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민 희 는 한 국 적 이 다 :
박찬욱과 영화-들

피천득의 수필 << 인연 >> 을 흉내 내자면 박찬욱과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연출한 << 숨은 요새의 세 악인, 1958 >> 이라는 영화는 앞좌석에 앉은 관객 머리가 커서 영화 보는 내내 방해가 되었는데, 알고 봤더니 박찬욱 감독이더라. 그와는 세 번 모두 낙원동 아트 시네마에서 만났다. 첫 번째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 거미의 성, 1957 >> 상영관에서, 두 번째는 스즈키 세이준의 << 관동무숙, 1963 >> 상영관에서 그와 우연히 마주쳤다.
공교롭게도 세 번 모두 일본 영화 특별전'에서 만난 꼴이다. 영화 << 아가씨 >> 에서 낭독회의 무대가 되는 장면 중에 미닫이문이 열리면 늦은 밤 함박눈이 내리는 풍경이 인서트(insert) 효과처럼 와닿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 관동무숙 >> 에서 아이디어를 구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관동무숙에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적산가옥(敵産家屋)과 눈이 내리는 풍경은 묘하게 잘 어울린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일본 주거 문화 양식에 대한 호감은 전작 << 박쥐, 2009 >> 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영화에서 배우 김해숙이 운영하는 한복집이 바로 적산가옥이다. 에밀 졸라의 원작(프랑스적-)에서 힌트를 얻어 제작된 이 영화는 적산가옥(일본적-) 에 딸린 한복집(한국적-)을 운영하는 가족을 중심으로 사건이 진행되는데, 그들은 이곳에서 마작(중국적-)을 하며 보드카(러시아적-)를 마시며 논다(여기에 덧대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하면 영락없이 박근혜식 범우주적 취향이 될 뻔했다). 이 정도면 박찬욱의 영화 양식은 다국적, 무국적, 탈국적 취향인 셈이다. 혼용의 미학, 더 나아가 " 튀기 " 의 미학이라 할 만하다.
곰곰 생각하면 : 영화 << 올드 보이, 2003 >> 를 작동시키는 주요 코드 양식 또한 만두(중국적-)와 스시(일본적-)가 아니었던가 ! 박찬욱이 선호하는 혼용 양식은 << 친절한 금자 씨, 2005 0) >> 에서 중요하게 다뤘던 두부와 케잌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 올드 보이 >> 가 만두와 스시에 대한 이야기라면 << 친절한 금자씨 >> 는 두부와 케익에 대한 이야기'다. 잔혹한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이라면 << 킬 빌 >> 에 나오는 우마 써먼처럼 사무라이 칼'이라도 휘둘러야 할 터인데 금자 씨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케잌을 자를 때 사용하는 플라스틱 칼이다.
교도소 철문 앞에서 두부 먹는 행위가 " 한국적- " 이라면 케익 만드는 행위는 " 서구적- " 이다. 영화에서 흰 두부와 하얀 케잌이 모두 구원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두 오브제는 동일한 은유'이다. 두부 = 케익'이다. 영화 << 아가씨 >>에 등장하는 대저택은 한국 양식과 일본 양식 그리고 서양 양식의 건물이 혼합된 공간이다. 비유를 들자면 그 공간은 마치 식탁 위에 스시와 김치 그리고 포도주가 공존하는 세계'다. 그에게서 << 명량 >> 따위의 영화를 기대하는 것은 당돌하고 명랑한 상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설령, 그가 억지로 사극을 만들어야 한다면 < 열두 척 > 을 이끌고 해협으로 향하는 장군'보다는 < 열두 첩 > 을 거느린 고립된 성의 성주 이야기를 만들지 않을까 싶다.
흔히 박찬욱의 복수 3부작으로 << 복수는 나의 것 >> , << 올드 보이 >> , << 친절한 금자씨 >> 를 묶지만 스타일의 변화를 중심에 놓고 보자면 << 복수는 나의 것 >> 과 << 올드 보이 >> 는 복수라는 코드만 같을 뿐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1). << 올드 보이 >> 는 << 복수는 나의 것 >> 과의 결별을 선언한 작품 같다. 박찬욱이 보라색을 즐겨 사용하기 시작한 첫 번째 영화가 바로 << 올드 보이 >> 이다. 그러니까 피카소에게 청색시대가 있었다면 박찬욱에게는 보라색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는 보라색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 살짝 맛이 간 영화들 " 을 양산하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을 경계로 날것2)을 버리고 익힌 것(영화의 양식화)에 집착하게 된다. 그는 제작 회의를 할 때 제작진에게 제일 먼저 이런 주문을 할 것이 분명하다. “ 우선 벽지부터 봅시다 ! ” 아, 벽지-성애자여 ! 종종, 박찬욱 작품의 왜색(倭色)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 이 비판은 그의 영화가 “ 한국적 ” 이지 않다는 비판으로도 읽힌다. 그런데 이 비판은 굉장히 비뚤어진 시선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양식은 왜색이 아니라 탈색에 가깝기 때문이다.
적산가옥과 한복집과 마작 그리고 보드카의 혼용은 특정 국적(國籍)에 대한 선망이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국적- 이어야 한다는 발상은 어처구니가 없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국가 주도의 주입식 세뇌가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 수는 있으나 한국적인 것은 그냥 한국적인 게 아닐까 ? 서양인이 김치를 맛있게 먹는다고 해서 한국이 세상의 중심에 우뚝 솟아오른다면, 인도는 오래 전에 최강국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코카콜라가 페루 원주민이 코카 잎을 씹은 후 뱉은 것을 발효해서 만든 음료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이 있던데 이 가설이 진짜라면 페루는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오르고도 남았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내가 보기에“ 가장 한국적인 것 ” 은 한국인이 김민희에게 쏟아내는 비난이다. 모든 비난은 바람피운 년에게만 집중된다. 그들은 평소 가족밖에 모르던 남자가 가정을 버릴 정도라면 김민희의 애교와 집착이 얼마나 집요했는가 _ 라며 탄식하기도 한다. 언론 보도를 봐도 홍상수 감독에게는 애처가라는 프레임으로, 김민희에게는 불륜녀라는 프레임에 씌운다. 그것이 한국적이니까 말이다. " 홍상수 감독은 가정적인 남자로 행복한 가정 생활을 했다. 김민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 뭐, 이런 서사가 아닐까 ?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 그 유명한 금자 씨의 어록을 남기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0) 주요 무대인 나루세 과자점은 여성 심리를 섬세하게 다루기로 유명한 나루세 미키오 감독 이름을 빌렸다.
1) 사실 많은 영화들이 복수를 즐겨 다룬다. 복수 3부작 운운은 프레임 짜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갖다 붙인 네이밍에 불과하다
2) << 복수는 나의 것 >> 은 날것의 정수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익힌 것(영화의 양식화)에 집착하기 전 상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