 ! " 소설  << 아웃 >>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이다.   하지만 아웃을 이웃에게 추천할 자신은...... 아우 ~  없다.  생생한 날것을 직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극단까지 내몰린 여자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소설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손질하는 작업(시체를 토막내고 유기하는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독자인 나는 예상치 못한 주장에 당황하게 되지만 읽다 보면 이내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된다. 생선 따위를 손질하거나 분리 수거하는 몫은 자고이래로 여성이 도맡아서 했으니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작업 공간이 부엌에서 욕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탐정과 주부는 하는 일이 같다. 범죄 현장은 엔트로피(무질서) 상태'다. 선혈은 낭자하고 유리 파편은 흐트러져 있다. 용의자는 너무 많거나 아무도 없다.

범죄 소설에서 탐정(혹은 형사)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해서 엔트로피를 네트로피(질서)로 편입시킨다. 비정형을 정형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추리(혹은 수사)다.   주부도 탐정과 같은 일을 한다. 청소는 뒤죽박죽인 상태(엔트로피)를 질서정연한 상태(네트로피)로 편입시켜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거실에 흐트러져 있는 레고 조각을 레고 박스에 담거나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을 책장에 꽂는 행위는 비정형을 정형으로 바꾸는 일. 이처럼 탐정과 주부가 하는 일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래도 여자는 약하다고 무시할 텐가 ? 

청소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고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이다.  모든 물건에는 " 제자리 " 가 있다.  책의 제자리는 책장이고, 옷은 옷장 속이 제자리'인 셈이다. 인간에게도 제자리'가 존재한다. << 사람, 장소, 환대 >> 에서 김현경은 "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27쪽) " 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뒤죽박죽(엔트로피)이 된다. 귀신 들린 집을 다루는 하우스 호러물은 물건이 제자리를 이탈할 때 오는 불안(Angst)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유령이 공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이란 독일어로 < angst : 불안, 걱정, 공포 > 이고 영어로 < anxiety > 인데  두 단어 모두 ' 좁다 ' 라는 뜻의 라틴어 < angustiae > 에서 나왔다. 또한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 >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하우스 호러물인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인해 공간은 협소해지고, 제한을 받으며, 생활이 불편해진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지점은 < 유령은 무섭다 > 가 아니라 < 청소는 중요하다(혹은 자리는 중요하다) > 가 아닐까 ?   청소는 설-자리, 누울-자리, 쉴-자리'를 만드는 행위'이니 얼마나 숭고한 행위인가.  그 일을 여성이 도맡아서 하는 것이다(하지만 남성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고된 바깥일의 중요성만 늘어놓는다. 정말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그런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1)은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동일하다.    상가 주인의 횡포는 시끄러운 유령을 닮았고,  치솟는 임대료에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소규모 상인은 페기peggy네 가족2)을 닮았다.  

1977년 영국 엔필드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 출몰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홍대, 경리단길, 상수동, 서촌 등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재개발이란 명복으로 가난한 노동자의 집을 빼앗는 부동산 개발업자나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가 또한 폴터가이스트'이다. 그들은 서민의 설 자리, 누울 자리, 쉴 자리를 빼앗는다.  대한민국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용산 망루에서,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길에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도 유령은 출몰한다.  폴터가이스트라는 이름의 유령이.......

마르크스는 << 공산당 선언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악한 유령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 ■

덧대기   ㅣ    책 두 권 소개하기로 하자.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걸작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보다  좋다.  바슐라르는 공간을 지나치게 " 장소애 " 로만 접근했다. 공간에 대한 책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김현경의 << 사람, 장소, 환대 >> 다.   http://blog.aladin.co.kr/myperu/8148273    영화 << 컨저링 2 >> 도 좋다.   이 영화는 하우스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뤘다.  만듦새도 좋고 정치적 에티튜드도 좋다.  평론가 박평식은 이 영화에 대해  " 시답잖게 겁준다 "  는  촌평과 함께 3점을 매겼지만,   박평식 촌평에 대한 내 촌평은 다음과 같다. " 뭣이 좋은지도 모름서 "







​                                           


1)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하였다. 글래스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 유입으로 인하여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하층계급 주민은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번성해진 구도심의 상업공간을 중심으로 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대표적 사례로 홍익대학교 인근(홍대 앞)이나 경리단길, 경복근 근처의 서촌, 상수동 등지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공방,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동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처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이 유입되어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 등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하였고, 결국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존의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두산백과)에서 부분 발췌 )

2 )      영화 << 컨저링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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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dhi(眞我) 2016-07-0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제가 권해 「아웃」을 읽기 시작한 친구가 어제 그 책을 부담스러워하더라구요. 사람 봐가면서 권해야 하는데 제가 좋으면 아무에게나 다 권하는 눈치없는 버릇이 있다보니 남편에게 늘 핀잔을 듣습니다.
그 친구가 오늘 우리집에 와 자고 갈 거라서 청소해야하는데 미적거립니다. 오늘 곰발님이 던진 화두가 공교롭게도(?) 제게 하는 말이 되는 거네요. 돗자리 까세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09:25   좋아요 0 | URL
글은 저녁에 쓰고 올리기는 아침에 올립니다. 고로 어제 던진 화두라고나 할까요. ㅎㅎ
걸작이기는 한데 이게 대중적이지는 않죠. 저도 몇 번 추천했다가 반응이 시원찮은 경험을 했습니다.
청소는 자리를만드는 일이잖습니까. 친구의 자리를 만든다는생각으로 열심히 청소를 !
숭고한 일입니다. 청소라는 일은..

포스트잇 2016-07-0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은데, 청소가 여성의 숭고한 일이라는 건 너무 나가신 듯ㅎㅎ

청소나 시체훼손처리나 힘이 관건인듯합니다. 남자들의 청소가 훨씬 더 깨끗한 감이 있어요.
여성범죄자들이 시체훼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더군요. 순전히 힘의 문제인지 장담은 못합니다만 ㅎㅎ
아, <아웃>에서도 여자들이 힘을 모아 분업하듯이 했던 것 같은데요.... 이 설정은 진짜.. 기리노 나쓰오 답다했네요.

요즘 인테리어랍시고 지나치게 깔끔한 집구석들을 봅니다.
올리는 사진들도 어찌나 깔끔들 하시던지. 다들 그러고 사는가 봅니다. 찍어 올릴 때 그 구역만 치우나...어쩌나...
`자리를 만든다`시지만, .... 비워진 자리를 채우지 않고 싶은 사람들도 많은 듯 합니다.
흐트러지고 제자리에 물건이 있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불안강도는 어떨까요, 결벽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리고, 버리지 못해 온갖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 눈에 띄는 장면들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11:19   좋아요 1 | URL
msg가 조금 과했나요 ? ㅎㅎ. 청소라는 행위를 철학적으로 생각하다 보니
그리 되었습니다. 사실 컨저링 보다가 생각난 아이디어였습니다.
사람들 왜 페밀리레스토랑 가면 먼저 사진부터 찍지 않습니까. 그 심리라고나 할까요.

전 아웃을 굉장히 재미있게 봤습니다. 내 기준에 재미있다는 점이 함정인 듯.

저도 종종 카메라만 잡히는 곳만 치우고는 사진을 찍곤 합니다.. 반성.

쓰레기와 함께 사는 사람을 호더스라고 하죠 ? 저장강박증..
전 다 버리는 스타일입니다. 책만 빼고 .. 언젠가는 책도 다 버릴 날이 오지 않을까 싶네요..

stella.K 2016-07-01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같은 분은 사실 좋으면서도 위험한 사람이죠.
저 같이 무엇이 중한지 알지도 못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새로운 시야를 선사하기도 하지만 아니다 싶으면 이것이 뭐지다냐
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매번 연출하시니...ㅋ
암튼 오늘의 페이퍼는 정말 영화와 책 둘 다를 믿어보게 만드시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1 16:1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전 위험한 남자입니다.
저도 뭣이 중헌지도 잘 모르는 1인입니다.
사실 곡성 보다가 초반에 졸았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극장만 가면
졸음이 쏟아지내요. 그리고 이젠 사람 이름을 곧잘 까먹습니다. 이것도 노화의 증거 같군요..
생각해 보니 제가 지금 동문서답하고 있는 것 같네요.. 허허..

stella.K 2016-07-01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 그러니까 곰발님은 위험한 남자를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노화를 겪고 있는 남자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왜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시나요?.ㅋㅋ 근데 저도 그래요. 전 연극 볼 때도 존 적이 있습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21   좋아요 0 | URL
제가 원래 말귀를 잘 못알아먹어서 엉뚱한 소리한다는 지적이 많이 받습니다. 어머니는 항상 속터져하시죠..
하도 건성건성으로 들어서 말입니다.

파트라슈 2016-07-0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리노 나쓰오 <아웃> 저도 봤는데 좋은 작품이더군요. 읽는 내내 감질맛 나는 작품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7-02 10:21   좋아요 1 | URL
몰입도가 갑이었습니다.
 

 

 

 


                                             

 

유 령 의   반 대 말 은   청 소 부  :

 

 

 



가난한 자에게 공포를 허하라 !

 

 

 

 

 


 

 


                                                                

가국 家國 1) 에서 이상적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된 조합이다.  이 말은 반대로 이상한 가족 형태는 < 아버지 - 어머니 - 나 > 로 구성되지 않은 조합이라는 의미와도 맥락이 통한다. 이상(理想)적 가족이 아닌 이상(異常)한 가족은 크게 < 부재 > 와 < 개입 > 으로 이루어진다.  아버지의 부재는 편모 가정이 되고, 어머니의 부재는 편부 가정이 되며, 자식이 없는 경우도 정상 가족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한 가국 체제에서는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나만으로 구성된 1인 가구도 이상한 가족 형태로 취급받는다. 그렇다고 이 부재를 채울 새아버지, 새어머니, 입양아의 유입도 마찬가지다. 하우스 호러물은 대부분 부재하는 가족이나 유입된 가족이 배경이다. 영화 << 엑소시스트, 1975 >> 는 아버지 없는 가정에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이고, << 요람을 흔드는 손, 1992 >> 은 정상 가족에게 이상한 보모가 유입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다룬다. 반면,  리처드 도너 감독이 연출한 << 오멘, 1977 >> 은 부재하는 가족 서사와 유입된 가족 서사가 혼합된 경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부부는 갓 태어난 아들이 죽자(부재하는 가족) 같은 시각 같은 병원에서 태어난 데미안이라 아이를 몰래 데려와 죽은 아들을 대체(유입된 가족)하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재미있는 사실은 가족 구성원이 부재하는 서사와 타자가 가족 구성원으로 유입되는 서사'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데 있다. 영화 << 요람을 흔드는 손 >> 이 타자(보모)의 개입이라면 << 엑소시스트는 >> 는 악령이 개입하는 영화다. 여기서 악령은 타자'다. 영화 << 컨저링 2 >> 도 부재하는 남편을 대신해서 악령이 그 자리를 채운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는 이웃집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내와 이혼한 상태'다.  

 

▶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일상 생활에서 청소를 한다는 것은 제자리에 놓이지 않은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다는 점에서 " 카오스(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진입시키는 행위 "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청소부의 반대말은 유령이다.  유령이 물건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을 뜻하는 독일어 < Angst > 가 원래는 고대 그리스어인 angh-에서 비롯되었는데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영화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데,   사유 공간이 타자의 점유로 인해  수축( 공간 협소, 공간 제한, 공간 불편)되면서 발생하게 되는 데서 오는 신경 쇠약을 다룬다.

 

 

유령은 밤마다 가구와 물건들을 옮기거나 아이를 공중으로 띄운다. 영화 << 쏘우, 2004 >> 로  헐리우드에 혜성처럼 등장한 제임스 완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장기를 한껏 뽐낸다. 능수능란해서 능글맞기도 하다. 독일어 Angst는 불안이라는 뜻인데 원래는 마음이 답답하고 좁아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자신을 둘러싼 영역이 수축되는 것이 불안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귀신들린 집은 유령이 저지른 농간에 의해 뒤죽박죽이 된다. 영화 속에서 유령은 제자리에 있는 사물을 어지럽게 흐트러트리는 존재다. 청소란 공간을 만드는 행위이기에 청소를 하지 않으면 주변은 쓰레기(무질서)로 가득 차서 결국에는 쉼터를 잃어버리게 된다.

정리를 하는 행위(청소)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인 셈이다. << 인간과 공간 >> 에서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는 "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 " 고 지적한 후 "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 " 라고 말한다. 영화 속 유령은 물건이 가지고 있는 제자리를 파괴해서 인간의 공간을 축소시킨다. 지하실도 마찬가지다. 지하실은 구정물이 넘쳐서 공간이 축소된다. 그렇기에 주인공들이 느끼는 불안은 공간의 수축에서 찾을 수 있다. 결국 가족은 공간을 잃고 집에서 쫓겨난다.  특이한 점은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의 공포를 다루고 있는 데 비해 이 영화는 영국 빈민층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것은 영국은 가난해도 집은 크구나 _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었다. 비스킷을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한 집치고는 집이 너무 넓다. 집은 복층 구조로 네 남매가 각자 방 2) 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방도 넉넉한 편이다. 넓은 지하실은 물론이고 집 앞에는 그네도 있다. 공포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공포 영화'라는 장르는 " 인간과 공간 " 을 다룬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인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라면 공포 영화는 인간이 공간과 맺는 관계가 핵심인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장소애(topophillia) 3) 라는 개념은 있어도 공간애'라는 개념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또한 만남의 장소라는 말은 있지만

만남의 공간이라는 말은 없는 것을 봐도 공간은 열린 이미지보다는 닫힌 이미지로 다가온다. 공포 영화는 공간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장르'다. 한국 영화가 유독 공포 영화에 취약한 이유도 공포를 생산할 만한 주거 공간이 없다는 데 있다. 성냥갑처럼 다닥다닥 붙은 한국 주거 문화에서는 다락방이 있을 리 없고 넓은 지하실도 있을 턱이 없다.  더군다나 빈곤층 가정을 다룬 공포물?!  공간이 중요한 장치로 활용되는 공포 영화에서 단칸방이라는 설정은 끔찍한 경우가 아닐까 싶다. 하우스 호러물이 대부분 중산층 가정을 배경으로 하는 데에는 공간이 주는 제약 때문이다. 숨어 있기 좋은 방이 좋은 공포를 만든다.

대한민국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은 서럽다. 난한 자의 사랑 영화는 많은데 가난한 자의 공포는 어디에도 다루지 않는다. 사랑보다 시급한 문제는 공포인데 말이다. 우스꽝스럽게 들리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멜로는 < 인간과 장소의 관계 > 를 다루는 장르4)이고 공포는 < 인간과 공간의 관계 > 를 다루는데,  공포는 공간을 점유할 때 발생하고 사랑은 좋은 장소를 공유할 때 발생한다.  역설적 표현이지만 빈민층 주택을 배경으로 한 하우스 호러물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일수록 상대적으로 살기 좋은 곳이다 ■



 


​                                    


1) 家國은 국가(國家)를 뒤집은 꼴로 국민(개인)보다는 가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체제를 뜻한다. <<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 에서 이득재는 대한민국을 가국 체제'라고 명명한다.  

2) 언니와 여동생은 같은 방을 쓰기는 하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독립적인 방을 가지고 있다.

3)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은 장소애를 다룬다.

4) 멜로는 장소에 애틋한 서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토포필리아(장소애)를 다룬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는 장소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 티파니에서 아침을 >> , << 쉘브르의 우산 >> , << 로마의 휴일 >> 은 모두 토포필리아와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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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6-30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아이가 귀신, 유령의 이야기를 할 때, 저는 혹시 만나거든 아빠를 꼭 만나고 가라고 전해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전의 영화 <천녀유혼>, 최근?의 영화 <식스센스>는 저에게 귀신,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4   좋아요 0 | URL
유령에 대한 타자화를 지워버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마립간 2016-06-30 10:36   좋아요 0 | URL
단어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나요? 유령이나 귀신에 두려움도 없어지고 남?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야기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0:38   좋아요 0 | URL
아하.. ㅋㅋ. 연민을 느끼신다는 것이죠 ? ㅎㅎ.

마립간 2016-06-30 10:43   좋아요 0 | URL
^^ 글쎄요. 연민보다 귀신과 공감하는 능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아무튼 <전설의 고향>을 봤던 어린 시절과는 확실하게 다른데 그것이 어른이 되었다는 상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두 영화를 기점을 바뀐 생각과 느낌이 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1:00   좋아요 0 | URL
저도 식스센스 보고 느낀 점이 있습니다. 귀를 좀 기울이자. 귀신의 말을 듣자. 억울하니 할 말이 있을 것이다.. 등등...

마립간 2016-06-30 11:06   좋아요 0 | URL
https://www.youtube.com/watch?v=3qqVQcZxpqA

<식스 센스>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Six sense, car scene)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을 위해 주소를 남깁니다.

samadhi(眞我) 2016-06-30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이 묘사하던 영국 주택은 굉장히 좁던데요. 공포영화에서는 안 그런가 보네요. 하긴 우리 나라 공포영화도 장소가 굉장히 화려했던 것 같네요. 장화홍련도 꽤 넓은 집이 배경이었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3:32   좋아요 0 | URL
시대적 배경이 70년대 중반이니 약간 다른 모양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그래도 단칸방 이런 이미지는 아니라는 것. 공포영화는 기본적으로 중산층의 공포를 다룹니다. 넓은 집이 필요하니깐 말이죠. 그 한계 때문에 여고괴담 같은 경우는 집 대신 학교를 선택하죠. 집에서 학교로 옮겨지니 그만큼 공포를 생산할 공간이 늘어난 것. 사실 여고괴담은 학원공포물이 아니라 하우스호러인 셈입니다. 한국 공포가 대부분 기숙사에서 진행된다는 것은 바로 주택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궁여지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행복하자 2016-06-30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독주택이 아니라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물도 있었던것 같아요.. 영국이 아니라 미국인가? 주거공간이 소재로 한 영화중 공포스럽게 봤었는데 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오멘 이후로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영화같은데,

컨저링은 초등학생들이 가장보고싶어했던 영화로 기억합니다 ㅎㅎ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6-30 14:59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들이 실화라고 하면 껌뻑 죽습니디ㅏ. ㅎㅎ.

빌라에서 벌어지는 공포라면 ... 모르겠네요. 킹덤인가?
나중에 생각나시면 영화 제목 좀 알려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