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가 모자라니 ?
When there's no more room in hell, the dead will walk the Earth ㅡ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지. 지옥에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을 때 시체들이 땅 위를 걷는다고......
- 살아난 시체들의 새벽 中

문화는 사회를 반영한다. 이명박 시대 이후 티븨 드라마는 주로 < 출생의 비밀 > 를 다루는 내용이 대세가 되었다. 대표적인 드라마로는 << 선덕여왕 2009 >> , << 웃어라 동해야 2010 >> , << 욕망의 불꽃 2010 >> , << 제빵왕 김탁구 2010 >> , << 몽땅 내 사랑 2011 >> , << 반짝반짝 빛나는 2011 >> , << 호박꽃 순정 2011 >> 따위가 있고, 그 외 기타 등등에서 등등 또한 무수히 많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를 놓고 보면 대한민국은 마치 " 사생아의 제국 "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 여여여기가 지금 불륜의 제국이야 ? 따지고 보면 한국 드라마는 스타워즈에서 SF적 요소를 제거한 가족 드라마'나 다름없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했던, 아아... 숱한 나날(들).
드라마는 그리스 비극 서사이자 웅장한 클리셰를 향해 종극(終極)으로 치닫는다. 아비는 물 먹은 습자지처럼 촉촉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말한다. 그 유명한 대사, " 내가 니 애비다. 이, 이이이~~~ 눔아 ! "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를 해부하다 보면 : 평범한 소시민적 미덕(정직, 성실, 진실, 착한 마음)이 악덕(교활, 태만, 시기, 거짓, 편법)과 싸워서 이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속내를 파고들면 부자 아버지를 만나야 출세한다는 내용을 숨기고 있다. 동정 없는 세상에 버려진 고아(男)가 돈 많은 아버지를 만나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와 가난하지만 심성이 고운 여성이 돈 많은 " 실땅님(실장님) " 을 만나서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는 스토리는 서로 맥락이 동일하다. 돈 많고 자상한 실땅님2은 어릴 적 헤어진 아버지의 대체자로 등장한다.
가난한 여성 주인공'을 도울 남자는 대부분 실장님(室長-)이라는 지위'를 가진 자'다. 왜, 하필 < 실장님 > 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깨울 백마 탄 왕자 ㅡ 캐릭터'가 되었을까 ? 회장 會長과 사장 社長과 부장 部長이라는 직함이 그 모임을 대표하는 어른( 長 : 어른 장 )이라면, 실장 室 집 실 長 어른 장 은 " 집 안의 어른 " 을 뜻한다. 그러므로 실장은 가부장(家父長)을 대표하는 자리'이다. 그는 가난한 여자의 남편(家 : 남편 가)이고, 아버지(父 : 아비 부)이며, 어르신(長 : 어른 장 )이다. 실장은 거룩한 삼위일체'이다. 그들은 유사 부녀 관계에 놓여 있다. 가난한 딸은 키다리 아저씨가 펼쳐 놓은 우산의 보호를 받으면서 일과 사랑,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다. 키다리 아저씨는 아버지처럼 속이 깊고, 자상하며, 헌신적이다.
< 그 > 는 젊은 남자로 출현했지만, 사실은 늙은 리어왕이다. 늙은 아버지는 이제 착한 딸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이 버린 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몸을 의탁한다. 이렇듯, 가난한 아들과 딸은 부자 아빠로부터 수혈을 받아 가계의 적통을 계승한다. 이처럼 자식을 버린(or 잃어버린) << 부자 아빠 >> 라는 캐릭터'는 가난한 아들이 꿈꾸는 " 판타지 " 다. 이 판타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흙숟깔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부모가 적통(嫡統)이 아니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 헬조선 >> 이 비극인 이유는 지지라도 가난한 부모를 부정할 때 비로소 희망이 생긴다는 점이다. 영화 << 세븐 >> 에서 모건 프리먼의 대사를 빌려 인용하자면 "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것은 아이에 대한 죄악 " 이다.
가난한 대중이 부자 아빠에 대한 판타지를 강박적으로 호명한다는 것은 21세기 한국 사회가 계급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후이자 뼈 아픈 통증'이라 할 수 있다. 흙수저들이 느끼는 절망, 불안, 우울, 폭력적 성향은 경제적 공포가 낳은 무기력함'이다. 대한민국은 자본 사회가 아니라 << 자본 독점 >> 사회'다. 자본 독점 세력이 물꼬를 틀어쥐고 있으니 사회 전체는 기갈에 허덕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노동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쉬운 해고 정책은 달리 말하면 사회적 살해에 해당된다. 독점 자본 세력을 알기 쉽게 표현하자면 재벌이고, 프랑코 모레티의 사유를 빌리자면 피 빨아먹는 철거머리 같은 놈( = 드라큘라) 이다.
브람 스토커의 << 드라큘라 >> 텍스트에서, 프랑코 모레티는 드라큘라 백작을 독점 자본을 상징하는 재벌로 상정한다. 그리고 피와 돈을 등가 관계에 놓고 텍스트를 해체한다. 즉, 드라큘라의 흡혈 행위를 달리 말하자면 자본(노동) 착취 행위'인 셈이다. 백작은 죽지 않을 만큼만 노동자의 피를 빤다. 그는 상추를 재배하는 농민과 같다. 상추를 재배하는 농민은 상추를 뿌리 채 뽑지 않고 죽지 않을 만큼만 잎을 딴다. 상추 장수가 상추를 뽑아버리는 행위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으니깐 말이다. 왜냐하면 노동(자)는/은 생산 주체이면서, 동시에 소비 주체이며 숙주이기 때문이다. << 공포의 변증법 >> 이란 비평집을 읽다 보면 무릎 탁, 치며 아, 하게 되다가 결국에는 과테말라 개미핥기처럼 혀를 날름거리게 된다.
전복적 상상력이란 표현은 바로 이런 글에나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이 비평집은 사유의 확장이란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지 않아도 이 책은 이미 입소문이 파다했던 책이기도 했다. 오래 기다렸고, 드디어 만났으며,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소설에서 저기, 저어기,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기 변방의 트랜실바이나'에서 사는 드라큘라를 본국(영국)으로 끌어들인 사람은 조너선 하커로, 그의 직업은 부동산업자'이다. 또한 영국에 온 드라큘라 백작은 사람들에게 금을 투자하는 합리적 사업가로 자신을 소개한다. 대지(大地)와 황금, 이보다 더 뚜렷한 자본 상징'이 있을까 ? 더군다나 소설 속에서 드라큘라 백작은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3 >> 을 읽었다는 설정도 나온다.
종합하면 드라큘라는 신자유주의 자본 독점 세력'이다. 이 소설을 " 경제적 공포 " 로 환원해서 보자면, 소설 속 공포는 원초적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거대 독점 자본인 재벌이 모든 부를 독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대한 은유처럼 보인다. 재벌은 드라큘라'다. 흡혈귀라고 ??! 유아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할 것이다. " 어, 어이가 없네 ~ " 하지만 << 공포의 변증법 >> 을 읽다 보면 어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이미 마르크스 본인이 << 자본 (上) >> 에서 지적한 사항이기도 하다. " 자본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더 많은 노동을 빨아먹을수록 더 오래 사는 죽은 노동이다(자본 上 에서) " 소설 속 드라큘라는 수혈을 받을수록 점점 젊어지고 노동자는 헌혈을 할수록 점점 늙어간다.
군중이 비틀거릴수록 흡혈귀는 보다 젊고, 매력적이며, 힘이 세다. 그렇기에 프랑코 모레티가 << 드라큘라 - 텍스트 >> 를 마르크스주의 비평 독법으로 접근한 것은 뛰어난 통찰이라 할 수 있다. 드라큘라 백작에 의해 피(자본)를 빼앗긴 군중은 이후 << 좀비 >> 라는 이름으로 귀환한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렇다고 죽지는 않은, 그렇지만 죽지 않았다고 말하기에는 죽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는 몰골인 " undead " 이다. 그들은 창백하다 못해 하얀 분칠로 범벅이 된 혈색을 하고 있다(심지어, 흑인 좀비도 얼굴은 백인처럼 창백하다 ! ). 말 그대로 혈색(血色)은 " 핏빛 " 인데 몸 속에 피가 없으니 화이트 좀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좀비는 거지에 대한 은유'다.
조지 로메로 감독은 그 유명한 시체 3부작'에서, 그는 좀비와 자본의 관계를 탐구한다. 특히, 속편에 해당되는 << 살아있는 시체들의 새벽 >> 은 아예 좀비들이 자본을 상징하는 대형 상품 진열장을 어슬렁거리도록 만든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한국 드라마는 선함이 악함을 이긴다는 권선징악을 다룬 착한 서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새빨간 피를, 세련된 혈통을 원한다는 측면에서 핏빛 로망 서사'인 것이다. << 드라큘라 >> 에서 통제불능인 무질서 사회(엔트로피)를 통제 가능한 범위(네트로피)로 되돌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관 속에 잠든 드라큘라 가슴에 말뚝을 박는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드라큘라 가슴에 말뚝을 박는 일은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과 같다.
투표는 소극적 의사 표시'가 아니라 드라큘라 가슴에 말뚝을 박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 행위'이다. 투표합시다.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철거머리 같은 악당에게 대못'을 박읍시다, 앙 ~ ■
- 공포의 변증법. 저자 프랑코 모레티는 이탈리아 영화 감독 난니 모레티의 형이다.
- 실장(室長)님에서 한자 室은 < 집 > 이라는 뜻이다. 풀어서 설명하면 실장은 집안의 어른'이라는 의미'이다. 곧 실장님이라는 지위는 가부장 아버지'를 의미한다.
- 1776년에 영국의 아담 스미스'가 쓴 경제학서.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개인의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으로 나라의 부 副 를 증대한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자유방임 경제를 주장하였다. 최초로 자본주의 사회를 체계적으로 파악하였으며, 고전 경제학 이론의 대표적 저서이다. ( 네이버 국어 사전에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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