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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   아   있   다    : 










좀비와 냉장고










                                                                                               좀비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 사람의 스탯(능력치)이 아니라 좀비의 스탯'이다. 좀비의 다섯 가지 능력은 다음과 같다. 시력, 청력, 주력, 완력, 지력, 정력(헤헤헤. 좀비에게 정력은 좀 그렇죠 ?)...... 


좀비도 다종다양해서 좀비물에 따라 시력은 상실했으나 청력이 발달한 놈이 있는가 하면 청력은 상실했으나 주력이 발달한 놈도 있다. 심지어 조지 로메로의 고전 좀비물처럼 다섯 가지 능력이 모두 퇴화된 좀비'도 있다. 좀비'라면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고 방귀 꽤나 낀다고 자부하는 나는 조지 로메로의 느려터진 좀비를 좋아하지만 세월이, 하....... 수상하여 뛰는 좀비만 사랑받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물론 야구에서의 5툴 플레이어(5 tool player)처럼 모든 공격 지표에서 최상위 능력을 발휘하는 좀비가 등장하는 좀비물이 가장 재미있을 것 같지만 


실상 허점이 없는 좀비'는 매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한 서사를 제공하지도 못해서 장르에 탁월한 감독은 5툴 플레이어를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사실, 좀비가 다섯 가지 능력을 모두 갖춘다면 그것은 좀비가 아니라 사람에 가깝다. 전광훈 사이비 종교인이 대표적인 좀비계의 5툴 플레이어'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K좀비'일 것이다. < 좀비물 > 이 좀비의 공격에 집중한 장르라면 < 생존물 > 은 생존자의 수비 능력에 집중한 장르다. 방어선을 구축해야 하고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생존 식량에 의지해 존나 버티는 것이다. 


영화 << # 살아있다 >> 는 좀비물이라기보다는 생존물 재난 영화에 가깝다. 이 영화는 좀비가 등장한다 뿐이지 재난으로 인해 아파트에 고립된 생존물의 특성이 강해서 짝퉁 << 김씨 표류기 >> 처럼 보인다. 문제는 이 영화가 생존물의 꽃이라 할 수 있는 " 식량 구하기의 재미 " 와 " 턱없이 부족한 생존 식량으로 존나 버티기 신공 " 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좀비가 아파트 단지에 창궐해서 그곳을 탈출하기까지, 주인공이 한 달 동안 집에서 존버하는 이야기인데 상식이 있는 관객이라면, 조금 더 심하게 표현하자면 닭대가리가 아닌 이상,  이 설정은 생존물 장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왜냐구 ?!  냉장고가 있지 않은가 !   한국인은 평균 900리터 냉장고 한 대에 4인 가구의 1달 식량을 비축한다고 한다. 이것을 1인 가구로 전환하면 6개월분 식량을 냉장고에 보관한다. 여기에 한국인은 김치냉장고도 있으니 식량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   한국인에게는 몇 달은 먹을 수 있는 쌀도 있다.  만약에 당신이 영화 속 재난과 똑같은 일이 발생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생활해야 한다면 최소한 6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이 사는 집구석(명색이 한강 뷰가 보이는, 4인 가족이 사는 중산층 아파트)이 보관한 식량은 1인이 삼시 세 끼로 먹을 수 있는 3일 치뿐이다. 


이것을 열흘로 쪼개서 존나 버틴다네 ?  살펴보니 쌀도 없다.  아이고, 이런 집구석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더욱 웃긴 것은 마실 물이 떨어지자 집에 있는 양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설정이다. 하. 뭐, 이런 수박 씨 발라먹을면서 시바스 리갈. 알코올이 체내 수분을 과도하게 배출해서 갈증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은 모르나 보다.  차라리 바다에 표류한 생존자가 갈증이 나서 바닷물을 배 터지게 마셨다고 해라.  바닷물 마시고 갈증이 해결됐어욧 ! 사정이 이러다 보니 이 영화는 생존물로서의 재미가 1도 없다. 오뚜기 라면 먹방에 양주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서바이벌 영화'란 말이냐.  


무엇보다도 생존물 특유의 메이크업이라 할 수 있는 땟국물 줄줄 흐르는 화장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유아인의 머리는 한 달을 존버했는데도 미용실에서 갓 나온 손님의 헤어스타일 같다. 그리고 웃을 때 치아는 얼마나 눈부시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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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로토닌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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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   이       고   인   다    :









오 마이 길티플레져 !











   티플레져'라는 신조어가 있다. " 남한테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막상 하고 나면 즐거운 짓 " 을 뜻한다. 예를 들면 크리넥스 티슈의 주요 소비자층인 중2 남학생이 은밀히 즐기는 자위 행위'가 대표적이다. 아, 느무느무 부끄럽구요. 하지만...... 야홋, 너무 짜릿해 ~            뭐, 이런 병맛 코드가 바로 길티플레져'일 것이다. 하하. 나도 부끄럽다. 내게는 프랑스 작가 미셀 우엘벡이 그런 경우'다.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인종 차별을 전제로 깔고 가는 프랑스 작가 미셀 우엘벡의 소설 << 세로토닌 >> 은 남한테 이야기하기에는 부끄럽지만 막상 읽고 나면 즐거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마치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아들이 자위를 하고 나서 엄습해 오는 청교도인의 죄의식이라고나 할까 ? 그는 현대 사회가 구강기로 후퇴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 그동안 요리 프로그램들이 굉장한 비중으로 증가했고, 그러는 동안 에로물은 대부분 채널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 우스꽝스러운 오스트리아인의 용어를 빌리자면, 프랑스와 어쩌면 서구 전역은 분명 구강기로 후퇴하는 중이었다. 나도 같은 길을 걷고 있었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세로토닌, 376쪽) " 이 대목에서 무릎 탁, 치고 아, 했다. 한국인이라면 우엘벡의 지적에 대하여 모두 동의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 Mukbang(먹방) " 이라는 단어를 옥스포드 영어사전에 등재시킨 자랑스러운 종주국이 아니었던가 ! 먹방은 현대인의 성욕이 어떤 식으로든 좌절되어 식욕으로 전환된 오럴적 증후'다. 먹방을 푸드포르노'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우엘벡은 인간이 구강기 - 항문기 - 성기기 과정을 거쳐 성인이 되어야 하는데 현대인은 반대로 성기기-항문기-구강기로 퇴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 소설의 남성 주인공은 집요하게 섹스에 집착하지만 그의 페니스는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이다. 그는 자발적 실종을 선택함으로써 실존의 거세를 선언한다. 


미셀 우엘벡이 프랑스 사회를 구강기 퇴행으로 진단했다면 한국 사회는 " 초(超)구강기 퇴행 " 이다. 백만장자 연예인들이 티븨 오락 프로그램에 나와서 고기 한 점 더 먹겠다고 오두방정을 떨면서 육탄전을 펼치고 수많은 먹방 유튜버들은 날마다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식의 향연을 펼친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을 보며 " 아래 " 가 아니라 " 입 " 부터 촉촉히 젖는다. 아, 젖는다. 그래요. 네에. 부끄럽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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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벌어서 소고기 사 묵겠지  :













우리의 식욕은 유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인간은 소비자'다.  또한 소비 행위는 어떤 식으로든 " 정치적 ㅡ " 이기에 소비 행위가 곧 정치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좋은 소비란 무엇일까 ?  친환경 상품이나 공정 무역 상품을 이용하는 것 ?! 아마도 착한 소비에 대한 최선의 윤리적 태도는 죄책감일 것이다. 


예를 들면  :  착한 소비는 내가 입은 구스다운 한 벌이 살아 있는 거위 20마리의 깃털을 산 채로 뜯어서 만든 결과라는 사실, 한 번 뽑힌 거위는 깃털이 다시 자랄 때까지 죽음에 가까운 트라우마 속에서 살다가 다시 뽑힌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한 평생을 살다가 깃털 하나 없는 몸으로 죽는다는 사실에 괴로움을 느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털이 뽑힌 경험이 있는 거위는 다시 뽑혀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 다리를 부들부들 떤다고 한다). 성대가 퇴화한 토끼가 유일하게 비명을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털이 뽑힐 때라고 한다. 털이 달린 짐승에게 털이 뽑히는 고통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고통 그 이상이다. 


개고기를 먹지만 구스다운을 입지 않는 소비자와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유행 따라 해마다 구스다운을 구매하는 소비자 가운데 누가 더 잔인할까 ? 나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의 경우에 손을 들 것이다. 그해 유행하는 구스다운 입고 개 식용 반대 피켓을 든 모습은 이율배반적 태도다. 그리고 친환경 정책을 주요 정강 정책으로 삼은 녹색당 당원(혹은 환경주의자)들이 삼겹살 파티를 즐기는 것도 구스다운을 입고 개 식용 반대 푯말을 든 것만큼 이율배반적이다. 온실가스의 주범인 메탄가스는 인간이 맛있는 육식을 얻기 위해 키우는 가축의 날숨(과 방귀)에서 


발생하는데 전 세계 메탄가스의 40%, 그리고 2050년에는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돈 벌어서 뭐 하노. 소고기 사 묵겠지 _ 라는 어느 개그맨의 농담이 이제는 기후 변화의 주범이 되었으니 < 웃겨주다 > 가 < 웃겨죽다 > 가 될 판이다. 기후 변화 위기 시대에 있어서 진정한 정크푸드는 스테이크다.  온실가스를 가장 효율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소 중심의 가축 수를 줄이는 것이다1). 사람들이 채식주의 식단으로 상을 차리면 온실가스는 63%나 줄어들고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1조 달러나 절감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다.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중언부언하자면 기후 변화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쉽다. 


채식 중심으로 식단을 차리는 것이다. 그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이제 채식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의 위기를 막을 유일한 대안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고기를 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고기를 보면서 침이 고일 때, 그 식욕이 기후 변화의 주범이었다는 사실을 각인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소비자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윤리적 소비의 첫걸음이다.  이 글이 당신에게 완전 채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육식을 별식이 아닌 주식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하다. 지구가 불덩이처럼 들끓는 시대에 있어서 당신의 식욕은 어떤 식으로든 유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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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젖소는 1년에 한 마리당 3.398톤(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양)의 메탄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이는 돼지 0.128톤과 닭 0.003톤에 비하면 대규모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사육되고 있는 가축 소는 약 13억 마리로 추정되는데, 이를 모두 합치면 전 세계 소가 1년에 메탄가스 1억톤을 배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전 세계 메탄가스 배출량의 1/4(25%)에 해당한다. 소 외에 양이나 염소 등 모든 가축들이 발생시키는 메탄가스까지 모두 합치면 전 세계 메탄가스 배출량의 1/3(37%)를 웃돈다. 더욱이 문제는 메탄가스가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잡아 가두는 능력이 21배나 높다는 데 있다. 전 세계가 힘을 모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 될 입장에서 보자면 메탄가스를 줄이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전 세계 가축 사육 두수는 약 600억 마리 정도인데 이는 2015년보다 그 수가 15.9% 나 증가한 수치이다. 현대인의 식습관이 육식 위주로 급변한 까닭이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2050년에는 지금보다 2배나 높은 1천200억 마리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세계 메탄가스의 약 70%이다. 명백하다, 온실가스의 주범은 육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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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소 설 이 냐,  자 소 서 냐  :











날 것과 익힌 것













1. 인간은 모두 그런 사람들


내 정체성이 궁금하여 여러 차례 테스트를 한 결과, 아나키스트이며 INTP이고 염세주의자'라는 결과가 나왔다. 염세주의'라기보다는 염인(:인간을 혐오함)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박원순 사태 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박원순은 절대 " 그런 사람이 아니다 ! " 라고 현실을 부정했을 때 나는 시니컬한 태도로 지켜보곤 했다. " 바보들. 인간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야, 멍충이들아 ! "








2. 외롭고 높고 쓸쓸한


안도현 시집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나는 안도현이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시집 제목은 백석의 < 흰 바람벽이 있어 > 에 나오는 문장으로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 에서 " 가난한 " 을 지운 것이다. 그는 왜 하필 '가난하다'는 정치계급적 소외의 문제를 삭제한 것일까 ?  바로 그 점이 안도현의 한계이다. 내가 안도현의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이라는 문장에서 느끼는 것은 배부른 자의 낭만적 사치 혹은 서정성의 과소비로 보는 까닭이다. <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과 <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 것의 차이는 간단한 첨삭의 문제가 아니다. 








3. 한 수 위 


김봉곤 사태가 전입가경이다. 젊은작가상 수상집에 수록된 단편 << 그런생활 >> 에서 시작된 논란이 단편집 << 여름, 스피드 >> 로 옮겨붙었다. 소비자들은 고무신 거꾸로 신겠다며 절독을 선언하고,  출판사는 불난 집 불구경 하며 전봇대에 오줌을 누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져 당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고추를 털자니 발등이 뜨겁고 발등을 털자니 오줌이 흩뿌려지니, 이게 뭐하는 거니 ?  당사자들이 해결해야 될 문제라고 선을 그었던, 팝콘각 하던 출판사들은 이제서야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그동안 재현의 윤리성 문제는 많은 이들이 지적했으니 내가 이 자리에서 굳이 부언하지 않겠다.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이번 논란은 논외로 하더라도 << 그런 생활 >> 이라는 단편이 과연 문학성을 갖춘 작품이냐는 것이다.  << 그런 생활 >> 의 문장은 문학이 아니라 DM(direct message) 에 불과하다. 내가 보기엔 이 소설은 사소설(오토픽션)을 쓰려다가 자소설(자소서)로 빠진 경우다. 이 작품에 후한 점수를 준 젊은작가상 심사위원의 수준이 궁금하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라 했던가 ?  문학동네 출판사가 문학동네에서 편집자로 일하는 자사 직원에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는 뻔뻔함은 작가의 뻔뻔함보다 한 수 위'다. " 문학동네여 !  밥은 먹고...... 다니냐 ? " 









4. 날 것과 익힌 것

요리란 날 것을 익히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고르기, 씻기, 다듬기, 숙성하기와 같은 손질이 필요하다. 이 과정을 거치다 보면 부피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문학은 요리와 같다. 문장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고르고, 씻기고, 다듬고 숙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좋은 문학이 탄생한다. 김봉곤이 지인의 카카오톡 DM을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복붙하는 것은 밭에서 갓 뽑은 파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는 요리라고 우기는 꼴과 같다.  문학의 최소 단위는 문장인데 << 그런 생활 >> 속 실존 인물인 C누나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복붙한 원고지 10매 분량은 문장이 없다는 점에서 문학이 아니다. DM은 " 문자 " 이자 " 문장 " 이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의 촌평을 빌리자면  :  한국 작가들은 도발보다는 안전을 선택하다 보니 한국 문학에는 뉴페이스는 많은데 뉴웨이브는 없다. 그것이 한국 문학의 치명적인, 졸라, 조올라~  치명적인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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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곤 목에 방울 달기












                                                                                            김봉곤의 이름을 기억하기란 쉬웠다. 코미디언 김형곤과 이름이 비슷할 뿐 아니라 외모도 비슷했으니 말이다. 그의 단편소설 << 그런 생활 >> 을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소설을 문학동네 출판사 판, 창작과비평 출판사 판, 문학과지성사 출판사 판 가운데 어느 책을 읽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하여튼...... 읽었다 !  


도서관에서 고른 수많은 책에서 이 단편을 선택한 이유는 읽기 쉬운 문장으로 구성된 소설이었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시간적 제한이 걸린 곳이기도 하거니와 개인적으로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지 않으면 똥을 싸고 나서 밑을 안 닦고 나온 느낌이 들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때에는 주로 단편 위주로 휘뚜루마뚜루 읽게 된다. 이 작품을 처음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 날것 " 이었다.  좋게 말하면 재료 본연의 맛이었고 나쁘게 말하자면 사자가 사슴의 목덜미를 뜯어낼 때 나는 맛이었다. 접시 위에 핏물이 줄줄 흐르는 살덩이 앞에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이것은 재료인가 요리인가 !    


문학이란 " 날것을 익힌 것으로 요리하는 과정 " 이라고 믿는 내게 이 작품은 짧게 쓸 시간이 없어서 길게 쓴1), 퇴고 없이 내놓은 초고처럼 보였다. 러프 컷( : 촬영을 막 끝내고 아직 편집하지 않은 필름)을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  명색이 문학동네 편집자인 김봉곤이 편집 과정 없이 내놓은 러프 컷을 보면서 나는 터프하게 욕지기를 내뱉었다.  러프 컷을 파이널 컷으로 인정하여 그것을 그대로 극장에 거는 감독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초고를 퇴고 없이 내놓은 용기는 만용'처럼 보였다. 이 작품이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수상하다. 


뭐,   김봉곤이 문학동네 편집자'라는 사실을 콕 짚어서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주류 문학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 중에 문학동네에 뺨따귀 날릴 사람 누가 있을까(더군다나 < 그런 생활 > 은 문학동네, 문학과지성, 창작과비평이라는 메이저 3대 출판사와 밀접한 관련이 된 작품이다)?  호기롭게 뺨따귀 날렸다가는 개뼉따귀로 몽둥이 찜질 당하기 좋으니 아가리 닥치고 있는 중이다. 김봉곤 논란에서 피해자의 손을 들어준 작가는 김초엽이 유일하다(장류진도 합류한 모양이다). 


작년에 소설가 윤이형이 이상문학상의 불공정 관행(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하고 작가 개인 단편집에 실을 때도 표제작으로 내세울 수 없다'는 주최 측 문학사상사 요구)에 항의하며 절필 선언을 했을 때 많은 동료 작가들이 뜨거운 동료애를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르다. 거칠게 말하자면 문인들은 남의 밥그릇(c누나는 결국 퇴사를 결정했다는 후문)에는 관심이 없지만 나의 밥그릇(수상작 저작권 양도 문제)에는 졸라 예민한 것이다. 하긴 권희철과 신형철이라는 쌍철 보유국인 문학동네를 건드리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백 번 양보해서 이 작품이 훌륭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띵언 제조기,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 " 좋은 음식이란 먹어서 좋은 것에 앞서 생각만 해도 좋은 것이어야 한다. " 김봉곤의 < 그런 생활 > 은 생각만 해도 좋은 음식이 아닐 뿐더러 먹기 좋은 음식도 아니다. 








​                                   


1) 파스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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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7-18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곰발 님!

곰곰생각하는발 2020-07-18 18:39   좋아요 0 | URL
오랜 만에 문학판에서 논란이 발생해서 관심을 조금 가졌습니다.. ㅎㅎ

라로 2020-07-19 02:20   좋아요 0 | URL
제게는 따뜻한 관심을 좀 가져주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20-07-19 11:22   좋아요 0 | URL
ㅋㅋㅋ 네. 따뜻한 관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