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연 - 실화, My Life’s Story [Gate fold 자켓] [150g 12“ 2LP] [한정반]
손지연 노래 / 엠알씨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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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




 


한 시대를 풍미한 디바들이 있다. 1970년대 디바는 바브라 스트라샌드였고, 1980년대 디바는 마돈나, 1990년대는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 2000년대는 브리티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래라'일 것이다. 그리고 2010년대 디바는 아마도 아델일 것이다(혹은 비욘세). 그렇다면 한국의 디바는 누구일까 ? 맨발의 디바, 이은미 ?! 이들은 넓은 음역대와 높은 음역대를 자유자재로 소화한다. 그런데 나는 이들의 노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고의 뮤지션이 모여 만든 앨범이요, 최고의 디바'가 부른 노래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그래서요 ? 이런 삐딱한 마음을 갖게 된다. 체질적으로   :   주저흔 없는 예쁜 손목을 좋아하지 않고, 해피 엔딩으로 봉합되는 서사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도 좋아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서사에서 그 끝이 외우기 쉽다는 것은 그닥 매력적인 것은 아니다. 누가 나에게 음악 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준 후 한국대중음악 앨범 100를 선정하라고 한다면, 나는 수줍은 표정으로 손지연의 첫 번째 앨범 << 실화 My Life's Story, 2003 >> 를 뽑고 싶다. 손지연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은 귀에 익은 멜로디가 아니라서 생경스럽게 들리겠지만 눈을 감고 느린 호흡으로 날숨을 뱉으며 듣다 보면 어느 새 말똥구리가 끌고 가는 말똥 같은 눈물이 뚝, 떨어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아는 범위 안에서 손지연보다 아름다운 가사를 쓰는 뮤지션은 없다. 늦겨울 눈이 내리던 밤, 성대 도어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강냉이를 안주삼아 카스를 마시다가 펑펑 울었다. 헤어진 옛 애인을 그리워하기엔 너무 늦은 나이여서..... 잊기로 결심했다. 







돌아온단 약속을 잊고 간 너를 기다린 지 벌써 몇 년째 꿈속에서도 떠나는 널 꿈속에서도 종일 기다리는데 이제 곧 겨울도 올 텐데 바람은 더 차가울 텐데 나의 집은 어느 응달뿐인데 오래전부터 있고 싶던 곳으로 넌 떠났는지 내 맘이 너를 돌려보냈는지 대답해줘 겨울 가고 눈 녹기 전에 이리로 계속가면 안될 곳인데 알면서도 나를 들릴 수 없네 나에게 주던 너의 손길 꼭 그대로인 듯 못 견디는 감정뿐 한 번 더 사랑한다 내게 말하면 그 맹세 고이 접어 넓은 바다로 영영 던져버려 내 갈 길은 오로지 너와 약속한 그 길뿐인데 다시는 날 떠나가지 못하게 내게 오는 길을 잃었나 수많던 약속 잊었나 대답해줘 겨울 가고 눈 녹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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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











진중권과 서민을 위한 변명










                                                                                     주동인물(주인공)으로 번역되는 프로타고니스트(protagonist)는 연극,영화,문학에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거나 어떤 일에 대하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혹은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등장인물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상을 말한다. 


예를 들면 << 키다리 아저씨 >> 에서 고아 소녀 제루사 애벗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지만 프로타고니스트는 아니다. 대개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제루사 애벗이 프로타고니스트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 진짜 주동인물은 키다리 아저씨'다. 주동인물이 있으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반동인물이 있기 마련. 안타고니스트(antagonist)는 주동인물에 맞서 행동하거나 주동인물과 갈등을 빚는 캐릭터다. 주로 악역을 담당하는 악당들이 안타고니스트이다. << 배트맨 >> 에서 조커가 대표적인 안타고니스트이다. 하지만 반동인물이 반드시 악당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인공이 악당인 경우에는 오히려 반동인물이 악과 싸우는 정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동인물이 누구냐에 따라서 반동인물의 성격도 바뀌는 것이다. 진중권과 서민은 전형적인 안타고니스트에 속한다. 그들에게 싸울 용기를 부여하는 동기는 아마도 (중앙 무대에 서기에는 영웅적 풍모가 부족하다 보니) 주동인물에 대한 열등감일 것이다. 그들은 프로타고니스트가 악당이기에 미워한다기보다는 단지 그대가 무대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의감은 정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질투가 그 추동의 원인인 셈이다. 


문제는 프로타고니스트가 누구냐에 있다. 이명박근혜에 대항하는 안타고니스트로서 그들은 불의에 저항하는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그 반대일 경우에는 악당 캐릭터로 전환한다. 안타고니스트의 존재 이유는 프로타고니스트이다. 프로타고니스트가 없다면 안타고니스트도 없다는 점에서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인 셈이다. 그들은 주인공의 몸에 붙어 피를 쪽쪽 팔아먹는 존재다. 사람들은 그들이 더럽게 변절했다고 비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초지일관 일편단심이었다. 화려한 조명이 영웅의 풍모를 가진 주인공을 감쌀 때 안타고니스트는 앵앵거리며 그들과 싸울 준비를 한다. 질투는 그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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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20-09-19 17:2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어느 잡지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영미권에서는 진중권/서민 같은 부류들을 가리켜 프로보커추어Provocateur라고 부른다고 하더군요. 거칠게 정리하면 강한 수위의 발언을 통해서 특정 집단(한국으로 치면 문재인/민주당을 극도로 혐오하고 저주하는 이들)을 상대로 호응과 관심을 받아서 사회적/경제적 이익을 챙기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라고 합니다. 한국식으로 바꾸자면 ‘생계형 어그로꾼‘이라고 해야 할까요.
오래전 진중권이 변희재와 지만원 같은 이들을 조롱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이제는 진중권이야말로 자기가 그토록 욕하던 부류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본인은 자신의 언사를 정의롭다고 생각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기껏해야 우파들에게 빌붙어서 먹고 살아가는 찌질한 빌런 A에 지나지 않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9 21:02   좋아요 2 | URL
진중권은 격렬비열도죠. 격렬하게 비열한 캐릭터.

2020-09-19 2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9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구소녀 파랑새 영어덜트 1
변은비 지음, 최윤태 원작 / 파랑새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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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아리스토텔레스가 << 시학 >> 에서 한 말이다. 사실, 두 개의 전제는 모두 가능하지 않는 가능성을 말하고 있지만 접근 방식은 사뭇 다르다. 


전자( :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것)는 논리적 검증의 영역에 속하지만,  후자( :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것)는 텍스트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허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태도에 방점이 찍힌다. 중요한 것은 신뢰감과 설득력이다. 핍진성에 대한 문학적 장치는 영화에도 적용된다.  내가 영화 << # 살 아 있 다 >> 를 시간 날 때마다 물고-뜯고-씹는 이유는 감독이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버리고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연출했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길이가 24미터나 되는 로프를 이용하여 A동 4층과 맞은편 B동 4층을 수평으로 연결했을 때 동력 장치가 없는,  


로프에 매달린 식량 가방이 무서운 속도로 미끌어져 내려갈 때 관객은 영화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는다.  자전거 패달을 밟지 않고서 오르막을 신나게 내달렸다는 신소리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  그것은 곧 생산자가 수용자에게 보내는 설득력에 균열이 발생했다는 뜻이고, 동시에 수용자가 생산자에게 보내는 신뢰감이 깨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영화사가 많은 제작비(순제작비 70억)를 투입하여 분장과 특수효과로 좀비의 핍진성을 살렸다고 해도 한 번 깨진 믿음과 신용은 복원되기 쉽지 않다. 관객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충무로 놈들아.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 !             


영화진흥공사에서 지원하는 제작비(1억 2천)로 만든 저예산 독립 영화 << 야구소녀 >> 는 아마추어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구단 팀에 문을 두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마추어 야구선수가 프로 구단 2군 육성 선수로 구단에 입단할 가능성은 대략 4%라고 한다.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프로 2군 팀 육성 선수가 프로 1군에 진입하는 경우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결국 1%의 선수가 프로 무대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의 도장 깨기'가 앞날에 대한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프로 무대에서 주전이 된다는 것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희박한 확률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이 모든 가능성은 야구 소년'에 국한된 데이터이다.  야구 소년이 아니라 야구 소녀라면 가능성의 가능성의 가능성에 대한 데이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에둘러 말할 필요 없이, 여성 운동선수가 프로야구 선수가 될 가능은 없다.  여자 프로야구 선수가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 프로야구 구단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가능한 설정을 " 그럴듯하고 있음직한 이야기 " 로 관객을 납득시키려고 노력한다. 이 영화는 야구 소녀가 프로 구단에 입단하여 한국 시리즈 마지막 경기 9회말 2아웃 상황에 등장하여 상대 팀을 제압하는, 


가능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서사를 버리는 대신에 불가능하지만 있음직한 서사를 선택한다.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 도전과 성공 > 이 아니라 < 도전과 성장 > 이었다. 성공담 대신 성장담을 선택한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입봉(데뷔)한 감독은 적은 제작비로 효율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종종 어디선 본 듯한 장면과 몇몇 오글거리는 대사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어디서 개수작이야 _ 라는 태도로 일관했던 관객은 어느덧 정자세를 하고 소녀를 응원하게 된다. 빅토리 ! 빅토리 !!  븨, 아이, 씨이, 티이, 오, 알, 와이 !!! 주수인 퐈이팅 ~ 



+

야구보다 재미없는 스포츠가 있을까 ?  3시간짜리 스포츠를 관람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연장전이 이어지면 6시간 동안 혈투를 펼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스포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야구를 보는 이유는 " 욕하면서 보는 재미 " 를 버릴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팬이라면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선수에게는 격려와 칭찬을, 반대로 상대 팀에게는 욕과 저주를 퍼붓기 마련이지만 엘지 팬인 나는 주로 앨지 선수들을 욕한다. 반대로 상태 팀 선수를 욕한 기억은 거의 없다.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황홀했고 타자 앞에서 빠르게 휘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곤 했다. 욕하면서 보다 보니 염장이 터지는 일이 종종 발생하게 된다. 엘지는 천국이자 지옥이었으며 빛이자 그림자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야구라는 스포츠의 최대 장점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에게 저주를 퍼붓는 잦은 경험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얼마나 쪼잔한 인간인가라는 사실을 각인하게 만드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나는 야구를 볼 때마다 속 좁은 내 인성에 종종 놀라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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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와 화폐





드라큘라는 독점 자본가'를 대표한다피 는 화폐 에 대한 은유다그러니까 드라큘라는 “ 피 를 빠는 것이 아니라 호주머니에서 “ 화폐 를 뺏는 것이다드라큘라는 사람 목숨을 빼앗는 데는 관심 없다그는 인간을 자신의 노예로 부리기 위해 이용할 뿐이다그는 필요한 만큼만 빨아먹는다그가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흡혈하지 않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소량의 피)만 흡혈하는 이유는 그들을 살려두어야지만 피(화폐)를 계속 공급받을 수 있다는 데 있다

드라큘라가 귀족 계급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금을 투자하는 사업가로 소개된다. 그뿐이 아니다. 하수인으로 등장하는 조나단 하커는 부동산업자이고, 인격화된 자본인 드라큘라 백작이 즐겨 읽은 책은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 >> 이다.  피를 훔친다(착취한다,강탈한다)는 점에서 그는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인 셈이다.  또한 흡혈귀가 강할수록 살아 있는 사람은 약해진다는 설정은 독점 자본이 강할수록 서민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자본론 >> 에서 맑스는 " 자본은 흡혈귀처럼 오직 살아 있는 노동을 빨아먹어야 살 수 있으며

더 많은 노동을 빨아먹을수록 더 오래 사는 죽은 노동이다 " 라고 지적한다. 드라큘라가 자본가를 대표한다면 좀비는 노동자 계급을 대표한다. 그들은 죽은 자'이기에 더 이상 자본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는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노동력을 생산할 수도 없는 노동자이기도 해서 무능자이기도 하다. 강신주가 중앙일보 칼럼에서 서울역 노숙자를 향해  "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어 있는 좀비처럼 보인다 ㅡ " 라고 지적한 것은 평소 자본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그가 철저하게 자본주의 입장에서 화폐 경쟁에서 밀려난 노동자를 좀비로 취급했다는 점에서 논리 모순이다.

좀비 떼의 출현은 경제 공황에 따른 기층민의 폭동을 연상하게 만든다. 소비 능력과 생산 능력이 모두 전무한 좀비는 주권자로서 국가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러니까 좀비 영화 장르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적 욕망을 따른다. 이처럼 좀비 영화 장르는 프로이드 정신분석학보다는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에 가깝다. 좀비물이 전무했던 한국 영화'에서 연상호 감독의 << 부산행, 2016 >> 이 천만 관객이라는 기적을 연출한 것은 동시대적 불안이 반영된 탓이다. 1%의 독점 자본이 99%의 노동자를 지배하는 " 헬조선 " 이라는 신조어가 2014년에 탄생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역 노숙자 집단에서 발생했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연상호 감독의 영화 << 서울역 >> 은 강신주의 서울역 노숙자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좀비는 독점 자본의 축적 위기로 인한 불황이  주기적으로 발생한 2000년대 이후  되살아난다. 주로 미국에서 생산하던 좀비물이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은 자본주의의 파국이 전지구적 위기로 확장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가의 송곳니에 피(화폐)를 빨린 기층민은 좀비가 되어 신선한 피와 살점을 찾아 어슬렁거린다. 좀비는 살아 있으나 죽은 목숨이거나 혹은 죽은 거나 다름없지만 마지 못해 사는 불가촉천민이면서 동시에 파산자'이다. 

연상호 감독의 좀비 3부작 마지막 편인 << 반도, 2020 >> 가 1000만 달러가 든 트럭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는 점에서 이 영화 또한 정신분석학보다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욕망으로 읽힌다. 좀비는 자본의 노예라기보다는 자본의 독점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반면에 헬조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는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돈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영화는 그들이 금융 자본 천국이자 심장인 미국으로 떠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은 반도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것이 성공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좀비 아포칼립스는 다중 채무자의 몰락 때문에 다다르게 되는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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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젯 - 아웃케이스 없음
김광빈 감독, 하정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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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시발 됐고 !




 


                                                                                                        집에서 영화 보다가 재미가 없으면 모니터를 켜 놓은 채 돌아서(서) 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 비몽사몽, 잠들다 보면 망한 영화가 내 꿈에 스며들어서 근사한 영화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다 죽어가는 영화를 이런 방식으로 살리곤 했다.  


그런데 종종 " 재미가 없는 차원 " 을 훌쩍 뛰어넘는 영화가 있다. 영화 << 살아있다 >> 가 대표적이다. 깊은 빡침이...... 두 주먹 불끈 쥐다 보니 괄약근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 이런 영화는 " 돌아서 ㅡ " 잠을 자는 차원을 떠나서 아예 " 돌아버리게 ㅡ " 만드는 구석이 있다. 영화 << 클로젯 >> 은 관객을 돌아버리게 만든다. 오. 주여 ! 혹여,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 글이 재미있다고 해서 호기심에 이 영화를 볼 생각일랑 하덜덜 마쇼. 뇌출혈로 사망할지도 모르니까. 뭐, 엄복동 같은 희대의 망작은 그냥 웃으면서 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똘레랑스를 기대하면 안된다. 


당장이라도 모니터 안으로 난입해서  하정우고 김남길이고 나발이고 간에 멱살 잡고 하드캐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 시바. 영화 상영 내내 나는 뜬금뉴스의 개그맨 안상태 특파원에 빙의될 수밖에 없었다.  난... 오컬트인 줄 알고 갔는데 하정우는 저승에서 청승떨며 놀고 있고. 감독은 무섭다고 난리인데 난... 우스워서 물방귀만 나올 뿐이고. < 살아있다 > 에서 진라면 처먹는 장면에서 학을 뗐는데 이 영화에서는 남길이가 진라면에서 진정성을 느낀다고 진지하게 고백해서 난... 화딱지가 났을 뿐이고, 남길이는 닝기미 내 속도 모르고 처묵고. 계속 처묵고. 내 속은 허파 뒤집어지고. 아이, 시발 됐고 !   


이 영화는 감독이 장르에 대한 이해도 없고 장르에 대한 애정도 없을 때 발생하게 되는 총체적 난국'이다. 하정우는 연기에 대한 열정이 식었다기보다는 아예 영혼이 빠져나간듯한 연기를 하고 김남길은 띨띠리 연기를 펼치는데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눈 감고 봐야 했다. 도대체 어르신들이 아역 배우보다 연기력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이여. 참, 한심하다. 내가 그동안 귀신이 나오는 수많은 영화를 봤지만 귀신에게 칼 던지는 인간은 처음 봤다. 감독에게 정말로 진지하게 묻고 싶다. 귀신에게 칼 던지면 귀신이 칼에 맞아 뒈지니 ? 이건 아니자나, 이건 아니자나, 이건 정말 아니자나. 흙흙. 


아, 그리고 ㅋㅋㅋㅋㅋ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는 대체 무슨 죄니 ?  꼭 이런 영화에서는 까마귀가 유리창에 충돌해서 피를 묻히고 죽더라 ?  아니, 까마귀가 무슨 죄야. 어찌 된 게 한국 공포 영화에서 고라니는 죄다 달리는 차에 돌진해서 죽고, 까마귀는 죄다 유리창에 돌진해서 죽어요. 이거 상상력 빈곤 아니냐 ?  이 타이밍에서 안상태 특파원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안상태 특파원 !!!   까마귀는 감독이 시켜서 돌진했을 뿐이고.  난... 그런 까마귀가 불쌍할 뿐이고.  고라니는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사고로 고자 됐고. 고라니는 터진 불알 잡고 내가 고자라니 _ 소리치며 울고 있고. 난... 그런 고라니에게 미안할 뿐이고. 허파 뒤집어지고.


감독아, 고라니와 까마귀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  까마귀, 너희도 그래. 이 정도면 너희들도 동물 보조 출연 권익위를 결성해서 이런 게을러빠진 인간 감독들을 싹 다 고발해야 하는 것 아녀 ?  콩밥을 좀 먹여야 다시는 이런 연출 안 한다. 이런 인간들이 있으니 사람들이 너희를 흉조라고 흉보는 거야. 수수방관할 거야 ?  에휴. 너희들도 게을러빠진 거다. 이놈의 새(끼)들아. 반성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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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5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5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