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 착한 자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얼핏 수긍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 착한 자 > 을 < 착해 빠진 놈 > 으로 바꾼 후 다시 읽으면 이해가 간다. " 착해 빠진 놈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 니체는 정확히 보았다. 착해 빠진 놈은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추악한 진실‘을 폭로하는 것은 언제나 악마였다. 영화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에게 진실을 폭로한 자’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오직 복수에 눈이 먼 유지태'였다. 천사는 아름다운 진실’을 고백할 뿐 더러운 진실‘에는 침묵한다. 반면 악당은 추악한 진실’을 폭로한다. 스타워즈에서 악의 구현체인 다스베이더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아들에게 충격적인 고백을 한다 : “ 내가 네 애비다 ! ”
이처럼 폭로는 메두사의 얼굴‘처럼 강력하다. 악당 입장에서 보면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고도, 폭로 한 마디‘에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으니 꽤 훌륭한 창이요, 활이다. 이보다 더 좋은 무기가 어디에 있겠는가 ! 천사는 악마를 파멸시킬 수는 있으나 인간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 그가 비록 비열한 인간이라도 악마는 아니기 때문이다. 천사는 인간을 천국으로 인도하거나 위로할 수는 있어도 인간을 파멸시켜서 지옥으로 끌고 갈 수는 없다. 그 일은 악마가 한다. 그게 바로 천사가 가진 한계이다. 한편 악마는 주로 거짓말로 상대방의 영혼을 파괴하지만 종종 진실’을 폭로함으로써 영혼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악마란 거짓말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역설적인 결론이지만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비열하고 악랄한 인간 앞에서 아무 말도 못하는 천사보다는, 그런 놈들을 파멸시켜서 지옥으로 데리고 갈 악마‘가 더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미 천사란 티븨 속에 널려 있다. 각 방송사마다 소시민의 작은 소원 하나씩은 들어주지 않나 ?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방긋방긋 웃으면서 행복하세요, 를 외치는 소녀시대는 어떤가 ? 임재범은 어떠한가 ? 내가 힘들고 외로울 때, 누가 나를 위로해 주지 ? 바로... 여러분 ! 맙소사, 천사’는 이미 넘치고 넘쳤다. 이 시대의 지랄 같은 멘토들을 보라.
지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흰 옷 입고 머리에 원형 형광등을 설치한 천사’가 아니라 중저음의 멋진 목소리‘를 가진, 모자부터 양말까지 검은 색 슈트로 깔맞춤한 악마다. 악당들에게는 “ 내가 네 애비다 ! ” 라고 말해서 상대방 불알을 오그라들게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나쁜 놈들 전성시대다. 이 꼴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는 악마들은 직무유기요, 불법 파업 그리고 태만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월드컵만 되면 서울 광장으로 모여드는 그 수많은 악마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 것일까 ? 시부랄 ! 밥은, 먹고 다니냐 ?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천사가 아니라 악마다 中
비참할 땐 곰곰생각하는발.
책 한 권'에서 뽑을 수 있는 핵심 페이지는 10페이지'이다. 저자는 10페이지를 위해 300페이지' 넘게 원고를 쓴다. 물론 독자들도 10페이지 분량'을 읽기 위해 300페이지 넘게 읽는 것이다. 그러니깐 10페이지를 제외한 나머지는 첨언'이다. < 속독 > 하는 사람은 책을 빨리 읽는 사람이 아니라 < 핵심 > 을 빨리 파악하는 사람이다. 버려야 할 문장과 읽어야 할 문장'을 정확히 선택하는 것이 속독의 기술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개인적 판단이다. 그런데 종종 작가가 버리는 문장'에 필이 꽂히는 경우가 있다. < 호모 루덴스/1936, 요한 하위징가 > 에서 내가 뿅 간 부분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어떤 환자가 정신과 의사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마차로 데리러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 평범한 마차는 아니겠네요 ?" " 물론이죠. 금으로 된 마차라고요. " " 그 마차는 어떻게 끌죠 ?" " 4,000만 마리의 수사슴이 끕니다 !"
- 호모 루덴스, 274
이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질문이다. 환자가 자신이 가진 환상을 말하는 장면은 평범하다.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와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었던가. 이런 식의 허세'는 누구나 갖고 있는 표현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병적 증후가 아니란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이 환자가 가지고 있는 허세'에 별다른 이의 제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여자가 가지고 있는 허세가 단순한 과장인지 아니면 병적 망상'인지를 묻기 위해 시동을 건다. 이렇게 말이다. 부르릉 부르릉 ! " 평범한 마차는 아니겠네요 ? " 의사가 환자에게 던진 이 질문은 때론 평범해 보이는 질문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날카롭다. 이 말은 " 당신 같은 매우 특별한 사람에게 평범한 마차는 어울리지 않아요. " 라는 뜻을 전달한다.
의사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은 환자는 기분이 좋아져서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 금으로 만든 마차 " 라고 말한다. 이로써 평범하지 않은 마차는 금으로 만들어진 마차'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금은 무겁다. 금으로 만든 마차'는 그 무게 때문에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의사가 그 마차를 어떻게 끌죠? 라고 묻는 말 속에는 금 마차'는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아요, 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당황한 환자는 대답한다. 4,000만 마리의 수사슴이 끕니다 ! < 4,000 > 마리도 아니고 < 4,000만 > 마리'다. 대한민국 인구수가 5000만이니 얼추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마차를 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터무니없는 수량은 곧 환자가 제대로 미쳤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수량은 과대망상'이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다.
이 지점에서 내가 하고 싶은 요점은 대화의 기술'이다. " 평범한 마차는 아니겠네요 ? " 라는 질문은 " 당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 라는 속뜻과 같다. 당신은 특별한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데 기분 나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기분이 좋아진 환자는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 마차는 어떻게 끌죠 ? " 는 " 금으로 만든 마차는 무거워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 라는 의문을 순화시킨 말'이다. 만약에 의사가 " 금은 무거워서 금으로 만든 마차'는 움직이지 않아요 ! " 라고 공격적으로 묻는다면 환자는 방어 기제'가 작동하여 말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다. 의사는 진단을 위해 던지는 질문을 평범한 질문으로 보이도록 애를 쓴 표정이 역력하다.
망상은 충돌할수록 커진다. 환자가 처음 발화한 < 마차 > 는 규모가 작았으나 의사와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 금 마차 > 가 되더니 결국에는 < 4000만 마리의 수사슴이 이끄는 어마어마한 마차 > 가 되었다. 규모가 점점 커진 것'이다. 거짓말도 마찬가지다. 작은 거짓말은 결국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망상과 거짓말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에 대해 비참과 불만이 쌓일 때 발생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초라할수록 거짓말은 화려하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은 거짓말을 한다. 폴 에크먼은 < 텔링 라이즈 > 에서 인간은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고 지적한다. 8분에 한 번 꼴'이다. 이 수치'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은 밥 먹듯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 호모 라이어 / homo mandaxs " 다.
사람은 누구나 " 사람들이 마차로 자신을 데리러 온다. " 는 거짓말을 한다. 나에게 < 마차 > 는 우산이었다. 비가 오면 나는 우두커니 학교 건물 안에서 밖을 보고는 했다. 또래 아이들 부모가 우산을 들고 아이들을 마중 나올 때, 나는 우두커니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바랐다. 엄마가 올 리는 없었다. 내 엄마는.... 그러니깐, 청와대 교육부 장관이어서 일하는 중이었다. 나랏일을 하는데 그깟 자식 새끼 우산을 챙기러 오면 되겠는가 ? 그것은 경제를 이야기하는 데 똥파리가 날아다니는 꼴과 같다. 아이들은 엄마 손을 잡고 떠나면서 내게 묻고는 했다. " 엄마 안 왔어 ? " 그럴 때마다 나는 같은 대답을 했다. "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데리러 온다고 했어 ! " 그날, 나는 비를 맞고 집에 갔다. 다음부터는 비가 오면 제일 먼저 뛰어갔다. 마차와 우산은 동의어'다.
내가 저 위의 문장'에 필이 꽂힌 이유는 < 타락과 악마의 속삭임 > 에 대한 우화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환자가 첫 번째 내뱉은 < 마차 > 라는 말은 내가 내뱉은 우산처럼 단순히 가난을 숨기기 위한 처량한 거짓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인간 심리에 정통한 존재가 아니었던가 ! 그는 점점 커다란 거짓말을 상대방이 내뱉도록 유도한다. 들뜬 환자는 평범한 마차에서 금 마차'로 변경한다. 그리고는 결국 4000만 마리 수사슴이 이끄는 거대한 마차'가 된다. 결국에는 그 거짓말 때문에 무너질 것이다. 소설 < 적 / 2000, 엠마뉘엘 카레르 > 에서는 사소한 거짓말들이 모여서 결국에서 일가족을 살해하게 되는 장클로드 로망'이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거짓말이 폭로될 위험에 처해지자 그는 일가족을 살해한다.
만약에 악마가 존재해서 당신 곁에 있다면 악마는 의사'처럼 속삭일 것이 분명하다. " 악마를 규정하는 최종적 의미는 거짓말쟁이 ( 엠마뉘엘 카레르)" 다. 악마는 당신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기 위해서 종종 진실을 말한다. 진실이란 천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인간은 날마다 거짓말을 하지만 거짓말은 인간을 반드시 파멸시키지는 않는다. 타락시킬 뿐이다. 반대로 인간은 종종 진실 앞에서 무너진다. 역설적으로 진실은 인간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거짓말은 달콤하지만 진실은 비참하기에 당신은 거짓말에는 관대하지만 진실을 말하는 입 앞에서는 불 같이 화를 낸다. 거짓말은 물이고 진실은 불'이다. 이처럼 진실은 정의의 영역이 아니라 파괴의 영역이다. 모든 폐허는 진실이 머문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