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는 치명적이다










타인의 발바닥을 제일 많이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 산부인과 진료 거치대에 발을 올려본 적이 있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다. 그렇기에 산모가 산부인과를 내방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할 것은 깨끗한 팬티가 아니라 양말이다. 어떤 이는 팬티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양말을 소홀히 했는데 산부인과 진료 거치대에 발을 올리고 나서야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진찰을 받기 위해서는 팬티를 벗어야 하니 말이다.  그렇다면 귀를 가장 많이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  미용사'다.  미용사는 단골인 손님의 귀를 정확하게 기억한다. 귀의 생김새는 모두 다 비슷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귀 모양새는 천차만별'이다.  십 년 전,  충청도 읍네 심야 식당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도 범인은 식당 내 씨씨티븨'에 찍혔으나 불행히도 뒷모습만 나온 화면이어서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그때 한 통의 제보 전화가 걸려왔는데 제보자는 미용사'였다.  제보자가 범인의 뒷모습에서 유심히 본 것은 귀'였다.  단골 손님의 귀와 생김새가 똑같다는 것이다.  제보자의 제보는 정확했다. 그 단골이 범인이었다.  이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관심 분야는 다르다.  사랑에 빠지면 그때부터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다.  당당하게 펼친 그 사람의 어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축 쳐진 어깨를 보면 자신도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리고 자주 그 사람의 쓸쓸한 어깨에 눈이 간다. 무엇보다도 뒷모습에서 보여지는 어깨는 치명적이다. 사랑이라는 열정의 시선이 마지막에 머무르는 곳은 어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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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진실


 

                               사진은 " 찰나의 예술 " 이다.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찰나를 시간 단위로 계산한 모양이다. 이에 따르면 < 1찰나 >  1/71초로 대략 0.013초'라고 주장했다. 보통 표준렌즈의 경우 셔터 속도가 1/125초(=0.008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진에 찍힌 象은 찰나보다 2배 빠른 꼴이다. 그렇다면 인스타그램의 세계는 찰나보다도 빠른 0.008초의 세계인 셈이다. 인스타그램의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세계는 언제나 반짝반짝하고, 미남미녀로 넘쳐나며, 삶은 럭셔리'하다. 초라하거나 추레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나는 그 인화된 현상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인스타그램에서 유통되는 상은 0.008초에 불과하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인스타그램은 1/8640100초의 세계를 과시하지만 역설적이게도 86400초의 세계는 보여주지 않는다. 진짜 세계는 언제나 86400초 안에 있는데 말이다. 한때 사진은 진실을 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 보도 사진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보도 사진 한 장의 힘은 기자가 작성한 명문보다 호소력이 강했다. 하지만 지금은 진실을 폭로하기보다는 감추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애통할 필요 없다. 이제는 진짜를 경험하는 것보다 가짜를 체험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세계가 되었고, 가짜야말로 상품 가치가 높아졌다. 우리가 소비하고 있는 대부분은 가짜'다. 리얼리티라는 타이틀을 달고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100% 가짜에 기반을 둔다. 쉽게 말해서 각본대로 짜인 것이다. 리얼 예능 다큐 << 효리네 민박 >> 은 효리네 민박 체험을 통한 힐링을 표방한 방송이지만 사실 이 방송에서 보여준 모든 것은 가짜'다. 이 방송에서 효리네 식구들은 무심한 듯 시크하게 냉장고 문을 열지만 냉장고 안에 배치는 음료수는 모두 고액의 PPL이었다. 계약 조건은 섬세하다.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상품이 노출되어야 할 것. 물론 출연자가 음료수를 집어 들어서 병뚜껑을 따 마신다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뿐이 아니다. 자동차, 청소기, 매트리스도 PPL이다. 효리네 집에 배치된 물건 중에서 효리를 제외하고는 진짜는 없다. 효리 또한 각본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가짜다. 모든 방송이 가짜를 전면에 내세우는 이유는 가짜가 진짜보다 반짝반짝하고 럭셔리하며 해피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나는 반짝반짝하는 것에 대해 늘 회의적이다. 그것은 86401초 중에서 고작 0.008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0.008초가 86401초를 대표한다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경우다. 럭셔리한 그 어떤 이미지에도 열광하지 않는 태도야말로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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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속성을 동물에게 투사하지 말라 : 










갑수목장 논란을 보며











고양이를 보면 한국 사회가 보인다 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경향신문에서 4컷 만평을 연재하는 박순찬 화백의 < 장도리 > 에는 고양이 한 마리가 등장한다(자세한 내용은 링크 글 참조).  2015년 2월 즈음이었다. 장도리 만평에 고양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덩치가 작은 데다가 인물 만평의 주인공은 아니다 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다.  


일종의 듣보잡'이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불명예는 아니다. 만평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이 주로 악당이다 보니 이 만평에서 듣보잡이라는 신분 계급은 선량한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만평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느니 차라리 듣보잡으로 등장하는 것이 낫다. 이 고양이 이름은 냥도리로 길고양이'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만평 속 악당보다는 몸집은 작은 냥도리를 찾는 재미로 장도리 만평을 찾기 시작했다. 그 재미가 솔솔하다. 캬아 ~                    냥도리는 박순찬 화백이 이집트 여행을 갔을 때 만났던 길고양이다.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데 길고양이가 쑥도 아니면서 식당 안으로 쑥,  들어오더니 맞은 편 식탁 의자에 앉아서 나 한 입 너 한 입, 어때 ? _ 라고 제안을 했다는 것이다. 화백 입장에서 보면 이 상황은 << 동물농장 >> 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여유로운 길 생활은 세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세계의 고양이는 사람을 그렇게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다.  반면에 한국의 고양이는 필사적으로 숨어야지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갑수목장 사건에서 수의대생을 비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가 만든 영상을 소비했던 구독자의 태도도 비판받을 대목이 있다. 길고양이보다는 품종묘에게 더 많은 사랑을 보내는 갑수목장 구독자의 태도가 마냥 좋게 보이지 않는 까닭은 고양이를 상품의 가치로 판단하려 했던 욕망과 겹쳐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간의 개입으로 만들어진 고양이 시점의 자막들은 고양이를 고양이 그 자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의인화 장치를 통해서 판타지를 강화한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의인화'이다. 품종에 대한 집착과 짐승에게 옷을 입히고 미용을 강요하는 것도 의인화의 일종이다. 


스스로 고양이 덕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의인화된 영상을 소비한다는 것은 미덕이 아니라 악덕이다. 노벨상을 수상했던 콘라드 로렌츠는 동물을 의인화하지 말고 객관적 시선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인간의 성질을 동물 속에 투사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우리 인간 속에 얼마나 많은 동물적 요소가 있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          대한민국에서도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길을 걷는 고양이를 볼 수 있을까 ?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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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럽다









남자에게 남자스럽다 _ 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남사스럽다. 그것은 고양이에게 고양이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반대로 남성에게 여성스럽다 _ 라고 표현하는 것은 듣는 이에 따라서는 모욕적일 수 있다. 어떤 남성에게 " 여성스럽다 " 라는 표현은 견고한 남성 혈맹으로부터의 낙오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식으로 설명하자면 " 거세 " 요, 저잣거리 입말로 설명하자면 " 내가 고자라니 !  " 가 될 것이다. 내가 고자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한 설정이다. 고자로 살 바에는 차라리 고라니'로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 그렇다면 여자에게 여성스럽다 _ 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우선 여자에게 " 여성스럽다 " 라고 표현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칭찬으로 통한다. 여자에게 여성의 성질이 엿보인다고 말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고양이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소리인 데에도 불구하고 칭찬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자신의 성 역할에 충실하지 않는 여성을 지속적으로 비난하고 있었다는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성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여성을 지시하는 왈가닥, 왈패, 왜장녀, 말괄량이의 공통된 특징은 " 혈기 왕성 " 하다는 데 있다. 혈기 왕성하다는 것이 발기 불능의 반대말이라고 한다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스러운 여성은 거세된, 발기 불능의 순종적 여성상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 남성은 좆이 없는 여성을 좋아한다. 좆이라는 이름이 거북하다면 안경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해도 된다. mbc 임현주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했을 때 사회적 논란이 일었다. 누군가는 금기를 깬 파격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그 시선을 불편하게 바라보았다. 놀랍지 않은가 ?  여성 아나운서가 안경을 쓴 채 뉴스를 진행한 것은 그녀가 처음이라는 사실. 불알후드가 보기에 임현주의 안경은 좆이었던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안경 따위가 남성 권위에 대한 저항 따위로 인식하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이다. 불알후드의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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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20-05-09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임현주 아나운서 이전에 안경을 끼고 뉴스를 진행한 여성 아나운서가 있었습니다. JTBC의 안착히 아나운서예요. 그래서 임현주 아나운서의 안경을 불편하게 여긴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해요. 왜 그 사람들은 임현주 아나운서에게만 유독 가혹하게 비판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 사람들은 페미니스트로서의 행보를 보이던 임현주 아나운서가 그냥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5-09 14:53   좋아요 0 | URL
종종 여성 진행자들이 안경을 쓰는 경우는 있죠. 대부분 중년이십니다. 젊은 여성이 안경을 쓰고 뉴스를 진행하면 건방지다고 생각되나 봅니다.

가넷 2020-05-10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경쓰는게 도대체 무슨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인습같은건가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5-11 14:48   좋아요 0 | URL
글게요..ㅎㅎ
 






















헬스와 인상


 







                                                                                        오랜 시간에 걸쳐 특정 부위의 근육에 반복적으로 자극(힘)을 주면 그 근육만 발달하게 된다. " 이두박근 " 을 키우기 위해서는 A운동을 하면 되고, " 삼두박근 " 을 키우기 위해서는 B운동을 하면 된다. 그리고 넓은 어깨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깨 부위의 근육을 키우는 C운동을 하면 된다. 헬스장은 일종의 맞춤 근육을 위한 시설인 셈이다. 


몸의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건강과 체형에 도움을 주지만 근육이라고 해서 모두 다 좋은 근육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두박근, 삼두박근은 좋은 근육이지만 이명박근은 매우 나쁜 근육이다. 이명박근을 늘리면 이명박과 박근혜 같은 괴물이 된다. 반드시 주의할 것(몸짱 되려다 좆되는 경우다) !  오랜 시간에 걸쳐 특정 부위의 근육에 반복적인 힘을 주면 체형이 변하듯이 얼굴 근육도 오랜 시간에 걸쳐 특정 부위의 얼굴 근육에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면 그 근육이 발달하게 된다. 믿지 못하겠지만 사실'이다. 성형을 한 적이 없는 데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어서 인상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특정 부위의 얼굴 근육을 집중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선교와 민경욱이다. 보면 볼수록 그것은 " 얼굴 " 이라기보다는 아, 아아아. " 상판대기 " 에 가깝다.  한때는 미남이었을 얼굴이 왜 저렇게 변한 것일까 ?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주장을 잘 들어보시기 바란다. 사람 무시를 무시로 하는 사람은 주로 무시할 때 사용되는 얼굴 근육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그러면 나이가 들어 그 근육만 발달하게 된다. 단위 면적당 근육 종류가 가장 많은 곳이 바로 얼굴 부위'이다.


인상 > 이란 바로 그 특정한 얼굴 근육이 발달한 결과인 것이다. 명심할 것은 젊었을 때의 얼굴은 마음 씀씀이가 반영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근육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짱이 오랜 시간에 걸쳐 시간과 노력(힘)을 투자한 결과이듯이 나이 든 얼굴의 인상도 오랜 시간에 걸쳐 자주 사용한 얼굴 근육이 발달한 결과'이다. 나이 40세 이후가 되면 그동안 자주 사용했던 얼굴 근육이 무르익어 인상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공자는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남에게 미움을 산다면 그 인생은 더 볼 것 없다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고 말한 적 있다.)


온화한 마음으로 평생을 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온화한 인상이 되고 사나운 마음으로 산 사람은 나이가 들면 사나운 인상이 된다. 그것은 본판의 미추와 상관이 없다. 젊었을 때는 얼굴 근육이 성숙하지 못해 발현되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르면 발현되는 것이다. 젊었을 때에는 미남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늙어서 추한 얼굴이 된 사람은 평소 추한 마음을 가진 추한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존재는 시간의 산물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를 살짝 비틀자면 얼굴은 마음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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