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당신은 내 고백을 믿을 수 있을까 ?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내 고백을 듣고 나면 조롱 할 것이다. 하지만 고백하련다. 나는 전생에 고래였다, 향유고래'였다. 오호츠크해에서 저 먼 태평양까지, 푸른 물속 헤엄치던 거대한 고래'였다. 나는 물고기 떼를 만나면 입을 벌렸다. 입은 거대한 동굴이 되어서 물고기 떼를 유인했다. 내 뱃속에서 물컹하게, 아! 씹히는 것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는 뱃속에 가두면 안 될 것을 가둔 죄'로 인간으로 태어났다. 뼈대 없는 가난한 가문에, 키 작은 루저로 환생하였으니 사람들은 그것을 업보'라고 했다. 내가 고래였을 때,
향유고래였을 때 삼킨 것은 사람이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때 삼켰던 것이 바로 " 요나 "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요나를 삼켰다. 그 죄에 대한 벌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루저'가 된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내 현생을 지랄같은 업보'라고 말하고, 현대 사람들은 나를 < 루저 > < 아웃사이더 > < 경계인 > 이라고 말했다. 통틀어서 < 乙 > 이라는 계급이었다. 곰곰 생각해 보았으나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내 전생은 새 ( 乙 : 새 을 )가 아니라 물고기였지 않은가 ?
이러한 의문은 곧 풀렸다. 옛날 사람들은 새가 죽으면 조개'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하하하. 지금이야 웃지만 계통과 계보'에 대한 기초가 전무했던 옛날 사람들은 새가 죽으면 물고기가 된다고 굳게 믿었다. 박학다식했던 정약전도 < 자산어보 > 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긴다.
[ 속명 새조개 ]
큰 놈은 지름이 네댓 치 정도이다. 껍질은 두껍고 미끄러우며 색깔과 무늬가 참새 깃털과 비슷하다. 아마도 참새가 변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북쪽 지방에는 매우 흔하지만 남쪽에는 희귀하다. .... ( 이청의 주 ) 월령편에는 " 음력 9월에 참새가 큰 물에 들어가 조개로 변하고, 음력 10월에는 꿩이 큰 물에 들어가 蜃( 신 : 무명조개 ) 으로 변한다. " 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생물이 화생'하는 것은 아니다.
- 현산어보를 찾아서, 자산어보 부분 발췌 재인용
무릎을 쳤다, 어떻게 ? 탁 !!! 정약용의 말이 맞다면 내 전생은 물고기였으나 동시에 새이기도 했다. 참새는 죽어서 새조개가 되고, 꿩은 죽어서 무명조개가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이러한 지식은 조롱거리로 밖에 보이지 않으나 사실 詩는 계통과 계보를 무시하는 세계관'이다. 시인은 말한다. 사랑하는 애인의 벌거벗은 등을 보고 " 당신은 한겨울 헐벗은 층층나무 가지" 였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화생( 化生 ) 은 시인이 바라보는 세계관이다. 그것은 시적 아우라이지 엉터리가 아니다.
물고기와 새의 수상한 관계는 오징어'에서도 드러난다. 오징어는 원래 이름이 烏敵魚(오적어)다. 까마귀 오, 적 적'이다. 까마귀의 적이라 뜻이다. 오징어가 까마귀를 잡아먹는다는 말도 있고, 까마귀가 오징어를 잡아먹는다는 소리도 있다. 진중권과 변희재 이후 최고의 적수다. 그런가 하면 나원이 쓴 [ 이아익 ] 에서는 음력 9월에 까마귀가 물속으로 들어가 오즉어'가 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물고기와 새'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 얼마나 멋진 시적 아우라'인가.
하지만 오징어란 녀석의 정체를 알게 되면 당신은 학을 떼게 된다. 지금부터 나는 완장을 찬 오징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당신이 알지 못했던 이중생활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오징어'는 원래 오징어'가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갑오징어'를 오징어라 불렀다. 그렇다면 지금 오징어'라고 불리우는 녀석은 무엇으로 불렀을까 ? 꼴뚜기다. 그러니깐 오징어는 꼴뚜기보다 몸집이 큰 꼴뚜기'인 것이다. 이러한 족보가 세월이 흐르면서 오징어'라고 불렸던 녀석은 < 갑오징어 > 가 되어 계급 서열에서 < 갑 > 을 획득하고, 큰 꼴뚜기는 < 오징어 > 가 되어 < 魚 > 라는 지위를 얻었다. 신분 세탁'을 한 것이다.
반면 몸집이 작은 꼴뚜기는 계급 분화에 따른 결과로 천민의 지위를 얻는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한다는 조롱을 받으면서 말이다. 요새 시쳇말로 하자면 乙이다. 큰 꼴뚜기였던 오징어는 甲과 乙 사이에 놓인 중산층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놈은 < 대장 > 이 아니라 < 완장 >을 찬 놈이라고 했던가 ? 오징어가 갑오징어로 옮기는 바람에 공석이 된 영역을 큰 꼴뚜기가 냉큼 차지한 것이다. 오징어가 된 큰 꼴뚜기'는 앞장서서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라며 어물전에서 고래도 아니면서 고래고래 고래 빙의를 하며 소리치고 다녔다. 허어, 통재라.
가만히 뜯어보면 어물전 세계나 인간 세계나 크게 다르지 않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던 놈들이 벼락 부자가 되면 그보다 꼴불견도 없다. 솔잎 먹던 세월은 잊은 지 오래이다.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는 노동자 파업에 대해 늘 부정적이다. 스스로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노동자임을 깨닫지 못한다.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를 멸시하고, 감정 노동자들은 고객으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똑같은 방법으로 감정 노동자들에게 푼다. 이것이 다 계급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큰 꼴뚜기 주제에 자신은 오징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그러니 계급 투표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꼴뚜기는 꼴뚜기를 지지해야 하는데 큰 꼴뚜기는 갑오징어에게 투표를 한다. 계급 상승에 대한 갈망 탓이리라. 전 오세훈를 서울 시장으로 뽑은 사람은 강남 3구가 아니다. 나는 그들의 투표를 지지한다. 왜냐하면 강남 3구 지지자들은 계급 투표를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오세훈을 두 차례나 연속으로 서울 시장에 당선시킨 수훈갑은 비 강남 유권자들이었다. 강남 3구 유권자들에게 비아냥거리지 마라.
나는 한때 고래였다, 향유고래였다. 요나를 삼킨 벌로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새(乙)가 되었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 내가 삼킨 것이 요나'였다는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나는 乙이므로 乙를 지지한다. 꼴뚜기였으면서 갑오징어를 지지하는 오징어를 경멸한다. 노동자는 노동자를 지지해야 한다. 이건 한때 향유고래였던 내가 당신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아니, 명령이다.