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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클리프행어 : 렌티큘러 풀슬립 한정판 - 무삭제판
레니 할린 감독, 실베스터 스탤론 외 출연 / 그린나래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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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클리프 행어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정색을 하고 말하겠다. 영화 << 클리프 행어 >> 는 놓치면 후회할 만한 영화'다. 이 영화 줄거리를 10자 이내로 요약하자면 " 놓/치/면/후/회/하/실/겁/니/다 " 일 것이다. 록키 산악 공원 구조 대원이었던 실베스타 스텔론은 동료의 손을 놓치는 바람에 동료를 잃는다. 그는 이 끔찍한 사고 때문에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그가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는 일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해 놓고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이다. 한때, 록키 발모어로 불렸던 그는 과연 동료를 구조할 수 있을까 ?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놓치면 후회할 일이 비단 이 영화 속 주인공뿐이랴. 멜로드라마라는 장르도 놓치면 후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은 놓치면 후회하게 될 분야를 소개하기로 한다.
서평은 서평가가 쓴 글이다. 그러니까 " 서평이냐 / 감상(문)이냐 ? " 라는 문제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자격의 문제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평론은 평론가가 쓴 글이다. 일개 무명 독자가 평론가가 쓴 글보다 뛰어난 평론을 썼다고 해서 그것이 평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도 결국은 글쓴이의 " 자리(자격) " 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즉, 서평과 독후감은 어떻게 썼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썼는가가 중요하다. 굳이 독후감과 서평을 나누자면, 독후감은 음식 맛을 평가하는 것이고 서평은 음식 맛을 분석하는 것이다. 전자는 맛있다 / 맛없다, 라고 단순하게 논평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는 단순하게 맛있다 / 맛없다, 라는 논평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음식에 대해서 맛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재료의 식감, 영양학적 평가, 향미 따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논평을 내놓아야 한다. 드라마 << 대장금 >> 에서 임금(임호 扮)이 " 마디꾸나 ~ " 라고 말했을 때 그는 서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내놓은 독후감이다. 장금이'라고 다를까 ? 어린 장금이가 " "제 입에서는 홍시 맛이 났는데 어찌 홍시라 생각했느냐 하시면 그냥...." 이라 말할 때 그녀는 서평가의 입장이 아니라 일개 무명 독자로써 맛을 평가한 것이다. 이해는 간다. 그녀는 당시에 어렸으니깐 말이다. 만약에 어른이 된 장금이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면 말을 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맛에 대한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책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서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별할 수 있다.
여기에 덧대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약은 약사에게 서평은 서평가에게 진단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형식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삼천포로 빠지는 서평을 좋아한다. 정희진의 << 정희진처럼 읽기 >> 에서 저자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을 책을 핑계로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삼천포행 궤적이 논점 이탈로 읽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유의 확장처럼 읽히기도 한다. 나는 경제를 이야기하는 데 파리가 날아다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는 어이가 없네, 라며 유아스러운 천진난만한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것은 파리의 자유이다. 경제와 파리는 무관하다. 사실, 좋은 서평(가)은/는 좋은 책은 좋다고 말하고 나쁜 책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서평가가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 좋은 이유를 말하는 것도 어려운 고백이 아니다. 하지만 나쁜 책을 나쁘다고 말하는 데에는 작은 용기가 필요하다. 서평가는 알게 모르게 저자와 출판사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는 이해 당사자와 소송이 걸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서평가는 칼칼한 < 칼 > 보다는 달달한 < 달 > 을 선택한다. 달을 선택한 자는 대중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칼을 선택한 자는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기 일쑤다. 서평을 비평 영역으로 확장하면 이해하기 쉽다. < 달 > 을 선택한 신형철은 대중으로부터 온갖 칭찬을 얻는다. 문학을 사랑하기 때문에 쓴소리를 할 수 없다는 고백 앞에서 독자는 그 진심을 믿는다. " 으따, 멋져부러 ~ "
반면, < 달 > 보다는 < 칼 > 을 쥔 조영일 문학평론가는 대중으로부터 욕을 먹기 일쑤다. 신경숙도 까고, 황석영도 까고, 김애란도 깐다. 대중이 좋아하는 작가들만 까니 미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가 인정 욕구에 시달려서 모든 작품에 대해 어그로를 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조영일을 지지하는 편이다. 내가 신형철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이해당사자인 문학인에게 좋은 말만 한다는 데 있다.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는 것은 하수요, 기회주의'다. 치세(治世)에서 < 예쁜 말 > 을 하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난세(亂世)에서 " 예쁜 말 " 은 나쁜 말이다. 굶어죽는 시대에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이야기하는 것은 폭력이다. 신형철은 문학이 위기인 시대이기 때문에 문학을 하는 이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 예쁜 말을 한다고 변명하지만,
문학이 위기일 수록 중요한 말은 " 뼈 아픈 말 " 이다.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에 정영일이라는 영화평론가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kbs << 명화극장 >> 에 소개될 영화에 대한 소개'를 했다고 한다. 일종의 명화극장 예고편인 셈이다. 예고편이란 관객에게 호기심과 기대감을 높여서 시청률을 높이고자 하는 전략이다. 그러다 보니 정영일은 소개할 영화의 장점은 부각시키고 단점은 감출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개를 끝마칠 때가 되면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라는 멘트를 날렸다고 한다. 일말의 양심 탓일까 ? 소설가 최인호는 정영일이 활짝 웃으면서 영화를 소개하면 좋은 영화이고 무표정한 얼굴로 딱딱하게 영화를 소개하면 나쁜 영화'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웃으면서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라고 말하는 것은 무표정한 얼굴로 "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는 전혀 다른 의미였던 것이다. 서평도 마찬가지다. 대충 읽고 대충 쓰는 출판 담당 기자(혹은 서평가)의 서평을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 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보이지 않고, 목차 순서대로 나열된 줄거리 요약만 있는 서평은 대부분 무표정한 얼굴로 < 이 책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부류 > 인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이 글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끝까지 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일말의 잘못은 있다. 내가 무표정한 얼굴로 놓치면 후회한다고 미끼를 던졌을 때 당신은 알아차렸어야 했다.
" 클리프 행어, 놓치면 후회하실 겁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