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센스 내가 유령일까
공주와 쌍년
여성에 대한 포지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 본성론 > 이고, 다른 하나는 < 환경론 > 이다. 전자가 < 생물학 - 영역 > 이라면 후자는 < 사회학 - 영역 > 인 셈이다. 보부아르의 유명한 정의, "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 라는 지적은 여성이라는 존재가 사회적 요구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이다. 그녀는 여성은 주류 남성 사회의 억압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의 출발도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에게는 국가가 없다고 선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가란 남성의 세계일 뿐이다. 이것을 기본 전제로 가정하면 마립간 님은 < 여자는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 는 것을 부정하는 쪽으로 < 여자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 > 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이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루신다 닐의 <<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 >> 라는 책을 인용한다. " 아들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 " 는 말은 곧 " 딸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다 " 는 말과 동일하니까 말이다. 마립간 님이 이 책을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자아이에게 중요한 가치는 따로 있다 p27 남자와 여자는 처음부터 다르게 태어났다. 딸과 아들을 동시에 키우는 엄마들은 모두 다 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들은 자동차와 싸움놀이를 좋아하고, 딸은 자동차만 있는 방에서도 소꿉장난을 하며 논다. 아들과 딸은 개인적인 차이가 있기는 하나 뇌 구조와 호르몬 분비가 기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경로를 거쳐 지능과 정서가 발달한다. 아들을 움직이려면 이런 아들의 본성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식스센스, 나는 유령일까 중
아들이 자동차와 칼싸움'을 좋아하는 것과 딸이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보브아르가 말한 < 태어나는 것 > 에 해당된다. 당연히 보브아르와 울프 편에 서서 < 만들어지는 것 > 이라고 믿는 사람은 즉각 반발한다. " 아들이 모두 자동차와 싸움 놀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 " 맞는 말이다. 이 세상 모든 아들이 자동차와 로봇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하지만 이 반론은 잘못된 태도'다. 정확한 데이터를 요구하는 과학 학술지가 아니라면 사회 현상은 대부분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일반화한다. 100%가 아니라고 해도 대체로 그런 경향을 보인다면 이 일반화는 틀린 문장이 아니다. 어떤 특정 후보가 20대 유권자 100만 명에게서 90만 표를 얻었다고 했을 때,
우리는 쉽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20대 유권자는 ○○○ 후보를 지지했다 " 이 문장이 잘못된 문장이 아닌 이유는 어떤 현상에 대하여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일반화했기에 그렇다. 이 문장을 두고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적할 수 있을까 ? 나는 아들은 자동차와 로봇을 좋아하고,딸은 인형을 좋아한다는 주장(본성론)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근거'로 < 만들어지는 것(환경론) > 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하는 것이야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아이는 부모와 또래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아이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아이는 생각보다 치열하고 독하다는 데 놀라게 된다. 아이는 부모와 또래에게 사랑받기(인정받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인정투쟁인 셈이다. 자동차와 로봇을 좋아하는 아들이 자동차와 로봇을 좋아하는 아들로 자라기를 바라는 부모 밑에서 자란다면 아무 문제도 없겠지만,
부모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조용하며 순종적이며 여성적인 아들이 되기를 바라는 부류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들은 부모에게 사랑받기 위해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소꿉놀이를 좋아하는 쪽으로 성향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런 경험담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할까 ? " 딸아이에게 ’핑크‘와 ’공주‘, ’인형‘같은 것들을 쥐어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써왔는데 유치원에 다니고 나서부터 핑크와 공주만 가지고논다고. ’나 혼자‘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위 인용 문장에서 핵심은 " 유치원에 다니고 나서부터 핑크와 공주만 가지고 논다 " 는 말이다.
이 말을 풀어서 설명하면 딸이 유치원에 다니기 전까지는 엄마의 요구(딸은 이 요구를 명령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에 충실히 따르다가 유치원에 다니고 나서부터 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딸은 왜 사회 생활의 첫걸음인 유치원에 입소하자마자 공주로 변했을까 ? 내가 보기에는 이러한 변심은 본성으로의 회귀 때문이 아니라 또래 압력이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유치원에 다니는 또래 여자아이들은 모두 핑크와 공주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들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할 수 없이 핑크와 공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여자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정적 증거'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 딸은 딸로 태어난다. 하지만 만들어진다. >> 이다. 그러니깐 " 본성은 환경의 요구에 의해 변한다 " 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불알후드가 지배하는 사회'다. 여자가 된다는 것은 불알후드가 요구하는 캐릭터에 부합해야 한다는 소리이다. 불알후드가 요구하는 여성 캐릭터는 내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분명하다. 순종적일 것,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지 말 것, 성적 욕망을 드러내지 말 것 따위이다. 모 알라디너는 어떤 여성이 자신에게 성적으로 호감을 드러내자 대뜸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 " 나야 좋지, 쌍년 ! " 그 글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달라지는 것은 없다. 평소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니 말이다. 여성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천박하다. 그렇다, 여성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 순간 쌍년이 되거나 씨발년이 된다. 나는 종종 그의 여성관이 궁금하다.
그것은 << 건축학개론 >> 에서 승민(이제훈)이 서연(수지)을 " 쌍년 " 으로 바라보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성적 욕망이 드러나는(폭로되는, 목격되는) 순간, 순진무결한 여신은 하루아침에 쌍년이 되는 것이다. 이 신속한 배신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개가 느닷없이 손을 물어뜯는 것과 같다. 승민은 서연이 학과 선배와 섹스를 했을 것으로 가정하는 것만으로 그녀를 쌍년으로 지목한다. << 건축한개론 >> 은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켰다는 점에서 딸딸이 영화'다. 이런 불알후드의 지랄같은 지배 사회이다 보니 대한민국 여성은 여성다움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부모는 강박적으로 딸이 핑크와 공주, 인형 따위와 놀았으면 한다. 그러다 보니 딸은 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충실히 따르고, 이 딸들이 모여서 유치원에서 " 시스터후드 " 를 형성한다.
핑크와 인형 따위를 가지고 놀지 않던 딸은 유치원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자신이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을 본능적으로 파악한다. 결론은 이렇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지만 남성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딸이 소꿉놀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 사회의 폭력적인 요구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좋든 싫든 현대 사회가 히틀러의 결과인 것처럼, 좋든 싫든 현대 여성의 불만은 불알후드의 결과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