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의 진짜 책무
조선일보 칼럼 << 간장 두 종지,2106.11.28 >> 는 압권이었다. 간장 종지 한 개 때문에 열이 받은 조선일보 부장님은 칼럼에 온갖 악담을 쏟아부은 후에 지질한 사적 복수를 위해 중국집 이름을 슬쩍 공개한다. 맛집 리뷰에 불만 댓글 하나만 달려도 명성이 땅에 떨어지는 판국에 대한민국 1등 신문 조선일보에서 대놓고 저격했으니 그 가게의 명성은 불을 보듯 뻔한 일.
하지만 비난의 화살은 칼럼을 쓴 조선일보 부장님에게 돌아갔다. 그는 이 칼럼 이후, 그릇(사람 됨됨이)이 간장 종지만도 못한 간장 부장'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다. 오히려 간장 종지만도 못한 간장 부장의 칼럼 때문에 그 중국집은 독특한 광고 효과를 누려 명성을 드높였다고 한다. 간장종지를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식당을 아우슈비츠에 비유하는 글 솜씨에 감탄한 나는 이런 작품을 능가할 칼럼은 앞으로 10년 내에 나오기 힘들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 그런데 내 예상과는 달리 간장종지 칼럼을 뛰어넘는 병맛 칼럼의 걸작이 탄생했다.
한겨레에 실린 mbc 예능 드라마 김민식 피디의 칼럼 << 지식인의 진짜 책무 >> 가 그 주인공이다. 이 칼럼은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과 너무 많이 읽은 사람이 같이 살면 누가 더 불행할까 _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김민식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자신의 부모에게서 찾는다. 그는 책을 안 읽어도 불편한 것이 없는 아버지와 불편한 게 많아서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책을 읽는 어머니 중에서 불행한 쪽은 어머니라고 선언한다. 그는 자신의 가족 서사를 " 말싸움 끝에 아버지가 욕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어머니는 끝끝내 비참해진다 "
고 요약한 후에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애정이나 존중이 없는 충고나 조언은 정서적 폭력일 수 있다면서 가정 폭력의 원인을 어머니의 지적 우월감'이라고 진단한다. 쉽게 말해서 어머니가 " 맞을 짓 " 을 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막 가자는 얘기'다. 무엇보다도 이 칼럼에서 내 눈에 들어온 대목은 " 왜 아버지의 무지(無知)는 가정 생활하는 데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가 " 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의 불편에 대하여 모르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하기 때문이다(반대로 아내의 불편을 알게 되고 그것을 시정하려면 남편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여러모로 불편해진다).
무지, 외면, 망각은 권력을 가진 자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처세술이다. 발을 뻗고 자는 놈은 맞은 놈이 아니라 때린 놈이다1). 아버지는 권력자이기에 무지한 것이며 무지하기 때문에 그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약자에게는 아는 것이 힘이 될 수 있지만 강자에게는 모르는 것이 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칼럼을 쓴 김민식은 " 타인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일이 지식인의 진짜 책무 " 라고 지적하지만, 정작 그는 (아들의 글을 읽을 것이 분명한) 어머니의 자존감을 존중하는 데에는 무지'하다. 아버지의 무지가 육체적 폭력으로 작동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들의 무지는 정서적 폭력으로 작동한다.
그는 어머니라는 존재도 존중받아야 할 타인 중 한 명'이란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그는 " 지식인의 진짜 책무 " 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가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은 " 자식인 자의 진짜 책무 " 다. 이 칼럼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편 소설은 강화길의 << 음복 >> 이다. 결혼 후, 처음 맞는 남편 가족의 제삿날에 며느리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을 알아차린다. 제사를 지내고 음복하는 시간 동안 며느리가 그 사이에 깨닫는 것은 가족의 차별과 희생 강요로 인해 며느리의 남편은 혜택을 받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십년 동안 장손으로 사랑받으며 살아온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모른 척하는 것일까 ? 며느리이자 장손의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 누군가를 미워해 본 적도 없고, 미움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나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네가 진짜 악역이라는 것을. "
1) 한국 속담 중에 가장 괴랄한 속담은 " 맞은 놈은 발 뻗고 자고 때린 놈은 웅크리고 잔다 " 가 아닐까 ?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몫이지 가해자에게 남는 잔상이 아니다. 하지만 이 속담은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서사를 덧씌워 가해자에게 면제부를 제공한다. 가해자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외면과 망각을 통해 무지의 단계에 다다른다. 그 결과, 맞은 놈은 항상 웅크리고 자지만 때린 놈은 평생 발 뻗고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