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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 - 궁궐에 핀 비밀의 꽃, 개정증보판
신명호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님아, 헬조선이라 부르지 마오 ?
" 할리퀸 로맨스 소설 " 이 인기 있었던 때가 있었다. 남자들이 무렵 소설에 심취했다면, 여자들은 할리퀸 문고에서 나온 로맨스 소설에 열광'했다. 소설 제목은 소설마다 다 다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한지라, 남자의 무기가 < 주먹 > 이라면 여자의 무기가 < 눈물 > 이라는 사실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 할리퀸 " 은 10대들이 읽기에 좋은, 달달한 성적 판타지 소설'이었다. 조선시대에도 할리퀸 소설이 있었다. << 춘향전 >> 이다. 백마 탄 왕자 이몽룡과 신분이 천한 춘향이'가 질펀하게 펼치는 로맨스 소설. 사실, 이 소설은 구전 설화 << 콩쥐팥쥐 >> 의 할리퀸 버전'이다.
변사또는 콩쥐를 괴롭히는 계모 캐릭터이고 이몽룡은 백마 탄 유리 구두 회사 후계자인 왕자'다. 차이가 있다면 백마 대신 마패'가 대신한다는 점이다. 이몽룡, 그는 마태우스였다. 자고이래로 동네 오빠는 믿을 놈이 못 된다. 오빠 믿지, 라고 묻는 순간 그 언약을 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은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진실이 아니었던가. 몽룡은 춘향에게 "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 " 라고 말했지만 속내는 춘향이를 등에 < 업고 > 노는 게 아니라 춘향이를 바닥에 < 엎어 > 뜨리고 노는 것이었다. 옷고름 풀어헤친 < 대가 > 는 처참했다. 춘향은 머리채'를 풀어헤친 채 변사또에게 모진 고문을 당해야 했다. 그때, 희미하게 울려퍼지는 소리. " 암, 행, 어, 사, 출, 두, 요 ! "
그런데 우리가 모르고 있는 것 하나가 있다. " 춘향이의 일생 " 을 놓고 보면 << 춘향전 >> 은 결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춘향이는 기생의 여식으로 관에 소속된 관기 노비'였다. 어미가 기생이었으니 자식도 기생이 된 팔자. 신분 연좌제 사회가 바로 조선 사회였다. 관에 소속된 기생은 한양에서 고관이 오면 그들 앞에서 춤 추고 노래하고 술 따르고 그리고 몸도 줘야 했다. 그것이 관에 소속된 관노비의 운명이었다. 춘향이는 퍼블릭 우먼'인 셈이다. 설령, 이몽룡과 춘향이가 부부의 연을 맺었다 해도 본처는 될 수 없는 노릇. 기껏해야 뒷방 후첩으로 살아야 할 처지이고 자식이 생기면 그 자식은 노비 신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또한 관기'가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해서 신분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관아에서 관기를 호출하면 기생은 그들에게 성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다. << 춘향전 >> 에서 해피엔딩은 말 그대로 이몽룡이 춘향이를 만나는 < 최고의 1분 > 이 전부인 것이다. 춘향은 그렇다고 치자. 그 자식들은 뭔 죄인가 ! 대한민국 사회를 " 헬조선 " 이라 부르는 이유도 계급-연좌제'에 있다. 그렇다고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춘향'이가 기생 대신 노비 신분으로 궁녀가 되었다면 오히려 그녀의 삶은 더 화려했을지도 모른다. 잠시 광고를 보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 광고 ) 궁녀, 어디까지 알고 있니 ? 궁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아무도 모르는 궁녀의 삶. 부경대학교 사학과 신명호 교수가 쓴 << 궁녀 >> 는 제목 그대로 궁녀에 대한 이야기'이다.
궁녀는 대부분 공노비(관노비)에서 착출한다. 가끔은 양인 출신을 뽑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편법에 해당되었고 그 수는 한정되었다. 궁녀가 하는 일은 말 그대로 궁궐 살림을 하는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궁궐 안에서 일하는 궁녀 수가 500~600명(성종)이었다고 하니 그 직위와 직책도 다양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궁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나인과 상궁이다. 상궁은 나인 신분인 궁녀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였다. 나인이 기숙사 학생이라면 상궁은 사감과 같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궁녀의 월급명세서'가 의외로 높다는 데 있다. 제조상궁 같은 경우는 당상관 벼슬아치''보다도 더 많은 월급(곡물)을 받았다. 궁녀 평균 월급이 1년에 쌀 10가마였다고 하니, 독신 여성'이라면 여유 있는 생활이다. << 정조 실록 >> 을 보면 윤택한 궁녀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무릇 명색이 궁녀인 자들이 기생을 끼고 풍악을 벌이는 짓을 한다. 게다가 액정서의 노예들과 각 궁의 종들을 여럿 거느리고 꽃놀이와 뱃놀이를 하는 행렬이 길에서 끓이지 않을 지경인데도 전혀 근심하거나 꺼리지도 않는다. 심하게는 재상들과 강가에 지은 정자나 교외에 지은 별장에 마구잡이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밖에도 비루하고 외설한 일을 말하면 또한 추잡해진다.
- 정조 실록, 2년 윤 6월 신미조
그렇다면 노동 강도가 높을까 ? 하루 종일 밭일 하고 집밥 만드느라 고생하는 양인에 비하면 궁녀는 꽃 보직에 가까웠다. 놀라지 마시라, 궁녀는 주로 1일 2교대 근무를 했는데 일일 12시간 근무 후 36시간을 쉬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서 < 하루의 절반 (1/2) > 일 하고 나면 < 하루 반나절 (1 + 1/2 ) > 을 쉬는 셈이었다. 남는 시간은 주로 취미 활동'을 했다고 한다. 춘향이 입장에서 보면 이몽룡의 첩이 되느니 차라리 궁녀가 되는 편이 더 행복한 삶이 되었을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하지 않았던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기생집을 제 집 드나들 듯이 했으니, 몽룡은 여색에 환장한 놈이라. 꽃 지면 화색도 지는 법. 춘향이가 언제까지 춘향이랴. 내가 보기엔 몽룡의 첩이 된 춘향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처와 후첩의 계급 갈등은 볼 보듯 뻔하다. 더군다나 춘향은 기생의 딸로 관기 신분이었으니 그 자식도 관기가 될 팔자'였다. 궁녀를 현재로 환원하자면 결혼 제도에 얽매이지 않는 전문직 독신 여성'이다. 내가 춘향이었다면 몽룡의 첩 대신 궁녀가 될 기회를 노렸을 것이다. 미모는 어딜 가도 빛을 발하는 법. 대왕의 눈에 띄어 후궁이 되고 옥동자 낳아 빈'이 되지 말란 법 있으랴. 솔까, 암행어사'란 직책은 일종의 파견직이요, 임시직에 불과했다. 설령 왕의 여자가 되지 못했다 해도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당당한 전문직 여성 노동자'로 독립할 수 있으니 궁녀 생활이 나쁠 것도 없다. 궁녀라는 한정된 직업군을 가지고 전체를 싸잡아서 말하기는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조선을 빗대서 " 헬조선 " 이라고 조롱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 조선 > 은 적어도 전문직 여성 노동자'에 대해서는 남녀 차별 없이 대우한 사회'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높고 높은 유리 천장은 21세기 대한민국보다 높지는 않았다. 무수리가 왕의 아들을 낳기도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조선 시대 여성은 벼락 같은 신분 상승을 노릴 기회'라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님아, 헬조선이라 부르지 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