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어 도 좋 아 :
우리들의 일그러진 멘토
■ 바람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 히틀러는 " 말빨의 대가 " 였다고 한다. 그는 연설을 통해서 대중의 < 몸 > 을 달아오르게 만들 줄 아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무대에 오르면 광장은 롹 콘서트장'으로 변했다. 믿습니까 ? ㅡ 네에, 믿습니다1) ! ! ! 대중 연설은 일종의 Oral 섹스 행위'였다. 히틀러의 대중 연설에 귀를 기울인 사람은 비단 독일 국민만은 아니었다. 영국 BBC 방송에서 해외선전분석부와 심리전단 부서'에서 일했던 마크 에이브럼스와 조셉 맥커디'는 히틀러의 " 1942년 라디오 연설 " 에 주목했다.
그들은 협박 편지 속 필체와 문장을 통해서 협박범의 심리를 분석하는 프로파일러'처럼 1942년 라디오 연설'을 통해서 히틀러를 프로파일링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물은 비밀 보고서'라는 형식으로 영국 정보국에 전달되었다. 이 보고서는 히틀러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 열쇳말'로 세 가지를 뽑았다. ① 샤머니즘, ② 간질, ③ 편집증'이었다. 비밀 보고서 작성자는 텍스트(히틀러)와 텍스트 수용자(독일 대중)의 종교적 제의'에 주목했다. 독일 국민에게 히틀러는 고대 독일의 위대한 게르마니아 Germania 거상 巨像을 이어주는 주술사였다. 두 번째 키워드는 < 간질 > 인데, 행동이 산만하고 사소한 일에 쓸데없이 집착하며 이기적이고 융통성이 없다는 점. 그리고 수집벽과 정리벽과 함께 갑자기 폭발적으로 화를 내는 성향이 간질 환자의 성격을 닮았다고 추론했다.
히틀러 사후, 많은 학자들이 히틀러 간질 발작 관련설을 주장했는데 내분비 학자인 엘머 바테루즈 ( Elmer Bartels ) 박사 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담요를 무는 버릇이 있다는 점을 들어 히틀러 간질 발작 관련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 담요를 무는 버릇 " 은 간질 환자에게 흔히 볼 수있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성격만 가지고 말하자면 도스토예프스키, 고흐, 히틀러는 서로 닮은 구석이 있다2). 내가 주목하는 부분은 세 번째 키워드'다. < 메시아 콤플렉스 > 다. 이 보고서는 히틀러를 " 기독교적인 망상의 거미줄'에 갇혀 있는 "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단순히 독일을 위협하는 세력이 아니라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악'으로 판단했다는 것이다.
전운이 기울자 히틀러는 " 자신을 선한 영혼의 화신이라고 생각하고 유대인들은 악의 화신 " 이라는 쪽으로 고착시켰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예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향한 비극이 장엄하기를 바랐다. 독일의 파괴는 히틀러가 자신에게 부과한 마지막 목적이었다3). 발터 벤야민은 << 독일 비극의 기원 >> 이라는 책에서 바로크 궁정 드라마'를 분석하면서 주인공의 성격이 서로 다른 성격이 공존한다는 데 주목했는데, 하나는 전제군주이고 다른 하나는 순교자의 이미지'라는 것이다. 어쩌면 히틀러가 선망했던 드라마는 바로 바로크적 제왕처럼 감동적인 몰락'이었는지도 모른다. 히틀러는 자신이 20세기 독일 비극의 기원'이 되기를 희망했고 그렇게 됐다. "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제바스타인 하프너) "
국민의당 대표인 안철수는 6일 기자 회견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 국민의당 > 과 저는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있습니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는 적뿐...... 저 포함,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 이 비장한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단어는 메시아 콤플렉스'였다. 그는 자신을 몰락한 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기자 회견 내용을 살펴보면 실패4) 에 대한 반성은 없다. 오히려 이 실패'를 장엄하게 만들기 위한 연극을 꾸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패를 포장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순교'다. 나, 안철수는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아사리판 같은 광야에서 독고다이하리라.
그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는 " 힘들고 두려운 광야 " 에 홀로 서 있다. "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고 사방에는 적뿐 " 이라고 배경을 설명한 후 "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 고 말한다. 그리고는 비장하게 외친다. " 그래도 좋다 ! " 이 연극적 수사는 어디서 많이 본 설정'이다, 기시감이 든다, 그렇지 않은가 ? 놀랍게도 안철수가 말하는 < 광장 > 은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오르던 < 골고다 언덕 > 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이 골고다에서 순교할 생각'인 모양이다. 그에게 정치는 장엄한 순교를 위한 (무대) 장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무대'가 그리 장엄할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세대별 지지율에서 연령대가 높은 세대보다는 연령대가 낮은 세대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는 정치인을 뽑는 것이 최악을 피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기준을 적용하자면 : 안철수는 그닥 좋은 정치인'이 아니다. 박근혜를 거악으로 규정한 그의 세대별 지지율 성향이 박근혜를 지지하는 세대별 성향과 유사하다는 것은 코미디다. 김영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 말 > 을 인용하며 비극은 잘난 놈이 추락하는 이야기이고 희극은 모자란 놈이 잘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내가 안철수 스토리를 코미디로 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는 좀... 모자라다 ■
1) 히틀러의 연설 스타일과 정반대인 경우는 이명박이다. 히틀러가 믿습니까, 라고 외치면 대중은 믿습니다, 라고 소리쳤지만 이명박은 자신이 믿습니까, 라고 외치면 대중은 밉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비극은 그(이명박)가 밉습니다, 라는 대중 욕망을 믿습니다, 라고 잘못 알아들었다는 데 있다.
2) 도스토예프스키와 고흐는 간질 환자'였다. 히틀러의 경우, 간질이 아니라 매독'이라는 주장도 있다.
3) 히틀러에게 붙이는 주석 256쪽 인용
4) 한때 20대 젊은이들의 영원한 멘토로 추앙 받던 그는 그 세대로부터 완벽한 배척을 당한다. 세대별 지지율을 보면 안철수는 20대에게 5.7%의 지지율을 얻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전세대를 통틀어서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