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 생각나는 밤
추워서 << 추어탕 >> 생각이 났네 ~ 그래서 추어탕 가게'에 들어갔다(짜증나면 짜장면 집에 들어갔을 것이여~). 몸을 덥히는 데 " 소주 " 만한 것이 또 있으랴. 소주 < 1병 > 시켰다. 동네 식당인데도 가격은 어느새 3,000원에서 4,000원으로 인상된 상태'였다. 니미, 원가 50원 인상했다고 1000원 올리는 센스. 박근혜 정권의 업적은 부자 감세요, 서민 증세'였다. " 내년에는 5000원으로 뛰겠군 ! " 이제 만 원 한 장이면 담배 한 갑과 소주 한 병 마시면 " 쫑 " 이다. 빈속에 소주 첫 잔을 마시는 습관은 내 오랜 버릇. 찬 소주로 속을 식히고 뜨거운 국물로 몸을 덥혔다. 아...... 이 맛에 소주를 마신다.
캬, 좋다 ! 식당에 설치된 티븨'에서는 손석희가 진행하는 << 뉴스룸 >> 이 방송되고 있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다가 뉴스 한 꼭지에 내 귀가 솔깃해졌다. 손석희 앵커가 칼칼한 목소리로 말했다.
" 올해 경기도의 순 유입 인구는 6만 명에 이릅니다. 경기도를 떠난 사람보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6만명 더 많다는 겁니다. 서울은 같은 기간 3만 7천명이 빠져나갔습니다. 무섭게 오르는 서울의 전셋값을 피해 경기도로 이동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경기도에서 서울로의 출퇴근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하루 평균 출퇴근 시간은 무려 2시간 46분입니다. 출퇴근에 하루 2시간을 쓰는 직장인의 경우 잃어버리는 행복의 가치가 월 94만 원이라는 연구결과도 있었는데요. 물론 행복을 수치로 계량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경기도민은 매월 100만원어치의 행복을 길바닥에 뿌리고 있는 셈이죠. 오늘 아침 출근길과 지난주 금요일 퇴근길을 유선의 기자가 따라가 봤습니다. "
- 손석희 앵커
뉴스를 보다가 문득 내가 2년 전에 썼던 글이 생각났다. 주요 내용은 < 행복과 거리 > 의 상관 관계'였다. " out of sight, out of mind " 라는 말이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그런데 몸이 멀어지면 마음만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 행복 > 도 함께 멀어진다. 믿지 않겠지만 < 행복 > 과 < 거리 > 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단 믿어보시라니깐~ 내가 혜민 스님이 전하는 " 행복은 마음 먹기에 달렸습니다 " 라는 말을 믿지 않는 이유는 << 유심론(唯心論) >> 이 불행을 치유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데 있다. < 쾌 ( 快 ) > 는 마음보다는 몸의 상태에 달려 있다. 건강한 몸이 좋은 기분을 만든다. 행복학'은 심리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생리학에 더 가까울 수 있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는 행복한 마음으로 죽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가족의 병수발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라면 격하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마음이 비단 같이 고왔던 사람이라고 해도 병 앞에서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행복하게 죽는 사람은 없다. (한때) 행복했던 사람이 죽을 뿐이다. 유심론은 가짜'다. 사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리처드 스코시는 << 행복의 비밀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0년 전 행동 과학자, 신경학자, 심리학자(프린스턴대학의 한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하여)이 모여 행복의 지수를 측정하고 행복의 원인을 규명하려는 실험을 진행했다. ( 중략 ) 그렇다면 이 실험 결과는 어땠을까 ?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모든 사람이 섹스를 통해 더 큰 행복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동료나 친구와 한잔 걸치는 것이 큰 점수를 얻었다. ( 중략 )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정적인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동료들과 한잔 걸친 후 집에 가서 섹스를 하는 것 ! 행복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 "
- 행복의 비밀, 리처드 스코시
행복 프로젝트에 참여한 연구자(들)이 내린 결론은 "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정적인 일터에서 즐겁게 일하고 동료들과 한잔 걸친 후 집에 가서 섹스를 하는 것 ! " 이었다. 설문 조사에 의하면 다른 조건들이 모두 만족해도 출퇴근 시간이 2시간 이상 소요되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고 한다. 즉, 출근 시간이 길면 길수록 행복은 멀어진다.

대한민국 노동자의 평균 출근 시간은 58분(왕복 대략 2시간)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의 왕복 출퇴근 시간보다도 많다. 그나마 서울에 직장을 둔 서울 거주자 덕분에 2시간을 넘기지는 않았으나, 4분이 모자란 2시간을 놓고 기뻐할 일은 아니다. 뉴스에서도 지적했듯이 서울에 일터를 둔 직장인들은 치솟는 살인적인 집값 때문에 서울 외각으로, 다시 서울 외각에서 경기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다. < 일터 > 와 < 터전 > 이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가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노동자의 평균 시간이 4시간에 육박하는 것이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만원 출근 버스에 몸을 싣고 저녁에는 잦은 잔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다. 눈꺼풀이 무거워질수록 의지할 곳은 버스 손잡이뿐이다. 해초처럼 흔들리다가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된다. 유선의 기자의 말을 들어보자.
" 오늘(21일) 오전 6시 30분. 비가 내리는 경기도 분당의 버스정류장에는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서있습니다. 50m는 족히 돼보입니다. 직장인 배주홍 씨는 세 정거장을 거슬러왔지만 30분 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퇴근길은 더 심각합니다. 출근길은 단속 때문에 입석이 없지만 퇴근길은 예전과 달라진 게 없습니다. 버스는 문이 닫히기 힘들 정도로 승객을 가득 태운 채 출발합니다. 퇴근시간 서울 한남동 버스정류장입니다. 경기도 분당으로 가는 이 광역버스를 타고 퇴근길 버스 안 상황 확인해보겠습니다.문이 닫히자마자 버스 창문은 순식간에 뿌옇게 흐려지고,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도 들립니다. 패딩에 코트에 겨울철은 겉옷이 두껍다보니 몸이 짓눌려 숨이 막힙니다. 운좋게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곯아 떨어집니다. 경기도는 지난 1년여 동안 서울로 오가는 광역버스를 290여 대 늘렸습니다. 현재 운영되는 광역버스 2100여 대에 더해 관광버스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빠르게 늘고 있는 서울 출퇴근 인구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우리나라의 평균 출근시간은 58분. OECD 국가 중 가장 길고, 미국이나 프랑스의 2배가 넘습니다. 경기도의 직장인들은 오늘도 세계에서 가장 길고 고단한 출퇴근 여정을 이어갑니다. "
유선의 기자
이런 삶 속에서 과연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고 자기 최면을 건다고 행복할 수 있을까 ?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더해서 살인적인 출퇴근 시간을 더하면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헬지옥이 된다. 종종 유명 연예인의 으리으리한 집이 티븨를 통해 소개된다. 20평짜리 집구석에 사는 사람이 화려한 200평 저택을 보는 맛은 그리 유쾌할 리 없다. 사실, 서울 갑부라 해도 땅값 비싼 서울에서 200평짜리 대저택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이런 대저택은 대부분 서울 외각 지역인, 서울 인근 경기도 외각에 위치한다. 물론 그들은 치솟는 집값을 마련하지 못해 외각으로 쫓겨났을 리 없다. 번거로운 도심 생활에서 벗어나 전원 생활을 향유하기 위해 선택한 터전이다.
그들은 박봉에 시달리는 노동자와는 달리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들이거나 노동 없이도 일정한 재화를 거둬들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간은 늘 그런 식으로 점령당했다. 가난한 사람이 모여 시장을 만들면 부유한 사람이 시장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집값이 오르면 가난한 노동자는 서울 외각으로 떠난다. 하지만 부유한 사람도 바쁜 도심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서울 외각으로 빠진다. 서울 외각은 다시 부유한 사람이 점유하게 되고, 가난한 노동자는 더욱 더 먼 곳으로 떠난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 젠트리피케이션 >> 이라고 한다. 원주민은 항상 그런 식으로 쫓겨나다가 더 이상 갈 곳이 없게 되면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온다. 집값 때문에 비싸서 떠난 동네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옥탑 방이거나 주차장 한켠에 불법으로 지은 지하 셋방, 혹은 고시원이 그들의 새 주거 환경이 된다.
며칠 전, 서울대 학생이 " 수저 색깔이 계급을 결정한다 " 는 유서를 쓰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그 학생이 떨어진 곳은 자신이 살던 옥탑 방'이었다. 반면 송파구 세 모녀 동반 자살 사건은 반지하 셋방에서 벌어진 참극이었으며,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가 굶어죽은 곳 또한 반지하 셋방이었다. 손석희 앵커가 전한 뉴스 꼭지는 3분이 채 안 되는 분량이었으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뉴스였다. 당초의 계획을 접고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 아줌마 !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쇼 !!! " 알딸딸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거실에 나와 한 말씀 하셨다. " 아침에 나갈 때는 팔팔한 꼴뚜기 다리로 나가더니 집에 올 때는 흐느적흐느적 문어가 되어 돌아왔구나. "
젠트리피케이션 ( gentrification )
-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도심 지역의 노후한 주택 등으로 이사 가면서 기존의 저소득층 주민을 대체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신사 계급을 뜻하는 ‘젠트리’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는 낙후 지역에 외부인이 들어와 지역이 다시 활성화되는 현상을 뜻했지만, 최근에는 외부인이 유입되면서 본래 거주하던 원주민이 밀려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고 있다.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 · 상류층이 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은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 Glass)가 노동자들의 거주지에 중산층이 이주를 해오면서 지역 전체의 구성과 성격이 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우선 임대료가 저렴한 도심에 독특한 분위기의 갤러리나 공방, 소규모 카페 등의 공간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이후 이들 상점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지면서 유동인구가 늘어나고, 이에 대규모 프랜차이즈점들도 입점하기 시작하면서 임대료가 치솟게 된다. 그 결과 소규모 가게와 주민들이 치솟는 집값이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게 되고, 동네는 대규모 상업지구로 변화된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서울의 경우 종로구 서촌을 비롯해 홍익대 인근, 망원동, 상수동, 경리단길,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등에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