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계절
마이크 리 감독, 레슬리 맨빌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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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합니다







행복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호감을 산다

- 브레히트








   스 티븐 킹의 중편소설 << 리타 헤이워드와 쇼생크 탈출 >> 에는 내가 무척 좋아하는 문장이 나온다. 어쩌면 이 문장 때문에 이 소설 전체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 앤디는 지질학을 좋아했다. 그의 세심한 성격과 잘 맞았나 보다. 빙하기와 수백만 년에 걸친 산맥의 생성. 지질학은 시간과 압력에 대한 연구이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인간 관계를 다루는 심리학도 마찬가지다.  심리학은 개인이 살아온 시간과 그 사람이 그 시대를 관통하면서 느꼈던 사회적 압력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렇기에 심리학자가 환자의 짓눌린 마음결을 들여다보는 일은 지질학자가 지층의 단면을 관찰하는 일과 같다.  공교롭게도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에 등장하는 중산층 부부 톰과 제리는 직업이 지질학자(: 톰)와 심리상담사(: 제리)다.  노년의 부부는 우리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삶을 산다.  주중에는 직장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압력의 영향을 연구하고 주말에는 가족 농장에서 텃밭을 가꾼다. 


부부는 직장 생활도 훌륭할 뿐만 아니라 가정생활도 환상적일 정도로 모범적이다. 또한 교우 관계도 원만하여 계절이 바뀔 때마다 친구와 이웃을 초대하여 키친 싱크 토크1)를 즐긴다. 선량한 부부는 그들에게 진심이 담긴 우정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톰과 제리 부부가 행복을 대표한다면(프로타고니스트) 불행을 담당하는 쪽은 매리'다(안타고니스트). 주정뱅이와 말실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여서 매리는 늘 주변인'에게 민폐를 끼치는 캐릭터'다.  철딱서니 없다고나 할까 ?  그녀는 술에 취한 목소리로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강조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표와 기의가 어긋난 언어를 구별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감기에 걸리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보다 더욱 숨기기 어려운 것은 행복을 숨기는 일이다. 행복은 눈에 잘 띠는 형광색이다. 키친 싱크 리얼리즘 영화의 거장 마이크 리 감독은 영화 << 세상의 모든 계절 >> 을 통해 행복과 불행이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는 행복의 시점으로 불행을 관찰한다. 톰과 제리 부부는 불행한 사람들을 연민하며 그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연민에는 한계가 있다. 


매리가 톰과 제리 부부의 가족 구성원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자 부부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부는 매리를 냉정하게 거절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이웃과 동료를 초대했던 부부는 그해 겨울에 매리를 초대하지 않는다.  이 선량한 부부가 이웃에게 보내는 조건 없는 선의는 위악도 아니고 위선도 아니다.  그것은 타자라는 한계가 가지고 있는 운명적 배타성이다.  행복한 사람이 불행한 사람을 위로한답시고 내뱉는 말은 불행한 사람에게 위로보다는 상처를 주기 쉽다.  행복한 사람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왜냐하면 불행한 적이 없으니까.  


톰과 제리 부부의 완벽한 행복 때문에 자신의 불행이 더 커 보이는 매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불행이 클수록 톰과 제리 부부에게 매달리지만 그럴수록 불행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반면에 톰과 제리 부부는 이웃의 불행을 통해서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이 지점에서 누군가는 이 영화에서 민폐를 끼치는 사람은 매리가 아니라 어쩌면 톰과 제리 부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훌륭한 영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의 엔딩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모임에 초대받지 않은 매리는 초대받은 가족의 대화에 끼어들지 못한다. 


카메라는 가족 모임에서 소외된 매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식탁 주변의 즐거운 소음이 묵음으로 전환될 때 어떤 관객은 비로소 매리에게 동일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끝나면 마치 압핀에 고정된 메모지처럼 꼼짝달싹 못한 채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자신을 본다. 신랄하지만 씁쓸하고 쓸쓸한 장면이다. 국내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10개 구단 응원가 중 가장 유명한 응원가가 한화 이글스의 "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 라는 사실에 모두 다 동의할 것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한화는 경기에 지기 위해 탄생한 구단. 


그런 구단의 팬들이 날마다 지는 경기를 보며 행복할 리는 없다. 하지만 자신은 항상 행복하다고 말한다, 불행했던 매리가 자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불행은 행복에 대하여 관심이 많지만 행복은 불행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불행한 사람은 행복을 좇고 행복한 사람은 불행을 멀리하기보다는 오히려 곁에 두고 지켜본다. 너의 불행은 곧 나의 행복이니까 !  






​                              


1) Kitchen-sink Realism  :  이는 말 그대로 부엌의 싱크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리얼리즘 드라마를 말한다. 하층계급 가정 내의 문제점을 보여줌으로써, 영국사회 전체의 모순이 저절로 드러나도록 만든 사회성 짙은 드라마다. 가족 간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중심에 있다 보니, 중요한 장면들이 주로 부엌에서 진행됐고, 그래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생겼다. 영화의 대부분이 집 몇 채, 심하게는 집 한 채에 있는 몇 개 방과 부엌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작품들도 있다. 부엌. 우리에겐 여전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영국의 리얼리스트들은 생존의 절대조건으로 부엌을 상정했고, 부엌에 정치성을 부여했다. 토니 리처드슨, 카렐 라이츠, 린제이 앤더슨 같은 쟁쟁한 감독들은 1960년대 영국 영화계에서 키친-싱크 리얼리즘을 이끈 선구자들이다.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이 아니라 노동자, 빈민 같은 이 사회의 문제적 계급이 주인공으로 나와, 그들 특유의 투박한 악센트로, 마치 현실 그대로의 기록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덕분에 영국의 리얼리즘 미학은 확실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다만 트뤼포의 공세에 맞설 영화 담론의 대중적 영국 스타가 없었던 게 그런 편견을 심화시킨 측면이 있다. ( 한창호, 영화평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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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9-11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5:45   좋아요 0 | URL
막시무스 님, 감사합니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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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를 위한 변명












살다 보면 종종 " 비판적 지지 " 를 할 때가 있다. 말이 좋아 비판적 지지'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 내키지 않는 덕담 " 이 정확할 테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를 다룬 영화 ●●●●●● 도 그런 경우였다. 이 영화는 소액이지만 내가 시민으로서 영화 제작비를 후원했던 영화였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곳은 속초의 어느 술집이었다. 술동무는 강원도에서는 보기 드문 좌파여서 내가 강원도 좌파 아저씨라고 불렀던 이'다. 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이웃에게서 들었던 동네 이야기라면서 아버지가 운전하는 택시 안에서 눈을 감은 스물한 살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구수한 강원도 사투리가 곁들인 사연은 너무나 구슬퍼서 눈물이 찔끔 났다.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구나 !  우리는 삼성 이재용과 인두겁을 쓴 이명박에 대한 저주를 퍼부으며 막걸리를 부어라 마셔라 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했던 일은 강원도 좌파 아저씨와 통화를 하는 것이었다. 그의 권유로 나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소액을 후원하게 되었다. 문제는 영화의 제작 의도가 아니가 결과물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영화를 꼭 보아야 할 영화'라고 이웃들에게 소개하고는 했다. 살다 보면 내키지 않는 덕담이지만 비판적 지지'를 할 때가 있다. 조남주 작가의 << 82년생 김지영 >> 이란 소설도 그런 경우'였다. 내가 이 소설에 대하여 긍정적 평가를 내렸던 이유는 당대의 고민을 빠르게 포착하여 


그것을 상품으로 엮은 상품성 때문이었지 문학적 완성도는 아니었다. 문학이 은유의 세계라는 점에서 이 소설은 순수 문학보다는 직유에 가까운, 프로파간다와 르포르타주 장르에 맞닿아 있다고 보는 편이 맞다. 빙의라는 방식보다 더 억압된 자의 목소리를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직유는 없으니깐 말이다.  어느덧, << 82년생 김지영 >> 은 여자 셀럽들에게는 " 금서 " 가 되었다. 여성 연예인 서지혜부터 소녀시대 수영, 레드벨벳 아이린까지, 이 책을 읽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말벌보다 독한 뭇매를 맞았다. 역설적이지만 이 현상은 이 소설이 존재해야 할 가치를 강조할 뿐이다. 


김지영의 " 불편 " 을 김지영의 " 불평 " 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 불편이 자신에게는 편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공 시설이나 기계들은 대부분 오른손잡이가 사용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경우이다. 이것은 오른손잡이가 기어 및 기타 장치 작동 조작에 용이하도록 운전석을 왼쪽에 만든 것이다. 당연히 왼손잡이 입장에서 보면 오른손 편리 중심 시스템은 모두 다 불편한 것들이다. 이것이 바로 다수의 질서를 내재화한 경우이며 동시에 다수의 편리를 위해서 소수의 불편을 내재화한 경우이기도 하다. 


심지어 지하철 카드 단말기 위치도 오른손잡이를 위해 만들어졌으니 10%의 왼손잡이에게는 불편한 위치이다. 이 사실을 오른손잡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 남자와 여자의 경우도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오른손잡이인 남성은 왼손잡이인 여성의 불편을 이해하지 못한다. 누누이 하는 주장이지만 어떠한 사실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은 그 사실이 진실을 담보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진실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 글의 시작은 소설 < 김지영 > 이 아니라 영화 < 김지영 > 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소설 이야기로 빠졌다. 영화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흥미롭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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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라면 자다가도 학을 떼는 두 집단   : 










당신들의 화룡점정










다음은 다섯 가지 사례를 나열할 것이다. 이 사례를 글감으로 활용하여 글쓴이가 이 글에서 강조하고 싶은 결론을 댓글창을 통해 20자 내외로 작성하시오. 용의 몸통은 내가 그렸으니 눈깔은 당신이 그릴 차례다. 





사례 1  이 정도면 문안하죠 

한 취업포털과 아르바이트포털이 대학생과 직장인 등 성인 남녀 853명에게 맞춤법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성인 남녀 78.9%는 '맞춤법을 자주 틀리는 이성을 보면 호감도가 떨어진다'고 답했다. 이같은 응답은 남성(72.9%) 보다 여성(82.9%)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국어실력이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엔 대학생의 90.8%, 직장인의 82.2%가 '중요한 경쟁력'(86.0%)이라고 했다. 맞춤법이 헷갈릴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85.8%가 '포털 사이트 어학사전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검색을 통해 찾는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최악의 맞춤법 실수로 꼽힌 사례들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대학생 672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악의 맞춤법 실수는 '감기 빨리 낳으세요'(나으세요, 28.9%)였다. 이어 2위는 '어의 없어'(어이 없어, 12.7%), 3위는 '이 정도면 문안하죠(무난하죠, 8.5%)였다. 이 밖에도 '예기(얘기)',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 '구지(굳이)', '곱셈추위(꽃샘추위)' 등이 있었다.






사례2   똑똑한 전교 1등만 의사 될 자격 조건 ?!

▶지난 1일 대한의사협회 산하 의료정책연구소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온 게시물 중 일부.







사례 3   어느 전교 1등 의사의 국어 실력

2020년 2월, 안철수 대표는 현충원을 참배한 후 방명록에 " 코로나20 극복 " 이라고 썼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해가 바뀌니 코로나19를 코로나20으로 착각한 것이다. 정부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의 국제 명칭을 ‘코비드-19(COVID-19)’로 결정한 후 한글 명칭을 ‘코로나19’로 정했다. 19는 발생 연도인 2019년을 의미한다. 안 대표의 방명록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귀국 후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찾았던 지난달 20일에는 ‘대한민국’을 ‘대한민굴’로, ‘굳건히’를 ‘굳건이’로 잘못 적었다. 2012년 10월 18일 강원 원주시 밝음신협을 찾았을 때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꿈꿈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사례 4   의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의협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갔다. 지난 2018년 9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수술실 CCTV 설치 시범 운영 정책을 비판하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여 의료인을 압박하고, 수술하는 내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것이 환자 인권을 위한 것이라면, 오히려 민생의 최전선에 서서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드는 공공기관, 정부기관, 국회 등의 사무실에 CCTV 설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사례 5   도둑놈이 제일 싫어하는 것

지난 9일 오후 8시 20분께 경기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한 주택가에 주차된 차량 옆에서 서성이는 한 수상한 남성의 모습이 방범용 CCTV를 모니터링하던 시 통합관제센터 근무자 눈에 들어왔다. 이 직원은 잠시 뒤 이 남성이 차량에서 물건을 훔치는 것을 목격한 뒤 곧바로 경찰에 알렸고, 이 남성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잡힌 남성은 cctv 가 인권 침해라며 인권위에 이를 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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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9-05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랏돈을 들여 키운 엘리트들이 어떻게
나라를 망치고, 기득권 사수에 나서는지
2020년 여름 아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3번과 5번이 뼈를 때리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05 14:24   좋아요 3 | URL
의협 굉장히 이기적인 대표적 집단이죠. 한방 첩약 급여화 절대 반대도 한의학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습니다. 이 새끼들은 한의학이 무슨 거대한 사기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도 < 허준 > 드라마는 열라게 보고.... 저는 왜 한의사 단체들이 의협에 대해 쓴소리를 안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집단이 이기적인 게 < 문신 > 합법화도 법적으로 막았습니다. 이걸 의료 행위 범위 안에서만 합법으로 한 것이죠. 왜, 다 그것도 돈이니까. 어디 그것뿐입니까 ? 물리치료학도 의협의 반대로 병원 소속이 아닌 독립을 할 수가 없어요. 의협이 막강한 이익 집단으로 대표적인 로비 집단이어서 정치적으로 다 막습니다. 골때리는 집단이에요. 이 새끼들..

나와같다면 2020-09-06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감추려고 하는 자가 범인이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9-12 15:46   좋아요 0 | URL
공공의료 확대되면 국가가 의사를 북한으로 보낸다는 말을 전공의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더군요. 또라이들..
 











소확행에 대한 시대 유감











                                                                                        

시민으로서 그는 훌륭하다. 와와 ~     에세이스트로서도 그는 훌륭하다. 와와 ~     좋은 시민이다 보니 문장가인 그가 좋은 에세이를 쓰는 것은 당연. 와와 ~     하지만 나는 소설가로서 그를 응원할 수는 없다. 여기서 " 그 " 는 무라카미 하루키'다. 우우 ~      문학적 취향이 다르다 보니 하루키 소설은 나에게는 넘사벽이다. 그놈의 자위, 그놈의 샌드위치, 그놈의 와인, 그놈의 재즈...... 그러다 보니 하루키 에세이를 읽을 때에는 와와, 했다가도 하루키 문학을 읽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우우, 하게 된다. 최종적 결론은 이렇다. 하루키 에세이는 읽되 하루키 문학은 읽지 말자 ! 


언제부터인가 " 소확행 " 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 바로 하루키'다. 하루키는 작고 예쁜 빤스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는데 서랍에 빤스가 가지런히 가득 찬 모습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며 그것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뭐, 그럴 수 있다. 나도 책장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드니까. 오케바리, 하지만 거기까지 !  언제부터인가 소확행은 "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이상적 태도 " 혹은 " 현실을 인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태도 " 따위로 통용되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이 따르고 싶어 하는 하루키의 소확행은 당신이 생각하는 그 fill과는 사뭇 다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세 수입을 얻는 작가 중 한 명이 하루키'다. 그가 책 한 권 팔아서 얻는 수입은 당신이 평생 번 돈보다 많을 것이다. 인정 ?   하루키의 소확행은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이상적 태도도 아니며 현실을 인정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태도도 아니다.  오히려 하루키의 소확행은 대기업 회장이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 시절이 생각나 특별식으로 개떡 하나 먹고는 감회에 젖는 이벤트 혹은 해프닝에 가깝다. 


커피 한 잔의 행복이라며 SNS에 스타벅스 사진 한 장 올려놓고는 #소확행실천, 이라며 태그를 찍는 것은 비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소확행 이전에 인기 트렌드로 부상했던 것이 바로 " 욜로 " 이다.  욜로가 뭔가 ?  쉽게 말해서 " 에라 모르겠다, 흥청망청 놀자 " 에 가깝다. " 니나노 " 가 " 욜로 " 로 둔갑한 것이다. 이 기획을 계획한 것은 자본이었다. 경기 불황이 이어지자 자본가는 " 욜로 " 라는 니나노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문제는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흥청망청 놀 만큼 돈을 벌지 못한다는 점이다. 난관에 봉착한 자본가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욜로의 반대말인 " 소확행 " 인 것이다. 그것은 통 넓은 바지를 유행시킨 패션업자들이 다음해에는 스니키진을 유행시키는 것과 비슷하다. 소확행을 자세히 살펴보면 욜로와 소확행은 반대말이 아니라 비슷한 말에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소확행이란 소비를 장려하는 수작에 불과해서 소비 저항보다는 소비 순응에 방점이 찍힌 생활 태도다.  예쁜 빤스라도 하나 더 사야지 기쁨은 배가 되고, 소확행자들의 인생템이라 할 수 있는 스타벅스 핑크 레디백은 쿠폰 17개 모아야 얻을 수 있는 " 자본적인 너무나 자본적인 상품 " 이며, 


혼술 예찬도 결국에는 맥주 한 병이라도 더 사야 #오늘도혼술소확행실천이라는 태그를 찍을 수 있게 되니 가정용 주류 판매 촉진을 위한 찬란한 상술인 셈이다(개인 SNS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소확행자들은 자발적으로 맥주 회사 홍보부의 광고 앞잡이 노릇까지 한다.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소확행자들은 으뜸 고객이다. 트로트 가수 박상천의 싸구려 예찬을 빌리자면 자본가에게 소확행자들은 " 고객을 향한 나의 마음은 특급 사랑이야 " ). 소확행은 자본의 환상이며 기만이고 현실을 은폐하는 면도날이다. 작고 예쁜 빤스가 당신에게 기쁨을 선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더 좋은 사회를 위한 밑거름이 되지는 않는다. 분명한 것은 비판 없이 자본에 순응하는 태도보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자본에 저항하는 태도이다. 혼술마저 멋진 라이프스타일이라고 선전하는 소확행 기획자에게 혼술의 달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하나다. 막걸리 쉰내 나는 목소리로, 누런 난닝구 같이 히마리 없는 갈라진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리라. " 혼술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지옥행 급행 열차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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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9-03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확행의 ‘행’부터 정말 맞는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공감되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20-09-04 21:07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수다맨 2020-09-04 11: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혼술은 행복의 시작이 아니라 지옥행 급행 열차란다‘ 이 부분에 급공감합니다. 저도 혼술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건 좋게 말해야 습관이나 습벽이지 행복이랑은 거리가 먼 행동이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9-04 21:07   좋아요 0 | URL
혼술이야말로 주정뱅이로 가는 지름길이죠.. ㅎㅎ
 








뒤늦은 안부









 



영화 << 벌새 >> 를 보는 내내 옛 친구'가 생각났다. 소녀의 성장담을 담은 영화에서 주둥이가 거무퉤퉤한 사내새끼를 떠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연상이었으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중2 소녀의 성장담보다는 연락이 끊긴 옛 친구의 후일담이 궁금했다.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창백한 녀석이었다. 영화 모임을 통해서 만난 친구였는데 소심하고 띨띨해서 나한테 구박을 많이 받은 친구였다. 이런 표현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으나 이 표현보다 더 정확한 문장으로 그 친구를 묘사한다는 게 불가능해서 여러분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자 한다. 계집애 같은 친구였다. 그 친구가 서울대 음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는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서울대생도 띨띨한 친구가 있구나. 어느 날, 그 친구가 초대장을 내게 줬는데 피아노 연주회였다. 그 연주회에서 나는 그 띨띨한 친구가 무대 위에서 멋지게 피아노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묘한 배신감이 들었다. 조롱박 들고 밥 구걸하는 각설이인 줄 알았는데 백마 탄 왕자'였어라. 아마도 그때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것은 계급적 열등감이었을 것이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내가 그 친구를 구박하는 일은 줄어들었고, 그만큼 사이도 서먹서먹해졌다. 우리 사이는 구박을 주고 구박을 받을 때 케미'가 터지는 관계였던 것이다. 관계가 다시 복원된 계기는 그 친구가 음악사를 전공한다며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고 난 후'였다.  친구는 일기를 쓰듯 내게 편지를 보냈고 나도 성심 성의껏 답장을 보냈다.  처음에 편지는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학문에 대한 결의로 채워졌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편지가 내게는 연애편지로 읽혔다. 그 친구가 나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남자끼리의 우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나는 점점 그 편지들이 부담스러웠고 그 친구에게 답장을 보내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어영부영 소식이 끊겼고 그후의 일은 모른다. 우린 각자의 길을 갔을 뿐이다.  그러다가 최근에 알음알음 연락을 취해 그 친구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 너 아직 모르고 있었구나 ? 그 친구, 서른이 되기 전에 사고로 죽었어. 교통사고였지, 아마...... "  친구의 뒤늦은 부고에 뒤늦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워서 한숨만 깊게 쉬었다. 오늘 선우정아의 < 그러려니 > 를 듣다가 네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다 보니 만나는 사람은 줄어들고 그리운 사람은 늘어난다는 가사가 가슴에 사무치는구나. ○○아, 이렇게 뒤늦은 안부를 너에게 보낸다. 늦은 답장이어서 미안하다. 잘 지내니, 잘 지내겠지 ? 









이 노래를 처음 쓴 건 아마 2014년의 어느 밤이었다. 첫 구절의 테마가 문득 떠올랐고 이 테마는 한동안 마치 망령처럼 날 사로잡았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역시 괜히 센치했던 어느 날 밤, 피곤에 쩔은 손가락으로 더듬더듬 피아노를 녹음했다. 당시 내가 가지고 있었던 건 1절까지만의 테마였는데 이상하게도 끝까지 쭉 연주하게 되었다. 고백컨대 본인의 아르페지오 패턴의 연주는 그리 훌륭한 편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주는 말 그대로 '더듬더듬' 진행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멈추지 않았고 결국 그 한 호흡에 이 곡을 완성하게 되었다. 곡이 끝나는 마지막 한 음을 누를 때의 기분은 너무나 아름다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 얼떨떨한 기분에서 채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에서 모니터링을 했는데 연주의 기술적인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꼈고 후에 편곡 작업을 하면서도 이때 녹음했던 피아노를 최대한 살리게 되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하게도 그 연주만이 그 순간의 감정을 가장 오롯이 담고 있었기에, 이후 말끔한 연주로 새로 녹음을 해봐도 그때의 그 감정을 온전히 되살릴 수 없던 탓이다. 편곡 과정에서는 다양한 공간이 느껴지는 소리를 표현하려고 했다. 자연히 피아노가 중심이 되었고 중간중간 감정의 고조에 따라 신쓰(Synth) 계열의 악기들을 넣었다. 입체적이면서 드라마가 풍부한 사운드를 만들고 싶어, 중심이 되는 피아노에도 공간감의 변화를 다양하게 주었다. 마치 피아노를 문으로 타고 과거와 현재를, 안과 바깥을 오가는 듯 말이다. 처음으로 영어 버젼도 함께 만들어 싣게 되었다. 이는 사실 작년 몇 차례의 유럽 공연의 영향이 있기도 했다. 영어 버젼을 만들어야겠다 마음을 먹고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니들앤젬(Needle&Gem)의 에릭. 지난해 함께 유럽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고 그의 감성이 이 노래와 잘 어울린다 느낀 까닭이다. 또 영어 가사로도 본래의 내용이 최대한 그대로 담겼으면 했는데 에릭이 정말 잘 표현해주었다. 에릭이 캐나다에 있었기 때문에 메일과 메신저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영어 가사를 완성했고 정규 2집부터 대부분의 작업을 함께 한 엔지니어 BA Wheeler의 디렉팅 하에서 레코딩을 진행했다. 미세한 감정선과 역시 미세한 차이의 발음을 함께 신경 쓰느라 쉽지 않았던 작업이었다. 무엇보다도 언어가 달라지자 거의 같은 내용임에도 음악적인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편곡을 통해 이런 차이를 표현하려고 했다. 그 결과 영어 버젼은 다른 악기 트랙 없이 피아노로만 진행하고 보컬도 공간계 이펙터를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정말 슬픈 노래이다.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에 슬프다. 어른이 되어갈 수록 일상적인 슬픔은 삭히게 된다. 누구에게나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유난 떨지 않아야 하는 게 미덕으로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곡은 슬픔에 겨워 마음껏 고조되지 않는다. 더 터질 것 같다가도 사그라들고, 목소리에 울음이 묻는가 싶으면 곧 지운다. 엔딩부에 쏟아지듯 터져 나오는 오케스트레이션으로 감정의 고조를 표현하지만 이조차도 곧 다시 잠잠하게 '그러려니...'라는 읊조림으로 삼켜지는 것이다. 미련이 없다는 말은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받아들인다는 뜻일 거다. 각자의 삶은 갈 수록 복잡하고 바빠지고, 더 이상 어릴 때처럼 긴 고민 없이 '우리 다시 자주 만나서 놀자!' 라고 할 수 없으니까. 그저 그러려니. 잘 살겠지. 설령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누군가라 하더라도 이따금씩 그의 삶이 안녕하기를 빌곤 한다. 관계는 변해도 추억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p.s. 엔딩부에 한 번 들리는 아이들 소리는 옛날에 살던 아파트 베란다에서 녹음한 소리다. 아마도 여름 언저리였는데 방에 있는 베란다 창문을 다 열어두고 멍하니 있다가 늦은 오후 즈음 동네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소리와 두부 장수의 종소리가 메아리치며 아련하게 들려오는데 그 순간 어떤 향수에 젖었다. 그래서 창문을 열어 마이크를 바깥 쪽으로 대고 녹음 버튼을 눌러놓은 채 하늘이 노을로 물들기 시작할 때까지 과거 생각에 하염없이 잠겨있었다. 그때 녹음한 그 소리들이 문득 떠올라 이 노래의 한 부분이 되었다.

-글: 선우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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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려니 영어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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