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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 놀이하는 인간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3세 난 개구쟁이 조슈는 어느날 축제에 놀러갔다가 '졸타'라는 기계에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을 빌자 다음날 정말 30세의 어른으로 변한다. 커진 조슈를 본 어머니가 강간범으로 알고 칼을 들고 덤벼들자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오게 된다.일자리를 찾다가 멕밀런 완구회사의 전산과 말단 직원으로 취직한 조슈는 어린이의 시각에서 어린이가 원하는 장난감의 아이템을 기획해냄으로서 승진을 거듭하게 된다. 갑자기 어른이 되버린 어린 소년 조슈가 어른의 세계에서 겪게되는 모험과 사랑, 그리고 사업의 세계, 어른이 되면 세상에서 뭐든 할수 있을 것 같은 소박한 꿈을 꾸는 조슈가 실제 현실로 부딪히게 되면서 겪게 되는 웃지못할 갖가지 해프닝이 벌어 진다. 완구회사의 간부 수잔은 그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자 호감을 갖고 마침내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러나 쇼슈와는 점점 어린 시절과 집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되고 자신만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진다.
- 영화 < 빅 > 네이버 영화 소개글 발췌
나는 아이'다운 아이'에게 끌리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어른다운 어른'에게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 ~ 답다 > 라는 이데올로기는 가부장 중심 사회가 만든 폭력적인 시선일 뿐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하고,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며,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사고'는 주인이 노예를 길들이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른답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 다시 한 번 묻자. 아름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정말 여자답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 계통과 계열을 분리하고 솎아서 동종의 군집을 만다는 상상력은 폭력'에 가깝다. 아이는 아이답지 않아도 된다. 어른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아도 되고, 여자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 내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은 < 아이어른'> 이거나 < 어른아이' > 이다. 이상적인 인간형은 어릴 때는 < 아이어른 > 이었다가 어른이 되면 < 어른아이 > 가 되는 사람이다. 반면 어릴 때는 아이다운 아이였다가 어른이 되면 어른다운 어른 ( 남자다운 남자가 되거나 여자다운 여자가 되는 ) 이 되는 사람은 답답하고 갑갑한, 지나치게 체제순응적 인간이다. 말뿐인 말장난이 아니다. 빈말도 아니다. 말뿐인 말장난을 원하거든 텅 빈 마굿간으로 가라. 이 세상 모든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가진 몸보다 정신이 너무 빠르거나 늦은 경우이다. 오후 3시처럼 말이다. 성장과 성숙'은 비슷한 말 같지만 다른 말이다. 오히려 반대말'이다.
- 두 편의 소설 : 자기 앞의 생 vs 두근두근 내 인생 中
호모 루덴스 : 히틀러와 시인.
제주도는 말과 은갈치의 고장이다. 8월에 잡힌 은갈치는 얼마나 고소했던가 !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은 은갈치 상품은 한 마리에 5만 원에 팔리니 은'보다 가격이 높아 서민들은 비싼 은갈치를 금갈치'라고 부른다. 가격이 비싼 금갈치'이다보니 어부는 금갈치 보기를 금같이 한다. 하지만 똑같은 어종과 크기라 해도 그물에 잡힌 갈치'는 은갈치'라는 이름 대신 먹갈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물 속에서 이리저리 몸부림치다 보니 빛나는 비늘이 다 떨어져나가 먹빛을 보이기 때문이다. 가격 또한 절반 이하로 팔린다. 이처럼 상처 받지 않고 잡힌 놈이 비싼 몸값을 자랑하고 맛도 좋다. 청춘도 마찬가지다. 상처받지 않고 자란 놈이 더 행복한 삶을 산다.
이명박이 젊은이들에게 공장 가서 고생 좀 해 봐야 한다고 지껄일 때, 그리고 김난도가 천 번은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고 마굿간도 아닌 곳에서 말 털며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칠 때 우리는 그들에게 빅엿을 날려야 한다. 천 번을 몸부림치거나 흔들린 놈은 은갈치'가 될 수 없다. 당신은 먹갈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은갈치가 5만 원에 팔릴 때 당신은 시장에서 절반 가격에 팔린다. 멸치도 정치망에 걸린 놈보다는 죽방림'에서 잡힌 놈이 비싸게 팔린다. 이처럼 상처 입지 않은 몸은 귀하게 팔린다. 그게 진실이다. 그러니 흔들리지 마라. 젊어서 고생 사서 하지 마라. 꼰대의 말은 개나 소에게 줘라.
말장난이 아니다. 빈말도 아니다. 말 장난을 원하거든 경마장으로 가고, 말 털려거든 마굿간으로 가라. 그리고 소꿉장난은 외양간으로 가라. 내 글이 속사포 랩'처럼 리듬을 탄 말뿐이어서 내용은 없는 말재주'라는 당신의 지적은 옳다. 말은 제주도'에 많으니 말뿐인 재주'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 내가 지향하는 것은 말장난이 아니라 말놀이'이다. 말로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왜 목숨을 걸고 산을 오르냐는 질문에 조지 말로리 ( 1886년 6월 18일 - 1924년 6월, 산악인. ) 는 이렇게 말했다. " 거기 산이 있기 때문 ! " 나도 마찬가지'다. 왜 문장 속에 라임과 리듬을 넣습니까 ? 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 거기 산문이 있기 때문 ! " 산문에 리듬이 없는 문장은 죽은 글이다. 이 세상 모든 문학은 말놀이'이다. 작가는 창작 과정을 고통'이라고 말하고는 했으나 사실은 엄살'이다. 그들이 말하는 창작은 고통을 잠식할 만큼의 희열'을 제공한다. 고통이 클수록 희열'도 크다. 작가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하위징가) 다. 놀이는 가장 순수한 기쁨이다. 요한 하위징가'는 그 사실을 간파한다.
반면 호모 루덴스와는 반대되는 개념인 호모 파베르 homo faber는 도구를 사용하여 노동하는 인간'을 뜻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주인과 노예의 관계에서 주인은 파베르'를 지나치게 미화하고, 루덴스'를 가치 절하시킨다. 대표적인 텍스트가 바로 < 베짱이와 개미 > 우화'다 ! 놀고 먹는 베짱이는 얼어 죽을 놈이고, 개미는 행복한 일꾼'이라는 식'이다.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인 이 행복한 이솝 우화는 당신이 생각을 조금만 달리 한다면 꽤나 끔찍한 서사'다. 이솝은 그리스 사모스 왕의 노예'였다. 그는 세헤라자데(천일야화)처럼 날마다 왕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고, 그 대가로 왕은 이솝을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켰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다. 재,미,꾸,나 ! 그러니깐 내 말은 이솝 우화는 철저하게 주인에게 아부하는 근성을 가진 서사'라는 점이다. 꾀 부리지 말고 열심히 일해서 주인을 즐겁게 하라, 가 바로 이솝 우화가 가지고 있는 핵심'이다. 놀이/play'는 과연 아무 쓸모도 없는 비생산적인 행위이며 애들이나 하는 짓일까 ?
니체'였다면 < 베짱이와 개미 > 우화를 망치로 부셨을 것이고, 카프카였다면 도끼로 찍었을 것이다. 니체가 보기에 이 우화는 전형적인 노예의 도덕'이다. 니체는 < 비극의 탄생 > 에서 술을 관장하는 디오니소스의 정열적, 도취적, 낭만적, 격정적 예술 경향을 이상적인 가치'로 인식했다. 그것은 낭비'가 아니라 생산'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히틀러는 생산적 인간인 일하는 인간 " 호모 파베르 " 를 숭배했다. 히틀러 식 우생학인 우생 혈통 찬양은 쉽게 말해서 공장에서 일 잘 할 놈을 뽑는 시스템이었다. 건강한 몸에 대한 집착은 생산성에 기반을 둔 욕망이었다. 우리가 홀로코스트'에 대하 모르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히틀러에 의해 희생된 집단은 유대인뿐만이 아니었다. 유대인'보다 더 큰 희생을 당한 무리는 장애인과 집시'였다.
나치에 의한 최초의 대량학살 희생자는 유대인이 아니라 장애인'이었다. " 나치가 고안한 < 죽음의 장치 > 는 애초에 독일인 장애인들을 위해 고안되었다. 그리고 나서 유대인에게 적용되었던 것이다/홀로코스트산업, 노르만 핀켈슈타인. " 여기에 50만에 다다르는 집시도 체계적으로 살해되었다. 이들 무리가 공격 대상이 된 이유는 명확하다. 생산적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집시홀로코스트 규모만 해도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엇비슷하다. ) 히틀러가 보기엔 공장에서 일하지 않는 인간이야말로 얼어 죽을 베짱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하위징가의 < 호모 루덴스 > 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시점'에서 쓰여졌다는 점은 호모 파베르的 인간인 히틀러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었을까 ? 그는 실제로 나치에 반대하여 수용소에 감금되었고, 풀려난 지 2년 후인 1945년 2월에 71세의 나이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하위징가'는 언어, 법률, 전쟁, 철학, 문학, 신화, 음악 속에 잠재된 놀이의 흔적을 끄집어내고는 놀이'가 비생산적 영역이 아니었음을 역설한다. 그가 주장하는 핵심은 문화에서 놀이가 파생된 것이 아니라 놀이에서 문화가 파생되었다는 것이다. 놀이는 문화에 앞선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장은 7장 < 놀이와 시 > 이다. 하위징가는 " 시는 말로 하는 놀이 " 로 규정한다. 이러한 맥락은 폴 발레리'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는 시를 가리켜 " 말을 가지고 노는 행위 " 라고 말했다. 참고로 말을 가지고 노는 행위라고 해서 과천 경마장을 떠올리지는 말(달리)자. 딱딱한 내용이라서 웃자고 한 소리다.
고대 음유 시인들은 말 재주'의 달인이었다. 시는 커다란 수수께끼'였다. 우리는 그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이상(李箱, 1910 ~ 1937)의 그 상상'을 풀기 위해서 독자는 상상의 그 이상( 以上) 에 도전장을 내야 한다. 시는 본질적으로 수수께끼 놀이'이다. 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문학 전체는 하나의 커다란 알레고리'이다. 이 알레고리를 하나 하나 풀어나가는 방식이 바로 독해 놀이'가 아니까 ? 문학에서 은유는 가면이자 변신'이다. 독자인 우리는 그 가면을 벗기고, 변신'하기 전의 생얼'을 파악해야 하다. 그것은 놀이'이다. 작가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독자는 그것을 푼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놀이와 노동이 하나일 때이다. 일하면서 놀고, 놀면서 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창조적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불행한 이유는 놀이'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비극은 파베르'를 맹신한 나머지 루덴스'를 인정하지 않기에 발생한 비극이다. 호모 파베르적 인간인 각하'가 집권했을 때 자살률이 급격하게 치솟았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한다. 이 사회가 시를 읽지 않는 이유도 파베르적 가치'를 숭배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시인'은 호모 루덴스인 디오니소스의 후예'다. 그 옛날 원시 사회는 시인'이란 직업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두가 시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엘곤퀸 족은 1월을 < 해에게 눈 녹일 힘이 없는 달 > 이라고 불렀고, 크리크 족은 11월을 가리켜서 <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는 달 > 이라고 했다. 닝기미, 이 정도면 김소월보다 더 시적이지 않은가 ? 하위징가가 지적했듯이 고대인은 놀이와 일'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 놀이가 일이요, 일이 놀이였다. 이 풍부한 은유의 시대'는 곧 만인의 시인化를 탄생시켰다.
페니 마샬이 감독하고 젊은 톰 행크스가 연기한 < 빅 > 은 파베르와 루덴스'가 서로 조화를 이루게 될 때 창조적 결과를 얻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어느 날 갑자기 마법에 걸려서 어른이 된 13세 소년 톰 행크스'는 우연한 기회에 장난감 회사'에 취직을 한다. 몸만 어른인 그가 일과 놀이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놀이'를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승진을 위해 별 지랄을 다 떠는 승부욕에 불타는 직장 어른'보다 일을 잘한다. 그에게는 경쟁'보다는 놀이'를 통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이처럼 건강한 시스템은 파베르'와 루덴스'를 동등한 가치'로 인정한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면 호모 루덴스'라고 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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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빅 > 에서 몸만 어른인 꼬마 조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 " 집에 갈 이유는 많은데, 남아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였어요. 당신이요. " 아, 이 얼마나 멋진 사랑 고백'인가 !!!! 그에 비하면 내 고백은 정말 병신 같다. 주로 소주 4병 정도 비우면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말하고는 했다. " 나아,, 끄억.... 너. 됴하하느으 것 가따 ! " 아효 ~ 시부랄 ! 다 큰 어른이 이게 무슨 고주망태요, 얼어 죽을 동태인가 ! 다음부터는 꼬마 조쉬의 멋진 고백을 배워서 써먹어야겠다. " 오춘자 씨 ! 제가 왜 당신 집 앞에서 기다린 줄 아십니까 ? 집에 가야 할 이유는 많은데, 남아야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었어요. 바로 당신 때문입니다. 오춘자 씨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