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림체가 출판계의 주류로 등극할 때 :
오늘처럼 네가 싫었던 날은 없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수록된 시를 쓴 시인이 내게 시를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속에 火가 많으니 문학적 수양을 단련하면 火가 花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시를 쓰기로 마음 먹는다면 이런저런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명망 높은 시인이 한 말이니 빈말은 아닐 듯하여 시를 쓰기로 마음 먹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요구한 조건은 간단했다. 줄이 없는 노트에 자신의 글씨체로 시를 쓸 것.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페이지를 찢어서 버리지 말고 다음 장에 다시 고쳐서 쓸 것. 그의 말대로 시를 쓰다 보니 노트 한 권에 쓴 시는 고작 한 편이었다. 단어 한 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조사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다음 장에 고쳐 쓰고, 행과 연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고쳐서 쓰다 보니 시 습작 노트가 아니라 시 한 편을 위한 필사 노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노트 마지막 장에 작성한 습작 시가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것일까 ?
그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지금 당신은 자신이 쓴 시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살이 붙기도 하고 살이 빠져서 날씬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맨 마지막에 작성된 시가 가장 좋은 시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의 변화를 통해서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시인이 내게 했던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시는 최종적으로 명조체의 세계'라는 말이었다. 당신이 손으로 작성한 글씨체가 종이에 인쇄되어 명조체가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시는 새롭게 탄생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시를 생각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명조체로 작성된 활자가 매트릭스의 파노라마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왜 명조체일까 ? 우리가 흔히 일상에서 접하게 되는 글꼴은 굴림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제공하는 윈도우의 한글 기본 글꼴일 뿐만 아니라 관공서 공인 문서의 폰트도 모두 굴림체'다(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은 굴림체의 촌스러운 미학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굴림체는 네모 한 칸에 자음과 모음을 최대한 확보하여 허투루 낭비되는 여백을 없앤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가독성이 뛰어나다. 반면에 명조체는 네모 한 칸에 남아도는 여백이 커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글꼴이다.
명조체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굴림체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바라보아야 한다. 굴림체가 패스트 - 폰트라면 명조체는 슬로우 - 폰트인 셈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시는 명조체의 세계'라고 지적한 그 시인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글배우가 문학동네 시인선의 표지를 표절한 이유는 문학동네 시인선이 명조체의 세계로 이루어진 디자인을 갖췄기 때문이다. 가로 길이는 짧고 상대적으로 세로 길이가 긴 문학동네 시인선 판형은 글씨체가 얇고 허리가 꼿꼿하게 서 있는 듯한 글꼴(문학동네 시인선에 사용된 글꼴은 SM세명조체'다)을 닮았다.
그러니까 판형과 글꼴이 서로 닮은 것이다. SM세명조체는 덜 또렷해 보이고 옛날 글씨처럼 보인다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곧 가독성이 떨어지기에 시집을 읽을 때 단어 하나하나 문맥을 곱씹으며 느리게 시를 읽어라 _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 디자인 제작 의도는 명백하다. 속도와 편리 대신 느림과 불편이 목적인 것이다. 주류에 편입되고 싶은 비주류 SNS 시인의 타는 목마름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 만화 인스타 감성체가 문학이 될 수 없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주제 파악은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