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
" 센 언니 "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가가 있다. 일본 작가 기리노 나쓰오, 범죄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이지만 프로필 사진을 보면 그녀 스스로 느와르 영화에 나오는 팜 느와르(악녀) 같다. 기리노 나쓰오 소설에는 타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소설 속 여성 캐릭터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간다.
< 여자 나홍진 > 같다고나 할까 ? 독자는 목이 졸린 상태에서 질질 끌려다니면서도 끝까지 읽게 된다. 누군가가 그래도 팬 서비스를 위해서 희망이라는 빛 한 줄 정도는 넣어야 되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리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꿈이나 희망 따위를 내 소설에까지 요구하지 마세요 ! " 소설 << 아웃 >> 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리노 나쓰오의 소설이다. 하지만 아웃을 이웃에게 추천할 자신은...... 아우 ~ 없다. 생생한 날것을 직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극단까지 내몰린 여자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소설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자면 손질하는 작업(시체를 토막내고 유기하는 일)은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어울리는 일이라고 한다. 독자인 나는 예상치 못한 주장에 당황하게 되지만 읽다 보면 이내 여자에게 어울리는 직업이라는 말에 동조하게 된다. 생선 따위를 손질하거나 분리 수거하는 몫은 자고이래로 여성이 도맡아서 했으니 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작업 공간이 부엌에서 욕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탐정과 주부는 하는 일이 같다. 범죄 현장은 엔트로피(무질서) 상태'다. 선혈은 낭자하고 유리 파편은 흐트러져 있다. 용의자는 너무 많거나 아무도 없다.
범죄 소설에서 탐정(혹은 형사)는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해서 엔트로피를 네트로피(질서)로 편입시킨다. 비정형을 정형으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무질서를 질서의 세계로 편입시키는 과정이 추리(혹은 수사)다. 주부도 탐정과 같은 일을 한다. 청소는 뒤죽박죽인 상태(엔트로피)를 질서정연한 상태(네트로피)로 편입시켜서 자리를 만들어내는 행위이다. 거실에 흐트러져 있는 레고 조각을 레고 박스에 담거나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책을 책장에 꽂는 행위는 비정형을 정형으로 바꾸는 일. 이처럼 탐정과 주부가 하는 일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래도 여자는 약하다고 무시할 텐가 ?
청소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고 자리는 질서를 만들려는 인간 행위의 결과이다. 모든 물건에는 " 제자리 " 가 있다. 책의 제자리는 책장이고, 옷은 옷장 속이 제자리'인 셈이다. 인간에게도 제자리'가 존재한다. << 사람, 장소, 환대 >> 에서 김현경은 "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27쪽) " 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물건이나 사람이나 제자리에 놓여야 할 것이 자리를 이탈하게 되면 뒤죽박죽(엔트로피)이 된다. 귀신 들린 집을 다루는 하우스 호러물은 물건이 제자리를 이탈할 때 오는 불안(Angst)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시끄러운 유령)는 제자리에 있는 물건을 흐트러뜨리는 일을 한다.
유령이 공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수록 가족은 " 자리 " 를 잃는다. 결국 가족은 쉴 자리를, 누울 자리를, 설 자리를 잃고 살던 집에서 쫓겨난다. 불안이란 독일어로 < angst : 불안, 걱정, 공포 > 이고 영어로 < anxiety > 인데 두 단어 모두 ' 좁다 ' 라는 뜻의 라틴어 < angustiae > 에서 나왔다. 또한 협심증이라는 뜻을 가진 의학용어인< angina > 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불안은 협소, 제한, 불편이라는 의미와 연관이 있다. 하우스 호러물인 << 컨저링 2 >> 는 유령이 집을 점유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룬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인해 공간은 협소해지고, 제한을 받으며, 생활이 불편해진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지점은 < 유령은 무섭다 > 가 아니라 < 청소는 중요하다(혹은 자리는 중요하다) > 가 아닐까 ? 청소는 설-자리, 누울-자리, 쉴-자리'를 만드는 행위'이니 얼마나 숭고한 행위인가. 그 일을 여성이 도맡아서 하는 것이다(하지만 남성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고된 바깥일의 중요성만 늘어놓는다. 정말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그런 점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1)은 폴터가이스트 현상과 동일하다. 상가 주인의 횡포는 시끄러운 유령을 닮았고, 치솟는 임대료에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소규모 상인은 페기peggy네 가족2)을 닮았다.
1977년 영국 엔필드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 출몰했던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홍대, 경리단길, 상수동, 서촌 등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재개발이란 명복으로 가난한 노동자의 집을 빼앗는 부동산 개발업자나 구조 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는 기업가 또한 폴터가이스트'이다. 그들은 서민의 설 자리, 누울 자리, 쉴 자리를 빼앗는다. 대한민국에서 폴터가이스트 현상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용산 망루에서, 서대문 옥바라지 골목길에서,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도 유령은 출몰한다. 폴터가이스트라는 이름의 유령이.......
마르크스는 << 공산당 선언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 그들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악한 유령이다.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 만국의 고스터바스터즈여, 단결하라 ! " ■
덧대기 ㅣ 책 두 권 소개하기로 하자. 기리노 나쓰오의 << 아웃 >> 은 걸작이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의 << 인간과 공간 >> 은 바슐라르의 << 공간의 시학 >> 보다 좋다. 바슐라르는 공간을 지나치게 " 장소애 " 로만 접근했다. 공간에 대한 책으로 하나 더 추가하자면 김현경의 << 사람, 장소, 환대 >> 다. http://blog.aladin.co.kr/myperu/8148273 영화 << 컨저링 2 >> 도 좋다. 이 영화는 하우스 호러'라는 장르를 빌려 하우스푸어의 불안을 다뤘다. 만듦새도 좋고 정치적 에티튜드도 좋다. 평론가 박평식은 이 영화에 대해 " 시답잖게 겁준다 " 는 촌평과 함께 3점을 매겼지만, 박평식 촌평에 대한 내 촌평은 다음과 같다. " 뭣이 좋은지도 모름서 "
1)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처음 사용하였다. 글래스는 런던 서부에 위치한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계층 유입으로 인하여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이에 따라 기존의 하층계급 주민은 치솟은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 용어를 사용하였다. 한국에서는 2000년대 이후 번성해진 구도심의 상업공간을 중심으로 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대표적 사례로 홍익대학교 인근(홍대 앞)이나 경리단길, 경복근 근처의 서촌, 상수동 등지는 임대료가 저렴한 지역에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나 공방,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동인구가 늘어났다. 하지만 이처럼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자본이 유입되어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 등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모하였고, 결국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기존의 소규모 상인들이 떠나게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두산백과)에서 부분 발췌 )
2 ) 영화 << 컨저링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