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전갈과 예수.

 

 

 

      영화 < 크라잉게임 / 닐 조던, 1993 > 에는 " 개구리와 전갈 " 에 대한 우화가 나온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전갈은 헤엄치는 개구리에게 등에 업혀서 강을 건널 수 있게 해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러자 개구리는 성질 고약한 전갈이 자신을 물까봐 거절한다. 이에 전갈은 어이없다는 듯 한 마디 한다. " 이봐, 개구리 양반 ! 내가 자네를 물면 우린 둘 다 강물에 빠져 죽는다네. 내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할 거라 생각하는가 ? " 가만 생각해 보니, 전갈이 한 말이 옳은 듯하여 개구리는 그를 태우고 강을 건넌다. 그런데 전갈은 약속을 져버리고 강 한가운데에서 개구리'를 문다.  전갈이 말한다. " 미안해 !  이게 나의 천성인걸. " 그래서 개구리와 전갈 모두 강물에 빠져 죽는다는 우화.

 

이 우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천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우리는 흔히 유년 시절을 회상하며 순수했던 한때'를 기억하는데 사실 그것은 자아도취'에 지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순수했으나 사회 생활 하면서 타락했다는 변명은 우리가 흔히 범하게 되는 거짓말'이다. 같은 이유로 과거로 돌아가면 개과천선해서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겠다는 말도 뻥이다. 개망나니'가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해서 그 천성'을 버리기는 힘들다. 인간이란 어차피 생긴데로 노는 법이다. < 천성 > 을 두고 < 성선설 > 이나 < 성악설 > 중 한쪽을 선택해야 된다면 < 성악설 > 에 한 표'를 던지겠다.

 

왜냐하면 < 성선설 > 은 인간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개인적 판단에 의한 논리적 비약'을 허용한다면, 병아리도 아니면서 비약, 비약, 비약 한 번 나열하련다 :  < 성악설 > 은 지나치게 비관적인 자세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에게서 희망'을 읽는 자세'이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보는 문장들은  대부분 종교에 기댄 힐링 서적과 자기계발서'가 팔 할'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적들은 겉으로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빈 껍데기'이다. 당근과 채찍뿐이다. 반면 인문학은 " 인간은 본질적으로 괴물이 될 수 있다는 자세 " 에서 출발한다. 인문학은 인간이라는 괴물'을 탐구하는 영역이다. 역설적이지만 희망이란 이러한 반성과 성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열매'다.

 

불교 사상'은 성악설에 가까운 듯하다. 불교용어인 " 교화 " 란 부처의 진리로 사람을 가르쳐 착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천성이 < 선 > 도 아니요 < 악 > 도 아닌 < 무 > 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교화'를 통해서 후천적으로 선'을 얻는 과정이라면 불교는 적어도 성선설은 아니지 않은가 ? 기독교의 세계관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운명이니깐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성악설'을 주장하면 나를 사회 불만 세력'으로 간주한다. 그리고는 늘 이런 주장을 한다. " 이봐, 곰곰생각하는발 ! 그렇다면 이토록 순진무구한 아이들이 악의 씨'란 말이오 ?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고 말씀하시구랴 ! 가족이란 신성한 겁니다. 부르르르르르. " 그럴 때마다 나는 늘 당당하게 말한다. " 아이들은  < 악의 씨' > 가 아니라  < 아기 씨' > 에서 태어난 존재죠. "

 

신성한 가족 이데올로기'라는 주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가족 신화'는 해체되어야 된다고 믿는다. 가족 신화 대신 모성 신화'가 그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 현대 혈연 중심 사회인 가족주의'는 부패하기 가장 좋은 구조'다. " 우리가 남이가 ? " 는 대표적인 유사 혈맹자들이 즐겨 쓰는 해병전우회用 혈서 같다. 차, 카, 게,  살, 장 !  가족 중심 사회인 가톨릭 국가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북유럽 국가보다 부정부패 지수'가 월등하게 높은 이유는 가족주의'가 부정 부패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가족주의를 버리고 개인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만약에 이러한 가족 해체 주장'이 과격한 북조선 빨갱이들이 한 소리'라고 한다면, 나는 얼마든지 그에 대한 반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나..... 그런 놈이다.

 

대중운동에 대한 125가지 단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 맹신자들 / 에릭 호퍼, 1951 > 은 얼핏 보면 대중운동'에 대해 빅엿'을 날리는 것 같다. 할 일 없는 눈먼 놈들이 지랄하는 것'으로 읽힐 수도 있다. 학창시절에 최루탄 좀 던져봤다고 비분강개'하여 울분을 토해내는 리뷰'가 몇몇 있던데 과연 그런 식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 이 책이 쓰여진 시점에서 보면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다. 1,2차 세계대전이 막 지난, 대중의 집단적 광기가 휩쓴 시절에 쓰여졌다는 점을 고려해야 되지 않을까. 이 책에서 말하는 < 대중 운동 > 은 사실 < 대중 선동 > 으로 바뀌어야 의미가 명확해진다. 에릭 호퍼의 지나치게 보수적 시각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무릎을 탁 치며 아, 할 정도'로 예리한 부분도 많다. 그는 가족주의와 기독교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그렇지만 우리 시대의 어떤 대중운동도 초기 기독교만큼 가족에 대해 적개심을 거리낌없이 표출하지는 않았다. 예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

 

- 맹신자들, 63

 

 

 

에릭 호퍼의 지적은 옳다. 예수는 십자가를 든 혁명가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는 사랑을 가르쳤지만 동시에 정당하게 분노하는 방법도 설파했다. 예수는 썩어빠진 이교도 사회를 혁명을 통해서 개혁하기를 원했다. 혁명이란 본질적으로 기존의 견고한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일이다. 이 공동체를 이루는 근간이 바로 가족'이다. 그래서 예수는 가족 해체'를 주장한다. 지금 생각해 보아도 그는 그,그그그그급진주의자'였다. 예수는 현대적 의미의 가족 울타리'를 확대할 것을 당부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이웃, 나아가 인류 모두의 가족화를 설파하지 않았던가 ? 예수는 혈연이라는 가족'를 해체하고 더 큰 대안 가족을 받아들이라고 말한 청년이었다. 그렇다면 부처는 ?  부처야말로 가족의 탄생을 경멸했던 사람이었다. 가족이란 욕망이 탄생되는 무간지옥'이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예수와 부처는 성악설을 근간으로 해서 가족의 해체'를 주장한 사람'들이었다. ( 여기서 해체란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지 말 그대로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그런데 대한민국 기독교는 가족의 의미'를 완전히 오해했다. 성선설과 가족 신화가 기독교 기복신앙과 서로 뒤엉키면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한국형 가족주의는 장점은 적고 단점이 많은 불치병이 되었다. 가족이 가문'으로 확대되어서 가문의 일원'으로써 책무를 다 하라고 요구하면 그때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시부모는 사사건건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된 아들을 여전히 지시하고 통제하려 든다. < 가족의 심리학 > 이라는 책을 쓴 임상심리학자 토니 험프러스'는 시원하게 내뱉는다. " 시부랄, 그런 부모라면 의절해버리쇼 ! 가족의 중심은 부부가 되어야지 외부 가족이 간섭하면 엉망진창이 된다오. "

 

누누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핵가족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대가족 문화'다. 한국 사회는 대가족화'를 건강한 가족 문화'라고 치부하면서 핵가족화'를 불안한 가족 형태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거없는 뻥이다. 내가 주장하는 것은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 축소'다. 가족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최시중이 여자는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아야 한다고 주접을 떨 때 이미 이 사회를 지랄같은 사회'가 된 것이다. 비혼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은 고쳐야 할 것 가운데 하나다. 결혼은 선택이지 필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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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3-08-24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맹신자들은 제가 저에게 100대 책으로 꼽은 책입니다. 성악설에 기반을 둔 가치관 역시 저와 공통점입니다. 인간성에 본성(선적적 측면)과 양육(후천적 측면)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주의자 답게) 본성이 더 제 주의를 끕니다.

개구리와 전갈 우화 ; 전갈 꼬리를 잘라버리는 수술, cap을 씌우는 등의 후천적 영향이 있다면 달랐겠죠.

가족과 국가에 관해서는 한 번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외적 배척을 통해 내적 유대감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 도덕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은 논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신이 절대로 답할 수 없는 몇가지'에서는 이성으로 극복하라고 하는데, 제게는 그렇게 설득적이지 못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31   좋아요 0 | URL
확실히 마립간 님과 전 닮은 구석이 있어요.
당시 이 책이 51년도에 쓰여졌으니 아마도 대중에 대해 극도로 혐오스러운 것을 느꼈을 겁니다.
파시즘, 나치즘, 공산주의, 민족주의가 판을 쳤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깐 말이죠.
호퍼'의 대중운동을 지금의 대중운동과 혼동하면 안 되는데
몇몇 사람들은 신랄하게 형편없다고 하더군요. 시대적 상황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전 가족주의를 버리고 모성 중심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 여기에 대해서는 차차 생각을 적을 생각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3-08-24 0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봤죠. 호퍼..친구가 추천해주더군요..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32   좋아요 0 | URL
전 나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예리한 부분이 꽤나 있어요. 아마도 호포가 말하는 대중운동'은 대중선동'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yamoo 2013-08-24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발님!
감사합니당~~~즐건 리뷰읽기를 듬뿍 주셔서^^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32   좋아요 0 | URL
뭘 감사입니까.ㅎㅎㅎ.
야무 님 때문에 함 올린 리뷰입니다. 맞춤형 리뷰'였어요.

ㄷㄷ 2013-08-25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핫...부모님께서는 대가족 형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셔서 제가 아주 곤란한 처지에 있지요.......게다가 결혼까지 강요하시니...
+네이버 블로그는 아예 삭제를 하셨네요... 예전에 숭례문이 불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던 심경이네요...흑흑
어쨋건 이제부터는 이 곳에 자주 들르겠습니다 방금 가입까지 했네요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34   좋아요 0 | URL
삭제까지는 아니고 그냥 방치 상태로 둘 생각입니다.
몇몇이 그냥 삭제는 하지 말고 읽게 내버려달라고 요구해서
요... ㅎㅎㅎ 띵스 님을 여기서 보내요.
아니 그동안 어디계썄습니까. 안보이더니..ㅎㅎ

ㄷㄷ 2013-08-2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항상 페루애님 곁에 있었습니다(스토커는 아니고...) 퓨어워터인가 뭔가 하는 놈이 바로 저입니다ㅎㅎ뤼팽도 아니고 제가 아이디가 여럿이지요 하핫 어제 골뱅이 집을 가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아서 못 갔습니다 서운해 하질 마시길(?)...항상 저는 페루애는 곁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ㅎㅎ 저의 팔할은 이곳에 있으니까요 이제는 이곳에 익숙해져야겠네요 장미꽃 바탕에 노란 배경의 글씨들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요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9:52   좋아요 0 | URL
아, 퓨어워터 님이셨군요. 아니 뭐 남자끼리 번개 친 것을 용기까지 내야 합니까...ㅎㅎㅎㅎㅎ.
하여튼 반가워요. 띵스 님. 다음에는 강제로 나오셔야 합니다.

2013-08-25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6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8-2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가 남이가'
스스로의 무지에 대한 자랑스러운 고백일 뿐입니다.
당연히 남이지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자식과 함께 솥에 넣어 불을 올리니
자식을 밟고 올라서는게 애미였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6 00:29   좋아요 0 | URL
아주 가관이죠. 남이지 님이냐, 라고 반문하고 싶더랍니다.
솥 얘기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남부 지방 더위가 열대 못지 않다고 하던데
더위 먹지 마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서
꾸준히 글에 덧글을 달아주세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2013-08-26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6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응화 2013-09-05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지난 번 처음으로 댓글로 인사드린 알라딘 서재 애독자(?)입니다.
- 사진을 바꿔서... 혹시나... ㅎ

한때 성선설을 믿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니더군요.

결국 성선이고 성악이고 간에 개인주의로 제 가치관이 세워지더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의어 취급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판단에서도 감정을 섞지않고 나름 공정하게 처리해도
'우와, 니가 나한테 이럴 수 있나'라고 나오는 분들처럼 말이죠.

곰곰생각하는발 2013-09-06 01:19   좋아요 0 | URL
제가 사진은 항상 바뀝닏....ㅎㅎㅎㅎ.
응화 님 반갑습니다.
네에, 개인주의와 반대말이 사실은 이기주의'예요.
전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개인주의는 사실 이타주의에 바탕을 둔 개인이 자유를
옹호하는 거거든요.

하여튼대한민국 가족주의 좀 버렸으면 합니다.
 

 

 

 

나, 정현이에요 !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메일 제목은 “ 오빠, 나야 !  그때 술집에서... ” 다. 여자랑 술집에서 술을 마신 기억이 나서 혹시나 하고 클릭한다. “ 실시간 화상 채팅 !  화끈한 CSI 미녀들이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가락까지 당신을 핥아드립니다. 클릭, 클릭, 클릭 !  ”  아, 신발 ! 우리는 어떤 서사’가 숨어 있는 것일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메일을 열어보게 된다. 스팸 발송자‘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 오빠 " 라는 호칭은 다른 인칭대명사'와는 달리 반드시 친숙한 개인적 서사'를 담보'로 한다. 이 개인적 서사는 은밀한 추억과 음탕한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자기를 오빠라고 부른 수 많은 여자를 떠올린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클릭 한다. 하지만 이 짓을 몇 번 반복하면 더 이상 속지 않는다. 이때 등장한 이름이 바로 " 정현 " 따위'의 이름이다.

 

" 오빠 " 에게 속은 우리는 “ 나... 정현이에요. ” 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스팸에도 속는다. 골방 은둔자’가 아니라면 주변에 정현‘이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 하나는 있게 마련이지 않은가 ! 생각해 보면, < 정현 > 이라는 이름만큼 광범위한 이름도 없다. 여자 이름이기도 하고 남자 이름이기도 하니깐 말이다. < 오빠 > 라는 제목이 성적인 도발'을 상상하게 만드는 이름이라면, < 정현 > 이라는 이름은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애틋한 감정으로만 남은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니깐 정현'은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갔던, 나를 좋아했던 어떤 이름처럼 들린다. 메일 속엔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을까 ? 그런 마음으로 클릭 한다. 그리고는 매우 빠르게 내뱉는다. " 아, 시부랄 !! "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런 제목으로 발송된 메일을 클릭하게 될까 ? <  50년 무담보 무이자 대출 상담 > 이라는 제목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결국 나는 자본주의 사회‘는 서사의 과잉’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 무담보 대출 > 이라는 제목으로 발송된 메일은 거들떠도 안 보면서 < 기억할지 모르겠네요 ? 저... 정현이에요.  > 라는 제목에는 한 번쯤 클릭하게 되는 심리‘는 메일에 서사’가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정현?!  뇌하수체는 빠르게 회전한다. 초등학교 동창 정현, 중학교 동창 정현, 대학교 동창 정현, 우연히 만난 정현, 후배 정현, 예쁜 정원, 씩씩한 정원, 원나잇스탠드한 정현, 술자리에서 만난 정현, 그리고 내 친구의 아내 정현 ?!!!!!!   


반면 < 무담보 대출 > 이라는 제목의 메일‘은 검토하지도 않고 도착 즉시 바로 삭제하는 이유는 그 메일 속에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야기, 사연, 서사에 끌리는 유일한  동물이다. 소설과 영화가 잘 팔리는 이유이다. 하지만 서사‘가 소설이나 영화에만 쓰이는 고급 기술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서사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축소하면 개인의 사연‘이 된다. 사연이 모이고 모여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서사'다. 대중이 < 나는 가수다 > 의 임재범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 무림을 떠난 자객의 귀환이라는 서사 > 때문이었다. 이 서사는 그동안 힘들게 살았습니다, 라는 임재범의 사연과 겹치면서 상승 작용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

 

서사는 상품 가치‘가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티븨 광고’란,  이미지가 팔 할이지만  동시에 서사도 팔 할을 차지한다.   내가 보기엔 이미지는 서사를 압축한 극단적 예이다. 알툴즈로 빡빡 눌러서 빵빵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바로 이미지'다.  그래서 나는 서사와 이미지'는 서로 다른 영역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광고에서 이승기‘가 냉장고 속에 있는 김치를 먹으며 엄마’를 생각할 때, 엄마라는 이미지'는 소비자의 뇌속에 박힌 후, 알툴즈 압축풀기'를 진행한다. 엄마의 서사'가 주르륵 나열될 때마다 눈물도 주루륵 ! 대한민국 사회에서 < 엄마 > 라는 이미지'를 자주 파는 이유는 어머니'라는 이미지'에는 이미 매우 강력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와 서정'을 깔고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연상작용이다. 그래서 광고주는 물을 팔 때도 엄마를 팔고, 소설을 팔 때도 엄마를 판다. 때론 아빠도 팔고, 아들도 팔고, 아내도 판다.

 

그게 바로 자본주의다. 서사가 될 만한 것은 모두 판다.  신경숙이 < 엄마를 부탁해 > 를 통해서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엄마가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징징거리며 말했지만 사실 현대인이 불행한 이유는 엄마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보살핌( 사회적 케어 시스템 ) 이 제도적으로 부재하기 때문이다. 즉, 엄마의 보살핌'을 의미하는 복지 시스템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신경숙이 보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회를 들여다보았다면 혈연적 엄마'보다는 제도적 엄마의 부재에서 불안을 읽어야 한다. 엄마'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 그럴 가능성은 없다. 내가 신경숙을 싫어하는 이유이다.

 

■ 웅진 코웨이 광고 :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소녀시대 윤아'는 자기 대신 < 코웨이 > 를 엄마에게 보낸다. 코웨이가 코쟁이 존웨인의 줄임말처럼 들린다. 정수기'를 마치 보디가드인 양 말하는 사기치는 농간을 보면, 포청천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만하다. 프로이트가 살아 있었다면 그는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렸을 것이다. " 지금 윤아는 인지부조화'에 따른 망상에 시달리는 편집증 환자입니다. 정수기'를 보디가드'로 착각한다는 사실은, 음... 매우 심각한 상태입니다. 입원치료가 불가피하군요. 그녀가 코웨이'를 존 웨인'으로 착각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부재가 주는 트라우마'가 이 병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인 엄마가 아니라 아빠입니다. 그녀는 엄마를 부탁한다며 엄마에 대한 애정을 대중에게 어필하지만, 사실 그녀는 엄마를 증오하고 있어요. 자신이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앗아간 엄마를 증오하는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 엄마를 부탁해 > 가 아니라 < 아빠를 부탁해 > 입니다.  "


 

단언하건대, 상품은 서사‘가 함께 할 때 상승 작용을 한다. < 무담보 대출 > 이라는 제목의 스팸메일이 스팸 발송자에게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는 서사 없이 상품만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무담보 대출'이라는 제목에는 개인적 서사'가 부재한다. 수신자를 속이는 스팸이 작은 서사‘를 이용했다면, 대기업 광고’는 거대한 용량으로 당신에게 발송된 스팸 폭탄이다. 스팸 메일은 개인이 읽지 않고 삭제할 권리를 존중하지만 대기업 광고'는 선택의 권리'가 없다. 그러므로 티븨 광고는 스펨 메일보다 더 스펨하다 !  광고’란 100% 가짜다.

 

김연아가 섬유유연제 샤프란으로 옷을 세탁한다고 광고하지만, 사실 김연아는 피겨 연습하느라 세탁기 돌릴 시간도 없다.  소비자는 김연아의 성공 스토리'에 신뢰를 보내고 그 신뢰가 상품에 투영되는 것이다. 그러니깐 광고 속 김연아가 샤프란을 선택했기 때문에 신뢰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 때문에 팔리는 것이다. 이야기'를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보고, 듣는 행위이고, 다른 하나는 읽는 행위'이다. 월터 옹의 말을 빌리면 전자는 구술 문화에 속하고 후자는 문자 문화에 속한다. 여기서 김연아가 나오는 샤프란 광고를 보고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은 구술적 인간'에 가깝고, 광고에 의지하지 않고 성분 분포'를 꼼꼼하게 따지며 기업의 사회 공헌도'를 고려하여 상품을 선택하는 사람은 문자적 인간'에 가깝다.

 

어느 것이 더 현명한 판단인가는 굳이 이 자리를 빌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광고 모델과 광고 상품은 개별적 물성'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광고 모델'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기형적으로 높게 책정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소비자가 상품을 고를 때 광고 모델에 크게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한국 사회는 구술 문화'에 속한다. 이러한 증후는 곳곳에서 나타난다. 대한민국은 드라마 왕국이면서 동시에 책을 읽지 않는 민족이다. 아쉽게도 월터 옹은 말한다. 구술 문화는 후진국형 문화이고, 문자 문화는 선진국형 문화'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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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5 0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 2013-08-24 0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랜만에 읽는 페루애님의 사회정치적인 글.. 같네요.

아주 성공적으로 팔려나갔던 서사 중에 '부모님께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그 광고가 문득 떠오르기도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03:47   좋아요 0 | URL
고마워요. 새벽 님... 감사합니다.

새벽 2013-08-25 05:1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어.. 뜬금없이.. 모임에서 과음하신 거죠? 푹~ 주무시고 두통없이 잘 일어나시길.. :)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48   좋아요 0 | URL
새벽 님 항상 일찍 일어나세요..ㅎㅎㅎ 네 두통 하나도 없습니다.
어제 오셨으면 재미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했을 터인데요...ㅎㅎ.

yamoo 2013-08-2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는 발님의 이런 글을 원합니다~ㅎㅎ
코를 후비면 시원한데...바로 그느낌~

정말 발님은 까는 글에 탁월한 재능이 있으십니다. 코를 후비적 거리면서 한국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세요. 코를 후비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분은 알라딘에서 발님이 유일하십니다. 그러니 계속 페이퍼 발행을 부탁드려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원고료는 추천 백만게여요~~흐흐흐..^^
글이 쌓이시면 책을 내시고요~ 그럼 제가 1착으로 구입하것습니당~~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5 16:49   좋아요 0 | URL
어젠 머리가 너무 아파서 짧은 덧글을 달았는데.. 다시 수정합니다.
알라딘에서 유일하다 하니 더욱 전진을 해야겠군요....

히히 2013-08-25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식료품을 살 때 원산지와 대충의 성분표시는 훑어보니 개발도상국 정도는 되겠지요?
거대한 용량으로 발송된 스팸폭탄을 알고도 클릭하지요.
결국 우리 모두는 광고 중독자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6 00:25   좋아요 0 | URL
저는 대부분은 거의 클릭을 안 합니다. 잔뜩 쌓인 걸 보면 막막해요. 뭔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느낌이랄까 ? 그렇습니다.

잉크냄새 2013-08-29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순한 호기심에 의한 클릭이 아니었군요. 공감하게 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9 18:01   좋아요 0 | URL
아, 잉크냄새 님 반갑네요. 그냥 과도하게 엮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엽편소설 no.3

 

 

 

 

 

 

갈라파고스 트리몰리나 섬에서의 가마우지 낚시 !

 

 

나는 트리몰리나 군도 작은 섬에 살고 있는 " 오감바 쉼빠빠 " 에게 연락을 했다. " 굿 에프터눈, 미스터 오감바 쉼빠빠 !!! "  갑작스러운 전화에 놀랐는지 쉼빠빠'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에 가마우지들이 꾸르륵 꾸르륵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통화가 잘 들리지 않아서 나는 형식적으로 " 파인 탱큐 !  앤드 유 ? " 라고 했다. 오감바 쉼빠빠는 호탕하게 웃으며 한국말로 또렷하게 말했다. " 시부랄, 지랄 !!! "

 

오감바 쉼빠빠는 트리몰리나 섬에서 태어난 잘생긴 28살의 어부'다. 야생 가마우지를 길들여서 물고기를 잡는다.  훈련받은 가마우지 10마리를 줄에 묶어서 바다로 데리고 가면 가마우지들은 물 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아서 부리 주머니에 가둔다. 그러면 쉼빠빠는 그 물고기를 부리 주머니에서 빼낸다. 대신 가마우지가 좋아하는 삶은 고구마'를 먹이로 준다. 특히 트리몰리나 군도 가마우지들은 강원도 고랭지 고구마를 좋아해서 나는 싼 가격으로 매입한 후 오감바 쉼빠빠에게 비싼 가격으로 파는 것'이다. " 쉼빠빠 ! 원가보다도 낮은 가격으로 자네에게 파는 거야. 밑지고 파는 장사라네. 지난날에 대한 우정의 대가인 셈이지 ! "

                                

그러니깐 오감바 쉼빠빠는 내 거래처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오감바 쉼빠빠를 처음 만난 곳은 강원도 속초'에서 였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는 새벽 3시 자전거를 타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는데,  캄캄한 밤에 대낮처럼 밝은 곳이 있기에 달려갔더니 그곳은 바로 집어등 밝힌 오징어 배 선착장이었다. 그곳에 오감바 쉼빠빠가 있었다. " 오감바 쉼빠빠 !!! " 어부들은 쉴 새 없이 쉼빠빠'를 외쳤다. 쉼빠빠 ?  로봇찌빠도 아니고 쉼빠빠 ?  이름이 특이하여 누군가하고 살펴보았더니 이국적으로 생긴 쉼빠빠가 인상을 잔뜩 구부리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

 

검게 탄 피부에 양 미간은 川자로 깊게 골이 패여서 마초적인 인상을 풍겼다. 이때 다부진 충청도 어부가 참다참다 못 참고 소리쳤다.  " 에이, 씨발... 오감바 쉼빠빠 !  정말 그럴껴 ?  아니, 우리가 그런 사인겨 ? 정말 그런겨 ? 먼 말을 해봐. 우리가 그런 사인겨? 그려 안 그려 ?  "  쉼빠빠는 충청도 어부를 잠시 노려보다가 피식 웃으며 담배꽁초를 비벼 껐다. 일순 주위는 고요해졌다. 쉼빠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배사매... 배사매무쵸. 꽈르토 매라샤 타쵸. 아무르 숑숑. 배사매, 배사매 무쳐...  "  아, 쉼빠빠는 정말 베사매무쵸' 원곡을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이었다. 어찌나 간드러지게 부르는지 주낙에 걸린 오징어'는 자신이 잡힌 줄도 모르고 흔들흔들 다리를 떨고, 오징어잡이 배에 재수 없게 걸린 뽈락은 뽈짝뽈짝 뛰며 춤을 추었다. 압권은 은갈치였다. 흐느적흐느적 몸을 흔드는 것이 하와이 훌라춤을 보는 듯했다. 여기저기서 브라보와 함께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오징어는 인생의 마지막 먹물을 쏟아냈다.  그것이 나와 오감바 쉼빠빠의 첫만남이었다.

 

쉼빠빠를 다신 만난 것은 " 민정네 횟집 "에서 였는데,  쉼빠빠가 나에게 다가와 " 인디오 사람입니까 ? 저는  달콤쌉쌀한 씀바귀입니다. "  씀바귀 ? 달콤쌉쌀한 씀바귀 ?   나중에 알고 보니 오징어잡이배 어부들은 쉼빠빠에게 남미사람을 한국말로 씀바귀'라고 부른다며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멋쟁이는 달콤쌉싸래하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니깐 저는 달콤쌉쌀한 씀바귀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안녕하세요. 저는 멋쟁이 남미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보아하니 내가 쓰고 있는 모자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쓰고 있는 털모자는 " 추요 " 라는 모자인데 남미 인디오 사람들이 쓰는 전통 모자였다. 모자는 출신 성분에 따라서 문양과 색깔이 달랐으며 사람들은 모자의 모양을 보고 계급과 직업 그리고 출신 지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쉼빠빠는 추요'를 쓴 나를 보며 궁금해 하던 차였다. 그 이후 우리는 급격히 친해졌다.

  

" 우리 고향에서는 새가 물고기를 잡아유 ! "  " 새가 ? " " 응, 가마우지라는 놈인데 날지를 못한다 아닌교. 대신 잠수 실력이 대단해. 1분 넘게 잠수를 해서는 10미터도 넘는 곳을 파고 들어가 고기를 잡는다니깐. 선수야! 선수 !  그러면 우리는 그 싱싱하고 커다란 물고기'를 주둥이에서 빼내는 대신 고구마를 준당께 ! 그러면 가마우지는 그라시아스 그라시아스 하며 넙죽넙죽 받아먹고는 해부러. " " 자네 나라 포획 방식은 잔인하군 ! 줬다 뺐는 놈이 제일 치사하잖아. "  " 그게 잔인한겨 ? 으메, 시부랄 ! 잔인한 것은 자네 나라랑께. 우린 먹을 만큼만 잡지만 한국인은 먹지도 못할 만큼 많은 양을 잡는다 아닌교. 어디 그뿐이야 ? 쌍끌이 어망으로 바다 밑바닥까지 쓸어담잖아. 그놈의 명태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려 죽이고, 얼려 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죽은 것을 방망이로 때려 죽이기까지 하더구만. 얼라들 무신 죄를 지었다고 고로코롬 박대한당께. 그려 안 그려 ?  " ( 쉼빠빠'는 한국어를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어부'에게 배웠다. )

 

" 오, 쉼빠빠 ! 나의 아디오스 아미고. 한나라당 당원에게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운명의 오, 감, 바, 쉼, 빠, 빠. 이 땅에서 대한민국을 욕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하지. 자네가 말하는 말려 죽이는 고문보다 더 잔인하게 말이야. 이 땅은 백인과 미국 말을 하는 종족 이외에는 전부 " 하빠리 " 라고 생각한다네. 이게 우리의 천박한 민족성이지. " 나는 쉼빠빠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쉼빠빠의 양 미간에 새긴 내 천 자'가 더욱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 음마, 시부랄 ! 오금이 저리는구마. "

 

쉼빠빠는 잔인한 오징어 포획 방식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를 배웅하기 위해 속초 여객선 터미널로 모였다. 충청도 어부가 울먹이며 " 우리가 그런 사인겨 ? " 라며 베사메무쵸' 를 신청했으나 쉼빠빠는 베사메무쵸 대신에 톰 존스의 " sex bomb " 를 열창했다. 그가 섹스 밤, 섹스 밤'을 부를 때는 엉덩이를 앞뒤로 심하게 흔들었다. 충청도 어부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 자넨, 정말 달콤쌉싸름한 씀바귀야 ! 근데 남사스럽게 대낮부터 섹스 밤이 뭐여. 사내대장부인 자네가 계집년들 몸 냄새가 그리운겨 ?  여자라믄 콧방귀도 안 뀌더니 맘이 바꼈남 ? " 쉼빠빠가 말했다. " 그라시아스 !!! 아저씨는 한들한들 코스모스야 ! 섹스 밤이 아니라 섹스폰이어유 ! 섹스폰 섹스폰 당신은 나의 섹스폰. "  이렇게 해서 씀바귀와 코스모스는 작별을 고했다. 우리는 어부 일행과 헤어지고 나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그는 악수 대신에 섹스 밤을 간드러지게 부르던 혓바닥을 내 목구멍 깊숙이 집어넣고는 쪽 쪽 빨아댔다. " 오, 쉼빠빠 !  당신 게이였어 ? " 쉽빠빠가 웃으며 간단하게 말했다. " 응 ! "  쉼빠빠가 말을 이었다. " 언제 한 번 내 고향에 놀러와유 ! 걱정 말랑께. 느그들 엉덩이 노리지는 않는다 아이가 ! 일하는 가마우지 보고 싶지 않아유 ? 우리는 말려서 먹을 만큼 넘치게 잡지 않는다네. 그때 그때 먹을 것만 가져간당께. 그게 자연의 법칙이야. 안녕, 아디오스 아미고... 아모르, 아모르. "

 

쉼빠빠'는 오늘도 갈라파고스 군도 트리몰리나 섬에서 가마우지 낚시를 한다. 직업은 어부다. 그의 아버지 < 날마다까진무릎 > 은 섬 마을 처녀 < 오줌누때휘파람소리 > 와 통정을 해서 < 어쩌다낳은한숨 > 을 낳았다. 그가 바로 쉼빠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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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013-08-23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섹스 밤.. 요 노래 좋아합니다.
이은미도 잘 부르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01:03   좋아요 0 | URL
오, 이은미도 불렀나요 ? 함 찾아봐야지..ㅎㅎㅎ.

Beholder 2013-08-23 0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첫 글이 훨씬 가볍고 산뜻했어요. 쉼빠빠가 이주노동자로 노동 착취에 대한 한이 많았었나요? 글이 자꾸 첨언되는 걸 보면..
엽편소설은 어디로?? ㅎㅎ
I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02:1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역시 욕심이 과했군요. 자꾸 웃긴 코드를 넣다가 망친 것 같습니다.

yamoo 2013-08-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님에게 페이퍼 발행을 요청합니다. 소설 말구 재밌는 사회비판 글을 부탁드려요. 발님의 발군의 사회비판의식의 글을 마지막으로 읽은지가 오래되서 막 페이퍼를 기대하는데, 올라오는 글들이 대부분 소설비스무리한 글들이라....
거 머시냐, 박카스 국토대장정 신랄하게 까셨던 글...그런 글이 요즘 매우 고프네요. 알라딘 서재에서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분은 발님밖에 없다는 생각이 스쳐....그래서 요청하는 바입니다. 원고료는 추천 백만개^^;;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14:57   좋아요 0 | URL
정말입니까 ? 제가 사실은주로 사회비판글인데 쓰면 알라디너들이 싫어하더라고요.
ㅎㅎㅎㅎㅎ. 그래서 여기는 사회비판 글 올리지 말고 문학 비스무리한애기만 해야 되는구나 했습니다.

히히 2013-08-2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성과 우성이 만나면 열성이 나온다는 결론? ㅋㅋ

'정은 늙지도 않아'에서
옆집 젊은 영감이 혼자 사는 늙은 할멈을 덮치는데
오히려
"고맙네"라고 하더이다.
오래되서 그 장면만 남아있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6 00:3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고마울 때가 있죠.
간절히 바라는데 말은 못할 때
상대방이 먼저 말하면 고마워지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데 먼저 " 나랑 잘래 ? "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땐 고맙더이다...ㅎㅎㅎ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 코 > 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란 상투어'를 좋아한다. 절묘하다. " 비뚜름하다 " 는 코와 연결이 될 때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 눈이 비뚤어지게... " 라거나 " 입이 비뚤어지게... " 는 뭔가 어울리지 않는다. < 눈 > 은 " 사납다 " 거나 " 흘기다 " 란 단어와 어울리고, < 입 > 은 " 틀어지다 " 와 어울린다. 같은 이유로 < 코가 사납다 > 거나 < 코가 틀어지다 > 는 뭔가 맹숭맹숭하다.  곰곰 생각하는 지랄'이 도져서, 나는 어제 술을 마시면서 내내 그 생각'을 했다. 왜, 술을 마시면 코가 비뚤어질까 ?  ( 비뚤어지게 보이는 것일까 ) 일리 있는 표현일까 ?

 

생각해 보니, 코는 < 얼굴의 중심 > 이다. 그리고 가장 돌출된 부분이다. 개인적 취향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제일 먼저 상대방 코'가 보인다. 관심 있게 보는 부위가 아니라 내 시각적 기능은 기계적으로 코에 포커스'를 잡는다. 내 눈에서 발사된 포커스 아이콘은 코에 붙는다. 아이코 !! 그러니까 코는 중심 가운데에서도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다 > 는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비뚤어지다'라는 단어는 "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쏠리다. "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중심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다.

 

결국 < 코 > 는 술에 취해서 중심을 잃고 흔들거리는 꼴'을 표현하기 위해서 간택된 것이다. 누가 이런 표현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절묘한 문장력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뜬금없이 < 비뚤어진 코 > 에 대해 장광설을 펼친 이유는 내가 어제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술을 마시다가도 코가 비뚤어졌을까 봐 화장실 거울'을 유심히 볼 정도였다. 1차 - 아직은 괜찮군 ! 2차 - 아직은 괜찮군 ! 3차 - 아직은... 아, 코가 삐둘어졌다 ! 문제는 새벽에 술을 마시고 돌아와서는 블로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 결혼합시다 ! " 라는 덧글'을 남겼다는 것. 맙소사 !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으나 서른 명이 넘는 것 같았다. 이만저만 팔만이 아니다. 덧글 테러를 당한 분 중에는, 아.... 남성'들도 다수 있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 이 자리를 빌어 사과 말씀 올린다. 내가 핸드폰을 없앤 이유가 술만 마시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하는 못된 버릇 때문이었다. 입력된 번호 순서대로 전화를 거는 것이다. 이 모습이 꼴도 보기 싫어서 핸드폰을 없애버린 것인데 이 버릇이 교묘하게 덧글 테러'로 이어졌다. 아, 진짜 하늘이 무너질 것 같다. 내가 덧글로 프로포즈를 한 명단에는 50대 주부'도 있고 60대 할아버지도 있다. 아, 아아아아.....

 

앞으로는 코가 비뚤어지게 술을 마시면 안 될 것 같다. 어제 저지른 흔적들을 찾아 지우는 과정에서 이상한 글도 발견했다. 메모장에 쓴 글인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과 같다. 

 

널 좋아해서

난 종로에서

온종일 서서

널 기다렸어

온종일 서서

비가 내렸어

 

라임을 맞춘 것을 보면 노래 가사 같기도 하다. 술에 취하면 래퍼'가 될 욕심으로 랩 가사'를 쓰는 버릇이 있으니 말이다. 라임도 적당히 넣어야지 운이 사는데 저 문장은 거의 강박적으로 라임을 줬다. 하여튼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사과 말씀 올립니다. 산도적 같은 놈에게 억울하게 첫 프로포즈'를 강탈당한 여성분들에게 사과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충북 음성에 사시는 60대 할아버지 죄송해요. 저 게이는 아닙니다 ! 거듭 거듭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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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3-08-2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의 족적이 화려할 거라는 미신(아름다운 믿음^^)은 이미 당대를 초월한 레전드급이니 두말 않겠습니다만,,
다만, 곰발님 영역에서 함부로 까불어도 이심전심의 아량으로 눈감아주실 거라는 미신(아직 덜 된 믿음)이 확신으로 바뀌게 됨을.......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2 20:11   좋아요 0 | URL
아휴.. 그럼요. 제 주제에 버릇없다, 이런 말 할 처지가 아닙니다.
막 오셔서 까불어도 됩니다. 터치 안 하겠습니다.
도대체 결혼하자, 는 멘트는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문장인지 모르겠네요.
전혀 모르고 있다가 그냥 우엲 내가 쓴 덧글이 보이더랍니다. 어라 ?! 내가 글을 썼나 ? 하고 봤더니 이런 망국적 덧글이...

Forgettable. 2013-08-22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내겐 왜 결혼하지 않은거냐며 발끈!! ㅋㅋㅋㅋㅋ
코가 비뚤어지면 빨개지니까/ 코 빨개질때까지?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2 22:32   좋아요 0 | URL
결혼합시다, 당장 !!!

Nina 2013-08-2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청혼 댓글에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가 더 궁금해요 ㅋㅋㅋ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01:08   좋아요 0 | URL
그냥 웃더군요. 가끔은 성질내는 분도 있었어요. 절반은 저도 처음 보는 분들입니다. 그냥 랜덤으로 들어가서 제가 청혼을 했더군요....

조선인 2013-08-23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랜덤 청혼이라니... 쿡쿡쿡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16:45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히히 2013-08-25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말입니다.
처음은 아버지의 술이 싫어 거부했고
다음은 개떡같은 이성이 막아섰고
결국엔 몸이 받아주질 않아 기사노릇만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중년에 접어드니 술을 빌어
청춘의 객기도 부리고 소녀의 어린냥도 살랑이고 뼛속까지 여자인 척 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끝모를 나락으로 빠져들어 어째볼 수 없는 무력감에
엉엉 우는 것은 술때문이라고 철판을 깔고도 싶습니다.
노력은 하고 있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6 03:50   좋아요 0 | URL
술 좋습니다. 술이 술술 넘어갈 때는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여자가 술을 솔솔 마실 때도 좋아합니다.
술 잘 마실려면 건강해야 될 것 같아요...
 

 

조각 글 모음

 

 

 

 

■ 봄날은 간다. 2012/05/01.

 

봄날이다. ,  숭숭하다. 벚꽃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봄볕 때문이리라.  말랑말랑한 날것의 향에 취한 까닭이다. 문득 오래 전 풍경이 하나 떠올랐다. 그날도 봄날이었다. 광명 시장 근처 식당이었다. 맛은 있지만 복작거리는 식당보다 맛은 없지만 한가한 식당을 선호해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허름한 삽겹살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이때 한 남자가 들어왔다.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 끝으로 바닥을 두드려대고 있었다. 더듬거리는 모양새로 보아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람 같았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삼겹살 2인분을 시켰다. 식당에서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식사를 하는 시각장애인을 본 적은 있으나 이렇게 혼자 식당을 찾는 사람은 처음 본지라 호기심이 생겼다.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함께 한 동행자가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는 혼자서 식당을 찾은 것이다. 불판이 올려지고, 상추 그릇이 나오고, 양념장과 마늘, 고추, 겉저리 등 밑반찬들이 차례로 상 위에 차려졌다. 도대체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쌈을 싸 먹을 수 있을까 ? 고기를 집다가 손을 데이면 어떡하지 ? 내 신경은 온통 그 사람에게 쏠렸다. 불판 위에 고기가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타고 있었다.

 

남자는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귀를 쫑긋 세우고 코를 벌름거리면서 말이다. 이때 식당 주인이 와서 손님의 손을 잡고는 테이블에 놓인 그릇의 위치를 일일이 가르쳐주었다. 여긴 상추 그릇, 상추 그릇 다음엔 파무침, 파무침 그릇 다음엔 양념장, 양념장 아래엔 겉절이, 겉절이 옆 그릇은 마늘, 마늘 옆에 싱싱한 고추, 고추 옆엔 공기밥이지만 공기는 없어요. 호호호. 그리고 그 옆엔 김치와 된장 찌개가 있답니다. 이제 곧 고기가 다 익어가니 드셔도 좋아요 ! ( 고기는 여주인이 잘랐다. ) 남자는 조심스럽게 손을 더듬거리며

 

1. 상추 그릇을 찾았다. 그는 상추 한 잎을 손 위에 놓았다. 그리고는

2.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달구워진불판 모퉁이에 나란히 놓인 고기를 올렸다.

3. 젓가락을 놓더니 숟가락을 집었다.

4. 밥도 조금 올렸다. 다시

4-1. 숟가락을 내려놓고 젓가락을 집었다. 손은 다시 테이블을 더듬거리며

5. 마늘과 양념장을 찾았다. 쌈을 싸는 데에만 5분은 족히 걸린 것 같았다.

 

보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그가 드디어 쌈을 입에 넣었다. ,  있군요 ! 그가 허공에 대고 혼잣말을 했다. 아마도 식당 주인에게 하는 말 같았다. 여자는 방긋 웃었다. 그렇게 그는 혼자서 오랫동안 쌈을 싸 먹었다. 나는 행여 그릇을 엎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조심스러워 하는 남자의 겸손함을 바라보았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그는 그렇게 혼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는 쌈을 싸서 먹을 때마다 웃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는 그릇에 담긴 모든 음식을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정산 테이블로 가 계산을 치르고는 여 주인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오늘... 고기 맛이 일품이군요. 겉절이도 짜지도 않고 달지도 않고 맛있습니다. 공기밥엔 공기가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좋았습니다. 된장 찌개도 맛있어요. 모시조개를 넣으셨나요 ? 모시조개와 청양고추가 들어가니 시원하고 칼칼한 맛이 좋아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가게를 나섰다. 사내가 나가자,  나는 급히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주인은 말했다.  " 같은 건물 4층에서 일하는 안마사’예요. "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이곳에 들려서 혼자 고기를 드시고는 합니다. 네에 ? , 가족 없이 혼자 사시나 봐요. 단골이세요. 호호. 남의 시선을 가장 많이 의식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 바로 장님이에요. 앞을 못 보는 사람은 늘 단정하게 옷을 입지요. 제 주위에도 그런 분이 계시는데 사는 집이 무척 깨끗하더군요. “ 곰곰 생각하니 주인이 하는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어떤 숭고한 < 몰입 > 이었다. 그는 오직 맛을 느끼기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감각을 쏟은 것이다. 고기가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소리를 감지하고, 그 중 가장 맛있게 익는 소리를 찾고, 젓가락으로 온 힘을 다해 마늘 한 조각과 고추 한 조각을 집으려는 그 숭고한 몰입. 오직 그 생각 하나 !

 

 

봄날이다. ,    숭숭하다. 연애 한 번 못하고 봄날이 지나가는 것 같다. 오늘 밤 자주 그 남자가 생각난다. 그 남자의 손 끝, 몰입. 행복하게 웃던 모습. 캄캄한 어둠 속에서, 지독한 고독을 날마다 씹으면서도 웃을 수 있는. 그 남자의 숭고한 절망.

 

 

 

 

만물지 ( 37 ~ 38 ) 2011/06.

 

37.  경기도 부평 여자, 텃밭에 뿌린 아스피린.

 

주말이 되면 여자'는 텃밭에 가서 묵묵히 일을 한다. 여자는  그곳에  콩, 도라지, 고추, 옥수수, 토마토'를 심었다. 한해 농사'라지만  수확량은 6살 아이들 소꿉놀이처럼 초라했다.  " 자식들은 다 커서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났으니 너희들이 내 새끼려니 한단다. " 그녀는 가끔 욕실 수납장을 열어서 유통기간이 지나버린 종합영향제나 아스피린 같은 가정 상비약'을 챙겨 텃밭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잘 빻아서 물에 섞어서 뿌려준다고 한다. 잘, 자라라. 자라는 너희들은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 같구나. 아프지 말고 잘 자라라. 그녀의 이 믿음이 어떤 근거에서 비롯되었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38.  사회면 기사  :  한강,  19살 소녀.

 

19살 꿈 많은 소녀'가 한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한강 다리 위에 놓여진 것은 핸드폰이 들어있는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고 한다. 유서도 없었고, 마지막 친구와의 통화도 없었다.  소녀는 한강 다리 위에서 깊고 어두운 강을 바라보았다.  경찰은 힘든 생활고'가 자살의 원인이 아닌가 추측했다. 부모 없이 자란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하여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월 80만 원의 급여를 받고 30만 원짜리  고시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1.5평의 온기 없는 삶. 돌 돌 돌,  누에처럼 몸을 말아 이 긴 밤을 보내야 하는 고된 삶.  이 빈곤이, 희망 없음이, 외로움이 소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 파리와 사귄 적 있다. 2013/02/28

 

이런 고백이 우습게 들리겠지만 나는 파리'와 사귄 적이 있다. 파리지앵과 사귀었다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파리'와의 교감을 나눈 적이 있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한계령 너머 강원도 첩첩산중 모텔에서 1년'을 혼자 산 적이 있다. 내 인생 가장 어두운 날들이었다. 잠시 죽을까도 고민했다. 별별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내가 죽고 난 다음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짐 크레이지의 < 그리고 죽음 > 을 읽은 탓이다. 내가 죽고 나면 몰려들 파리와 구더기'를 생각하니 몸서리가 났다. 시발... 파리들 ! 죽을 때까지도 눈엣가시'로구나.  탁상용 시계를 샀다. 내가 죽은 지 3시간 후면 울리도록 설정을 했다. 자,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다시 만나자. 안녕, 지구 !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산이면 엉터리 시계는 아닐까 ? 혹시... 울리지 않는 것은 아닐까 ? 알람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나는 기다리기로 했다. 3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그 사이 나는 잠이 들었다. 모든 감정에는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다. 임계점이 지나면 다시 평온이 찾아오는 법이다. 아마도, 그때 잠들지 못했다면 나는 죽었을 것이다.  

 

*

 

늦가을이었다. 파리 한 마리'가 천장에 죽은 듯이 붙어 있었다. 겨울에 가까운 가을이었으니 파리'가 아직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모텔 방이 따스해서 아직도 늦여름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당시 나는 사무치도록 외로웠기 때문에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붙어 있는 파리를 오랫동안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파리는 방 안에 있었다. 늙은 파리였다. 내가 가까이 가도 파리는 경계 반응 속도가 느렸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마트에서 횟감을 사다가 한 덩어리'를 파리에게 던져주었다. 파리는 얌얌... 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였다. 기운을 차렸는지 이리저리 몸을 비비며 움직였다. 그렇게 우린 친구가 되었다. 파리는 그렇게 다시 며칠을 더 버텼다.  

 

며칠 서울에 내려가야 했다. 사소한 문제로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법원에 출두를 해야 했다. 서울 내려간 김에 친구도 만나고, 올라오는 길에 강릉에 들려서 후배'도 만났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달방으로 돌아왔다. 그때 잊고 있었던 생각이 났다. 파리, 그래 파리 ! 모텔 객실이라는 것이 그렇다. 창문 닫고 객실 문 닫으면 빠져나갈 구석이 없는 곳이다. 며칠 굶었을 생각을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파리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파리를 불러보기도 했다. " 데이빗 ! 데이빗 ! " 내가 파리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침대 옆을 살펴보기도 하고, 에어콘 위를 살펴보기도 했으며 티븨 뒤도 샅샅이 뒤졌으나 파리는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울컥해졌다. 다시 나 혼자라는 느낌이 몰려왔다. 이젠 완벽하게 나 혼자구나. 그날 밤 꿈을 꿨다. 몽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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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10: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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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1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히히 2013-08-21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울까 말까 -이종택

사과 껍질 벗기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피는 조금 나지만
겁은 더 난다.
울까 말까 피가 괸다.
울까 말까 울까
새발간 핏 발울
그런데 그런데......
울려도 집에는 아무도 없다.

동네한바퀴 운동하러 나갔다가 발을 헛뒤뎌 무릎에 생채기가 났는데
꼬꾸라진 채로 엉엉 소리내어 울기도 하였네요.
가끔씩은 속으로 끙끙대다가 괜한것에 트집을 잡고
울분을 토해내고 싶답니다.

찌릿하니 좋으네요.
슬픔이 차라리 힐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1 14:03   좋아요 0 | URL
피는 조금 나지만
겁은 더 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기막힌 한 수네요. 겁은 더 난다, 라...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Forgettable. 2013-08-21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깔끔한 단편소설 몇편을 본 기분이네요. 수요일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하루가 길어요. 좋은 하루! ^^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1 14:05   좋아요 0 | URL
엽편이라는 형식도 있더군요.
초단편을 엽편 소설이락 하는데 이 분야에서는 성석제'가 꽤 웃깁니다.

iforte 2013-08-21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라고 하길래 프랑스 파리를 생각했지 설마 그 파리일줄은... 전 귀신과 동거해봤는데. 실제 귀신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낸 귀신이었지요. 혼자 사는데 밤에 하도 무서워서 그냥 생각했어요. 이 귀신은 참 예쁜 처녀귀신일꺼라. 그랬더니 정말 너무 이쁜 소녀귀신이 보이는듯 '생각이 드는'거예요. 그렇게 자꾸 생각했더니 얘가 겁이 없어져가지고 나중에는 침대 발치에 앉아서 절 쳐다보기도하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나를 어깨너머로 가만 바라보기도하고.. 뭐, 실제 보이는게 아니라 맘속에서 보이는거라고요. 어쨌든, 실체를 부여해주고나니 귀신에대한 공포는 없어지더이다. 그렇게 한달 살다가 완전히 공포가 없어지고 시시해질무렵 다시는 소환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우리의 동거는 끝나고...

학기 시작하자마자 첫날부터 넘 힘들었는지 감기몸살에 걸렸네요. 넘 아파서 화가나는 중이라는....

iforte 2013-08-21 22:41   좋아요 0 | URL
아, 왜 처녀귀신이었냐하면... 총각귀신은 미디어에서 본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 도저히... 상상력 빈곤이라 봐야겠죠. 아님 주변에서 실제로 상상의 모범이 될 잘생긴 총각 모델을 볼수없었다거나...

2013-08-22 0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2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2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8-22 2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 2013-08-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봄날은 간다, 얘기가 참.. 좋네요. 저도 읽으면서 존귀한 몰입을 체험했습니다.

패밀리 레스토랑도 한 달 급여가 80만이군요. 그 비싼 음식값에 종사자들에게 박대라니.
예전에 타워팰리스인가 하는 곳 근처에서 몇 달 프로젝트를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 바로 옆의 패밀리 레스토랑은.. 거의 망하기 직전이더라구요.
저급하다고 주민들이 찾질 않는다고 합니다. 그때 우리 팀 같은 사람들이나 종종 회식 겸 가고..
참 여러 가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파리 수명은 두 달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래도 데이빗은 어디선가 편히 갔겠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2 20:21   좋아요 0 | URL
저거 2년 전 뉴스에서 듣던 거옜어요. 80만 원 받고 30만원 고시원비 내요, 핸드폰비 내면 희망이 없잖아요.
참.. 아프더라고요. 원래 자살히기 전엔 사람들에게 문자를 남긴다고들 하는데 저 소녀는
그런 자살자의 전형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요.
전화를 걸 친구도 없었다고 말입니다. 정말 마음 아프더라고요..

새벽 2013-08-23 00:5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참.. 정말이지 막막했나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3-08-23 01:04   좋아요 0 | URL
네, 정말 막막했나 봐요. 제가 알기론 부모도 없었어요. 할머니가 키웠다고 하네요. 남동생 하나 있었답니다.
서울에 올라와서 첫 일을 한 게 패밀리레스토랑이었나 봐요. 돈이 없으니 고시원 생활을 했고요... 정말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