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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쩔 수 없는 힘듦이 내게 찾아왔다면
글배우 지음 / 강한별 / 2020년 3월
평점 :
모두 다 예쁜 말들
교육 프로그램에서 아동 교육 전문가는 부모에게 아동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의 훈육 방법을 재연하라고 주문했다. 역할 놀이극 무대 위에 오른 부모들은 평소처럼 아이를 어르고 달래거나, 때론 윽박지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어느 부모는 높임말을 쓰기도 했고 낮춤말을 쓰기도 했다.
평소 높임말을 사용하다가 훈육을 할 때에는 낮춤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고, 평소에는 낮춤말을 쓰다가 훈육을 할 때에만 높임말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동 교육 전문가는 역할극 중간중간에 수시로 개입하여 그때그때 잘잘못을 지적했다. 이 역할극 놀이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평소 아이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평소에도 높임말을 사용하고 훈육 시에도 높임말을 사용하는 부모의 태도'였다. 한눈에 봐도 교육열이 높아보이는 그의 훈육은 배운 티'가 났다. 우아했고 차분했다. 그런데 교육 전문가는 그 역할극을 중단시켰다.
그는 화가 나 있었다. " 훈육할 때 굳이 높임말 사용할 필요 없어요 ! 지금 당신은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이를 폭력적으로 제압하고 있는 중입니다. " 말은 높임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표정, 말투, 어조, 눈짓, 태도는 매우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는 < 가짜 높임말 > 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은 부드러운 높임말과 그것과는 상반되는 부모의 경멸적 표정 때문에 혼란을 겪고 나중에는 더 많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가 전체 의사 소통에 차지하는 비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매우 낮다.
연구 결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말투, 어조, 뉘앙스는 물론이고 표정, 눈빛, 손짓, 몸짓이 전체 의사소통의 93%를 차지한다는 보고도 있다. 그러니까 말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말이 전달하는 의미보다는 말을 할 때 사용하는 비언어적 표현(표정, 말투, 눈빛 따위......)이 중요한 것이다. 글이라고 해서 다를까 ? 독자들이 듣기 좋아하는, 예쁜 말들만 모아서 그것을 문장으로 만든다고 해서 위로와 치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책에 인쇄된 문장들은 모두 비언어적 요소가 배제되었기에 완벽한 의사소통의 창구가 아니다.
위의 예시처럼 아이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은 감춘 채 부드러운 높임말을 사용했던 부모의 위선은 책이라는 텍스트 안에서는 매우 훌륭한 훈육의 예시가 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인스타 XX 감성체로 쓴 베스트셀러'를 읽을 때마다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쁜 말로 조탁된 문장들이 대부분 가짜 위로라는 데 있다. 글배우의 문장들은 대부분 부드러운 문장으로 독자에게 조곤조곤 말을 걸지만 그 " 위로 " 의 뒷면에는 독자를 " 아래로 " 보는 경향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그는 독자를 항상 가르치려 한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말을 하는 태도'에 있다. 글배우의 책보다는 코멕 메카시의 << 모두 다 예쁜 말들 >> 이라는 책을 추천한다. 내가 최애하는 걸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