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란 무엇인가!
부제 : 짬뽕과 딤섬.
1. 캡사이신’보다 더 화끈한 밤
그는 고교 졸업과 함께 친적이 운영하는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면서 주방 일을 배웠다. 그리고 몇 년 후에 당당히 중화요리 요리사’가 되었다. ( 그래도 여전히 주방 보조'였다. ) 몇몇 친구들이 그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직접 요리한 다양한 음식을 내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매운 짬뽕을 잘 만든다고, 탕슈우우욱’도 잘 만든다고, 군만두는 대한민국 중화요리의 수치라고, 부끄럽다고, 다 큰 어른들이 쪽팔리게 군만두 서비스로 안 주냐고 징징거리지 말라고, 한국인들은 군만두에 환장한 민족'이라고. 당시 군만두 서비스를 안 주면 화가 나서 징징거리는 성인’에 속했던 친구들은 알았다고, 그만 하라고, 듣기 좋은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지겹다고 말했다 .
고등학교 때는 본드 불고, 눈에서 레이져 쏘던 놈이었는데 나이 들고 나서 정신 차린 것이었다. 나중에 그 친구의 여자친구’도 술자리에 동석했다. 이런 자리에서 늘 하는 질문. 어디가 좋아서 둘이 사귀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방긋 웃으며 말했다. 쇼바 잔뜩 올린 오토바이가 멋있었다고, 삼일절만 되면 광복의 기쁨을 함께 하기 위해서 신나게 달리던 오빠의 빠라빠라빠라빰을 잊을 수가 없다고, 노랗게 물든 머리가 존나 멋있었다고, 성격도 화끈하다고. 그 소리를 듣던 그는 밤에는 더 화끈하다고 농담을 했다. 얼굴이 붉어진 여자’는 부끄럽다는 듯이 조용히 말했다. 캡사이신’보다 더... 더... 화끈해...예.
그의 이름이 바로 천맹기’다. 중학교 1학년이 되도록 한글’을 깨우치지 못해서 국어 시간’에 책을 읽을 때는 늘 더듬거렸다. 그러니 공부를 잘 할 리가 없었다. 반에서 늘 꼴찌’였다. 하지만 명랑한 친구’여서 꼴찌’를 한다고 기가 죽는 친구는 아니었다. 그 친구’는 화교였다. 화교인 친구가 왜 중화학교를 다니지 않고 일반 국립 중학교’에 다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 친구는 나와 함께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는 국립 중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항상 태극기 앞에서 경례를 했으나 태극기는 단 한번도 우리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적은 없었다. 도도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친구가 사는 집은 전두환이 사는 연희동에 위치한 중화학교’ 안이었다. 아버지가 중국인 학교 소사’였기 때문에 친구는 학교 관사 안에서 살았다. 그러니깐 화교인 친구는 화교 학교 안에서 살았지만 학교는 일반 대한민국 중학교를 다닌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미스테리한 일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식을 중화 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은 이유는 학교 소사인 아버지 때문에 자식이 기가 죽은 채로 학교 생활을 할까봐서 아들을 일반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
2. 보수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답은 보수다.
아버님이 하시는 일’은 고장난 책상’을 수리하거나 파손된 학교 기물들을 보수하는 일을 하셨다. 내가 이 친구’에 대한 추억으로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 보수 > 란 무엇인가, 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서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 건강한 보수란 무엇인가요? >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서이다. 진보와 보수, 빨갱이와 꼴통, 좌파와 우파 할 때의 그 < 보수 > 말이다.
니미... 보수의 정의에 대해서 토론하자고 하더니 고장난 책상 다리를 보수’하는 그 보수’로 시작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도 있겠으나, 나는 보수 / 保守에 대한 정의를 보수 / 補修’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보수란 오랜된 것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고장난 부분은 수리를 하고, 보존하고, 대를 이어 물려주려는 정신이다. 그러므로 보수/保守 의 뜻은 보수/補修 다. 건강한 보수’란 바로 낡은 것을 아끼고 사랑해서 버리지 않고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다. 옛것에 깃든 가치에 대한 긍정’이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보수’다.
문제는 보수를 대표한다는 < 새누리 > 의 정체성’이 보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 까닭은 보수인 척하는 보수이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보수’가 아니라 보신’이다. 보수당이 아니라 보신탕’이다. 자기 몸에 좋다면 얼씨구나 지화자 타령을 하며 곰 쓸개, 사슴 뿔, 물개 응응'을 날것으로 먹으며 보신을 한다. 내가 각하를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그가 지향하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색깔이 아니라 돈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구리보다는 은의 색깔을, 은보다는 금의 색깔’을 향한다. 그것은 빛에 반응하는 플라나리아의 머리’다. 그러므로 그는 이념적 보수가 아니라 거들먹거리는, 금전주의자 보스’다. 대다수 대한민국 사람들은 보수를 대표하는 사람을 뽑은 것이 아니라 백성 위에 상전으로 군림하려는 보스’를 뽑은 것이다. 명박은 상득이와는 협력하지만 완득이와는 상종도 하지 않는 분이다. 상득이의 속박'은 자업자득이다. 그것은 명박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진보’인가 ?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미친 놈이거나 미친 년이 될 것이다. 민주당’도 보수 정당이다. 보신탕’이다, 개고기다, 개소리다.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사가 가지고 있는 비극이다. 병신 같은 놈이 정치판에서는 꽤 정의로운 놈이 되어 투사 운운한다. 대한민국의 비극은 새누리’를 대표하는 보수당’이 형편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 대항마인 민주당’이 대책 없는 꼴통이기 때문에 더 비극인 것이다. 새누리’가 형편없는 점수’를 받아도 민주당’은 새누리’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새누리보다 점수가 더 형편없기 때문이다.그것은 브라질 축구 대표팀과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경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절대 이길 수 없는 경기’를 관람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경기도 없다.
■ 물론 경기도’는 있다. 행정 구역상 팔도 중 하나다. 하지만 경기도는 재미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경기도보다는 인천 월미도’가 더 재밌다. 경기도와 인천은 그렇고 그런 사이다가 떠다닌다. 그래서 서영춘은 뿜빠라뿜빠 뿜빠빠.. )
보수와 보신주의’는 180도 다른 말이다. 그런데 보신주의자들은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86.3%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 보신주의자들이다. 보신주의자들은 자신의 입지’를 공고하게 해 줄 빽과 줄 그리고 동창과 동향’을 이용하는사람들이다. 그것은 단물만 쏙 빼먹는 알사탕 마니아의 사심이지 애향심이 아니다. 그들은 낡은 의자’를 고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우리는 보수의 개념을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한 보수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그냥 보수주의자’들이다. 옛것을 낡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것은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서 바득바득 발악하지 않는다.
진보’도 마찬가지다. 진보는 빨갱이’인가 ? 드라큐라인가 ? 늑대인간?! 진보가 수구’보다는 개혁’에 가깝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보가 말하는 개혁이란 낡은 의자’는 버리고 새 의자로 바꾸자는 주의’가 아니다. 건강한 진보주의자들은 왜 꼭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하냐고 반문한다. 책상과 의자 대신 바닥에 앉아서 자유롭게 수업을 하자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진보’는 전복’보다는 전환’을 모색한다. 발상의 전환 말이다.
3. 뿅, 뿅뿅. 짬뽕은 너무 매웠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묵묵이 파손된 기물’을 보수하셨다. 당신의 손을 거쳐 나온 물건은 모두 튼튼했다. 그는 박봉이었지만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셨다. 입신을 위해서 고향’이나 지인’의 이름을 팔지도 않았다. 그는 전라도 새끼’라고 욕을 하지도 않았고, 경상도 새끼라고도 욕을 하지 않았다. 버려지는 것이 아까워서 고쳤을 뿐이고, 그 물건을 애지중지하며 아껴 썼다. 그의 작업장에는 크기가 다른 다양한 못들과 부품들이 있었고, 오래된 톱과 다양한 망치’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는 자신만의 작업장과 연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는 옛것을 사랑했지만 낡은 것’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그가 새로운 것’을 불편해 한 이유는 적의 때문이 아니라 잡다한 기능이 너무 많아서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손에 익은 것을 좋아했을 뿐이다. 그는 훌륭한 목수이며 건강한 보수주의자’였다. 그의 아들’은 전교에서 꼴지를 했지만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매운 짬뽕을 만드는 중화요리 전문점의 주방장이 되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녀석이 일하는 일터’를 찾아간 적이 있다. 비록 그가 손수 만든 매운 짬뽕 때문에 내 똥구멍에서는 불이 났지만 맛은 < 참 >좋았다. 친척이었던 중국집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는 밤 늦도록 문 닫은 가게’에서 술을 마셨다. 얼큰하게 취했을 무렵 그의 여자친구’가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누군가가 망치질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친구는 그 말에 몇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때 뽄드’를 불며 007 제임스 뽄드 흉내를 내던 철없던 놈이 철이 든 것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오빠야 성깔이 화끈해서 좋아예, 뒤끝 없어예, 밤에는 더 화끈해예, 야광봉이라예, 캡사이신보다 더, 더, 더 화끈해예. 오래 쓰는 건전지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천맹기 씨’는 마작을 하자고 했다. 내가 모른다고 하니 가르쳐주겠다고 했다. 마작을 하다가, 고스톱을 치고, 포커 게임을 했다. 술기운이 올라왔다.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했다. 닝기미, 짬뽕이 너무 매웠다.
4. 짬뽕과 딤섬
그는 지금도 주방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만들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보았던 여자와 결혼을 해서 자그마한 중국집’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오래 쓰는 건전지였던 그의 발기력’은 조금 물컹물컹해졌을 것이고, 야광봉’도 희끄무리죽죽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젊었을 때 뽄드와 부탄가스를 너무 많이 먹어서 전립선 기능 저하’를 앓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아닐 수도 있다. 하여튼 그는 오늘도 전국에서 가장 매운 짬뽕’을 만들어서 맛집 프로그램에 출연하려고 발악을 할 것이 분명하다. 캡사이신 듬뿍 넣어서 독한 맛’을 낼 것이다. 그때 생각을 하면 아직도 불타는 나의 똥구멍이 생각난다. 하루종일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캡사이신은 지독하게 나의 괄약근을 공격했다.
친구가 마지막으로 선보인 음식은 딤섬'이었다. 짬뽕으로 승부하기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고급화 전략'으로 딤섬 요리 기술'을 틈틈이 공부하고 있다며 내놓은 것이다. 내가 만두'라고 했더니 그는 화를 냈다. " 그, 그그그그것은 딤섬에 대한 모독이야 ! " 딤섬을 點心'이라고 적는단다.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이름이 시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 올드보이 > 에서 최민식이 질리도록 먹었던 군만두'는 서비스 메뉴'였을 것이다. 이런저런 추론을 해보면 유지태는 최민식을 사설 감옥'에 보내면서 날마다 밥값을 지불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밥값은 사설 감옥 직원들의 공돈으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대신 서비스'로 나온 군만두를 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그러니깐 최민식은 15년 동안 직원들이 점심을 시켜 먹고 남은, 서비스로 나온 만두만 먹다가 속 터져버린 이야기다. 만약에 최민식에게 군만두 대신 딤섬을 點心 으로 내놓았다면 그토록 비극적이지는 않았으리라.
짬뽕이 맵고 자극적이었다면, 김이 모락모락나는 딤섬'은 담백하고 순한 맛있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젊을 때는 자극적인 것을 탐하다가 늙으면 순한 맛에 매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