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기택(송강호 분) 가족의 모략에 빠져 직장을 잃고 대저택에서 쫓겨난 가정부 문광(이정은 분)이 되돌아오는 순간, 영화 << 기생충 > 은 장르를 180도 바뀐다. 자신의 삶이 바닥이라고 믿었던 기택 가족은 바닥 반지하 보다도 더 낮은 밑바닥 지하(실) 에 사는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그때 문광은 기택 부인 충숙(장혜진 분)에게 도움을 얻고자 손을 내민다. " 언니, 우리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 ! " 지하나 반지하나, 바닥이나 밑바닥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더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 도긴개긴 아니냐는 논조다. 하지만 충숙은 문광의 말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자신이 속한 계급을 부정한다. " 내가 왜 불우이웃이야 ? " 충숙이 보기에 자신이 사는 반지하는 완전한 지하 공간이 아니다. 반지상'이다. 자신이 속한 계급을 부정함으로써 기택 가족은 문광 가족과의 연대와 결합에 반대한다.
충숙은 지정학적 위치의 우위를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신분의 우위를 주장한다. 밑바닥보다는, 그래도...... 바닥이 더 높아 ! 하지만 이 기세는 문광이 자신이 해고된 비밀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다시 역전된다. 충숙에게 " 언니 " 라는 윗 서열을 부여했던 문광은 자신을 동생이라 부르는 충숙에게 " 쌍년 " 으로 응수한다. 아가리 닥쳐, 쌍년아 ! 내가 이 장면을 주목한 이유는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서로를 부정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서로 < 이웃 > 과 < 불우이웃 > 에 대한 구별짓기를 통해서 자신의 우위를 주장한다.
이웃과는 이웃이 될 수 있지만 불우이웃과는 이웃이 될 수 없다는 태도다. <<파스타 가게 사장의 선한 영향력 >> 이라는 글은 파스타 가게 사장의 선한 의지'는 과연 좋은 행위인가에 대한 반문에서 시작된 글이었다. 내가 " 좆같다 ㅡ " 는 쌍스러운 표현을 써가면서 파스타 사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차이를 부각해서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목 때문이다. 그가 돕고자 하는 아이를 굳이 " 결식아동 " 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하는 장면은 영화 << 기생충 >> 에서 내가 왜 불우이웃이냐고 반문하는 충숙의 애티튜드를 닮았다. 이웃이면 이웃이지,
굳이 < 불우- > 라는 단어를 덧대는 심보는 아동이라는 단어 앞에 < 결식- > 이라는 단어를 강조함으로써 계급과 신분의 차이를 강조하는 마음과 닮았다. 그가 순결한 마음으로 그 아이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다면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주민센터 복지과 직원과 혐업하여 식당과 아이들을 연결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식당 문 앞에 대자보를 붙이며 자신의 선한 의지를 광고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 돈을 주고 매식하는 사람과 가난해서 결식하는 사람을 구별하고 차이점을 부각하는 행위는 당사자에게 견딜 수 없는 굴욕감과 부끄러움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간과했다.
어찌되었든, 결식 아동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광고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지상파 9시 뉴스에 전파를 탔으니 말이다. 묻고 싶다. 만약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국가에서 주는 꿈나무 카드를 소지한 아이'라면 당당하게 그 식당을 찾을 용기가 있을까 ?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 나그네 입장에서는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지내 _ 라는 집주인의 말이 전혀 편하지 않는 것처럼 결식 아동은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는 그 식당의 공고문 또한 그 아이에게는 편하지 않을 것이다.
돈을 주고 매식하는 사람들 속에서 결식 아동이라는 신분을 감춘 채 밥을 먹어야 하는 그 아이는 외롭지 않을까 ? 배려랍시고, 혹은 위로랍시고 던진 한마디가 때로는 가장 폭력적인 말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