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어의 힘 : 끝에 독이 있다
2010년 12월 10일 오전 10시 24분, 미국 상원 전체회의장. 그는 연단에 올라 입을 열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가 정치적으로 타협한 고소득을 포함한 모든 계층의 감세 연장에 대해 몇 마디 하고 싶다. ” 로 시작한 < 의사당에서의 말문 > 은 연설이 끝난 후 연단을 내려오며 기자들에게 " 지쳤다...... " 는 말을 남기고 의사당을 빠져나오기까지, 그가 진행한 의사 진행 발언 시간은 총 8시간 37분이었다. 그가 연설을 하는 동안 동료들은 모두 떠났고, 보좌관과 입법서기 그리고 보안요원과 몇몇 방청객이 전부였지만 타는 갈증은 물 한 모금으로 달래며 쉬지 않고 말했다. 이 연설을 옮긴 책이 << 버니 샌더스의 모든 것 >> 이다.
출판사 보도자료에 따르면 : 버니 샌더스는 " 오마바 대통령과 공화당이 부자 감세 등을 포함한 감세법안을 날치기로 합의한 후 그대로 통과시키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상원 회의장에서 8시간 37분에 걸쳐 필리버스터(의회에서의 의사 진행 방해)를 감행함으로써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연설을 통해 부자 감세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와 법인세를 비롯한 각종 영업세 혜택의 불합리함, 대기업의 탈세 현황, 긴급구제를 받은 월가의 탐욕, 대형은행 CEO들의 부도덕한 연봉 인상, 공화당의 사회보장제도 민영화 시도의 역사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 고 한다. 이 지루한 연설은 예상 밖으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트위터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연설의 주인공이 바로 버니 샌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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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ㅡ 2.2% ㅡ 4.1% ㅡ 6.1% ㅡ 50.06%ㅡ 72%. 미국 대선 민주당 예비 후보 경선에서 돌풍의 핵으로 떠오른 버니 샌더스'가 쌓아올린 득표율'이다. 1972년 의원 선거에서 그가 얻은 득표율은 고작 2.2%였고, 같은 해 주지사 선거 득표율은 1.1%'였다. 당연히 모두 낙선.
그는 이 악물고, 주먹 불끈 쥐며, 괄약근에 힘을 주었으리라. 또한 낮에는 곰 쓸개를 씹고 밤에는 바늘 침대에 누웠으리라. 심기일전하여 다시 1974년에 재도전한 그가 얻은 득표율은 4.1%'였다. 그는 무릎 끓고 일어설 수 없어서 주먹 쥐고 분연히 일어났다. 쿠아아아아아앙 ! 하지만 3수 끝에 얻은 득표율은 고작 6.1%(1976)였다. 그의 득표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공화당의 아성, 미국판 대구 달서구'에 속하는 버몬트주 벌링턴 지역에서 정치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 우리는 나라 팔아먹어도 공화당만 찍어예 ! " 좋게 말하면 사민주의자요, 나쁘게 말하면 적으로부터 빨갱이'라는 소리를 듣던 그에게 버몬트는 황무지에 가까웠다. 하지만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
그는 1981년 벌링턴 시장 선거에서 득표율 50.06%로 당선된다. 상대 후보와의 표 차이는 불과 10표였다. 아, 스아슬했다. 기회를 잡은 이후 그는 승승장구했다. 작은 지역에서의 풀뿌리 민주 정치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고, 2012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72% 라는 압도적 득표를 얻는다. 1%가 뭐예염. 먹는 거예염 ? 그가 1% 로 시작해서 70% 를 얻는 데까지 걸린 세월은 40년'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다시 민주당 대선 예비 후보 선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노는 물이 달라서였을까 ? 무소속이었던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에 뛰어들어서 대통령 예비 후보 경선(2014.10)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당시 여론조사 결과 그의 지지율은 1%'에 불과했다. 돈도 없고, 조직도 없었던 그가 상대해야 할 선수는 산전수전공중전에 각종 모듬전까지 섭렵한 정치의 달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사람들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당시, 힐리러 클린턴의 지지율은 60%를 넘었다. 역전은 가능할까 ? 이 이야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삼천포로 빠지자. 2011년 메이저리그에서 벌어졌던 어떤 기적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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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많았다. 2011년 8월이 끝날 때까지 템파베이의 팀 성적’은 초라했다. 그해 템파베이’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가능성은 0.1%였고 보스턴은 87%’였다. 하지만 템파베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놓은 시점에서 템파베이와 보스톤의 승패는 똑같았다. 리그 1위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였다. 전체 2위에게 주어지는 와일드 카드’를 얻기 위해서는 두 팀은 마지막 남은 경기에서 사력을 다해 싸워야 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평소 보스톤 레드삭스 팬임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템파베이’를 응원하기로 했다. 약자에 대한 본능적 지지’가 발동한 것이다. 당시 보스톤은 꼴찌였던 볼티모어와 마지막 경기를 치뤘고, 템파베이’는 영원한 우승 후보 양키스와 마지막 경기’를 겨뤘다.
이미 템파베이는 양키스와의 마지막 3연전에서 기적의 2연승’을 한 터’였다. 당시에 메이저리그 최강 팀이자 리그 1위인 양키스는 3연패를 당한 경험은 있어도 같은 팀에게 3연패를 당한 기록은 없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8회말까지)보스톤은 3대2로 이기고 있었고, 템파베이는 7대0으로 지고 있었다. 템파베이 0.1%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 라고 판단할 때 일이 묘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7대 0’으로 지고 있던 템파베이는 8회에 몸값이 가장 비싼 친구였던 상대 팀 투수에게서 무려 6점을 얻었고 9회엔 1점을 추가해서 동점을 만들었다. 아나운서는 기적이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리고 연장 12회에서는 굿바이 홈런을 터트려서 승리를 거머쥐었을 때 아나운서’는 또 다시 기적이라고 울부짖었다.
그 시각 보스톤은 9회에 2점을 헌납하고 역전패한다. 최종적으로 플레이오프’에 오른 친구는 템파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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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1일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얻은 득표율은 49.8%였고, 버니 샌더스가 얻은 득표율은 49.6%였다. 힐러리 대선 예비 후보 입장에서는 0.2% 차 앞선 신승이지만, 이겼다고 해서 이긴 것은 아니었다. 버니 샌더스가 아이오와 민주당 코커스'에서 잃은 것은 없다. 졌지만 이겼다. 그는 선거에서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선거 토론회에서 힐러리가 예비 후보군으로부터 개인 e메일 사건으로 공격을 받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I know it may not be good politics, but the American people are sick and tired of hearing about your damn emails. " 오소리깻잎 영한 사전'을 참고하여 저잣거리 입말로 번역하자면 :
" 아따, 시부랄 ~ 고만 하자잉. 남사스럽꼬롬 뭐시 그리 남의 편지가 고로코롬 궁금하당가 ~ 으따, 시벌놈들...... 정책으로 말합시다잉. 안 그렇소, 힐러리 여사 ? "
힐러리 입장에서 보면 약점이 있으면 집요하게 물고뜯어야 할 정적이 오히려 방패가 되어서 자신을 두둔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 힐러리 여사, 입이 귀에 걸렸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오히려 힐러리에게는 좋은 장면이 아니었다. 저기, 변방의, 꾀죄죄한 시골 촌구석에서 온 듣보잡의 신선하며 너그러운 포지티브 앞에서 유권자는 마음을 열었다.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유명인으로는 다니엘 크레이그, 마크 러팔로, 마이클 무어, 스파이크 리, 노엄 촘스키, 조 크라비츠(매드 맥스, 5인 여성 중 한 명) and, 내가 숭배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 ! 버니 샌더스가 내건 공약은 다음과 같다. 무상등록금, 부자증세, 대형금융업체 제재. 미국의 문제는 고스란히 한국이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에 미국 대선 결과가 흥미로운 이유이다.
조선 영조 때, 이익이 쓴 << 성호사설 >> 에 의하면 가오리는 " 꼬리 끝에 독기가 심한 가시가 있어 사람을 쏘며, 그 꼬리를 잘라 나무뿌리에 꽂아두면 시들지 않는 나무가 없다 " 라고 한다. 코뿔소가 앞뿔의 힘을 가진 동물이라면 가오리는 꼬리의 힘을 가진 동물이다. 템파베이의 토템이 바로 가오리'다. 가오리 팀은 0.1% 의 승률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고, 버니 샌더스는 1%의 승률을 극복하고 힐러리 클린턴과 맞짱을 뜨고 있다. 꼴찌들의 반란인 셈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 넌 뭘 해도 소용없어, 난 포기할래. 이것이 바로 억만장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다 ! " 나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한다. 그가 승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