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힘든 나에게
글배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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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의 문제



                                     꼰대는 학생들이 선생을 지시할 때 사용한 용어'였으나 지금은 " 늙은이 " 를 아우르는 은어'가 되었다. 경멸적 요소가 강해서 늙은이라는 말보다는 틀딱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꼰대는 합리성보다는 경험성을 중시해서 항상 라떼를 마시면서 왕년을 호명한다. < 라떼 > 와 < 왕년 > 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젖은 땔감과 같은 사이'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상대를 낮잡아 하대하는 방식을 선호하는데 그들의 설교는 필연적으로 낡은 사고 방식을 강요하게 되고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꼰대는 과연 나이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까 ? 늙은 꼰대는 물론이거니와 젊은 꼰대 또한 물 반 고기 반'이다. 젊은 꼰대의 특징은 늙은 꼰대를 진심으로 경멸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꼰대는 오히려 늙은 꼰대보다 위험하다. 왜냐하면 늙은 꼰대는 자기 반성은 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자신이 꼰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자신이 꼰대로 보여지는 것을 걱정하) 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젊은 꼰대는 동종 집단(코호트)에서 벗어나는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속했던 세대를 비난하면서 전 세대와의 작별을 고한다. 예를 들자면, 10대를 벗어나 이제 갓 20살이 된 아이들이 10대를 급식충이라며 차별화를 구사하는 전략은 그들이 그토록 싫어했던 나이로 유세를 떠는 형태라 할 수 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꼰대질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발생하게 된다. 내가 너보다 한 수 위라는 위치 선점은 꼰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글배우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뒷짐을 진 채 100년 동안 도를 닦은 산신령이 연상된다.  세상을 달관한 명상가의 말투'다. 그가 즐겨 쓰는 " 하라체 " 만 해도 그렇다. - 하라 가 명령형 종결 어미라는 점에서 그의 문장들은 독자를 " 위로 " 한다기보다는 " 아래로 " 보고 있는 태도에서 만들어진 문장의 결'이다. 어느 아동 교육 전문가는 아이들을 훈육할 때 높임말을 사용하는가, 낮춤말을 사용하는가는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충고한다. 왜냐하면 높임말을 사용한다 한들 어감이 강압적이면 아이들은 그것을 자신을 위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글배우의 문장이 그렇다. 그는 조곤조곤 독자를 향해 말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압적이다. 그가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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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라
글배우 지음 / 답(도서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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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말라고 ?











글배우의 << 다 괜찮다 >> 라는 짧은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 공부가 조금 늦어도 / 졸업이 조금 늦어도 / 취업이 조금 늦어도 / 다 괜찮다 / 그렇다고 / 인생에서 늦은 게 아니니까 " 글배우가 << 다 괜찮다 >> 라는 글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 " 길게 보면 인생은 마라톤 경기 " 라는 흔한 비유일 것이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장거리 마라톤 경기에서는 다른 경기와는 달리 출발이 조금 늦었다고 해서 남들보다 불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부터 선두를 달리는 선수는 바람의 저항 때문에 다른 선수보다 체력 소모가 심한 편이다. 중요한 것은 순발력이 아니라 지구력이니까 ! 글배우를 좋아하는 애독자는 위로를 받는다. 남들보다 늦었다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글배우는 당신 귓구멍에 바람을 넣으며 다 괜찮다고 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주르룩. 그런데 그의 문장을 반대로 작성해 보자. " 공부가 조금 빨라도 / 졸업이 조금 빨라도 / 취업이 조금 빨라도 / 다 괜찮다 / 그렇다고 / 인생에서 늦은 게(or 빠른 게) 아니니까 " 글배우의 애독자는 이 문장에도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남들보다 조금 빠른 것은 아닌가 하고 발을 동동 굴렀는데 괜찮다고 하니 눈물이 주르룩. 결론은 이렇다  :  조금 늦어도 다 괜찮고, 조금 빨라도 다 괜찮다면 결국에는 하나 마나 한 소리.  글배우는 하나 마나 한 말을 가지고 당신을 위로하는 말이라고 포장했으니 독자를 조삼모사 취급한 셈이다.  당신은 지금 글배우의 위로에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내야 마땅하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다른 말로 하자면 잔소리'요, 개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듣기 싫은 소리가 잔소리일 텐데 글배우의 애독자들은 돈을 주고 잔소리를 듣고 있다. 물론 이런 반론도 가능하다. 비록 그의 글이 가짜라고 해도 그것을 믿는 독자는 플라시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맞는 소리'이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가짜 약을 굳이 돈 주고 구매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비의료인이 약을 처방하고 파는 행위는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이다. 




+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 너를 위해서 하는 말 " 은 그 뒷면을 살펴보면 " 나를 위해서 하는 말 " 에 불과하다. 권석천은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 4등, 2016作 >>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작은 머뭇거림조차 없는 폭력의 밑바닥엔 ‘이 모든 게 너를 위한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4등? 너 때문에 죽겠다! 진짜 너 뭐가 되려고 그래? 너 꾸리꾸리하게 살 거야? 인생을?”(엄마) “잡아주고, 때려주는 선생이 진짜다. 내가 겪어보니 그렇더라.”(코치) 엄마는 ‘너를 위해’ 짜증내고, 코치는 ‘너를 위해’ 체벌한다. 이러한 ‘너를 위한 폭력’은 스포츠에만 있는 게 아니다..... “ 너를 위한 것 ” 이란 말 한마디면 면책 받을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진정으로 ‘너를 위한’ 것이냐? 이다. 현실의 엄마, 아빠, 부장님, 이사님도 ‘다 너를 위해 목소리 높여 충고하는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우리는 이 “너를 위한다”는 속삭임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혹시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엄마 자신의 비교 우위를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것은 아닐까. 후배 직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부장이나 이사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지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처음엔 “너를 위해”로 시작했지만 어느덧 “나를 위해”로 바뀌어버렸고, 자신들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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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   무 슨   개 소 리 야 ? : 








개소리에 대하여



                                                                                      



                                                                                          아직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앞에서 "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지 ! " 라고 천진난만하게 노래했다가는 천만에 !  뺨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 멍청아 ! 지구는 평평하니까 자꾸 걸어가면 거대한 낭떨어지를 만날거야 ! " 이 주장은 거짓말일까, 개소리'일까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거짓말도 아니고 개소리도 아니다. 지구는 평평하다는 믿음에 대한 소신일 뿐이다.  반면에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내뱉은 말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보다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적어도 진실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개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진실 유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보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A라는 사람이 " (그런 것이있긴 있는데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아 ! " 라고 대답했다면 그것은 개소리'다.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유무와는 상관없이 하나 마나 한 소리를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 바로 개소리'다. 이 개소리들이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결론은 "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 " 따위가 만들어진다. 누가 나에게 거짓말, 개소리, 엉터리 신념 중에서 나를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개소리 하는 인간을 뽑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소리는 사실/진실/진리'라는 위대한 가치를 무시하고 폄하하기 때문이다. 개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부류는 대부분 가짜다. 그는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포장해서 그럴 듯한 상품으로 내놓는다. " 인스타 감성 지랄체 " 로 포장된 문장으로 작성된 위로 에세이 책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는 것은 그것이 개소리라는 데 있다. 개소리는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 『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 』따위다. 죽고 싶은데 떡볶이가 먹고 싶다는 고백은 쉽게 말해서 죽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는, 다시 말해서 살고 싶어서 떡볶이가 먹고 싶은 것이다. 또한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라는 고백은 게으름에 대한 자기 변명에 불과하며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다는 것은 절대로 혼자 있고 싶지 않다는 역설에 불과하다. 인생이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율배반의 연속이다. 일하기 싫지만 일은 해야 하고, 밥은 하기 싫지만 밥은 해야 하고, 섹스를 좋아하지만 임신을 걱정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들은 " 따스한 위로 " 가 아니라 " 하나 마나 한 소리 " 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책들은 밥은 하기 싫지만 밥은 해야 하고 일은 하기 싫지만 일은 해야 하는 당신을 현혹할 뿐이다.  개소리에 속지 말자.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을 진심으로 위로하지는 않는다. 






+

깊은 산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을 찾아가는 이비에스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보다는 " 집 " 이 주인공이다. 이 프로그램에 소개된 집 가운데 인상적인 집이 있었다.  그 집은 깊은 산속에 지어진 집인데 모던한 현대식 디자인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건축 잡지에 실릴 만한 집은 외벽 전면이 유리'였다. 건축주와 건축가는 둘 다 똑같은 말을 했다.  "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연 친화적인 집을 짓고 싶어요. 그래서 건축 재료는 모두 친환경 건축 재료를 사용했습니다아. " 나는 그들의 개소리'에 헛웃음이 나왔다. 산 중턱을 강제로 깎아서 만든 집이 자연친화적일 수 없을 뿐더라 강화 유리로 마감한 집은 새들이 죽는 이유 원인을 제공한다. 새들은 외벽을 유리로 마감한 건물의 유리창에 충돌해 죽는데 미국에서만 해마다 10억 마리 이상이 유리창 충돌 사고로 죽는다(한국에서는 해마다 800만 마리가 전원 주택의 그 드넓은 유리창 때문에 죽는다). 유리창에 반사된 나무와 숲이 진짜인 줄 알고 유리벽을 향해 돌진하기 때문이다.  농약으로 인한 죽음보다 유리창 충돌 사고 때문에 죽는 새의 수가 절대적이다.  이것이 과연 자연친화적인 집'인가, 아니면 자연파괴적인 집인가 ?  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유리창 충돌 사고에 의한 새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레알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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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9 0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떡볶이 타령은 정말...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팔리는
포스트트루스 시절에나 가능한
역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도 세월이 수상하다 보니
멍멍이 사운드도 돈으로 환산
이 되는 그런 세상이 도래했네요.

근데 떡볶이가 먹고 싶네요 쩌비.

곰곰생각하는발 2020-06-09 15:19   좋아요 0 | URL
편집부에서 지은 제목일 텐데... ㅎㅎㅎ 참 거시기 합니다.
 














                                         

 

굴림체가 출판계의 주류로 등극할 때  :












                                              오늘처럼 네가 싫었던 날은 없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시를 쓴 시인이 내게 시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속에 火가 많으니 문학적 수양을 단련하면 火가 花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면 이런저런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명망 높은 시인이 한 말이니 빈말은 아닐 듯하여 시를 쓰기로 마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요구한 조건은 간단했다.  줄이 없는 노트에 자신의 글씨체로 시를 쓸 것.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페이지를 찢어서 버리지 말고 다음 장에 다시 고쳐서 쓸 것. 그의 말대로 시를 쓰다 보니 노트 한 권에 쓴 시는 고작 한 편이었다. 단어 한 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조사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행과 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고쳐서 쓰다 보니 시 습작 노트가 아니라 시 한 편을 위한 필사 노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트 마지막 장에 작성한 습작 시가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일까 ? 


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지금 당신은 자신이 쓴 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살이 붙기도 하고 살이 빠져서 날씬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맨 마지막에 작성된 시가 가장 좋은 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의 변화를 통해서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시인이 내게 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는 최종적으로 명조체의 세계'라는 말이었다.  당신이 손으로 작성한 글씨체가 종이에 인쇄되어 명조체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시는 새롭게 탄생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를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명조체로 작성된 활자가 매트릭스의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왜 명조체일까 ?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글꼴은 굴림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윈도우의 한글 기본 글꼴일 뿐만 아니라 관공서 공인 문서의 폰트도 모두 굴림체'다(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은 굴림체의 촌스러운 미학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굴림체는 네모 한 칸에 자음과 모음을 최대한 확보하여 허투루 낭비되는 여백을 없앤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가독성이 뛰어나다.   반면에 명조체는 네모 한 칸에 남아도는 여백이 커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꼴이다. 


명조체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굴림체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굴림체가 패스트 - 폰트라면 명조체는 슬로우 - 폰트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는 명조체의 세계'라고 지적한 그 시인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글배우가 문학동네 시인선의 표지를 표절한 이유는 문학동네 시인선이 명조체의 세계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갖췄기 때문이다. 가로 길이는 짧고 상대적으로 세로 길이가 긴 문학동네 시인선 판형은 글씨체가 얇고 허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듯한 글꼴(문학동네 시인선에 사용된 글꼴은 SM세명조체'다)을 닮았다. 


그러니까 판형과 글꼴이 서로 닮은 것이다. SM세명조체는 덜 또렷해 보이고 옛날 글씨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곧 가독성이 떨어지기에 시집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 문맥을 곱씹으며 느리게 시를 읽어라 _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 디자인 제작 의도는 명백하다. 속도와 편리 대신 느림과 불편이 목적인 것이다. 주류에 편입되고 싶은 비주류 SNS 시인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 만화 인스타 감성체가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주제 파악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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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에 게   식 혜 를   권 한 다  : 











일일일글 배우는 거 어때 ?











보그병신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면 " 무심한 듯 시크하게 엣지 있는 머스트 해브....... " 따위로 연결된 문장이 대표적인 보그병신체'다. 듣고 있으면 손발이 오그라들 정도인데 수동형 문장 중심으로 비문이 작렬하고 문맥이 엉망이어서 듣는 이는 난독증에 걸리기 쉽다. 보그체는 허세를 부리고 싶은데 글솜씨가 형편없는 이들이 고육지책으로 만든 문장'이다. 이 지랄 같은 허세를 처음 경험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 이보다 더 괴랄한 문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  하지만 내 예언은 빗나갔다. 88년생인 그가 쓴 문장은 마치 계룡산 뜬구름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산신령의 말투를 닮았다. 글솜씨는 형편없는데 허세는 부리고 싶다 보니 계룡산 산신령 말투가 나오는 것이다. 내가 이 개소리에 열불을 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위험하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진실에 대하여 아예 관심이 없다. 해리 G. 프랭크퍼티는 << 개소리에 대하여 >> 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개소리를 알아차리고 거기에 현혹되지 않을 정도의 능력은 갖추고 있다고 꽤 자만하고 있다. …  그 결과 우리는 개소리란 도대체 무엇인지,  왜 그토록 개소리가 많은지,  또는 개소리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되듯이 독자 또한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저자를 만난다. 여러분에게 제안 하나 하련다. " 어서와 글배우는 처음이지 ? 일일일깡 대신 일일일글 배우는 거 어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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