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월 동안 8000만 원 번 사연










음식 솜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약(msg)을 뿌리는 놈을 이길 수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 인공 조미료 대신 천연 감미료로 맛을 낸 요리가 최고이기는 하나 대중의 입맛은 이미 싸구려 인공 감미료 맛에 중독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살을 깎는 아픔으로 글을 조탁한다 한들 인기를 끄는 책은 주로 이기주나 글배우 같은 글이다. 이 사람들, 약을 치거든 !  약 치면 답 없다. 글배우의 <<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 에 소개된 떡 에피소드는 압권이었다. 사업에 실패한 청년(글배우)이 서울로 상경한다. 가진 돈은 35만 원이 전재산.  그는 떡을 팔기로 결심한다. 사람들 앞에서 똑(떡) 사세요 ~ 맛있는 똑, 사세요 ~ 라고 외치려니 부끄럽다. 입도 뻥긋 못한 나날들. 고시원에서 내내 울었다고. 울다 울다 지칠 무렵, 청년은 결심을 하고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앞에 돗자리를 펼친다. 그는 똑, 사세요 _ 라는 말 대신 대기업 사원들에게 천 배 올리는 수행승처럼 큰절을 올리며 " 오늘 하루도 모두 파이팅 하십시오 ! " 라고 외친다. 그리고 퇴근 시간에는 "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 라고 외쳤다. 그는 이 짓거리를 무려 8개월 동안 실천했다고 한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대기업 사원 앞에서 큰절을 올렸다고.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 서울역에서 가장 큰 빌딩의 대기업 회장이 그를 호출한다. 대기업 회장은 그에게 1시간짜리 영상을 틀어주고 그 대신 떡 바구니를 들고 사라진다. 회장님이 대신 떡을 팔아주었다고 한다. 무려, 8000만 원어치 떡을 말이다. 나는 이 에피소트가 가짜라는 데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글배우는 약을 쳐도 너무 쳤다. 이런 식의 에피소드는 코믹 판타지 드라마 작가도 부끄러워서 생각조차 하지 않는 판타지다. 작가가 내 글을 읽는다면 서울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 이름과 회장님 이름만 알려주시라. 취재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대기업 빌딩 앞에서 8개월 동안 오늘 하루도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_ 라는 소리를 외쳤다면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이토록 훈훈한 미담은 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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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










형편없는 영화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  형편이 딱한 사람을 두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보잘것없는 영화는 그저 연출 능력 부족으로 인해 만들어진 영화'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든지 형편없는 영화에 대하여 비용을 지불하고 볼 용의가 있다. 명작은 명작대로, 망작은 망작대로 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 << 엄복동 >> 은 욕하면서 보는 재미가 매우 뛰어나다. 이 영화는 0.3초마다 욕이 튀어나오는 신비한 경험을 체험할 수 있는데, 고급 용어를 빌려오자면 불타는 욕동의 찬란한 경험'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고 싶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영화를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형편의 문제도 아니고(" 살림살이 나아지셨습니까 ? ") 취향의 문제도 아니다. 질이 낮은 영화는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지만 질이 나쁜 영화는 용서할 수 없다. 전자는 상품의 문제이지만 후자는 성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가장 쓰레기 같은 영화 두 편을 선정하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면, 나는 0.3초의 망설임도 없이 << 악마를 보았다 >> 와 << 국제 시장 >> 을 뽑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워낙 싫어하는 영화이다 보니 옛날에 기록으로 남겨둔 글이 있다. 그 글이 이 글을 갈무리하기로 한다. 누누이 하는 말이지만 질이 낮은 상품에 대하여 크게 분노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질이 나쁜 성품(을 간직한 사람)에 대하서는 크게 분노할 필요가 있다. 










1. 악마를 보았다






장경철과 한송이




                                                                                                          네이버 검색창에 " 악마를 보았다 " 를 입력하면 연관검색어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 간호사 > 다.  그러니까 이 영화를 본 관객의 뇌리에 사면발니처럼 강렬하게 달라붙는 장면은 이병헌도 아니고 최민식도 아닌,

백의의 천사(간호사)가 장경철(최민식)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다.  살려주세요 _ 라는 대사 외에는 이렇다 할 대사도 없던 그녀가 씬스틸러로 등극하는 순간이다.  당신에게 의뭉스러운 질문 한 개를 던져보자면  :  이 장면이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것도 아니요, 명장면도 아닌데 관객은 왜 이 장면을 기억하고서는 애써 소환하려는 것일까 ?  감독은 인간 내면에 숨겨진 지옥도를 보여주고 싶다는 작품 의도를 내세웠지만,  정작 이 영화는 불알후드(brotherhood)의 강간 판타지를 충족시킬 뿐이다.  다시 말해서 관객은 " 지옥도 " 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황홀한 " 판타지 " 를 경험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장경철에게 강간당하는 간호사의 나이를 스무 두 살'로 설정한 것을 보면 감독이 숨겨둔 꿍꿍이를 읽을 수 있다. 화장실 벽낙서 서사'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성대상화가 스무살 무렵의 여자요, 직업군이 여교사와 간호사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감독이 이 장면에서 연출하려고 했던 것은 " (악마)본성 " 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 (남성) 본색 " 을 자극하려던 것은 아니었을까.  저잣거리 입말로 무식하게 말해서 감독이 노린 것은 " 남성 관객을 꼴리게 만드는 것 " 이다. 에로 영화계의 거장,  틴토 불알스 감독'도 울고 갈 만한 에로틱한 장면 연출인 셈이다. 장경철이 간호사에게 질문을 던진다.

- 몇 살이야 ?
- 스물 둘이요.
- 어우 !  좋을 때네, 남자친구는 ?
- 네에 ? 없어요.
- 귀엽게 생긴 게(?) 많겠다.
- 네에 ?
- 사실은 어제 좀 재미를 볼 일이 있었는데 어떤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망쳐 버렸어.




스물 둘이라......  더군다나 간호사 이름이,             한송이다.  문자 그대로 꽃이니 꽃 같은 여자'다. 뭐야, 이런 좆 같은 작명. 수현의 약혼녀 세현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그 어느 누구도 이름을 부여받지 못했는데,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간호사'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감독이 이 캐릭터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여자를 관상용 꽃에 비유하는 놈치고 제대로 된 놈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잰더 감수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각본가와 감독이 만들어낸 최악의 참사이다.

감독은 포르노 영화에서 흔하게 소비되는 장면(포르노 영화에서 간호사 복장은 망사 스타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오브제다)을 연출해서 관객의 헤모글로빈이 남근으로 쏠리도록 유도한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 일도 많았던 열혈남아는 어느새 열혈남근으로 변한다. 아아. 내가 이 영화를 두고 스너프 필름이라고 비난하는 이유는 장경철의 대사에 함축되어 있다. 장경철은 " 어떤 개또라이 새끼(이병헌) " 때문에 망쳐 버렸다고 궁시렁거리지만,  사실은 그 개또라이 새끼 때문에 몇 번이나 희생자를 강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서 국정원 비밀요원 수현은 " 쾌락의 포주 " 인 셈이다.

감독은 수현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여성 폭력과 강간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그는 악마와 싸우다가 스스로 악마가 된 존재가 아니라 악마에게 희생당할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악질 포주'다.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윤리적 타락'이다 ■

 


 


2. 영화 국제시장



​​

​윤제균이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


                                                                                                        영화를 " 더럽게 못 만드는 감독 " 이 있는가 하면 영화를 " 더럽게 만드는 감독 " 이 있다.  전자는 < 불후의 걸작(傑作) > 를 만들고 싶었으나 결심과는 달리 < 불우한 걸작(乞作) > 을 연출한 감독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유형에 속하고, 후자는 이도 저도 둘 다 용서가 안 되는 유형에 속한다.

한마디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매우 더럽게 만드는 감독'이다. 이 방면에서는 강우석과 함께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감독으로 남을 것이다. 질이 낮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질이 나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용서할 수 없다. 언어유희를 섞어서 말하자면 질이 낮은 영화는 上品의 문제이고, 질이 나쁜 영화는 性品의 문제이다. 전자가 영화라는 상품으로써의 물성'에 대한 지적이라면 후자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애티튜드'에 방점을 찍는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이 천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명박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기에 좋은 자료를 제공한다. 쉬운 말을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  뚜껑 열고 bang-bang 쏘면서 말하자면 윤제균 사단 영화는 대부분 " 좆같은 영화 " 다. 윤제균 영화는 코미디와 신파를 섞어서 < 한국형 ㅡ 패밀리 플롯 > 을 구성하는데, 그 맛이 똥맛이라. 윤제균의 초기 코미디 영화1)에서 코믹한 설정은 주로 폭력으로 점철된 슬랩스틱에서 얻는데 그 대상은 남성'이다.  << 두사부일체 >> 에서 대가리(정운택 분)는 계두식(정준호 분)에게 쉴 새 없이 맞는데 이 폭력은 주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렇기에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아픈 척하는 웃기는 폭력 " 이다.  여기에는 리얼리티가 없다(슬래스틱 코미디 장르에서 리얼리티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아크로바트만 남을 뿐이다. 윤제균 감독이 신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요소도 폭력이다. 코미디 요소로서의 폭력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대상이 주로 여성'이라는 데 있다. 남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리얼리티 없는 몸 개그'라면 2)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 리얼리티한 폭력 > 이다.  영화 속 이은주(오승은 분)는 남성들에게 과도하게 구타를 당한다.  영화 << 1번가의 기적 >> 에서 하지원이 여자 복서 명란을 연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복서 명란은 남성들에게 마른 북어처럼 구타를 당한다.

이 아저씨가 만든 초기 영화 - 들에서 여자들은 오로지 맞기 위해서 존재하는 인물-들이다. 영화 << 국제 시장, 2014 >> 은 명랑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에 매 맞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에서 여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는가를 살펴보면 보다 악질적이다. 흥남 철수 때 잃어버린 << 막순 >> 은 덕수네 가족이 불행해지는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로 사용된다. 막순 때문에 아버지는 가족 서사에서 제거되어 그 후로는 유령으로서만 존재한다. 영어를 모르는 덕수가 투비 낫투비 _ 하며 방황할 때

덕수 아버지는 스크린 앞에 햄릿의 유령처럼 홀로그램으로 등장해서 이북 사투리로 이 종간나 새끼 ! 투비는 하되, 낫 투비는 허지 말아야지비. 아니그럼 ?  너는 이 가문의 장남이고 가장이야 !  _  라고 지껄인다.  김슬기 배우가 연기한 끝순이라는 캐릭터도 덕수 인생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영화에서 끝순은 철딱서니가 없다기보다는 자신의 결혼 혼수를 위해 오빠를 사지로 보내는 악녀에 가깝다. 덕수는 끝순의 혼수를 장만하기 위해 월남으로 향한다. 덕수모'도 있으나 마나 한 여성 캐릭터'다. 덕수가 투비_ 할 것인가 낫투비 _ 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마다 그가 호명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죽은 아버지 - 유령이다(어쩌면 진짜 유령은 죽은 아버지가 아니라 산 어머니인지도 모른다).

윤제균이 여성 캐릭터를 부정적으로 다루는 방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가 월남에서 다리를 잃게 되는 결정적 계기는 베트남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으로,  결국 다리에 총을 맞는 일이 발생하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잃는다. 국뽕 휘날리는 장엄한 서사의 유치찬란을 논하기에 앞서 이 장면은 매우 악질적이다. 덕수가  물에 빠진 여자아이를 구하기 위해 물에 뛰어드는 장면에서 생각을 멈추고, 그가 베트남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던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거리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했을 때 그를 죽음에서 구해준 이는 베트남 남자아이'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여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으로 이끌고 남자아이는 덕수를 죽음에서 구해주는, 이 선명한 대조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이 장면이야말로 윤제균의 잰더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단서'다. 그가 배역을 선정하고 배분할 때 잰더 역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고민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덕수는 항상 징징거린다. 그는 고민이 있으면 죽은 아버지 유령과 대화를 나누거나 친구 달구(오달수 분)와 상의할지언정 어머니와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결정에 따른 통보만 할 뿐이다.  덕수가 "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 라는 대사를 내뱉을 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 어쩌라고, 어 ?! " 

윤제균, 이 인간 영화 참 더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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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지상주의자에게 










                                                                                               날마다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파워 블로거'가 있었다.  하루에 책 한 권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덧대어 날마다 원고지 10장 분량의 서평도 올린다는 사실이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철저하게 책 내용에 집중했다. 그의 리뷰는 요약정리가 잘 된 써머리 노트 같았다. 사람들은 그의 리뷰를 좋아했지만 내가 봤을 때 그 리뷰는 촌스러웠다. 단순하게 책 내용을 정리한 글은 기계적인 필경사의 단순한 결실에 불과했다. 그러다 보니 글쓴이가 쓴 글 속에서는 " 존재 " 로서의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뇌는 있으나 심장이 없는 깡통 로봇 같다고나 할까 ?  


결정적 계기는 노무현이었다. 노무현이 서거한 날에도, 그는 여전히 책을 읽고 리뷰를 올렸다. 심장이 없는 로봇답게 그의 글에는 죽은 자에 대한 애도도 없고 폭력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도 없었다. 책 속에서 묘사하는 불평등과 폭력에 대해서는 성심 성의껏 잘잘못을 따지더니 < 책 - 바깥 > 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책을 읽고 성실한 리뷰를 작성하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그 좆같은 성실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성실한 필경사 생활은 결실을 맺었다.  그는 몇 년 후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시바 ! 유감스럽게도...... 


이동진 평론가를 볼 때마다 차가운 심장으로 글만 쓰던 그 필경사가 자주 떠오른다.  정치적인  것을 강박적으로 제거한 채 영화적인 것에만 집중한다는 점에서 영혼 없는 필경사를 닮았다. 아마도 그것은 그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라는 흑역사를 감추기 위한 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 << 변호인 >> 과 << 캐롤 >> 에 대한 입장은 철저하게 계산된 글이었다.  예를 들어 그는 영화 << 캐롤 >> 에 대하여 " 이 영화는 두 여자의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인데 두 사람이 생물학적으로 여자다, 이 두 가지는 차이가 있겠죠 ? " 라고 말한다. 


이처럼 그는 정치적인 것보다는 정치색을 탈색시키고 난 후에 그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  그는 영화-안'에서만 말할 뿐 영화-바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예를 들어 영화 속 노동 운동가의 영화적 삶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감동하지만 정작 영화 바깥에서 365일 동안 cctv 철탑 위에서 투쟁하는,  현재진행형인 삼성 노동자의 투쟁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침묵이라기보다는 무관심에 가깝다. 그는 전형적인 영화지상주의자'다. " 영화가 세상을 구원하리라 ! "  


좆같은 소리'다.  영화는 세상을 구원할 리가 없다.  영화라는 세계 - 안과 영화라는 세계 - 바깥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종 이동진이나 정성일1) 같은 영화지상주의자가 영화 만만세를 외칠 때마다 헛구역질이 나오곤 한다.  정성일은 21세기 영화 평론가의 비평 수준이 초라하다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지만 내가 보기에는 정성일이야말로 그 책임이 매우 크다. 너나 잘해라. 





​                             


1)  정성일이 시간 날 때마다 입만 열었다 하면 하는 거짓말이 있다. 일명 < 시네필 3법칙 > 인데, 정성일은 트뤼포의 말이라며 시네필 3법칙을 자주 인용하고는 했다. “ 트뤼포는 언제나 말버릇처럼 영화광에는 세단계가 있다고 얘기했다. 초보는 한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것이며, 그 다음은 비평가가 되는 것이고, 진짜 영화광은 영화감독이라는 것이다.”그런데 트뤼포는 정작 이 말은 한 적이 없다. <  내 인생의 영화들 > 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I am often asked at what point in my love affair with films I began to want to be a director or a critic. Truthfully, I don’t know. All I know is that I wanted to get closer and closer to films. The first step involved seeing lots of movies; secondly, I began to note the name of the director as I left the theater. In the third stage I saw the same films over and over and began making choices as to what I would have done, if I had been the director.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가운데 어떤 부분이 나를 영화 감독이나 비평가의 길로 이끌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영화와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는 것뿐이다. 첫 번째 단계는 많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나는 극장을 나설 때 감독의 이름을 적어두기 시작했다. 세 번째 단계에서 나는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면서 내가 감독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트뤼포는 잘 모르겠는데요 _ 라고 고백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한국의 영화감독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시네필 3법칙이라는 국문으로 둔갑했다. 이게 다 시네필 정성일의 너무나 과도한 영화 사랑이 빚은 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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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rdo 2020-06-02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캐롤 원작자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봤다면 이동진 뒤통수를 한대 갈겼을 것 같은데요. ㅎㅎ 원작소설과 작가에 대해 조사도 안 하고 대충 갈겨썼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6-03 17:3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니까요. 참, 지나치게 안정적인 틀 안에서만 이야기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ㅎㅎ
 













                              











무릎과 고추









                                                                                         네쁠릭스 영화 << 거꾸로 가는 남자 >> 는 일종의 미러링이다. 서로 성 역할을 바꿨을 때 일어나는 상황을 상상한 드라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는 남성이 만들었던 < 좆같은 사회 > 를 반대로 < 젖같은 사회 > 로 설정한 후 상황극을 연출한 것이다. 

이 드라마에서 여성은 웃통 까고 다녀도 되고 남성은 엉덩이에 핑크라고 쓰여진, 빤스 같기도 하고 팬츠 같기도 한,  짧은 팬츠를 입고 다닌다.  회사는 대부분 여성이 장악했고 남자들은 커피 심부름에 바쁘다. 성희롱은 일상이다. 누구에게 ?!  당연히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하는 사회'다. 이 영화에서 여성은 남성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루시아다. 반면에 남성은 모든 것에서 제약을 받는다. 겨털도 뽑아야 하고 사타구니까지 퍼져나간 꼬털도 왁싱을 해야 한다. 

심지어 발가락 위에 난 족털도 왁싱을 한다. 겨털, 꼬털, 족털(足ㅡ), 털이란 털은 모두 뽑혀야 하니 평소 고통에 털털한 나조차도  아, 이제 그만 !   " 모든 이에게 털을 허하라 ! "  미러링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을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한다. 남성이 무거운 것을 들고 있으면 여성이 터프하게 다가와서 남성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짐1)을 빼앗는다. " 너처럼 연약한 이쁜이가 이런 걸 들 수나 있겠어 ?  귀여운 것, 후후. 이런 일에 힘쓰지 마.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  흐흐흐 " 뭐, 이런 늬앙스'다. 남자인 내가 보았을 때 참말로 끔찍한 세상이다. 

하지만 얼마든지 웃고 넘길 수 있다. 왜 ? 허구의 드라마이니까 ! 그렇다면 남는 것은 진짜 현실 세계이다. 털이란 털은 죄다 뽑아야 하고, 능력과 상관없이 커피 심부름을 해야 하고, 성희롱이 일상인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여성은 이 현실 사회가 얼마나 끔찍할까 ?  더군다나 학생들에게 성평등을 위한 단편 영화(단편 억압당하는다수, 2010)를 보여줬다는 이유로 교사를 직위 해제하는 한국 사회라면 ?? 한국 사회를 경험하면서 겪는 가장 기이한 풍경 중 하나는 연애할 때 여성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남성들이었다. 한국 남자들은 왜 여자의 손바닥 가방'을 들어주는 것일까 ?  무거워서 ???????!!!   이게 에티켓이라고 ??????  

영화 << 경축, 우리 사랑 >> 도 일종의 미러링이다.  굳이 이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자면 역지사지 부도덕 짠내 로맨스'라고나 할까 ?  50살 여자가 30살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근본 없는 러브 스토리여서 대책도 없지만 감독은 능청스럽게 끝까지 밀어붙인다. 영화는 가족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의 결의를 끝까지 고추세운 봉순의 승리로 끝난다. 원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무릎 꿇지 않고 고추를 앞세우면 못 이길 싸움이 없는 법이다. 이 영화가 상투적인 멜로가 될 수 없었던 이유는 전복에서 오는 쾌감 때문이다. 부도덕한 로맨스라 욕하지 마라. 원래 모든 로맨스는 선을 넘는 행위이니 말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김해숙과 기주봉은 말할 것도 없고 김혜나와 김영민도 훌륭하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기타 등등도 믿고 볼 수 있는 연기력이다. 


 

​                                     

1) 이 장면에서 나는 연애할 때 여성의 핸드백을 대신 들어주는 한국 남자 특유의 에티켓 문화를 떠올렸다. 연애할 때에는 사랑하는 애인의 핸드백을 들어주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믿는 한국 남자의 망상이 괴상한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다고 믿는 여성도 괴이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애할 때에는 핸드백도 들어주는 남자는 결혼하면 아내의 장바구니는 들어주지 않는다에 500원 걸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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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내주러 왔습니다 !







                                                                                              한때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의 찐팬으로서 " 욕하면서 보는 타성 " 에 젖었던 때가 있었다.  볼 때마다 지는지라 어머니는 내가 야구를 볼 때마다 타박을 하셨다.  지는 거 뻔한데 왜 보면서 화를 내니 ?  처음에는 나도 내가 왜 욕하면서 야구를 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결국에는 엘지 트윈스에 대한 희망을 접고 욕하면서 보는 국내 프로야구와 결별하게 되었다.  안녕, 프로야구 ! 특히, 엘지 트윈스.  이 개새끼들 !!! 


이것이 끝인 줄 알았다. 나는 어느새 장르를 바꿔 고약한 심보를 프로야구에서 국내 영화로 옮겼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훌륭한 영화를 욕하면서 본다는 것은 아예 불가능해서 관람객들이 저주를 퍼붓는 영화를 주로 보게 되었다. 히, 영화 << 엄복동 >> 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극장 안내 직원이 "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 "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영화관 안으로 입장하면서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 아니오,  혼내주러 왔습니다. "  이 영화는 내가 0.3초에 한 번씩 욕을 했던 망작이었다.  자전거를 탄 엄복동이 힘찬 질주를 하기 위해 엉덩이를 들어 올릴 때마다 그의 클로즈업된 힙업을 보며 분노했다. " 이게 영화냐 ! " 


내가 극장에서 내지른 일갈은 한때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이 " 이게 나라냐 ! " 라고 외쳤던 말과 늬앙스가 비슷했다. 잠 못 드는 어제도 그런 영화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날이었다. 내 눈에 들어온 것은 2009년작 << 페어 러브 >> 였다.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었다.  친구가 죽자마자 그의 딸과 연애를 시작하는 50살 남자와 아버지가 죽자마자 아버지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 25살 여자.  캬, 막장도 이런 막장이 또 있을까 ?  이게 막창이야 곱창이야 !  늙은 남자가 어린 여자를 만나 운우지정을 나눈다는 불알후드의 성적 판타지가 레이망에 포착되자 


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 밑에서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물어뜯을 준비에 깊은 에로스를 느꼈다. 오냐, 금니빨 빼고 모두 다 씹어먹어주마 !   더군다나 내가 싫어하는 배우인 안성기가 주연이지 않은가.  ▶ 버튼을 눌렀다.  오프닝부터 몸속에 내재되었던 욕 에너지가 괄약근을 지나 중추 신경 4번 통로를 통해 뇌하수체에 전해졌다.  으하하하.  엄복동 이후로 오랜만에 다시 볼 거대한 망작이로구나.  하지만 예측은 완전히 벗어났다.  욕 에너지를 오른쪽 간뇌의 뇌하수체에 전달하기 위해 잔뜩 오므렸던 괄약근이 풀리고 말았다. 


나는 점점 이 영화에 빠져들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매우 잘 만든 멜로드라마'였다. 안성기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장면 곳곳에서 빵빵 터진다. 주책맞을 수도 있고  징그러울 수도 있는 그들의 로맨스는 어차피 사랑은 미친 짓이 아니냐,  라는 반문과 함께 묘하게 삶에 대한 통찰을 선물하고 있었다.   또한 감독이 로맨틱 멜로라는 장르를 비트는 솜씨가 제법 훌륭했다.  그리고 등장 인물 모두 개성이 뛰어나서 허투루 버릴 만한 캐릭터도 없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왜 영화 제목을 << 러브 어페어 >> 가 아닌 << 페어 러브 >> 로 정했는지 이해가 간다. 


소심한 남자는 " fair " 를 " affair " 로 끌어올린 만큼 용기 있는 사내가 아니다.  페어와 어페어 사이에서 망설이던 연인들은 결국 안전한 페어를 선택하면서 영화는 끝난다.  어느새 나는 반평생 한 번도 안 해본 남자의 변두리 페어 러브'에 삼삼칠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당혹스러웠다.  혼을 내주러 왔으나 오히려 혼이 나고 만 꼴이었다.  그래.  이런 반격, 나쁘지 않다.   그게 바로 욕하면서 보는 재미 중 하나이니깐 말이다.  나는 당분간 이 고약한 소비의 취향을,  엉뚱한 파토스를, 어페어보다는 페어의 찌질함을 지지할 생각이다. 


앞으로도 망작만 찾아 욕하면서 보련다.  재미있는 영화 따위는 당신이나 보세요. 기꺼이 양보하리다.  내 레이다에 걸려들면  나는 괄약근에 힘을 주며 이렇게 말하리라.  혼내주러 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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