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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강 건너 빌 보듯 :
물불 안 가리고
1970년 강건너 빌보드 차트 1위 곡은 사이먼 앤 가펑글의 <<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 라는 팝송이었다. 피로하고 지친 당신이 작게만 느껴지고 /
당신의 눈에 눈물이 고이면 / 내가 닦아 줄게요 / 험한 물살 위에 다리가 되어 드릴게요 / 견디기 어려운 밤이 찾아올 때 / 내가 당신을 위로해 드릴게요 / 네가 당신 편에 서 드릴게요...... 한국에 << 여러분 >> 이란 가요가 있었다면 미국에는 <<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 라는 팝송이 있었다. 1970년이면 오일쇼크로 전세계가 휘청거렸던 시대이니 남성 듀엣이 부르는 달달한 하모니에 피로한 대중이 응답한 모양이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다가 문득 19살 수리공의 죽음이 떠올랐다. 우리는 과연 험한 세상에 필요한, 야곱의 사다리를 만들 수 있을까 _ 그런 낙담. 이 글은 힘과 불에 대한 이야기다.
추운 겨울에도 런닝을 하고 나면 땀이 난다. 몸은 힘(力)을 쓰면 열(火)이 발생하기 마련. 발열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한자 勞 : 일할 노/로'는 이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노동자란 결국 자신의 심지(心-)에 불을 붙여 열-에너지'인 노동(勞動)을 파는 직업군'이다. 그것은 촛불과 같아서 힘(力)과 불(火)을 팔아 재화를 얻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의 운명이다. 노동이 몸을 움직여서(動:움직일 동) 힘과 불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노동에 의한 열 에너지 생성은 운동 에너지이면서 위치 에너지의 성격을 띤다.
반면 근로(勤勞)는 노동자의 유한한 힘과 불을 최대한 착취하려는 형국이다. 한자 근(勤)에서 음에 해당되는 菫 : (노란)진흙 근'은 동물 가죽을 불에 말리는 모양으로 건조 과정에서 가죽에 바르는 흙과 불이 결합된 글자'다. 즉, 근로'라는 조합은 노동자의 힘과 불을 강화하는 성격이 짙다. 한자의 형국만 봐도 앙상한 가죽이 될 때까지 노동자의 노동을 착취하려는 모습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 勞와 勤의 사전적 의미만 보아도 그 차이는 분명하다. 勞의 뜻은 < 일하다 > 이고, 勤의 뜻은 < " 열심히 " 일하다 > 이다. 기득권 세력인 자본가가 노동자를 악착같이 근로자'로 바꿔부르는 이유이고 노동자의 날을 근로자의 날로 강제하는 이유'이다.
그들이 보기에 노동자가 " 일하는 것 " 은 일하는 게 아니다. 하는 일도 없으면서 꼬박꼬박 월급만 받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동자가 " 땀 흘리며 부지런히 일해야 " 노동자'답다고 생각한다. 철학자 한병철은 한국 사회를 << 피로 사회 >> 로 규정했다. 疲 : 피곤할 피에 勞 : 일할 로'이다. 한자 疲의 부수가 疒 : 병들어 기대다' 이니 피골이 앙상한, 가죽만 남은(皮 : 가죽 피) 몸으로 병실에 누워 있는 사회'란 말이다. 근로자의 미래는 피로 사회'인 셈이다. 피로 사회는 곧 과로 사회이며 과열 사회'이다. 철학자 한병철이 과로 사회나 과열 사회'라고 명명해도 될 것을 굳이 피로 사회'라고 한 데에는
앙상한 가죽만 남은 채 병실에 누워 있는 상징성 때문에 선택한 결정이 아닐까 싶다. 근로(勤勞), 피로(疲勞), 과로(過勞), 과열(過熱), 열심(熱心), 열정(熱情)의 공통점은 불기운'이다. 이들 한자의 부수는 모두 불(火, 灬 ) 이다. 곰곰 생각하면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에너지는 불기운'이다. 노동의 가치는 폄하되고 근로의 가치가 숭앙받는 사회이며, 삶의 목표는 열심히 하는 것이다. 또한 열정은 올바른 청년을 상징하는 키워드'이다. 우리는 단 한번도 < 열심히 살아야 된다 > 거나 < 열정을 불태워라 > 라는 문장을 의심한 적이 없다. 삶은 열심히'라는 부사가 수식해야 가치가 있고 열정은 불태워야 멋있다.
하지만 그것은 소진일 뿐 생성이 아니다. 차가운 물은 떨어지면 위치 에너지(수력발전소)를 발생하고 뜨거운 불은 화력 에너지(화력발전소)를 발생하지만, 전자는 재생이 가능하지만 후자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다 타버린 불쏘시개는 재생산되지 않고 재로 남는다. 19살 수리공은 끼니를 챙길 시간도 없어서 연장을 담는 가방 속에 컵라면과 숟가락을 챙겼다고 한다. 끼니를 챙길 시간도 없이 땀 흘려 일을 하니 자본가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모범적인 근로자상'이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쇄신(碎身)이었다. 뼈를 가루로 만들고 몸을 부순다는 뜻으로, 정성으로 노력한다는 의미인 (분골)쇄신은 역설적으로 문자 그대로 쇄신'이 된 것이다.
불꽃 투혼(한화)이라는 말로 포장된 과잉 근로 예찬의 결과는 참담할 뿐이다. 김성근은 근로를 예찬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휴식보다는 훈련을, 실수에는 징벌을 내리는 감독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물불 안 가리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한국의 모범적 리더'란다. 김성근이 박근혜와 악수를 나눈 장면은 상징적이었다. 병든 사회,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불보다는 물이 필요한 사회'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온실 가스'가 아니라 노동자를 한갓 불쏘시개로 생각하는 근로 사회'가 만든 결과가 아닐까 싶다. 물불 안 가리는 사람은 되지 말자. 불을 보면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끄읍시다. 물과 불은 가립시다, 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