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수상한 그녀, 정희진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 는 속담은 " 열에 아홉... " 이라는 관용구'보다 예측 확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학적 사고에 의하면 전자는 확률이 1/10 이고 후자는 확률이 9/10 이니깐 말이다. 하지만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 에서 < 열 > 이 " 고양이들 " 을 지시하는 군집 명사'이고, < 하나 > 가 그 군집에 속하는 독립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 하나 > 와 < 열 > 은 계통과 계열이 모두 같은 한통속이기 때문에 고양이(단수)이 쥐를 잡는다면 고양이들(복수)도 쥐를 잡는다는 사실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 열 > 이 계통과 계열이 동일한 한통속으로 결속된 군집이 아닌 경우라면 사정이 다르다. 호랑이, 사자, 여우, 늑대, 삵, 하이에나 따위로 이루어진 " 열에 아홉 " 이 쥐를 잡아먹는다고 해서

나머지 < 하나 > 도 쥐를 잡는 짐승'이라는 보장은 없다. 그 하나가 " 쥐를 무서워하는 코끼리 " 라면 ?! 확률 < 1/10 > 이 < 9/10 > 보다 정확할 수 있다. 내게는 윤대녕 소설이 그렇다. 신경숙은 윤대녕 소설을 두고 " 내밀하고 매혹적이다......  윤대녕스러운 것에 이미 얼마간 중독이 되어 있는 이들에게 중독자가 되길 잘했다는 은근한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 라는 출판사 띠지 광고용 덕담을 선물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 윤대녕스러움 > 은 < 윤대녕 스타일 > 이 아니라 < 게으른 자기 표절 > 에 불과했다. 낯선 남자와 낯선 여자가 낯선 장소에서 만나 관계를 맺는, 여성을 남성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캐릭터로 인식하는 진부함에 넌더리가 났다. 윤대녕 소설에서 낯선 여자는 권태에 빠진 남자에게 " 박카스 " 같은 존재다, 오.... 자양강장제'시여 !  

이 서사가 반복되다 보니 "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 수준을 벗어나 " 안 봐도 뻔히 아는 "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더군다나 여성이 어머니를 닮아서 모성애의 부재를 자극할 때는 할 말을 잃는다. 이 뻔한 클리셰를 그는 왜 매번 반복하는 것일까 ?  윤대녕의 << 관광버스 소설 >> 을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그는 소설가'라는 직업 대신 여행사나 차렸어야 했다. << 페미니즘의 도전 >> 에서 정희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이제까지 여성은 남성의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사람들이었지, 자신의 외로움을 표현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었다. ( 89쪽 ) "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유통되는 < 모성애 신화 > 는 불알후드(brotherhood)가 여성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서사다. 왜냐하면 < 어머니 > 라는 단어에는 " 자기 희생 " 이라는 사회적 함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 영화 << 수상한 그녀 >> 에서 스무 살 꽃처녀인 오두리로 변신한 오말순은 손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 회춘의 맛 " 을 포기한다.  그녀는 스무 살 처녀를 포기하고 칠순 노모로 돌아온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모성의 자기 희생을 전제로 한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다. 우리는 " 여자는 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강하다 " 라는 통속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배우고 자라서, 이 문장이 가지고 있는 폭력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 약하다 > 와 < 강하다 > 라는 형용사는 < 불완전하다 > 와 < 완전하다 > 를 에둘러 표현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은 " 하자 있는 여자 " 다. 그렇다고 해서 불알후드가 결혼한 여자를 무조건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불알후드는 자신에게 필요할 때만 어머니를 호명할 뿐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뭉뚱그려서 < 아줌마 > 라고 부른다. 아줌마'라는 단어가 " 아주머니 " 를 낮추어 부르는 소리이니, 계급 강등'인 셈이다. 이처럼 어머니 찬양과 아줌마 경멸'은 한국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이중적 잣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 여사 > 라는 단어도 조롱으로 사용되니, 여성 입장에서는 이 " 불알후드의 시발스러움 " 을 마땅히 하소연할 데가 없다. 여성이 외치는 메아리'는 태백산맥보다 높다는 부랄산맥 앞에서 산산이 부서진다. 태산이 높다 하되 부랄보다 높을쏘냐. 아, 부랄... 산맥 ! 정희진이 지적한 대로

"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거의 모든 말은 백인, 남성, 중산층, 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서울 사는 사람의 시각에서 구성된 것이다. 중립적인 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 같은 책, 72쪽 ) "

​좋은 예가 < 유관순 누나 > 다. 어느 누구도, 심지어 여성인 경우에도 유관순은 " 유관순 누나 " 이지 " 유관순 언니 " 가 아니다. 이러한 예는 무수히 많다. 미혼녀라는 말은 있지만 미혼부라는 말은 없다, 여성 상위라는 말은 있지만 남성 상위라는 말은 없다, 정숙한 여성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정숙한 남성이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실은 차별적인 언어 습관인 셈이다. 이처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언어'는 대한민국 50대 중산층 성인 남성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점에서 한국어는 남성 언어'이지 여성 언어'가 아니다.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 오양 비디오 >> 와 << 백양 비디오 >> 에서 주목할 점은 " ~ 양(孃) " 이라는 호칭의 사용'이다. 왜 언론은 가치 중립적인 " ~ 씨(氏) " 를 사용하지 않고 성별을 분명히 알 수 있는 호칭인 " ~ 양 " 을 사용했을까 ?

< ~ 양 > 이라는 호칭이 miss라는 뜻으로 통용된다는 점에서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언론이 오히려 앞장서서 대중의 포르노적 상상을 자극했다. 불 난 데 신나 뿌린 꼴이라고나 할까 ?  내가 아는 한, 이러한 지적을 한 지식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 사실'은 한국 지식인 사회조차 남성 언어의 폭력성에 무감각하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부자가 행복한 사회보다 가난한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이고 비장애인이 행복한 사회보다 장애인이 행복한 사회가 더 건강한 사회'다. 마찬가지로 남성이 행복한 사회보다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보다 더 건강한 사회'에 속한다. 영화 << 수상한 그녀 >> 는 여성을 공에 비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10대는 농구공이다. 농구공을 잡기 위해 수컷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20대는 럭비공이다. 마찬가지로 수컷들이 개떼처럼 달려든다. 농구공과는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점에서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30대는 탁구공으로 추락한다. 탁구공을 쫒는 벌떼와 개떼는 없다. 40대는 골프공이다. 잡으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멀리 쳐낸다. 그리고 50대는 피구공이다. 보면 피해 다닌다. 이 자조섞인 농담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가 나쁜 점은 이러한 태도를 긍정한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어머니'는 어느 공에 비유해야 하는지 말이다. 피구공 ? 골프공 ?! 탁구공 ?!! 프란츠 파농은 " 흑인은 백인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흑인의 타자 " 라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여성 또한 남성의 타자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타자'이다. 이 견고한 벽부터 깨야 한다.

그렇기에 정희진의 << 페미니즘의 도전 >> 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먼저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서 정희진은 남성에게 이해를 촉구한다기보다는 여성에서 연대를 제안한다. 시작은 손을 잡는 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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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DOKU 2015-07-13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나온 저서 <정희진처럼 읽기>도 옆에 갖다 두고 읽습니다. 읽을 때마다 뭔가 반성하게 되고 나름 생각을 좀 하고 산다고 해도 이분의 사유 앞에 서면 조야해지더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3 17:17   좋아요 0 | URL
정희진처럼 일기도 함 읽어보아야 겠씁니다.
 

 

 

 


밥풀과 밥풀때기

                                나는 남보다는 책을 많이 읽는 편().   " ~ 이(었)다 " 라는 표기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내 " 다독의 경험 " 은 현재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시대와 불화하는 성격이기에 티븨 매체와 당대의 유행에 호감이 없던 터라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 이외에는 취미 생활이 없어서 책과 영화를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꼴에 성격은 레트로 지향적 이어서 주로 고전을 읽거나 고전을 보았다. 곰곰 생각하니 내가 책을 사는  데 투자한 비용은 대략 5,000만 원 정도. 여기에 책 한 권 읽는데 6시간 정도 소모된다고 했을 때 독서하는 시간 대신 부업으로 곰 인형 눈깔을 붙이는 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 1억( 책 산 돈을 저축 + 부업으로 번 돈) 정도는 저축하지 않았을까 ?

​그 돈으로 근사한 외제차 하나 사서 , ! 홍콩 가자 !! ” 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 아니면 그 종잣돈으로 사업을 해서 배, 배배배배배벤츠 타고 루, 루루루루루룸살롱에서 양주 마시며 쌀밥에 괴깃국 먹지 않았을까 ? 아, 아아. 이렇듯 가정법은 허무맹랑한 서사'일 뿐이로구나. 책 한 권에서 지혜 하나를 건질 수 있다면, 나는 대략 5000개 정도의 지혜를 득템하여 간달프 같은 지혜의 어르신이 될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을수록 지혜 하나를 얻는 게 아니라 지혜를 와장창 잃어버리게 되었다. " 지혜가 뭐예염 ? " 뒤늦은 후회이지만 다독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깊이 읽기에 실패하다 보니 어쭙잖은 똥고집만 남아서 사람들에게 흥야항야하기 일쑤였다. 다독의 피해는 오독이었다.

내가 읽은 책 가운데 팔 할은 오독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읽었던 책을 다시 읽자 결심했다. 발췌독이 아닌 정독으로 말이다. 비록 5000개의 지혜를 얻는 데에는 실패했으나 소득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 사랑 > 은 사랑을 나누는 행위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나누는 행위 에 있었다. < 오병이어의 기적 > 도 알고 보면 노동을 나누는 행위'다. 빵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는 일을 해서 번 재화이니, 이것을 이웃과 나눈다는 것은 결국 노동을 나누는 행위'다. 예수가 말하는 < 사랑 > 은 받는 것도 아니고 주는 것도 아니다. 노동을 나누는 것이다. 나는 이 단순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사랑을 나누는 행위는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였다. 그것은 고상한 문학적 표현이었을 뿐, 성욕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조건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노동을 나누는 것. 페미니즘을 이론적으로 배운 사람은 양성평등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진다. 페미니즘 이론은 남녀 간 권력의 분배에 방점을 찍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노동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양성평등을 위한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실에는 어두웠다. 양성평등은 책을 통해서 배우지 말고 싱크대 앞에서 배워야 한다. 한여름 불 옆에서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 여자라고 해서 모두 요리에 일가견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지나가는 민들레나 딱정벌레에게 줘야 한다는 점.

" 너도 힘드냐? 나도 힘들다! " 라고 말하기에 앞서 " 나도 힘드니 너도 힘들겠구나 ! " 라는 말의 온도와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 그래서 내가 가진 노동을 당신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싱크대 앞에 서면 사랑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집회에 참석해서 함께 물대포를 맞으며 연대하는 방식도 노동을 나누는 행위. 내 노동의 힘듦을 이해하면 당신의 밥그릇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내 밥그릇만 움켜쥐면 밥그릇 타령만 하게 된다. 김훈처럼 말이다. 노동을 나눈다는 것은 연대하는 행위와 동일하다. 연대는 한 덩어리가 되기 위해 힘을 나누는 행위'이다. 노동자는 노동의 힘으로 먹고 사는 족속이다. 그들은 대다수이지만 가장 낮은 계급에 속한다. 뭉쳐야 힘을 얻을 수 있다.  

오늘 7,000원짜리 밥을 먹으면서 한 끼 끼니도 되지 않는 최저임금 6030원을 생각하니 입맛이 떨어졌다. 대기업 곳간은 차고 넘치는데, 동전 몇 닢 올리면 경제가 망한다고 하는 그들의 공갈을 들을 때마다 어처구니가 없다.  < 밥풀 > < 밥풀때기 > 는 모두 밥알 이라는 동일한 뜻을 지시하지만또 ​그와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 - 때기 는 비하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이기 때문이다. 배때기, 귀때기, 볼때기, 이불때기처럼 말이다. 밥상머리에서 부모들은 < 밥풀 > 흘리지 말라고 가르치지만 < 밥풀때기 > 흘리지 말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밥풀때기는 이미 땅바닥에 떨어져 더러워진 경우일 가능성이 높다. 밥풀은  생명의 근본이지만 밥풀때기는 쓸모없는 것이다. 밥풀(밥알)이 밥풀때기가 되지 않고 밥이 되기 위해서는 내 옆에 있는 밥풀과 연대해야 한다.

연대하기 위해서는 손을 붙잡아야 한다. 이 또한 노동을 나누는 행위가 아닐까 ? 따순 밥 한 그릇,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시대인 것 같다. 진보인 척하는 진보는 팔 할이 " 입 진보(입만 살아서 나불거린다는 의미) " 다. 입으로는 양성평등을 외치지만 실천은 전무하다.  점잔 빼고 쓴 글이라 오글거리는 감은 있다내 식대로 말하자면 시바 !   밥알, 목구멍에 걸리것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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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07-10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글입니다. 그간의 다독이 충분히 빛을 발하시는것 같은데요?^^ 사랑은 `노동을 나누는 행위`다. 나도 힘드니 너도 힘들겠구나.. 밥풀이 밥풀때기가 되지 않도록 연대하는 일.. 꼭 기억할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4:51   좋아요 0 | URL
한국인이 밥풀처럼 딱 달라붙었다면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터인데..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뭐, 지랄이 풍년이죠.

stella.K 2015-07-10 15: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마지막 말 진짜... 반전이라고 할 수도 없고.ㅋㅋㅋ
곰발님 이런 글 보면 참 교주 같습니다.ㅋㅋ

요즘 울엄마가 좀 몸이 안 좋으신데 그러고나니까 꼭 양성평등주의자가 된 것 같습니다.
평소 양반노릇만 하다 걸레 빨아 집안 청소하고, 저녁 먹으려 음식하면 나와서 같이 뭐 하나라도 거들고.
음식물 쓰레기도 척척 갔다 버리고.
속으로 혼자 살아도 제 앞가림은 하고 살지는 않겠구나 싶다가도 이게 식구가 있으니까
이렇게 하지 지혼자 살면 이렇게 살까 싶기도 하더군요.
여자나 남자나 혼자 살게 될 것을 대비해서 미리 길들여 놓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4:50   좋아요 0 | URL
쓰고 보니 말투가 꼰대 같잖아요. 흥건한 욕지거리 한 번 때려야 시원한 맛도 있고요..ㅎㅎㅎ
그렇습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준비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인간은 혼자가 되니깐 말입니다.

stella.K 2015-07-10 15:3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러니까 내 말은 동생 얘기었는데
제가 개떡 같이 말해도 곰발님은 찰떡 같이 알아 들으시네요.
저의 글은 꼭 애프터 서비스가 필요하죠.ㅋㅠ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5:27   좋아요 0 | URL
남동생 얘기였군요. 후후....
제 별명이 찰떡입니다...

마립간 2015-07-10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래서 이번 제가 포함된 양성 평등 논란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제 안해라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4:49   좋아요 0 | URL
실천에 옮기시는군요. 부부끼리 양성평등 관련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5-07-1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유부남의 말, `결혼 전엔... ˝좋았지˝` 라는 말이 인터넷에 떠돌았는데요 이걸 요즘 남편이 자주 써먹어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부려만 먹어서 ㅋㅋ 결혼이야말로 노동을 나누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게으르면 결혼도 하지 말아야 할 듯해요 ㅋㄷ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4:47   좋아요 0 | URL
결혼은 사랑을 나누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게 아니라 노동을 나누는 것을 전제로 결혼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나누는 것을 전제로 결혼하게 되면 밤낮없이 섹스만 하다 결국 지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samadhi(眞我) 2015-07-10 14:4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사람들이 결혼생활에 많이들 실패하는게 아닐까 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4:53   좋아요 0 | URL
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육아를 모두 여성이 전담하다 보면 나중에는 폴발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옛날에 비디오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어느 회사원은 날마다 영화 한두 편씩 보고 가길래 물었더니 집에 아이가 셋이랍니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시끄러워서 아예 일 일찍 끝나면 이렇게 영화 보고 늦게 들어간다고.... 그 순간, 그 사람 아내는 참 외롭겠구나... 그 생각이 들더군요.

samadhi(眞我) 2015-07-10 14:57   좋아요 0 | URL
아주 보수적인 제 선배같은 사람이군요. 농부-전통적으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의 아들이며 보수의 정점(?)을 달리는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까지 하다 귀국한 그 선배가 딱 그래요. 제가 볼 때마다 갈구지만 자기가 심하게 데어보지 않으면 바뀌지 않겠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15:28   좋아요 0 | URL
농부의 아들에 일본 유학이라... 여기에 직업이 공무원이면 딱이겠군요.... 덧대자면 대구 출신이면 더할 나위없게씁니다.

samadhi(眞我) 2015-07-10 15:31   좋아요 0 | URL
직업은 그냥 회사원이고 출장이 잦아 자유로운 편이죠. 그나마 다행인 건 제가 가끔 만나준다는 거죠. ㅋㅋ 제가 정기적으로 갈궈주고 양서(?)를 권해주면 신나게 읽고 저와 토론하고 싶어해요. 출신지는 남도구요. 고담시는 아닙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1 08:15   좋아요 0 | URL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왜 대구를 고담이라고 부른답니까 ?

samadhi(眞我) 2015-07-11 08:22   좋아요 0 | URL
베트맨에 나오는 악의 도시이름이 고담 이거든요 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1 09:39   좋아요 0 | URL
네네.. 그건 아는데 왜 고담이 대구가 된 거냔 말이죠.

samadhi(眞我) 2015-07-11 09:44   좋아요 0 | URL
선거 때마다 1번만 찍는 우리가 남이가 새똥밭이잖아요.

수다맨 2015-07-10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소진이 어느 책에서 정처 없고 박해 받는 부랑민들을 일러서 `밥풀떼기`라고 했던 게 생각나네요.
조금 유식한 사람들-그러니까 진은영 같은 사람들ㅡ은`서발턴(하위주체)`이나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생명)`와 같은 표현을 즐겨 쓰는 듯한데, 저로서는 밥풀떼기라는 표현이 훨씬 더 실감과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21:57   좋아요 0 | URL
최저임금`보다는 밥풀-머니 어떻습니까 ? 밥full로 사먹을 수 있는 임금 말입니다. 한 끼 점심값이 7000원인데 아니 개새끼들 6000원 으로 책정하는 게 맞는 소리입니까 ? 복지가 전무한 상태에서의 밥풀머니는 결국 복지의 최전선인데.... 오이시디국 가운데 최저임금은 한국이 가장 낮죠. 거의 1/2수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22:02   좋아요 0 | URL
한심한 거죠. 서발턴이라고 쓰면서 생색내려는 속물근성. 홍대 두리, 쌍용 자동차 사태를 근심하면서 정작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먹물 용어`로 도배를 해 버리는......... 가난한 자를 찍은 사진집에 몇 십만 원에 파는 것과 비슷한..... 아마, 진은영 씨도 창비 편집위원인가 하죠 ? 아닌가 ? 아니면.... 문지인가 아마 그럴 겁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동에 아주 처음에는 비공개 맞짱 토론 기세등등 외치다가 3자의 토론회에 참석하라고 하니 정작 문동과 창비 편집위원들은 통째로 거부를 하는 시츄에이션을 보이시더군요....

cyrus 2015-07-1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댓글이지만, ‘밥풀때기’하니까 김정식이 생각났어요. 곰발님의 나이라면 쇼 비디오 자키의 ‘도시의 천사들’ 코너를 잘 아실 겁니다. 밥풀때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21:58   좋아요 0 | URL
김정식 살아는 있는 겁니까 ? 한참 생각하다가.. 아, 김정식 하게 되네요... 어디서 목사 되었다는 소리도 얼핏 들은 것 같기는 합니다.

yamoo 2015-07-1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봤습니다! 곰발님은 이사하셔도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군요!
7천원짜리 밥은 혼자서 먹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혼자서 먹는 밥은 거의 3-4천원에서 해결하거든요~
그럴때마다 목구멍에 밥넘어가는 느낌을 새록새록 되새깁니다~ 이 느낌을 되개기기위해 난 돈을 번다구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2 07:46   좋아요 0 | URL
패션니스트 야무 님, 5000원짜리 밥은 봤어도 3,4000워짜리 밥은 거의 못봤는데.... 하긴, 4000원짜리 밥이나 7000원짜리 밥이나 다 비슷하더라고요... 차이점을 별로.. 아 맞다. 시장 안에 백반집 하나 있는데 이곳 밥이 3000원입니다. 맛있어요..

yamoo 2015-07-13 11:50   좋아요 0 | URL
종각역 유명한 분식점 찌개류가 3천원 균일가 입니다. 맛도 괜찮고 좋습니다. 종로에서 가장 싼 집이라 점심시간에 북적입니다..ㅋ 그리고 편의점 도시락은 거의가 2500-4000원 사이입니다~ㅎ
 

 

 

 

 


감자 상자 도난 사건의 전말



                                                  지난번 글에 감자 상자를 도난당한 일을 간략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니가 도난당한 감자 상자 가격은 16,000원이다. 토요일 주말, 어머니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전날 저녁 교회에 두고 온 감자 상자'를 차에 실어 문 앞에 두고는 " 들것 " 을 가지러 잠시 집 안으로 들어오셨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 중이라 철문 문턱을 넘긴다는 게 힘에 부쳤기 때문이다. 때마침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내가 밖으로 나가보니 감자 상자'는 감쪽 같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 짧은 시간에 도난당한 것이다.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시간은 흘렀고, 문득 그 길목을 지나쳤던 한 노인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서둘러 뛰어가니 그 노인은 아슬아슬하게 빌라 안으로 들어가 사라진 상태였다. 내가 살고 있는 연립 주택보다는 고급 빌라 단지'였다. 8가구가 한 동으로 묶여 총 2동으로 나뉘었는데, 한 동에 주차 공간은 16대'였다. 그러니까 이 빌라에 사는 거주자는 한 가구 당 차를 두 대 주차할 수 있는 주차권을 가진 족속이었다. 한 가구 당 차 두 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거 환경이라는 사실은 이 빌라 거주자가 중산층 이상'을 겨냥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 달에 세 번, 외주 청소업체가 건물 청소를 해주는 곳. 바로 이 지점에서 내 계급 의식이 발동했다. 상자를 도난당했던 장소로 되돌아와 주변 지형을 살피던 중 감시용 cctv를 발견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 신고한 다음 날, 바로 경찰이 현장 답습을 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당황스러웠다. 16,000원짜리 감자 상자 도난 사건에 대하여 경찰이 현장을 찾아 조사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며칠 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범인이 돈 20,000원을 놓고 갔다는 소식이었다. 파출소에 도착하니 감자 도둑은 없었다. 경찰은 조근조근 말했다. 범인을 찾았다, 노인이더라, 하지만 아들과 어렵게 사는 가난한 이더라, 안 된다, cctv를 확인시켜 줄 수는 없다, 좋은 게 좋은 거다, 불쌍한 노인이다, 강제는 아니다.......  나는 분실 대금 20,000원을 받는 선에서 사건을 종료하자는 경찰의 요구를 단칼에 거부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얼굴은 봐야겠습니다 ! 경찰 입장에서는 한 동네에서 두 사람이 만나는 사실을 원치 않을 것이다. 사소한 일 때문에

나중에 칼부림 사건이 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그 사람을 만나야 했다. 잔인하게 말하자면 쪽을 주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그 노인이 사는 곳이 그 빌라 주민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 경찰 조사에서 그 노인이 그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경찰이 선의의 거짓말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잠시 후, 노인이 도착했다. 내가 예상했던 그 노인이 맞았다. 그 골목을 지나다니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노인이었다. 말이 노인이지 성성한 중년 여성이라는 게 맞는 표현이었다. 개와 산책을 하다 보면 그 길을 지나가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투덜대던 노인이었다. 개똥이 거리를 더럽게 만든다나 ? 혼잣말이지만 누가 봐도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그 노인이 내 앞에 있는 것이다. 예상 가능한 변명이 이어졌다. 됐고요 ! 앞으로는 거리에 버려진 것이라 해도 함부로 손을 대지는 마십시오. 요즘은 cctv가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 노인은 상기된 얼굴로 내게 20,000원을 건냈다. 내가 4,000원을 거슬러주려 하자 노인이 자상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나는 허공을 보며 혼잣말을 했다. " 지랄도 풍년이네 ! " 노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쩨쩨하게 사내새끼가 16,000원 때문에 그 난리를 피우냐고 말이다. 통 크게 놀라고, 대폿집에서 젖가락 두들기지 말고, 배,배배배배벤츠 타고 루, 루루루루룸살롱에서 시바스 리갈 마시며 젖가슴 두들겨야 남자라고. 미안한 소리지만, 양주 마시며 술집여자 젖가슴 만질 생각 없다.

사람들은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고 말하지만, 나는 사소한 것에, 쩨쩨한 것에 자주 분노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굳이 내가 분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100억을 훔치지 위해서 살인을 한 살인범에게는 관심 없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쩨쩨한 규모다. 시장 한켠에서 24시간 영업하는 순댓국 가게 주인이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손님이었다. 그는 밥을 먹다가 태연히 가게 주인에게 다가가 목을 졸라 죽였다. 그가 그 가게에서 훔친 돈은 6만 원이 채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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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9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가뭄이 심해서 감자 값이 비싸다고 하더군요. 요즘 나라 경제가 팍팍해서 그런지 농사일해서 얻은 농산물까지 몰래 훔치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21:41   좋아요 0 | URL
팔도가 흉년인데 여의도만 지랄이 풍년이니.... ㅎㅎㅎㅎ.

samadhi(眞我) 2015-07-09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째째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기가 어렵지요. 저랑 비슷하네요. 사소한 일에 목숨거는 거. 대범하게 그냥 넘어가주지 못하는 쪼잔함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쪽팔려하고는 합니다. ˝노인이 자상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오늘 이야기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이오.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21:43   좋아요 0 | URL
가난한 집 할머니라면 넘어갔죠. 부짓집 할머니가 진상을 부리니 짜증이 난 겁니다. 어디서 건방지게 선심쓰듯 거스름돈 안 받겠다고... 그러면 제가 아이고 고맙습니다, 눈물 나네요.. 뭐 이럴 줄 알았나 보죠 ? ㅎㅎㅎㅎ .

samadhi(眞我) 2015-07-09 21:46   좋아요 0 | URL
재벌드라마가 폐해가 많지만, 애초에 존재자체가 거북하지만 그런 드라마가 곰발님이 얘기하신 상황만큼은 기차게 잘 표현하는 듯해요. 귀티가 아닌 돈티 팍팍 내며 없는 사람 깔보는 짓거리.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21:59   좋아요 0 | URL
돈티 팍팍 내려면 200만 원 주던가.... 어디서 도둑질해서 경찰서 들어왔으면 쪽팔린 줄 알아야지, 2만 원 주고 선심을...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지랄이 풍년이네, 라고 말했더니 얼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는....

samadhi(眞我) 2015-07-09 22:00   좋아요 0 | URL
근데 이거 실화예요? 곰발님 얘기는 헷갈려서 ㅋㅋ 그런 것이 마음에 쏙 들지만요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10 05:42   좋아요 0 | URL
100% 레알 실화입니다.
 

 

 

 

 

 

 

 

 

    

현정화는 현정화다 : 무오류의 오류    

 

 

    

                                                                                         신문 기사를 읽고 나서 무릎 탁, 치고 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우, 우우 하게 된다. 특히 조중동 같은 경우는 사주에 대한 이익을 대변하는 입장일 뿐이어서 억지에 가까운 글이 많다. 기승전우리사주님이라고나 할까 ? 박근혜와 유승민 사이에 벌어진 전쟁 을 보면 여러 영화들이 떠오른다. 제목을 붙이자면 < 다구리 연기 대작전 > 이 어울릴 것 같다. 아니면 < 도레미파솔라 시파, 피가 끓는다 > 정도 ? 올해 한반도는 기록적인 가뭄으로 흉년을 걱정하는데 여의도'는 지랄이 풍년이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울다가 웃으면 똥구멍에 털이 날 것이요, 참고 참고 또 참으면 참치가 될 것이니 말이다. 내가 굳이 이번 전쟁에서 박근혜의 잘잘못을 지적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조중동마저 등을 돌려 박근혜에게 삿대질을 했으니깐 말이다.

 

이 의리 없는 혈투를 보고 있자니 두 편의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 넘버 3 >> 에서 조필(송강호)는 정신 훈화 도중 임춘애입니다, 행님 ! ” 이라는 부하의 지적에 발끈한다. 부하가 틀린 부분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이때 송강호는 오류 지적 을 권위에 대한 쿠데타로 여긴다. 왜냐하면 송강호는 스스로를 무오류 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오류인 존재가 설파하는 모든 입말은 무오류다. 그렇기에 내가 현정화라고 하면 현정화 가 되어야 한다. 무오류의 세계에서는 < 잘못을 지적하는 앙칼진 말풍선 > 은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배, 배배배배배배신, 배반형이다. , < 임춘애입니다, 행님 > 이라는 사실 명시는 사실이냐 오류이냐의 차원을 떠나서 무조건 배신이 된다. << 배신 >> 이라는 격정적 서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시(明示) 가 아니라 등을 돌린 행위에 있다.

 

박근혜에게 유승민의 사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유승민이 반발을 하든 사과를 하든 결과는 동일하다. 영화 << 달콤한 인생 >>에서 김영철이 이병헌에게 말해봐, 왜 그랬어 ? ” 라고 묻지만, 이병헌은 그 어떤 질문을 해도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yes라고 말해도 죽고, no라고 말해도 죽고, i'm sorry 라고 말해도 죽는다보스는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는 자다. 그러다 보니, 어떤 해법을 내놓아도 오답이 된다. 박근혜가 유승민에게 사약을 내리는 논리도 이와 같다. 유승민은 사퇴의 변'에서 여전히 " 현정화가 아니라 임춘애입니다 " 라고 말하지만, 박근혜가 집권하는 기간 동안은 임춘애가 아니라 현정화다. 다음은 한겨레 신문 김의겸 기자가 쓴 기사.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청와대판 ‘달콤한 인생’…“유승민,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김의겸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의 전쟁을 지켜보자니 어디서 한번 본 듯한데라는 느낌이 자꾸만 끼어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10년 전 영화 <달콤한 인생>이다. 특히 영화의 명대사로 꼽히는 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가 기시감을 부채질한 거다. 대개의 누아르 영화는 이권이나 영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암투와 배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흐르는 감정을 다룬다. 조직의 두목과 2인자 사이의 사소한 감정 대립이 극단으로 치닫는 과정을 카메라는 담았다.

 

물론 박근혜 대통령은 모욕이 아니라 배신을 말했다. 그리고 모두들 배신이라는 틀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러니 당연히 유승민은 가해자가 되고, 박근혜는 피해자가 된다. 하지만 모욕이라면 시나리오가 달라진다. 배신감은 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린다는 가해자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개념이다. 하지만 모욕감은 원인 제공자의 의도가 중요하지 않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심리상태가 결정적이다. 특히 자존감이 훼손된 상태에서는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비수처럼 가슴을 후벼 파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10년 만에 <달콤한 인생>을 다시 찾아봤다. 유튜브에 들어가 보니 공짜다. 얼마나 달콤한 세상인가.

    

 

#1 상호신뢰 - 두목은 사심 없는 부하가 마음에 든다

 

범죄 조직의 두목(김영철·사진)은 부하(이병헌·사진)를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냉철하고 명민한데다 과묵해 일처리에 빈틈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날 두목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하에게 부탁을 하나 한다. 젊은 애인(신민아·사진)이 하나 있는데 그녀에게 딴 남자가 생긴 것 같다. 감시를 해보다가 사실이면 처리하라는 거다. 그리고 두목은 부하의 등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한다. “너 애인 있어? 사랑해 본 적 있어? 없어. 넌 없어. 그래서 이런 일을 너한테 시키는 거야, 그래서 널 좋아하는 거야 임마

 

당 대표 시절 박근혜는 유승민을 믿었다. 비서실장으로 가까이 두고 썼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도 그때는 유승민의 지휘를 받았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캠프의 핵심적인 자리를 맡겼으니 유승민은 감히 누가 넘볼 수 없는 최측근이었다. 성격이 깔끔하고 일솜씨가 완벽하니 신뢰했을 것이다. 특히 사심이 없어 보이는 유승민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다들 자기 정치를 하느라고 보스의 이익을 소홀히 하는 게 정치판의 생리인데, 유승민은 예외로 보였을 법하다. 사랑을 모르는 부하이니 자기 애인을 믿고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한 두목처럼, 박근혜도 사심없는 유승민한테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게다.

    

 

#2 억울한 부하 -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부하는 두목의 여자를 감시하다 낯선 설레임에 빠져든다. 여자가 춤을 추고 첼로를 켜는 모습을 훔쳐보며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그래서 여자가 다른 젊은 남자를 만나는 장면을 잡아내고도 두 사람을 놓아준다. 하지만 부하는 자신을 휘몰아친 감정의 실체를 정확히 모른다. 그래서 두목이 왜 그랬냐고 추궁하는데도 제대로 답을 못한다. 겨우 한 대답이란 게 두 사람이 만나지 않겠다고 한 약속만 지켜준다면 모든 게 다 잘 될거라고. 진심이었을 거다. 약속대로만 된다면 두목의 의심은 풀리고 여자는 안전해진다. 그리고 자신도 다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부하는 오히려 두목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절규한다. “저 진짜 죽일려고 그랬습니까?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 무슨 말이든지 좀 해봐.”유승민도 마음이 흔들린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가리키는 길이 맞는지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 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되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높이 평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배신하겠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시대의 요청에 따라 보수도 혁신해야 하고 그 길만이 새누리당이 정권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국회법 개정도 공무원연금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개혁안을 얻어내기 위한 협상카드였을 뿐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새누리당도 대통령도 그리고 자신도 좋아질 거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유승민도 대통령의 노여움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사과를 하면서도 이렇게 말한다. “지난 4개월 남짓한 기간에 두 차례 총리 인준 동의안 처리, 경제·민생 관련 법안 처리, 김영란법 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영화 속 이병헌이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해온 나를이라고 외치는 대목과 겹쳐보인다.

 

    

 

#3 상처받은 두목 - 노화는 가속화되고, 인내심은 바닥나고

 

두목은 모욕감 때문에 부하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한다. 10년 전 영화를 볼 때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정서였다. 자기의 여자를 건드린 것도 아니고 그저 봄바람에 잠시 마음이 흔들렸을 뿐인데 가장 아끼던 부하를 그리 쉽게 제거하려 하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두목의 나이쯤 되어 영화를 다시 보니 조금은 달리 보인다. 특히 두목이 이별을 통보하는 애인을 향해 나이가 들면 말이야. 점점 인내심이 부족해져라고 말하는 대목은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문제는 젊음 그 자체다. 두목은 젊은 여자를 사랑하나 여자를 잡아두기에는 나이가 들었다. 그저 집과 선물로 애정을 물물 교환할 뿐이다. 애인은 이미 젊은 남자를 몰래 만나고 있고, 믿었던 부하마저 연정을 품는다. 나이 든 이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젊은이의 특권이다. 젊고 잘생긴 데다 유능하기까지 한 부하는 자신의 노화와 추레함을 부각시킨다. 존재 자체로 상처를 준다. 게다가 자신은 배신한 여인을 처치하라고 했는데, 부하는 여자에게 관용을 베푼다. 자신의 옹졸함만 더욱 두드러질 뿐이다. 부하가 배신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목은 이미 모욕감을 느낄 준비가 충분히 돼 있었던 것이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때를 잘못 골랐다.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이 선거의 여왕이다. 국민의 지지와 애정은 대통령의 존립 근거이고 모든 영광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메르스 때문에 지지도는 바닥을 기고 있다. 잠시지만 30%의 방어선마저 무너졌다. 다들 자신을 향해 무능한 대통령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자존감이 무너졌을 때는 모든 게 원망스러운 법이다. 지금이 그때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최악의 상태에서 그것도 대통령의 가장 아픈 부분을 건드렸다. ‘세월호. 콘크리트라던 자신의 지지율에 쫙 금을 내고 냉혹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씌운 게 세월호다. 그런데 유승민이 세월호의 악령을 되살리는 국회법 개정을 무신경하게 합의해준 거다. 국회법 개정이 위헌이냐 합헌이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그 무심함이다.

 

이번 한번이 아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이하로 내려간 적이 또 한번 있었다. 1~2월 연말정산 파동 때다. 그런데 유승민은 바로 그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통해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지적한다. 가장 민감한 세금 문제를 가장 어려울 때 정면으로 치받은 꼴이다. 말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다 모멸감을 주는 것들뿐이다. 그 모욕감을 견뎌내기에는 인내심이 부족해지고 있다. 대통령 임기는 벌써 반환점을 돌고 있다. 정치적 노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4 태도의 문제 - 쉽게 끝낼 일을 키운 건 어떤 뻣뻣함

 

두목이 다짜고짜 죽이려고 했던 건 아니다. 기회를 줬다. 그것도 여러번. 영화에서는 두목이 꽤 길게 독백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큰 조직의 보스에게 부하 이병헌을 제거해달라고 부탁하면서 하는 말이다.

 

꽤 똑똑한 친구가 제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 친구에게 심부름을 하나 시켰는데 사소하게 생각했던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실수도 아니고 가볍게 야단치고 끝날 일이었죠. 그런데 그 친구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아닐 수도 있어요. 내 착오일 수도 있는 거죠. 근데 조직이란 게 뭡니까? 가족이라는 게 뭡니까? 오야가 누군가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실수한 적이 없어도 실수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거죠. 간단하게 끝날 일인데 그 친구 손목 하나가 날라갔어요. 잘 나가던 한 친구의 인생이 하루 아침에 끝장이 났습니다. 이번 일은 손가락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던 유승민 원내대표가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유승민 의원이 박근혜 비대위원장 체제로 치러진 201219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으로의 당명 개정을 강하게 반대했고, 복지와 분배 강화를 요구하는 개혁 성향 목소리를 선명하게 내면서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을 것이란 추측이 나오는 정도다. 아마 첫 균열은 그보다 훨씬 일찍,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뒤다. 바닥에서 잡초처럼 자라며 눈칫밥을 먹어본 사람이면 보스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차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냉큼 달려가 머리를 조아리며 마음을 풀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대구의 명문 가문에서 자라 최고의 학부를 나온 유승민은 그런 유전자가 없다. 아마도 적잖은 옛 친박 동료들이 가서 수그리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뻣뻣함은 대통령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했고, 간단하게 끝낼 일을 키우고야 말았다.

    

 

    

#5 냉혹한 경쟁 - 보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충성 경쟁이 시작된다

 

두목의 제거 명령이 떨어지자 이병헌과 경쟁 관계였던 문 실장(김뢰하)은 신이 났다. 이병헌을 묶어 놓고 이렇게 말한다. “이 바닥 원래 이런 거 아냐? 누구 원망하지 마라. 우습다. 정말 세상이란 게. 가만 보면 인간이란 게 아무 것도 아냐.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잖아.” 아무런 연민도 망설임도 없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 자신이 이병헌에게 당했던 수모를 한꺼번에 되갚아 주기라도 하려는 듯 최대한 잔인하게 다룬다. 하루 전까지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던 사이인데, 해머로 손목을 내리치고, 구덩이를 파고 묻는다.

 

 

새누리당 내 경쟁자들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의 의중이 분명해지자 최고위원들을 비롯해 이른바 친박 의원들은 벌떼처럼 달려든다. 국회법을 개정할 때만 해도 반대하는 의원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보스의 지시가 떨어지자 충성 경쟁을 벌인다. 어느 재선 의원은 청와대 생각을 따르는 사람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유 원내대표를 사퇴시키겠다는 생각이라며 대통령 요구는 쉽게 말해 유 원내대표가 배신자나 다름없으니 원내대표에서 물러나는 것뿐 아니고 정치를 아예 그만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달콤한 인생>에도 영향을 끼쳤을 게 분명한 영화 <대부>에 나오는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정치와 범죄의 본질은 같아. 다만 정치는 방아쇠를 언제 당길지 아는 것이지.” 마피아와 결탁한 어느 정치인이 정치가 범죄조직보다는 한수 위임을 자랑하며 한 말이다.

    

 

    

#6 씁쓸한 결말 - 상생의 정치, 너무 달콤해서 슬픈 꿈

 

영화 속 이병헌은 옛 소련의 KGB가 쓰던 권총을 구해 복수에 나선다. 그리고 끝내 두목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하지만 유승민에게는 그런 무기가 없다. 처음 얼마 동안은 몇몇 동료 의원들이 보호해주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역구도 대통령의 아성인 대구이니 대통령이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어려울 것이다. 영화와 현실의 차이다. 영화는 이병헌의 목소리로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으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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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5-07-09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사파는 이래서 탄생!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13:11   좋아요 0 | URL
박씨도 자신의 인기가 불사`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권력인 것을...

붉은돼지 2015-07-09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봤습니다. <달콤한 인생>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아직 못 보고 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13:12   좋아요 0 | URL
달콤한 인생 영화 좋습니다. 뽀다구 제대로 나온 영화입니다.

stella.K 2015-07-09 1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나 청와대나 여자가 문제로군요. ㅋ
보스가 되지 말고 리더가 되라고 하는데 청와대는 어느 새 조폭 소굴이 되었군요.
어머니는 참 덕이 많아 국민의 추앙을 받았었는데.
누님이 대통령이 된 것도 어머니의 덕과 후광 때문이란 말도 있구요.
왜 우리의 누님은 어머니를 닮지 않고...ㅠ

여성 리더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아직 그것을 기대하면 안 되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남자들이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녹록치 않은 건지 그걸 모르겠네요.
그나저나 저 분 글 잘 쓰시네요.
저도 그 영화 봤는데 워낙 피의 제전이었던 기억이나 잘 만들긴 했어도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ㅋ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15:04   좋아요 0 | URL
유승민 사태를 다룬 글 중 가장 좋았습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고 말이죠.

영화도 참 좋습니다. 이병헌은 목소리가 참 좋아요.
제가 목소리 좋은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samadhi(眞我) 2015-07-09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느와르 하면 최고라 손꼽는 영화죠. 우리나라 느와르 장르에서 이것 만한 영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에릭이 나와 사족이 되고 말았는데요. 양파가 부른 ˝달콤한 인생˝도 감미롭고. 중간에 영화대사가 삽입된 ost를 다운 받아서 노래를 듣다가 이병헌에게 빙의(?)되어 남편과 함께 그 대사를 읊곤 했어요. 양파를 좋아하지 않지만 이 노래 만큼은 인정합니다.

노회찬과 김빙삼이 트윗에 이 상황(?)을 아주 적절히 표현했더군요. 푸른 기와 궁에 살고 있는 늙은 여왕은 저 혼자 딴 세상에 살고 있네요. 우리가 그런 사람(?)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꾸 믿기지가 않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21:46   좋아요 0 | URL
전에도 말했듯이 이 감독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 영하는 기가 막히게 좋다는 거죠.
정말 느와르 특유의 개폼이 잘 뽑아져 나왔어요. 흔치 않는 영화입니다.

언제까지 백성이 여왕 뒷치닷거리를 해야 하는지. 취닷거리? 치닷거리?!


치닥거리`였네요...
아니다, 뒤치닥꺼리엿네요..

samadhi(眞我) 2015-07-09 21:4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래서 이 영화 때문에 김지운 감독 다음 영화들을 기대했으나, 실망이 매우 컸지요. 뒤치다꺼리 입니다^^ 주제곡 정말 좋아요. 알고 계시겠지만 또 들어보시길.
 

 

 

 

 

 

 

 

 



사물에 대한 애티튜드, 두 번째 : 거울




 

 

 




그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을 그린 화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워낙에 유명한 그림이니 말이다(나는 화가의 이름 공개'를 잠시 미루겠다). 다른 화가가 그런 예수 그림과는 달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가 순한 농부의 얼굴이어서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든다.  제목은 << 황색 예수 >> 다.  저 얼굴에는 그 어떠한 분노도, 거대한 고뇌도, 숭고한 서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지쳤을 뿐이다. 편안히 잠든 얼굴이어서 좋다. 그런데 오래 보다 보면 문득 슬픔이 찾아온다. 그래서 성호를 긋고 내 죄를 고백하기에 이른다. " 주여,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나란 놈은 법 없이도 살 놈이어서 지은 죄가 마땅히 생각이 나지 않으니, 이 또한 나태와 자만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 죄 없음에 대한 죄'를 고백하나이다. "

요즘은 먹방이 대세이다 보니 유행따라 이 그림에 대한 감상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 소고기 무국 >> 같은 느낌이 난다. 이 그림을 배경으로 자화상을 그린 화가가 있다. 이 그림 속 화가'가 << 황색 예수 >> 를 그렸다.

 

 

 

 

 

이 그림 제목은 <<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1889) >> 이다.  그림 속 화가는,  폴 고갱이다. 그는 자신이 그린 그림 앞에서 자화상을 그렸다. 그러므로 << 황색 예수 >> 를 그린 화가 또한 고갱이다. 화가 스스로도 이 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두 그림 속 예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좌우가 바뀌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고개가 기울어진 방향이 서로 다른 것이다. 고갱은 왜 그림을 좌우가 바뀐 상태로 그렸을까 ? 답은 화가가 거울에 비친 상을 보고 그렸기 때문이다. 화가들이 자기 얼굴을 그릴 때는 대부분 거울을 보고 그리게 되니 전이된 상(象)이 그대로 화폭에 담긴 것이다. 시인 이상이 지적했듯이 " 거울 속의 나 " 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 " 다.

악수란 오른손과 오른손 혹은 왼손과 왼손이 맺는 동맹이니 < 나 > 와 < 거울 속의 나 > 는 서로 동맹을 맺을 수도, 그렇다고 타협을 할 수도 없는 존재'다. 이처럼 오른손잡이는 거울 속에서 왼손잡이'가 된다는 점에서 거울은 " 왜곡과 전이(轉移) " 가 발생하는 장소'다. <<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 >> 에서 보이는 고갱의 두툼한 귀는 오른쪽 귀가 아니라 왼쪽 귀'다. 천진난만한 어조로 말하자면 거울은 동화 속에 나오는 청개구리'다. 거울 하면 생각나는 작품이 하나 있다. << 백설공주 >> 다.  일단, 왜곡과 전이의 장소인 거울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설정은 모순이다. 오히려 거울은 거짓 대꾸를 하는 사물'에 가깝다.  여왕이 < 말하는 거울 > 에게 " 거울아, 거울아 !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 " 라고 물었을 때

말하는 거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백설공주'라고 대답한 것은 반대로 대답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자면 거울이란 왜곡과 전이가 발생하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거짓말하는 거울의 지적은 어쩌면 여왕이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거울은 청개구리이니깐 말이다. 청개구리 같은 거울의 지랄같은 성질머리는 상(象)을 오락가락하게 만든다. 거울을 보는 주체가 동일인이라 해도 어느 때는 잘생긴 얼굴처럼 보이다가도 또 어느 때는 초라한 얼굴로 변하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거울은 심술궂게도 당신이 가장 닮기 싫어하는 인물을 보여주기도 한다. 카프카는 거울을 통해서 아버지와 닮은 자기 얼굴을 들여다본다. 이처럼 거울은 < 주체의 얼굴 > 을 < 타자의 얼굴 > 로 바꾸고는 혼자서 속으로 낄낄거린다.

시인 이상은 " 거울 속의 나 " 가 " 나와는 반대 " 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는 거울에 비친 상(象)과 자신을 동일시하기를 거부한다. 꽤 닮았다( " 거울속의나는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또꽤닮았소 " ) 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동일하다 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거울은 믿을 것이 못되는 요물이라는 사실을 시인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백설 공주 이야기로 돌아와서 " 거울이 말을 한다 " 는 설정 자체부터가 여왕의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여왕이 들은 것은 거울의 말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목소리'가 아니었을까 ?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과도한 불안이 환청으로 들린 것이다. 거울에 비친 상(象)은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 투영(投映)된 결과'다. 그러니까 거울은 사진기'가 아니라 엑스레이 촬영기'에 가깝다.

거울은 < 겉 > 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 속 > 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당신이 거울을 통해 보는 것은 거죽이 아니라 뼈와 내장들'이다. 화가가 그린 자화상은 항상 왜곡과 전이'가 투영된 상이다. 화가는 거죽을 그리지 않고 뼈와 내장을 그린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두 장의 고흐 자화상이 있다. 이 두 자화상을 그린 화가는 동일인이지만 그림 속 화가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화가는 바람을 그리기 위해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그린다. 고흐는 마음을 그리기 위해 마음에 흔들리는 얼굴(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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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8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의 화가 뒤쪽에 얼굴 형상의 도자기 보이시죠? 고갱의 얼굴을 형상화한 도자기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고갱은 그림뿐만 아니라 도자기도 몇 점 남겼어요. 자화상에 나오는 도자기처럼 얼굴 형상의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자화상은 재미있는 구조로 볼 수 있어요. 화가 본인의 얼굴, 그 뒤쪽에는 화가의 얼굴을 본뜬 제2의 얼굴. 저는 얼굴 형상의 도자기가 고갱의 페르소나라고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7-09 02:58   좋아요 0 | URL
그러네요. 도자기 그림이 고갱 얼굴이군요. 음... 그림 읽기 재미있네요.
사이러스 님 때문에 연달에 2개 글을 쓰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